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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초점을 바꿔야 한다 문제는 남자니까
no.1 남자는 여자에 비해 생식 가능한 날이 50배 더 많다 no.2 정자는 5일까지 살아 있다 no.3 여자의 가임 여부는 예측할 수 없다 no.4 배란은 비자발적이지만 사정은 자발적이다 no.5 여성용 피임법은 접근도 사용도 어렵다 no.6 남성용 피임법은 접근도 사용도 쉽다 no.7 사회는 남자들이 콘돔을 싫어한다는 생각에 집착한다 no.8 정관절제술은 난관결찰술보다 위험이 적다 no.9 사람들은 피임을 여자의 일로 여긴다 no.10 남자들이 더 편하기만 하면 사회는 여자의 고통을 무시한다 no.11 사회는 남자의 쾌락이 성관계의 목표이자 일순위라고 가르친다 no.12 여자는 쾌락을 느끼지 않고도 임신할 수 있다 no.13 모든 원치 않는 임신의 원인은 남자다 no.14 사람들은 여자에게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남자의 몸까지 책임지기를 기대한다 no.15 우리는 초점을 남자로 옮겨야 한다 no.16 남자들이 자기 행동을 책임지게 만든다고 여자가 피해자가 되지는 않는다 no.17 남녀 간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는 실재하고 이는 순식간에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no.18 여자는 임신에서 가볍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no.19 우리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 정직하지 않다 no.20 양육의 현실적인 난관과 부담은 측량이 불가능하다 no.21 임신이 처벌이 되어서는 안 된다 no.22 입양은 임신중단의 대안이 아니다 no.23 무책임하게 사정한 남자들은 아무런 뒤탈이 없다 no.24 정자는 위험하다 no.25 남자들은 자신의 몸과 성욕을 생각보다 잘 제어할 수 있다 no.26 남자들은 임신중단을 손쉽게 예방할 수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no.27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no.28 이렇게 행동하자 덧붙이는 말 감사의 말 미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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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을 쓰고 안 쓰고가 성관계의 쾌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예를 들어 쾌락이 없는 상태는 0, 최대치의 쾌락은 10이라고 표시하는 육체적 쾌락을 측정하는 장치가 있다고 해보자. 솜씨 좋은 마사지는 이 장치에서 5 정도이고 콘돔을 쓰지 않았을 때의 오르가슴은 10이다. 이 장치에서 콘돔을 썼을 때의 성관계는 어느 정도의 수치일까? 7? 아니면 8? 수치가 몇이든 콘돔을 썼을 때의 성관계는 쾌락이 전무한 상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쾌락이 적은 상태일 뿐이다. 가령 10이 아닌 8 정도로.
그러면 우리는 굉장히 심란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남자들이 콘돔을 쓰지 않는 성관계를 선택하는 것은 조금 더 강한 몇 분간의 쾌락을 경험하기 위해 여자의 몸·건강·사회적 지위·직업·경제적 지위·인간관계, 심지어는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다. 이 글을 쓰는 내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다. 생각만으로도 위가 아파온다. 남자들은 정말로 여자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몇 분간 조금 더 강한 쾌락을 택한다고? 그렇다. 그렇게 한다. 그런 일은 매일 일어난다. 길가에 핀 민들레만큼이나 흔해 빠졌다. --- 「사회는 남자의 쾌락이 성관계의 목표이자 일순위라고 가르친다」 중에서 여자가 성관계에 동의했다 해도 남자가 자신의 질 안에 사정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 아무리 여자가 “제발 콘돔 없이 하자. 당신이 내 몸 안에 사정해주면 좋겠어”라고 해도남자가 콘돔 없이 성관계를 해 여자의 질에 사정하게 만들 수 없다. 여전히 남자는 선택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정자를 어디에 둘지 결정하는 건 남자다. 남자만이 자신의 정자로 무엇을 할지, 정자를 어디로 보낼지 선택할 수 있다. 여자가 남자에게 콘돔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도 남자에게 콘돔 없는 성관계를 강제하지 못한다. 남자에게는 거절할 권리가 있다. 만일 남자가 콘돔 없는 성관계를 하기로 선택했다면 원치 않는 임신을 유발할 위험을 선택한 것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무엇을 해도 된다고 ‘허락’하든 여자는 (합법적으로는) 자신의 몸 안에 남자가 사정하도록 만들 수 없다. 남자가 하는 일은 100퍼센트 남자의 책임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음경을 와플 기계에 넣어도 된다고 ‘허락’한다 해도 남자가 그럴 리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무책임한 일을 하라고 지시했고 여러분이 그 무책임한 일을 하기로 선택한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여러분에게 있다. --- 「모든 원치 않는 임신의 원인은 남자다」 중에서 그렇다. 우리는 성관계를 즐기는 여자를 당연하다는 듯 탓한다. 