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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막 중세의 스타 게이트
1장 지식인들의 스승 : 재발견된 아리스토텔레스 2장 ‘철학의 여신’의 살해 : 잃어버린 고대의 지혜가 어떻게 다시 발견되었는가 3장 그의 책들은 날개를 가졌다 : 아벨라르두스와 이성의 부활 4장 그대를 때려죽이는 자는 축복을 받을 것이다 : 이단자들 가운데 선 아리스토텔레스 5장 들어라, 들어라, 개들이 짖는다 : 아리스토텔레스와 가르침을 전하는 탁발 수도사들 6장 이 사람은 이해한다 : 파리 대학교의 대논쟁 7장 오컴의 면도날 : 신앙과 이성의 결별 8장 신은 더 이상 천체를 움직일 필요가 없다 : 아리스토텔레스와 현대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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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적 우월주의에 묻힌 역사를 복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은 중세 유럽의 행로를 뒤바꾼 지적인 폭발을 추적한 책이다. 이때 분출한 아이디어로 인해 학생 시위와 이단 논쟁이 야기되었고, 적그리스도의 선봉으로 비난받던 프란키스쿠스(프란체스코)와 도미니쿠스(도미니코) 수도회가 크게 부상했다. 이 새로운 시각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말미암은 것이다. 로마의 멸망으로 그리스어가 잊혀지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포함한 고대 그리스 문헌들도 서유럽에서 수세기 동안 잊혀졌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지혜가 보전되어 이슬람 문화를 꽃 피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십자군 전쟁으로 이슬람 세계를 접하기 시작한 서유럽인들에게 이슬람의 발전된 문명과 철학은 충격이었다. 루빈스타인이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은 의문점에서 비롯되었다. “1,000년 이상 어둠 속에 묻혀 있다가 재발견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들은 서구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키고 이끌어 온 핵심적인 사상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러한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가?” 이것은 중세 유럽, 특히 기독교 세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미친 영향력을 숨겨 왔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 또는 그의 사상을 거부했던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루빈스타인은 그 이유를 “문화적 우월주의”, 즉 중세 유럽인들이 자신들보다 미개하다고 믿던 다른 민족의 사상이 자기들 사상의 원류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태도에서 찾고 있다. 1,0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뒤에 재발견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들은 그리스어로 쓰여진 상태 그대로 발견되었던 것이 아니라 이슬람 철학자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첨가하여 해석하고 확장한 아랍어 번역 판본들이었다.(…)따라서 유럽인들은 자신들보다 미개한 인종에 의해 정리되고 해석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했다는 것이다.(…)루빈스타인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근대 시기의 홉스 등의 불합리한 태도를 예로 들면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혁명의 흔적을 제거하는 것은 서구 문명이 보다 더 발전된 이슬람 문명에 엄청난 빚을 졌다는 사실을 감추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한다. 정리하자면, 이슬람 문명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빚을 졌고, 기독교 문명은 이슬람 문명에 빚을 졌다는 것이다. ―옮긴이의 글에서 결국 우리는 서구 문명이 어떤 형태로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빚을 졌고, 이러한 빚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을 보존하고 발전시켰던 이슬람 문명의 공헌이라는 주장이다. 루빈스타인은 이 잃어버린 역사를 문화적 기억 상실증으로 진단하고 톨레도 재탈환을 계기로 유럽 학자들에게 전파된 보물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에 심취한 인물들의 복잡한 역사를 불러냈다. ★ 걸출한 인물들이 펼쳐 보이는 흥미로운 역사 드라마 야사(野史)와 정사(正史)가 적절하게 엮이어 독자의 흥미를 끌고 이해를 돕는다. 지나친 디테일로 독자를 괴롭히지 않으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가톨릭 교회의 형이상학, 도덕, 과학에 정합하도록 종합해 나가는 중요한 작업을 소개한다. 이러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루빈스타인은 우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삶과 로마 멸망에 대해 간략하게 조명한다. 그리고 12세기로 시대를 옮겨 무슬림, 유대인, 기독교인 학자들이 함께 어울렸던 톨레도의 풍경을 보여 준다. 여기서 번역된 저서들이 서유럽인들에게 준 충격은 산불처럼 번져 나갔고,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세속 군주들의 정치적 계산과 기독교 이단자들과의 투쟁 및 걸출한 인물들 간의 경쟁 스토리가 드라마틱하게 재현되며, 중세 대학교의 발전을 둘러싼 갈등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공격적인 학문 태도로 적을 많이 만들었던 아벨라르두스(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비극적인 사랑, 부모가 보낸 요부를 부지깽이로 쫓아 보내야 했던 토마스 아퀴나스, 교황권 등을 놓고 투쟁의 세원을 보낸 인노켄티우스 2세, 이슬람 철학과 기독교 철학의 통합을 시도한 군디살보(군디살리누스) 등 중세의 두드러진 인물들의 독특한 이력이 이 책을 장식한다. “오컴의 면도날”은 이성과 신앙을 결별시켰고, 시제루스(브라방의 시제)는 급진적인 견해로 이단자로 몰렸는데도 단테의 ?신곡?에 “열두 명의 빛나는 영혼”에 포함되어 현대인을 아리송하게 만들고 있다. 역사적인 사건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은 대중 역사와 대중 철학이 어우러진 독특한 책이다. ★ 이해와 관용과 타협을 제안하는 평화의 메시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4세기 말에 클레오파트라의 도서관으로 유명한 고대 사원 사라페움을 파괴했고, 5세기 초에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역사적으로 최초였던 대규모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다. 