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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Chapter 1 오십의 삶을 뒤흔드는 질문들 영원의 풍경, 그리고 찰나의 인생 | 계속 갈 것인가, 돌아설 것인가 | 중년의 위기는 존재하는가 | 나이의 사회적 의미 | 갑작스레 닥쳐온 겨울 | 중년에 찾아온 질문들 | 가장 빛나는 시기를 위한 철학 안내서 Chapter 2 우리 모두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멈추어라, 시간이여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 | 철학은 죽음을 배우는 과정이다 | 박탈 문제 | 삶의 조력자, 죽음 | 순간을 사는 이는 불멸이다 Chapter 3 후회 없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놓쳐버린 기회들 | 아니, 나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요 | 스피노자와 니체의 후회 | 후회와 회한의 차이 | 소크라테스의 선택 | 후회 없는 선택은 없다 | 이 결정이 무엇을 바꿀 것인가 | 죽기 전에 무엇을 후회하게 될까 | 후회는 진정한 가치를 드러낸다 | 불행은 행복에 도달하는 조건이다 | 슬퍼하고 자부하며 감사하라 Chapter 4 오십은 과연 인생의 정점일까 사진 속 주름을 보정하듯이 | 나이 듦을 질병으로 생각하는 사회 | 전성기에 대한 철학의 생각 | 아리스토텔레스, 중년의 미덕 |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 인생 경험과 결정 지능 | 인식, 나 자신을 아는 힘 | 거리두기와 아이러니 Chapter 5 숨 가쁘게 달려왔는데 무엇이 남았는가 톨스토이의 절망, “그럼, 그다음은?” | 쇼펜하우어의 악순환 | 텔릭, 목표 지향적 생활 | 아텔릭, 지금 이곳의 나를 위한 일 | 계획한 대로 사는 삶과 연속적인 삶 | ‘의미 있는 삶’의 기준 | 오십을 위한 성찰 프로젝트 책임과 배려의 파급효과 Chapter 6 설렘과 경이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더 이상 처음은 없다 | 생기가 없는 삶 | 식어가는 사랑, 침식하는 행복 | 인생의 경외감을 느끼는 여덟 단계 | 놀라움의 능력을 상실하는 사람들 | 열려 있는 상태 Chapter 7 우리는 살아 있기에 길을 잃는다 삶이여, 기꺼이 다시 한 번 | 혼돈의 골짜기 너머로 | 길을 잃었음을 받아들이기 감사의 말 주 |
Barbara Ble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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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1321년 저술한 『신곡』에서 35세가 된 자신을 인생길의 한중간(nel mezzo del cammin)에 들어섰다고 표현한다. 그는 어둡고 거친 숲속에서 길을 잃는다. 단테의 표현대로 그는 길에서 벗어났고 덤불 사이에서 어떤 길을 또 가게 될지 알 도리가 없다. (중략) 소설 『스토너』에 등장하는 동명의 주인공 스토너는 42세에 “앞으로는 즐거울 일이 없고, 뒤로한 날에는 기억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가 하면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50세를 넘는 것은 악몽’이라고 말하며 50세가 되면 이미 죽음이 시작된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보부아르는 “나는 중년이 그렇게 빨리 시작되고 또 그렇게 아프리란 건 몰랐다”라고 말한다. 또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는 『고백록』에서 자신이 맞이한 중년을 가리켜 단테의 ‘광야에서 길을 잃은 자’와 비슷한 묘사를 한다.
중년의 철학은 위기에 대한 취약성을 숙고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무엇이 중년을 풍요로운 충만의 시기로 만드는지 파악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년은 위태로운 시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인생의 전성기’ 내지는 ‘최고의 시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고대에는 중년이 성숙에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시기란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렇다면 철학적 의미에서 성숙이란 무엇이며, 그 충만함을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개인의 성숙과 그에 따른 충만함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생 경험과 중년에 생기는 과제를 현명하게 다룰 때만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실존적 의문과 새로운 질문에 맞닥뜨리며 근본적인 위기의 시기를 맞이한다. 중년이 철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이렇게 말한다. “철학적 문제는 ‘나는 나 자신을 알지 못한다’라는 형식을 띤다.” 인생의 풍경 속에서 길을 잃고 자신을 잃어버린 채 더는 갈 길을 모른다고 느낀 그 지점에서 모든 철학적 사색과 실존적 질문, 탐색이 시작된다. 