어떻게 감히 여자가 성관계를 하고 싶어한담? 하지만 이건 너무 뒤떨어진 관점이다. 남자가 삽입하는 동안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자는 누구도 위험에 빠뜨리거나 해치지 않는다. 삽입을 하면서 오르가슴을 느끼는 남자는 여자의 몸, 건강, 소득, 관계, 사회적 지위, 심지어는 목숨까지 위협하고 다른 인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당신이 임신중단을 줄이는 데 관심이 있다면,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임신중단에 초점을 두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자에게 초점을 두는 것 역시 해답이 아니다. 여자들은 이미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있다. 당신이 정말로 임신중단을 줄이고 싶으면 그보다 앞선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임신중단 대신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려면 무책임한 사정을 막아야 한다. --- 「우리는 초점을 남자로 옮겨야 한다」 중에서 임신중단에만, 그것이 합법적·윤리적 권리인지에만 초점을 맞추면 원치 않는 임신을, 그리고 무책임한 사정을 줄이지 못한다. 하지만 무책임한 사정을 크게 줄이면 원치 않는 임신도 줄어들고, 임신중단 역시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남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실용적인 결정이다. 지금까지 일방통행로에서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들에게, 무책임한 사정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른 모든 것(원치 않는 임신과 임신중단의 감소)은 초점을 정확히 맞추고 나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 「우리는 초점을 남자로 옮겨야 한다」 중에서 출산은 위험하다. 어쩌면 가장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가장 위험한 일을 하는 직업으로 소방수와 경찰 같은 남자가 대다수인 직업을 꼽는 경향이 있다.하지만 이 지레짐작은 틀렸다. 앞서 언급했듯 미국에서 임신부 사망률은 10만 명당 17.4명이다. 경찰의 근무 중 사망률은 10만 명당 13.5명이다. 이는 임신부가 임신 때문에 사망할 확률이 경찰이 근무 중에 사망할 확률보다 높다는 뜻이다. 임신과 출산은 다른 일보다 더 위험하기만 한 게 아니다. 여성의 86퍼센트가 이 위험한 일을 한다. 그리고 대부분 한 번 이상 한다. 인류의 미래는 대다수 여성이 이 믿을 수 없이 힘들고 위험한 일을 기꺼이 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성립한다. 우리는 이 정도로 위험한 어떤 일을 남자의 86퍼센트가 기꺼이 맡을 거라고 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 중에서 누가 제일 용감한지 꼽아보라고 하면 아마 사람들은 응급구조대나 소방관, 암벽등반가나 스카이다이버라고 대답할 것이다. 임신부를 언급하는 사람은 아마 없지 않을까. --- 「우리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 정직하지 않다」 중에서 정자는 고통과 일생일대의 혼란, 심지어 죽음까지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체액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정자는 사람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동시에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 정자는 임신을 유발하고,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심신 건강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 경력, 재정 상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정자는 위험하다」 중에서 정부를 운영하는 건 주로 남자들이다. 법을 만드는 것도 주로 남자들이다. 근 50년간 많은 남자가 임신중단을 줄이고 싶다고 주장하면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어떻게 뒤집을지에만 골몰했다. 그러다가 2022년 6월, 역시 주로 남자들로 이루어진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었다. 50년간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남자들이 정말로 임신중단을 줄이는 데 관심이 있었다면 50년이나 걸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떤 시점에든 남자들은 임신중단 관련 법은 건드리지도 않고, 여자의 몸을 법으로 옭아매지도 않고, 심지어는 여자를 언급하지도 않고 아주 짧은 시간 안에(고작 몇 주 정도면 된다) 선택에 의한 임신중단을 뿌리 뽑을 수 있었다. 남자들이 책임감 있게 사정하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되니까. 그런데 남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지금도 남자들은 그 선택을 이어가고 있다. --- 「남자들은 임신중단을 손쉽게 예방할 수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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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여성에게 위험과 책임을 떠넘기고