신플라톤주의 학파의 지도자였던 히파티아는 사지가 절단되어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이후 알렉산드리아는 많은 학자들을 떠나보내야 했고 지식의 중심지라는 지위를 잃게 되었다. 그런데 아랍인들은 300여 년 동안(712-1085년) 소수 집단인 기독교도 및 유대인들과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이것은 아직도 지역, 인종, 종교 분쟁으로 얼룩진 현대에 의미심장한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필자 루빈스타인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서로 다른 뿌리를 갖고 있지 않으며, 모두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한 인물의 사상에서 유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이려고 한다.(…)물론 루빈스타인의 주장은 민족이나 역사적 기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적 기원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의 주장이 옳다면, 종교적 이념으로 인해 갈등을 빚고 있는 당사자들은 결국 한 스승 밑에서 배운 제자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해와 타협을 통해 그 갈등을 해소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루빈스타인이 암묵적으로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옮긴이의 글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의 회복은 다음과 같은 사상적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이성과 신앙, 현실과 이상을 가르는 플라톤의 전통은 성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의 로마와 현대에 현실을 투쟁사로 보고 선과 악의 대비시키는 경향의 바탕이 된다. 반면 신앙과 이성, 실재와 이상을 조화시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현실에서 선과 조화를 추구하는 전통을 마련한다. 제2의 아리스토텔레스 르네상스를 촉구하는 저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우리 역사의 형성기에 관한 이 글에서, 우리는 보다 더 인간적이고 통합적인 미래 세계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희망한다. 한편 아라비아 숫자와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을 서구보다 먼저 받아들이고 당시 서유럽인들의 눈을 휘둥글게 만들 만큼 높은 수준의 문화를 누리고 있던 이슬람 세계가 왜 쇠퇴했을까? 서유럽이 중세의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동안 이슬람 세계에서는 아비세나(이븐 시나)와 아베로에스(이븐 루슈드)와 같은 뛰어난 학자들이 마련한 강력한 씨앗이 오히려 이슬람교 보수주의자들의 억압으로 열매를 맺지 못했다. 이 역설은 세계 역사에 의미심장한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는 관용이야말로 사회 발전의 원동력임을 깨닫게 된다. ★ 아리스토텔레스 혁명, 현대를 이해하는 잣대 현대적 사고는 신화에서 벗어나 이성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근대 철학은 신에 의존한 중세와 완전히 단절된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중세”라는 단어는 흔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기존의 철학책 및 중세 역사책은 역사, 철학, 신학 간의 관계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고 이러한 대중적 상식을 강화시켰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은 중세의 르네상스를 말한다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역사책이다. 합리성과 이성은 반신앙적인 요소가 아니며 또한 신앙에는 이성이 부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태도는 근대 이후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며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이 이루어진 중세의 유산인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논증에서 “부동의 원동자Unmoved Mover”와 “제일원인First Cause”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차용했다. 또한 그는 이성이야말로 신과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믿음의 필수 요소라고 주장했다. 신앙과 이성의 갈등은 데카르트가 과학 혁명을 선언하기 400여 년 전에, 코페르니쿠스 혁명보다 300여 년 전에 이미 중세 유럽에서 시작된 것이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고대 사상의 재발견으로 인해 서구인들은 갑자기 초자연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의 세계로 눈을 돌리면서 유럽은 전율하기 시작했다. 인간 본성에 대해 긍정적인 새로운 자각이 일어나면서, 고대 그리스의 개념들은 유럽의 대학에 치열한 논쟁의 불씨를 던졌고 가톨릭 교회를 본질적으로 변화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럽을 과학의 시대로 이끈 씨앗이며, 중세를 암흑의 시대에서 끌어낸 원동력이었다. 이후 이성과 감성, 과학과 종교, 정신과 육체 간의 반복되는 긴장의 역사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 아리스토텔레스 혁명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경험과학 발전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루빈스타인은 토마스 아퀴나스와 스콜라 철학이 고대와 현대를 잇는 다리임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논의는 “중세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근대와 현대를 이해하는 잣대”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은 중세 역사에 매혹된 독자들뿐 아니라 현대의 사고를 이루는 근본적인 개념에 관심을 갖는 모든 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철학 전공자들은 개별적인 철학자들을 긴박한 역사적 컨텍스트 안에서 새롭게 이해하게 될 것이고 역사 전공자들은 중요한 사상적 흐름을 하나의 스펙트럼 위에서 한눈에 조망하게 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슬람 문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유럽의 암흑시대를 밝힌 것처럼, 이 책은 독자에게 역사 이해를 돕는 계몽의 빛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