길을 잃었을 때 우리는 고독한 존재가 되며 그보다 더 철학적인 순간은 없다. --- 「1장, 오십의 삶을 뒤흔드는 질문들」 중에서 죽음과 삶의 통합을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자신의 유한성을 깨달으면 충분히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면 개인의 유한성은 일종의 볼록렌즈가 되어 자신에게 중요하고 얼마든지 시간을 투자해도 좋은 일이 무엇인지 드러내준다. 자신의 시간이 한정되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중요한 일에 더 깊이 관심을 기울이는 법은 무엇인지 묻게 된다. 자신의 유한성을 떠올릴 때 우리는 ‘본질에 집중’하고, ‘불필요한 것을 비우고 과도한 것을 흘려보내’는 정도의 주체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이 주체성은 저절로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이 짧다는 사실에 직면하면 얼어붙거나 허망함 또는 강박 상태에 쉽게 빠질 수 있다. --- 「2장, 우리 모두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중에서 “후회는 미덕이 아니다. 즉 후회는 이성에서 나오지 않으며 오히려 행위를 후회하는 사람은 두 배로 비참하고 무능하다.” (중략) 스피노자 같은 사람이야말로 후회에 대해 너무도 잘 알지 않았을까? 종교 공동체의 신념을 거스르는 의심과 비판적 견해를 드러낸 그의 결정이 그를 외롭고 외면받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지적 정직성에 따라 틀린 것에 수긍하지 않았던 그는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스피노자는 광학 렌즈를 깎고 연마하는 일로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마흔네 살에 만성 폐렴으로 사망한 스피노자는 근대 초기에 가장 급진적인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역사에 남았다. 인내는 우리를 쑥쑥 자라게 하고 완고함은 갈등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한다. 생의 한가운데에 있는 우리는 폭풍우를 잘 이겨냈는지 자문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미 한동안 인생의 행로를 걸어왔다. 그러니 우리가 증명해낸 굳건함에 자부심을 품을 만하다. (중략) 우리가 후회하게 될 선택을 했던 그 당시에는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나중에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 몰랐다. 현명하게 결정하지 못한 이유는 그것뿐이다. 지금껏 우리가 이뤄낸 많은 일은 현명하게 결정을 내렸거나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연과 행운의 결과물일 때가 많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리고 모든 면에 감사하고 겸손한 태도를 갖는 것은 우리를 온화하게 만들며, 고통과 행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충만한 삶을 열어준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공감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 「3장, 후회 없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자기 본질이나 고유 특성을 계발하는 일도 중시했다. 이 계발에 성공하는 사람은 자신에게서 최고의 것을 끌어내고 본질이 올바른 ‘좋은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성공적인 계발은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 즉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의 필수 조건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따르면 우리는 본질을 드러내고 내면에 잠자는 잠재력을 완전히 활용할 때 좋은 삶을 산다. 하지만 인격이 발달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일단 우리 스스로 최고의 형태로 성숙해야 한다. 그래서 중년기가 최고의 시기가 되기에 가장 손쉬운 출발점인 것이다. 청년기에 비하면 우리는 착실하게 인생을 보냈고 발전할 시간도 있었다. 그리고 노년기와는 달리 아직 긴 세월이 남았기에 우리가 그간 얻어낸 풍요로움을 활용할 기회가 있다. --- 「4장, 오십은 과연 인생의 정점일까」 중에서 쇼펜하우어가 만든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라는 이미지는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는 목표를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지만 목표 달성의 기쁨은 때로 절망적일 정도로 짧다. 목표를 달성하면 홀가분해질 거라고 믿었지만 기쁨은 잠시뿐, 다음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해진다. (중략) 만족, 행복, 내면의 평화 없이 성공이 무슨 소용인가? 