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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마음을 밝히는 따뜻한 시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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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i-young,李時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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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 시절을 시로 호출하다
『바다 호수』에는 자전적인 색채가 짙게 깔려 있다. 시인은 지난 세월의 기억, 인물들을 시 속으로 불러낸다. 막막한 세월, 그 아픔은 시로 옮겨지는 순간, 우리의 미소를 자아낸다. 바로 시인의 따뜻한 시선, 온기와 해학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인이 들려주는 문단 안팎의 풍경, 문인들의 소소한 뒷이야기는 이 시집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이다. 고등학교 1학년 생활기록부엔 장래희망이 法官으로 되어 있으나 끝내 법관이 되지 못하고 대신 법관과 그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뒤엎는 해방전사가 된 김남주 시인(「장래 희망」), 휘파람 잘 부는 송영 부용산을 잘 부르는 방영웅, 추임새를 잘 넣는 신선생(「청진동에서」), 소설가 김춘복 선생의 아들 결혼식 가는 길에 만난 두 사내(「광대탈」), 우이동 계곡에 살 때 밤새도록 단편을 쓰다 지쳐 새벽녘 머리를 식히려고 밖으로 나오면 눈밭 위에 호랑이 발자국이 찍혀 있더라는 "좀 쎈 구라"의 주인공 황석영 선생(「노변 정담」), 어느 상갓집에서나 가장 늦게까지 엉덩이를 대고 앉아 있는 소설가 이문구와 그 곁에서 얼떨결에 같이 밤샘한 박영근 시인(「박영근 시인」), 월드컵 축구 한국-폴란드 전이 있던 날, 그런 것하고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한 스님과 술을 마시고 있던 김정환 시인(「김정환」)…… 또한 아픈 시대를 몸으로 살아낸 이시영 시인이 그려 보이는 기억의 풍경은, 한 개인의 자전을 넘어선다.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증거이다. (……) 1974년 11월 18일 저녁 종로경찰서 정보과 조사실. 고은 선생은 긴급조치하에서, 그것도 백주 대낮 종로 한복판에서 일어난 문인들의 기습 시위에 놀란 서장인지 누구인지 모를 정복 입은 사내에게 무릎을 걷어채이고 있었고 송기원은 돼지 판 돈을 갖고 올라와 등록을 안 하고 거기 온 게 잘못이었고 나는 가방에서 나온 대학원 제출용 리포트 '이용악론'이 문제였다. (……) 늦은 밤 종로경찰서 숙직실 골방. (……) 후루룩거리며 불어 먹는 설렁탕의 뜨거운 김으로 우리들의 안경에도 뽀얗게 김이 서리는 밤이었다. ―「아홉 켤레」 중에서 옛날 동숭동 서울 문리대 시절, 교련반대 시위로 교문을 사이에 두고 학생과 경찰이 지루하게 장기 대치중일 때였다.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학생 하나가 대열에서 뛰쳐나오더니 맨 앞의 핸드마이크를 빼앗아 쥐고 경찰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경찰은 물러가라! 경찰은 물러가라!" 놀란 경찰이 후다닥 방패를 챙겨들고 일단 진격 자세를 취하자 핸드마이크가 다시 한번 외쳤다. "경찰은 물러가라! 경찰은 물러가라! 만약 안 물러가면, 만약 안 물러가면 안 물러가는 걸로 간주하겠다!" 그래서 경찰도 와르르 웃고 학생들도 한바탕 배꼽을 잡고 웃었다는데 그 학생의 이름은 뒷날의 유명한 소리꾼인 임진택이었다. ―「경찰은 물러가라!」 전문 이렇듯 이시영 시인은 일견 "관찰일기 같기도 하고 순간적인 착상의 메모 같기도 한" 시편들 켜켜이 고통의 세월, 아픈 기억을 새겨놓았다. 그러면서도 해학을 잃지 않는 특유의 어법 때문에 읽는 이는 따스함과 위로를 느끼는 것이다. 시인의 시력(詩歷)이요, 시의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