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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berto Eco,움베르트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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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 제목은 미네르바라는 상표의, 성냥이 담긴 두꺼운 종이로 된 조그마한 갑에서 따온 것이다. 그 성냥의 <표지> 뒷면에다 종종 주소라든지 지출 목록을 기록해 두거나, 또는 내가 종종 그러하듯이 기차 안이나 바에서, 식당에서, 신문을 읽거나 가게의 진열장을 바라보면서, 책장의 서가들을 뒤지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속기로 메모해 두곤 한다는 사실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 이 칼럼에서 내가 추구한 또 다른 기준이 하나 있다. 가령 엄마를 죽이는 것은 부당한 행동이라고 모든 사람이 동의할 때, 굳이 내가 글을 써서 그건 나쁘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착한 감정을 선동하는 자기 과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pp.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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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나는 안젤로 오르소를 기억하는가? 어린 내가 똑같은 장난감을 갖고 살았던 거의 10년의 시절(또한 안젤로 오르소의 행복한 삶)도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요즈음 장난감들은 값도 싸고 빨리 망가진다. 소형 라디오처럼 계절마다 바뀌고, 따라서 예전의 텔레풍켄이나 마렐리 라디오처럼 가족이 해체된 뒤에까지 살아남지 못한다. 이제는 어린이가 더 이상 하나의 마법적 대상물(거기에 수많은 기억과 감동들이 서린)에 거의 한평생을 바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냉정해 보인다. 어떻게 일기장 없이, 또는 기념물도 없이 지상에서 살아갈 것인가.
--- p.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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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약 새로운 프루스트가 나타났는데 집안의 재산이 없다면, 문화성에서 그에게 최소한 샴페인과 호텔 체류 비용, 사교 모임에 입고 갈 연미복, 방 안에 깔 코르크를 제공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그것은 게르망트 공작 부인이 생각할 일이지, 납세자가 할 일이 아니다(납세자는 숙명적으로 수백 명의 미치광이 프루스트 모방자들에 대해서도 돈을 내야 할 테니까). 만약 그렇다면 혹시 새로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잃을 위험이 있지 않을까? 참도록 하자, 다행히 이미 하나가 있으니까.
--- p.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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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고급 사교계의 두 신사가 똑같은 색깔의 똑같은 상표의 옷을 입고, 똑같은 파티에 참석할 때면 히스테릭한 장면이 연출되곤 하였다. 유머 작가나 기발한 희극 작가들은 그 낡아 빠진 상투적 주제를 갖고 장난하곤 하였다. 그런데 어린이들에게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만약 학교 친구가 아기 공룡 그림의 셔츠를 입고 있거나, <비망록 수첩>을 갖고 있으면, 다른 친구들도 모두 똑같은 것을 갖고 싶어한다.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 신문들은 더욱더 어린이를 닮아 가고 있다. 젖먹이들이 우리에게 오도록 내버려 두자.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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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정치가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어떤 결정의 찬반을 평가하고, 협상하고, 자문을 구하였다. 그리고 비밀스러운 협상 과정에서 여러 차례 생각을 바꾸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매스 미디어의 압력에 떠밀려 그 <시행착오> 과정의 매 단계를 공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나오지 않게 되고, 그러면 자주 나오는 사람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들은 최소의 악을 선택한다(차츰차츰 흐릿해진 그들의 머릿속에서 그것이 이제는 마치 최대의 선처럼 보이게 된다). 그들은 매 순간마다 자기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을 말한다. 그렇게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은 분명 아주 정당하고도 생리적인 것이다. 다만 그것을 곧바로 공개하는 것은 병적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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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짧은 에세이들을 묶은 책, '미네르바 성냥갑'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처럼 이탈리아의 유력 주간지 '레스프레소'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했던 동명의 칼럼에서 뽑은 글들을 묶은 것으로, 이탈리아에서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논쟁적인 글들을 다수 담고 있고, 일부는 학교에서 이용되기도 하였다. 에코는 정치, 미디어, 문화, 예술 등 온갖 영역의 부조리하고 어리석은 현상들을 번뜩이는 기지와 해박한 지식으로 비평하면서 익숙한 것을 낯선 것으로, 새로운 것을 낡은 것으로, 도덕적 엄숙함을 위선적인 것으로 드러내면서, 역설과 불행, 광기가 뒤섞인 우리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다. 인류의 보편적인 관심사들과 현안들을 특유의 유머와 기지로 재치 있게 풀어쓰고 있는 이 책은, 지식인은 위기를 드러내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정의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에코의 걸작 칼럼집이다.
에코의 거울 속에 비친 우리 시대의 우스꽝스러운 풍속화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원래 칼럼의 제목 그대로인 <미네르바 성냥갑>으로 이탈리아에서 2000년에 출간된 것을 옮겼다. 에코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미네르바>는 성냥의 상표 이름이다. 1920년대부터 생산되기 시작하여 지금도 담배 가게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이 성냥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하나씩 떼어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종이 성냥이다. 애연가인 에코의 주머니에는 거의 언제나 이 <미네르바> 성냥갑이 들어 있었고, 에코는 백지로 남아 있는 이 성냥갑의 안쪽 면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다. 에코는 이러한 자신의 습관에서 칼럼의 제목을 떠올린 것이다. '미네르바 성냥갑'에는 전편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보다 훨씬 다양한 주제와 문체, 서로 다른 감정의 톤을 담은 글들이 실려 있다. 에코는 서문에서 스스로 주로 자기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쓰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시종일관 어리석은 세태를 비꼬고 조롱하는 것만은 아니다. 전편처럼 유머와 익살에 기대어 세상에 쓴소리를 내뱉는 글도 많지만, 때론 서정적인 목소리로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도 하고, 때론 아주 진지하고 장중한 목소리로 부조리한 현실을 질타하기도 한다. 주제 면에서도 훨씬 다양해졌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 주로 일상생활의 작은 일화들에서 길어 올린 웃음의 걸작들이었다면, 이번에는 정치인과 매스 미디어, 국제 정치에 관해 실명을 거론하면서 본격적으로 비평하는 현실 참여적인 글들과 책과 지식인, 예술의 의미와 역할 등 중요하지만 재미없게 쓰이기 일쑤인 중요한 주제들을 에코다운 문체로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는 글들도 다수 있다. 이 책에서 에코는 에세이스트, 희극 작가, 만담가가 되기도 하고, 문화 비평가, 정치 평론가, 미래학자, 기호학자가 되기도 하면서 일인다역을 수행한다. 그때그때 그 시대의 상황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모습을 변신시켜 가장 적절한 표현 형식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서부터 이쑤시개에 이르기까지 에코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것들에서도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발견해 낸다. 심지어 아무런 글쓰기의 소재가 없던 주에 에코는 <나는 아무 할말이 없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밝히면서 아주 멋진 걸작 칼럼을 만들어 낸다(제1권의 마지막 칼럼 'XXXXXXXXX 여러분은 잘못 읽지 않았다: xxxxxxxxx' 참조). 에코의 손끝에서 익숙한 것은 낯선 것으로, 새로운 것은 낡은 것으로, 도덕적 목소리는 기만적인 자기 위선의 목소리로 바뀌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던 익숙한 생각들과 관례들은 어리석고 부조리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부조리한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우리들의 세계와 닮아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에코를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