젊을 때는 매번 새로운 계획을 따라가면 결국 언젠가는 평온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인생은 잘 정리된 책장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목표 달성에 따르는 행복이 보기만 해도 편안하게 잘 정리된 책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한 각성 상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넘치는 일, 쌓이는 업무, 매번 새로 생기는 할 일 목록은 결코 저절로 끝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다짐하곤 한다. “이제 이것만 끝내고 나면 드디어 쉴 수 있겠지!” 그렇게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매번 휴식을 다음 기회로 미룬다. --- 「5장, 숨 가쁘게 달려 왔는데 무엇이 남았는가」 중에서 우리는 때로 지루함도 환멸도 정체감도 아닌, ‘그게 정말 전부인지’를 묻는 쓰디쓴 질문에 직면한다. 1869년 콘라트 페르디난트 마이어가 「놓아버린 노」라는 시에서 묘사한 것처럼 행복한 가운데서도 단조로운 시간을 겪었고 완전히 침울한 나날도 경험해봤다. “나를 불쾌하게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 나를 기쁘게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 오늘도 고통 없이 흘러가는구나!” 이런 나날은 오히려 생기의 흐름에 어떤 파고도 일으키지 않으며, 이런 나날 속에서 우리는 자기 삶의 구경꾼인 것처럼 시간을 흘려보낸다. 여기에는 어떤 불행의 빌미도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뭔가 더 나아지지도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중략) 문제는 역동적인 하루를 보장하는 ‘삶의 광채’가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불만족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 파악하기가 힘들어서 혼란스럽다. --- 「6장, 설렘과 경이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중에서 “이것이 나의 삶이었다. 나는 그것이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한 번 살겠다.” 중년인 지금은 러셀의 서문에 있는 또 다른 부분, 기회가 있다면 인생을 기꺼이 한 번 더, 그것도 무조건 살겠다는 결론에 감동하게 된다. 러셀의 인생이 언제나 모순 없이 순탄했던 것이 아닌데도 그는 항상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시의적절하지 않거나 위험한 상황에도 자신의 이상을 옹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그 결과까지도 감수했다. 뉴욕시티칼리지는 러셀의 교수 임용을 철회하라는 대중의 압박을 받았다. 러셀이 기독교계의 성 윤리를 반대하며 동성 커플의 평등권을 주장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도 러셀은 자기 삶을 다시 산다면 피하고 싶은 것에 대해 함구했다. 그가 기꺼이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긴 것에는 그의 인생을 충만하게 해준 수많은 것들만이 아니라 심연 그 자체까지 포함되었다. 괴테는 1777년 발표한 유명한 시에서 말한다. “신들은, 무한한 존재인 신들은 /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에게 모든 것을 / 모든 기쁨을, 무한한 존재는 / 모든 고통을, 무한한 존재는 완전히 준다.” 이 말이 맞지 않는가? 인생은 매끈하게 잘 닦여 있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정리된 책장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매번 “혼돈의 골짜기”에 빠진 자신을 발견한다. 일생의 절반을 지나 우리가 겪는 고통의 심오한 의미를 언제나 명료하게 알 수는 없고 대개는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나 드러난다. 좀 더 나이 들어서 좀 더 멀리서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 과거를 통찰하고 어떤 섭리가 작용했는지 깨닫게 된다. --- 「7장, 우리는 살아 있기에 길을 잃는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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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써 인생의 정점을 지나버린 것일까?”
뿌리부터 흔들리는 오십에게 전하는 철학자 바르바라 블라이슈의 ‘철학의 지도’ 오십, 누군가는 이른 은퇴를,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상상하지만, 마냥 젊다고 하기엔 조금 늦은 나이. 여전히 생의 과업에 치이며 이룬 것이 없다는 절박감이 들거나, 남들보다 많이 이뤘음에도 왠지 모를 허무함에 젖어들기 시작하는 나이기도 하다. 인생의 절반을 지나오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뒤돌아보며 ‘지금 이게 내 인생의 전부일까?’ 