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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한 인간의 일대기와 창조적 과정의 상관관계
역자서문 : 세계 최고의 지성이 펼치는 경제학의 향연 아서 루이스 (W. Arthur Lewis) 로렌스 클라인 (Lawrence R. Klein) 케네스 애로우 (Kenneth J. Arrow) 폴 새뮤얼슨 (Paul A. Samuelson) 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 조지 스티글러 (Geroge J. Stigler) 제임스 토빈 (James Tobin) 프랑코 모딜리아니 (Franco Modigliani) 제임스 뷰캐넌 (James M. Buchanan) 로버트 솔로우 (Robert M. Solow) 윌리엄 샤프 (William F. Sharpe) 로널드 코스 (Ronald H. Coase) 더글라스 노스 (Douglass C. North) 존 하사니 (John C. Harsanyi) 마이런 숄즈 (Myron S. Scholes) 게리 베커 (Gary S. Becker) 로버트 루카스 (Robert E. Lucas, Jr.) 제임스 헤크먼 (James J. Heckman) 에필로그 :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교훈 부록 : 경제학자 인명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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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30년대에 성장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은 1940년 1월이었다. 1930년대 브루클린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경제학에 관심 있었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중략 - 내가 하버드대학교에 들어간 것은 1940년 9월이었다. 신입생으로 들었던 과목 중 하나가 경제학 A였다. 그때 나에게는 경제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 중략 - 나의 개인교사는 와실리 레온티프(Wassily Leontief:197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였는데 그것은 실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 중략 - 레온티프와의 인연은 나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레온티프로부터 나는 경제학이 잡동사니 학문이 아니고 이론적 구조와 경험적 구조를 두루 갖춘 학문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 다음 몇 해 동안 그는 나에게 그 구조의 일부를 가르쳐주었다. 나는 이 자리를 빌어 나를 경제학자로 만든 존재는 레온티프라는 사실을 밝히는 바이다. - 로버트 솔로우 --- p.244-248
다른 때와 다름없이 1930년대 LSE(런던 정경대)는 살아 팔딱거리는 공간이었다. 교수진을 살펴보면 모든 관점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뜨거운’ 주제마다 경쟁적인 강의를 두세 개씩 개설해놓고 있었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제대로 이해한 학생들은 풍요로운 지적 향연을 누릴 수 있었다. 전형적으로 학업성취도가 높은 LSE 학생들은 그런 식으로 상충하는 주제들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다보니 명석한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그럴싸한 이론과 진실한 이론의 틈바구니에서 끊임없이 옥석을 가려내는 방법을 배우다보니 회의적인 인물로 변해갔다. - 아서 루이스 --- p.28 내가 시카고대학에 입학할 때쯤 허친스 과정(Hutchins Curriculum)은 일부가 폐지돼 보통의 4년제 문학학사 학위나 이학학사 학위를 수여하는 데 충분한 전통적인 교과목으로 대체돼 있는 상태였다. 어쨌든 내게, 아마도 과학전공을 제외한 거의 모든 학생들에게 있어 정말 재미있었던 과목은 동서고금의 명저(great books)들을 읽어야 했던 그 허친스 과정 교과목들이었다. 이 과목들이야말로 우리가 차별화된 교육을 받고 있고 새로운 문화와 사상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으며 새로운 인간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첫해 초 우리는 브람스의 ‘하이든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듣고 감상문을 한두 페이지로 써서 제출하라는 과제를 받았다. - 중략 - 그 당시 제출했던 감상문의 내용이 무엇이었든지간에 그걸 다시 읽고픈 마음은 전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브람스의 그 음악만은 아직도 귓전에 울리는 것 같다. 난 그렇게 해서 진지한 음악도 즐겁게 들을 수 있게 됐고 영혼을 좀더 뒤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 조지 루카스 --- p.416 1970년대 시카고의 중심을 이룬 것은 워크샵 제도였다. 게일 존슨이 만들었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한 사람은 밀턴 프리드먼이었다. 어떤 때는 하루에 세 번이나 워크샵이 있었다. 이 워크샵에 온 사람들은 연사의 논문을 읽었고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상대를 얼마나 빨리 말로 공박하느냐에 높은 점수가 주어졌으며 조지 스티글러의 워크샵은 특히 악명이 높아서, 말로 연사를 모독하는 데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다. - 중략 - 이에 비해 프리드먼의 워크샵은 매우 수준이 높았다. 세미나에 참석하기 전에 모든 참석자들은 발표될 논문을 미리 읽어야 했고, 토론은 “3항의 두 번째 줄, 질문 없습니까?”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 중략 - 이 워크샵들은 집합적인 사고를 가능케 했다. 