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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서재의 공화국
발로 차주고 싶은 아쿠타가와상 낙서의 아이러니 괴물이 보이지 않는다 아, 포장마차 아버지와 <진보정치> 허균의 산문을 읽다가 누이 콤플렉스, 어떤 글쓰기의 기원 문체와 성정 심청의 섹스문화 탐사기 시적 비전과 산문적 폭력 상처로 빚어진 언어의 연금술-J형에게 생에 대한 연민과 이타성에의 집중 시적 비전으로 충만한 서술 위화의 가랑비 속 외침 열망을 버리지 않는 전당포 노인 미학적 사기 팍팍한 삶, 뻐근한 감동 여자의 발견과 구토 매너리즘? 매너리즘! 한 내향적 인간의 절망 아름다운 추억의 힘 4월은 갈아엎는 달 무기력한 짜라투스트라 사랑의 마술 전장에 핀 ‘꽃’ 평화주의자 플라스틱 자본주의 주마간산 책읽기의 묘미 ‘나’는 없다, ‘당신’이 있을 뿐이다 ‘무장된 독자’들 냉담하게 탈구된 일상, 베이커리 남자 가족 파시즘 그 추억은 나를 설득시키지 못한다 장엄한 ‘씻김’ 나는 과연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기묘한 언어도단 여성들, 작중인물인가 마이크인가? 밥과 일과 자유의 투쟁 ‘유언’으로서의 글쓰기 성장소설은 왜 감동적인가 네 꿈을 펼쳐라 작가여, 교활해져라 망각의 동굴 풍선에 대한 명상 정체성 부재의 한국미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가 패스티시론 유감 헨드릭 하멜과 삼국 인식 민족은 ‘악’의 체제인가? 노무현의 고독 왜들 그렇게 떠도는가 조건 없는 사랑 어떤 인용의 오류 왜 노래가 되지 못했나 어디로 돌아가나 잘 만들어진 고통 상황에 개입하는 비평 성희롱의 문학적 탐구 비평의 길, 비명의 길 ‘서재의 공화국’에 대한 몽상 제2부 물음표와 느낌표 아름다운 만남, ‘반레’와 ‘방현석’의 랑데뷰 에 를 던지다 서정 말살 시대의 시쓰기 사회지도층이라니? 책의 미래? 독자들의 변화를 주목하자! 영어에 미쳐 돌아가는 사회 출판물, 번역과 기획의 함수관계 사유, 현실, 글쓰기 몰락하는 제국의 아름다움 그 힘겨운 이중부정 난장, 문학 언로 트기 노인들은 말할 수 있는가 문학과 만나는 세 가지 방식 ‘후일담’이라는 용어를 폐기하자 고독한 야인(野人)의 분노 한국적 인간관계 ‘직업으로서의 비평’을 위한 한 비평가의 각서 대화는 사랑이고, 정신분석은 사랑의 실천이다 저널리즘과 인물비평 가족 동반자살과 자아의 붕괴감 만화의 정치학 바닥에서 싸우기 1987년의 태극기와 2002년의 태극기 반성 없는 역사의 악몽 기억해둘 두 이름-김진석과 복거일 거리의 통증을 자각하고, 몸 섞는 것 비평을 읽지 않는 몇 가지 이유 아름다움이 우릴 구원할 거야 아프게 만나야 한다 청량리역 광장과 91년 5월의 기억 고백, 숭고한 글쓰기의 책략 탈근대를 사는 방식 절름발이의 시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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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시인이라고! 화장실에 낙서하는 男일 뿐이다.”
남자화장실이니까 ‘男’이라고 적었겠지만, 아마도 이 낙서를 적었던 사람은 사실 ‘놈’이라고 적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무의식이 그에게 ‘놈’ 대신 근엄하게도 한자 ‘男’으로 적게 만들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시’로 상징되는 ‘문화적 교양’에 대한 반발감이 그 하나다. 화장실의 ‘낙서’에조차 굳이 ‘시인’이라고 밝히는 허위의식을 ‘무명씨’는 공박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두 번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명씨’ 역시 얼마간 ‘교양’에 대한 과시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놈’이라는 말 대신 한자 ‘男’을 표기함으로써, 나도 알 만큼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낙서의 아이러니'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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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일이 직업이 되다 보니, 종종 책읽기가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의무감이 나를 불러 책상에 앉게 할 때라든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공을 들여 책을 읽었으나, 그 책이 도대체가 내게 아무런 지적?정서적 자극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 그러하다. 그럴 때, 제법 품위 있게 우리가 ‘독서’라고 명명하는 그 행위는 여타의 ‘소외된 노동’과 궤를 같이 하는 불편한 시간으로 전락한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의 체험에 빠져들 때가 있다. 아주 짧은 순간이긴 하지만, 어떤 책의 페이지를 무심히 들추는데, 거기서 자기의 마음과 딱, 공명하는 문장들을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이 그렇다. 책읽기에도 어떤 ‘계시의 체험’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 '주마산간 책읽기의 묘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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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도층’이라니? 나는 이런 표현을 언론에서 접할 때마다 한국사회가 언어생활의 측면에서 보자면 중세적 신분사회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공인이라는 표현 속에는 그래도 최소한의 사회에 대한 봉사나 의무와 같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이 단어 속에는 지배와 복종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계급의식만이 녹아 있을 뿐이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한심하기 그지없다.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은 이 표현이 어디에서부터 출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 것이 사실이라면, 이 계도적인 표현을 언론에서 사용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사회지도층이라니'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