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무려 14년간 스위스 국영TV 토론 프로그램 〈위대한 철학의 순간〉의 진행을 맡아온 철학 저널리스트 바르바라 블라이슈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이러한 의문과 혼란들이야말로 중년을 ‘위기’에 빠뜨리는 핵심이자, 동시에 삶을 재구성하는 계기로 작동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철학 에세이 『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는 뿌리부터 흔들리는 중년의 삶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담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유한성과 정체성, 인생의 의미에 관하여 차근차근 문답을 이어가며, 중년의 시기를 의연히 헤쳐 나가기 위한 철학의 지도를 독자와 함께 그려나간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바뤼흐 스피노자, 버트런드 러셀, 톨스토이, 시몬 드 보부아르, 최신 현대철학 담론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철학자들의 지혜와 사유의 향연 속에서 변화하는 ‘중년의 철학’을 정립하고자 한다. 이 책에 따르면 중년은 이제 더는 인생의 초심자가 아니며 경험의 무기고를 가득 채우고 결정 지능마저 최고조에 이른 삶의 절정기다. 저자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나이 듦에 절망하지 않으면서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지나온 길에 대한 후회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며, 수많은 경험을 무기로 갖췄지만 여전히 생기를 잃지 않는 어른으로 거듭나기를 응원한다. 지금 인생의 절반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책이 찬란한 내일로 성큼 나아갈 수 있는 “인생의 지혜서”(정호승)가 될 것이다. “오십 이후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단테, 보부아르, 톨스토이에게도 중년은 처음 맞는 ‘위기’였다 이 책에 따르면 중년의 삶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것은 다름 아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실존적 의문들이다. ‘청춘을 바쳐 얻은 결과가 이것뿐인가’ ‘새로운 꿈을 꾸기에 이미 늦은 나이인가’ ‘이 다음에는 무엇을 목표로 살 것인가’와 같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 여기에 후회, 허무, 침체가 뒤따르며 중년의 삶은 위기에 처한다. 이처럼 중년을 맞아 난생 처음 ‘인생의 유한성을 깨닫고 위기에 취약해지는’ 현상을 두고 1960년대 심리학자 엘리엇 자크는 ‘중년의 위기’라고 명명한 바 있다. 누구나 오십은 처음 겪는다. 중년의 위기는 평생을 인생에 대해 숙고해온 철학자들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14세기 문학 거장 단테는 “인생길의 한가운데에서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였고, 시몬 드 보부아르는 50세를 넘는 것이 악몽이며 이미 죽음이 시작된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알베르 카뮈는 당시 중년이라 할 수 있는 서른 살을 두고 시간이 ‘최악의 적’이라 불렀으며, 버나드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1965)의 스토너는 중년의 삶이 “앞으로는 즐거울 일이 없고, 뒤로한 날에는 기억할 만한 것이 별로 없”음을 깨닫는다. 이에 50대의 길목에 들어선 저자는 중년이 그 자체로 실존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아 여전히 철학사 속 공백으로 남아 있다고 보고, 이 책에서 중년에 대한 철학적 규명을 시도하고자 중년이라는 우거지고 어두운 숲을 뚫고 나간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위기(Krise)’ 또는 ‘위험한 고비(Krisis)’라는 단어는 본래 ‘불확실성’, ‘긴박함’이자 동시에 ‘전환점’을 의미했다. 이 시기에 직면하는 도전 과제에 신중하게 대처하고 실존적 의문을 현명하고 유익하게 극복할 때 우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철학적 문제는 ‘나는 나 자신을 알지 못한다’라는 형식을 띤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저자는 인생의 풍경 속에서 길을 잃고 자신을 잃어버린 채 더는 갈 길을 모른다고 느낀 그 지점에서 모든 철학적 사색과 실존적 질문, 탐색이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길을 잃었을 때 우리는 고독한 존재가 되며 그보다 더 철학적인 순간은 없다.”(1장) “인간은 단지 늙어가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철학자가 된다는 것” 덧없음과 후회에 빠진 중년을 향한 ‘이반 일리치’와 스피노자, 니체의 일침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더 적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하는 나이 오십에 우리는 비로소 인생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덧없음’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2장) 철학사에서 죽음은 언제나 삶의 스승이었다. 플라톤, 키케로, 몽테뉴 등은 “철학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했고, 쇠렌 키르케고르는 죽음을 “진지함을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했다. 