한 사람이 어떤 제안을 하면 또 다른 제안을 불러일으켰고 그로 인해 토론은 어느 한 사람이 주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활기차게 진행될 수 있었다. 나는 시카고에서 많은 워크샵에 참석하였다. 자신의 논문이 다수에 의해 철저하게 검증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논문을 쓰는 사람은 논문을 더욱 다듬게 된다. 어쨌든 시카고가 가장 떠받드는 신조는 “사람은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낸 논문으로 평가된다”였다. - 제임스 헤크먼 --- p.475-476 내가 노벨상 수상을 몇 가지 점에서 원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명백히 이 상에 따르는 명예와 경제적인 보상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이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내 지도를 받는 학생들과 기타 사람들이 내 연구업적이 나타내주고 있는 진로를 따라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경우에 따라 전통적인 경제학 주제를 벗어난 분야의 연구를 하기도 했다. 이들 경제학자들은 직업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기도 했고 그 중 몇몇은 괜찮은 직장을 얻기가 어렵기도 했다. - 중략 - 난 노벨상이 제공해주는 인정을 내 자신 그리고 다른 이들이 받을 수 있었으면 했다. - 중략 - 아내는 그날 아침 전화벨이 울리자 벨소리가 내 잠을 깨우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나중에 내게 실토한 바에 따르면 그녀는 전화를 약간은 불친절하게 받았다. 그러나 전화한 사람이 그 전화가 베커 교수에게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내는 그 전화가 노벨상 수상을 알려주는 전화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가 날 깨웠을 때 난 잠을 오랫동안 못잔 통에 계속 자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녀는 그 전화가 스웨덴에서 온 전화라고 했는데 그 말은 마법의 주문과도 같았다. 스웨덴으로부터 온 전화라니, - 게리 베커 --- p.406-4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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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인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삶의 궤적과 경제학자로의 진화과정
미국 샌 앤토니오의 트리니티대학교에서 행해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강연 모음집인 이 책은 1986년 처음 출간되었다. 그 당시 제임스 토빈까지 총 7명의 수상자 강연록을 담아 출간한 이후, 제2판에서는 프랑코 모딜리아니와 제임스 뷰캐넌, 로버트 솔로우가 추가되었다. 미국 경제학자들의 노벨상 수상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제3판에는 다시 윌리엄 샤프와 로널드 코스, 더글라스 노스가 수록되었으며 가장 최근에 나온 4판에는 루카스와 헤크먼 등 5명의 수상자가 더 추가되어 총 18인의 노벨상 수상자 강연록을 담게 되었다.
이들에게 주어진 강연 주제는 ‘경제학자로서 나의 진화’였다. 이 강연 주제에 따라 경제학자들은 각기 다른 생각과 선택에 따라 자신의 인생과 경제학 이론에 대해 풀어나갔다. 어떤 학자는 개인적인 성장에 초점을 둔 반면에 어떤 학자는 자신의 이론 설명에 초점을 두었다. 18인의 학자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 속에서도 우리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어떻게 그들이 경제학에 눈뜨게 되었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들이 경제학을 선택한 주된 동기는 현실세계와의 상관관계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었다. 제임스 토빈의 예에서 나타나듯이 미국의 대공황은 이들을 경제학으로 끌어들이는 동기가 되었다. 게리 베커는 사회의 불평등과 인종차별, 계급차별을 목격한 뒤 경제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위대한 스승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이 강연 시리즈에 나온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시카고대학의 전설적인 교수인 프랭크 나이트와 카리스마 넘치는 강의로 유명한 밀턴 프리드먼을 언급하고 있다. 위대한 스승들은 경제학 주변을 표류하고 있던 이들을 경제학으로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 한 가지는 지적 발견과 창의력을 권장하는 분위기 조성이다. 1940년대 후반부터 시카고대학은 모든 도전과 비판에 열려 있는 ‘지식의 용광로’로 그런 역할을 자처하였고, 하버드대학을 비롯한 미국 유수의 대학들은 최고의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양성하기 위해 최고의 인센티브 정책을 사용하였다. 정부가 지원하는 랜드 코퍼레이션과 국립경제연구원(NBER) 등은 경제학자들이 자유로운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풍부한 토양을 제공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또 이구동성으로, 이들은 ‘행운’의 역할을 들고 있다. 그들이 경제학을 발견하고, 경제학을 선택하고, 위대한 스승을 만나고, 경제이론을 개발하고, 그 공로로 노벨상을 탄 모든 것이 행운이라는 것이다. 강연 중간 중간마다 이들은 어떻게 인생의 중요한 대목에서 행운이 작용했는지를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 책은 현대 경제사상의 다양함과 풍부함 그리고 심오함을 훌륭하게 전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