남성에게 쾌락과 방종을 보장한다 임신은 위험하다. 임신은 단기적인 신체 변화는 물론 영구적인 손상까지 유발하여 여성의 신체를 완전히 바꾸어놓을 수 있으며, 막대한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임신부가 사망할 확률은 경찰, 소방관 같은 고위험 직군보다 높으며,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보다도 높다. 이러한 위험에 더해 여성은 임신으로 인해 직장을 잃거나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거나 학업을 포기해야 할 수 있으며, 양육이라는 무거운 책임이 뒤따를 수 있다. 당연히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부작용을 감내하며 피임약을 먹거나 각종 피임시술을 받거나 ‘무책임한 남성’에게 콘돔을 쓰길 요청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반면 임신의 위험에 무지한 수많은 남성이 임신 가능성과 자신의 쾌락 사이에서 쾌락을 선택한다. 그런 남자는 “길가에 핀 민들레만큼이나 흔해 빠졌다”. 사회에는 ‘남성은 콘돔을 싫어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으며, 가부장적 사회인 미국은(마찬가지로 한국은) 성관계의 목표는 남성의 쾌락(사정)이라고 말한다. 남성의 성욕은 통제할 수 없이 강한 것으로 여겨지며, 일반적인 인식은 물론 대부분의 연구가 남성의 사정으로 성관계가 끝난다고 여기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그러니 ‘무책임한 남성’, 바로 수많은 남성이 고작 몇 분간의 조금 더 강한 쾌락을 위해 콘돔을 거부하고 여성의 질에 사정하기로, 여성의 몸·건강·사회적 지위·직업·인간관계, 심지어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원치 않는 임신이 하게 되었을 때 비난의 화살은 남성과 무방비하게 성관계를 맺은 ‘헤픈’ 여성을 향하고, 남성은 여성으로부터, 원치 않는 임신의 위험과 양육의 책임으로부터 쉽게 도망쳐버릴 수 있다. 따라서 저자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 여성에게 책임을 지우고 남성의 쾌락을 우선하는 문화, 임신·출산의 위험성과 양육에 필요한 막대한 노력을 짚으며 ‘낙태죄’를 제정하거나 임신중단의 조건을 제한하거나 ‘조신하게 있을 것’을 강요하는 등 여성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보다 법과 제도를 통해서든 문화적 변화를 통해서든 남성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임신중단을 줄이고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문제들까지 해결하는 올바르고 합리적인 선택임을 강조한다.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 모두를 위한 간단하고 완벽한 해결책 2022년 미국에서는 임신중단의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번복되었다. 대부분 남성으로 이루어진 대법원은 ‘비윤리적인’ 임신중단을 막기 위해 이를 불법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무려 50년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그런데 남성들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하지 않고도, 심지어 임신중단을 언급하지 않고도 임신중단을 막을 수 있었다. 원치 않는 임신을 유발하지 않는 것, 즉 무책임하게 사정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남성들은 몇 분간의 쾌락을 위해 여성의 몸·건강·사회적 지위·직업·인간관계, 심지어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임신중단을 쟁취해야 할 여성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든 하지 말아야 할 ‘비윤리적 행위’라고 비난하는 사람이든 주장해야 할 것은 명확하다. 임신을 원치 않는 상황에서 무방비하게 사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남자들이 그렇게만 한다면, 우리는 임신중단에 관해 논쟁할 수조차 없다. 그러니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 이 하나면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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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책 제목에 놀란 당신, 책장을 넘기면 금세 저자에게 설득될 거다. ‘사정’이란 단어는 남성이 성관계 절정에 다다랐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표현이다. ‘싼다’라고 원초적으로 말하는 경우도 흔하다. 언어는 생각을 지배한다. ‘사정한다’는 ‘성욕’과, ‘싼다’는 ‘배설욕’과 연결된다. 원치 않은 임신, 임신중단, 성병 등 생각 없는 ‘배설’로 생기는 문제들은 여성의 삶을, 심지어 목숨을 위협한다. 여성의 고통을 안다면 단어 선택부터 달라야 한다. 누구나 사정하기 전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콘돔을 끼든, 정관수술을 받든. ‘배설’하는 대신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 - 추적단 불꽃 ((원은지)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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