죽음이 인간을 철학자로 만드는 최초의 질문이라면, 오십대의 삶이란 철학적 실천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십을 위한 철학의 지도를 담은 이 책이 ‘죽음’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죽음이 삶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는 박탈 논증과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대칭 논증의 관점 등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파악한다. 나아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나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생의 절반」 등 문학작품에 깃든 사유를 바탕으로 중년이 유독 ‘유한성’ 앞에서 취약한 이유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되짚는다. 지나온 생을 돌아보며 “절대로 가지 않았던 대안적 인생의 길”을 아쉬워하거나 후회에 빠져 있다면, 지금 자신의 감정이 후회인지 회한인지 구분해보자. 회한은 돌이키거나 수습할 수 있는 일에 관한 죄책감이라면 후회는 내 손을 떠나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감정이므로 이에 대응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저자는 후회 없는 삶이란 없으며, 지나온 과거와 화해하고 삶이 주는 좋은 것들을 재발견하고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서 덧없음의 고통과 후회를 다스릴 수 있다고 우리를 다독인다. 타인의 욕망에 휘둘리다가 죽기 전 후회했던 노년의 이반 일리치와 달리 중년에게는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다. 혹시라도 여전히 후회라는 과거의 망령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스피노자의 따끔한 일침이 도움이 될 것이다. “후회는 미덕이 아니다. 이성적이지 않으며 비참하고 무능하다.” 니체는 어떠한가. “불의를 저질러 후회한다면 차라리 좋은 일로 보상하라고 노력하라.” 인생의 한가운데에서 후회를 넘어 “폭풍우를 잘 이겨내고 있는지 자문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굳건함에 자부심을 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허무와 침체에 빠진 삶… 설렘과 경이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우리를 진정 늙게 하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생기’의 노화다 SNS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주름살을 보정하는 현대인들처럼 시몬 드 보부아르도 자신의 주름을 바라보며 ‘다시는 낫지 않을 고질병에 걸린 것 같다’고 여겼다. 우리 사회는 신체의 노화를 최대한 늦추고자 하는 ‘저속 노화’ 열풍이 한창이지만 정작 우리의 노화를 가속화하는 것은 ‘생기’의 노화다. 철학의 관점에서 중년은 ‘충만의 시기이자 과잉의 시기’ 즉, 수많은 과업으로 녹초가 되는 동시에 경제적 안정과 타인의 인정을 얻으며 정체감과 권태감을 느끼는 시기다. 그 어느 때보다 “고통과 권태 사이를 시계추처럼 끊임없이 오가는 존재”(쇼펜하우어)임을 느끼며 삶에 대한 설렘과 경외감을 서서히 잃어간다. 톨스토이 역시 정체감과 공허감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는 생의 한가운데에서 ‘완전한 정지 상태에’ 빠진 채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항상 같은 질문을 던진다. ‘무엇 때문에? 그럼 그다음은?’” 과업이 하나가 끝나면 다음, 또 다음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중년의 삶 속에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는 데 실패한다. 블라이슈는 인생의 의미는 자기가 정말 사랑하는 일에 몰입하면서 동시에 외부의 가치를 찾아 헌신하는 삶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무언가를 돌보고 배려하는 자세에서 나오는 ‘파급효과’가 우리 삶에 생기를 돌려둔다는 것이다. 톨스토이가 중년의 위기를 딛고 찾아낸 행복의 열쇠 역시 ‘평범하게 일하며 자연을 존중하고 자신의 삶을 초월하는 무언가를 책임지는 자세’에 있었다. “경험의 무기고를 가득 채운 오십, 찬란한 내일을 향하여” 중년을 생의 절정으로 만드는 세 가지 자질 경험?인식?거리두기 고대 철학에서는 중년기를 ‘최고의 시기’ 즉 절정기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따르면 육체적으로는 30~35세, 정신적으로는 49세에 전성기에 도달하며 이 시기는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덕을 깨닫게 되는 시기다. 인생의 모든 시기에는 저마다 ‘적절한’ 특유의 자질이 주어지지만, 중년에는 특히 인생 경험과 자기 인식, 거리두기라는 세 가지 자질을 얻게 된다. (1) 중년에는 체력과 기억력 같은 유동지능은 떨어지지만 경험의 무기고는 풍성하게 채워져 결정 지능은 상승하며(경험), (2)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왔는지에 대한 자기인식뿐 아니라 관계 안에서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는 시기이다(인식). (3) 나아가 자기 신념과 믿음만이 유일하고 객관적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고 삶의 비극들에서 한발 떨어져 인생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거리두기’가 가능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인생에서 중년만이 얻을 수 있는 자질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할 때 우리는 내일에 대한 새로운 용기와 확신, 영감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중년이 겪고 있는 고통의 심오한 의미를 명료하게 파악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지나온 길을 돌이켜보고 나서야 윤곽이 들어날 뿐”이다. 하지만 산이나 사막,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법. 미로에서 어떻게든 빨리 출구를 찾으려고 우왕좌왕하는 사람은 오히려 탈진하고 만다. 이를 중년의 위기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이 책이 중년이라는 혼란스러운 지형의 윤곽을 드러내고, 미답지(未踏地)인 새로운 풍경으로 성큼 발 딛게 하는 데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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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당신은 행여 인생의 길을 잃고 사랑을 잃었는가. 중년의 어두운 그늘에 앉아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의 발걸음을 두려워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책을 읽어라. 이 책은 인생이라는 사막에서 홀로 걸어가다가 만난 낙타와 같다. 목마른 사막에서 마신 우물물과 같은 인생의 지혜서(智慧書)다. 중년의 의미와 가치를 통찰(洞察)한 이 책은 언제 어디서나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중년의 불안과 위기는 없다. 오직 현재의 기쁨과 미래에 대한 감사가 있을 뿐이다. - 정호승 (시인,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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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이후드(Boyhood)〉의 한 장면이 영 잊히지 않는다. 싱글맘으로 고생해서 키운 아들이 마침내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자 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운다. “이제 남은 건 내 장례식뿐이잖아. 난 인생에 뭐가 더 있을 줄 알았어.” 이 대사에 얼마나 공감했던지…. 영화 속 그녀도, 나도 중년이었고 나는 그때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육체는 진작에 ‘내려가는 길’로 들어서고 일터에서의 나날도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고 느낄 때, 남은 시간이 지나온 날들보다 적게 남았을 때, 그때부터의 인생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당신은 어떻게 길을 찾을 텐가? 초행길일수록 좋은 지도가 있으면 든든하지 않나. ‘처음으로’ 중년을 맞은 당신이 이 책을 지도로 삼으면 좋겠다. ‘중년 선배’가 추천한다. - 최인아 (최인아책방 대표,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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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살이 되면 인생이 정말로 짧아지기 시작한다. 반세기 동안 가해진 중력의 무게, 줄어드는 시간의 잔고가 피부로 느껴진다. 숨 가쁘게 달려왔는데 무엇이 남았는가…. 피할 수 없는 카운트다운이라면, 이제 철학자가 되어야 할 시간이다. 『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는 은총과 붕괴 사이에서 파도를 타는 중년의 마음을 두드리는 책이다. 어떤 현자는 산에서, 어떤 현자는 바다에서 지혜를 배운다지만, 인간은 단지 늙어가는 것만으로 인생의 철학자가 된다는 사실을 바르바라 블라이슈는 차근차근 들려준다. 인생은 잘 정리된 책장은 아니지만, 3분의 2의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유일무이한 경험의 자산가, 거리두기에 능한 관망가가 되었다고. 그렇게 쇼펜하우어와 한나 아렌트의 시간을 지나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생의 절정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산다는 건 늘 그래왔듯 또 다른 매력적인 선택지를 포기하는 일이고,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했냐고 묻는 망령을 다독이며 함께 걷는 길이라는 걸. 『모든 삶은 흐른다』의 로랑스 드빌레르를 잇는 또 한 명의 탁월한 여성 철학자가 나왔다. -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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