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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 7
감사의 말 - 15 1장서론: 형이상학 - 17 실체/우유성 - 41 형상/질료 - 60 삶/죽음 - 68 2장변화하는 시대 - 89 진리 - 115 실재 - 129 정치 - 140 3장사변 - 153 |
Armen Avaness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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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적, 가속주의적, 제노페미니스트 철학자들에 의해 정립된 비非/in인간 개념은 무엇보다 더 복잡한 그것의 시간적 구조로 이러한 탈 또는 초인간주의적 환상과 구별된다. 이미 항상 비인간인 인간은 과거에 정의된 어떤 자연적 본질의 관점으로는 이해될 수 없으며, 오직 우리 미래의 관점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 우리의 지능이 인공적으로 발명될 때마다, 실제로 우리가 우리의 합리성과 지성을 활용할 때마다,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관념, 자아 개념, 본질도 변한다. 인간은 없고 오직 인간되기만 있다.
--- 「탈脫인간, 초超인간, 비非인간」 중에서 그러나 전적으로 다른 비인간 지능이, 마치 우리가 개미나 참새와 같이 소소한 일로 끊임없이 바쁘듯이 우리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을 것이라 가정하는 것은 또 한 번의 오만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마지막 오만일 수도? 벤저민 브래튼Benjamin Bratton이 생각하듯이 “진짜로 더 나쁜 악몽은 거대한 기계가 당신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 악몽보다 […] 당신을 무관하거나 심지어 알아야 할 별개의 것으로도 여기지 않는다는 악몽”이 아닐까? --- 「끝없는 오만」 중에서 ‘현존’은 오직 인간에 대해서만 시간적 의미를 획득하며, 오로지 우리가 언어로써 시간적 상황에 놓인 진술들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를 넘어 무시간적으로 참인 진술들을 공식화할 수 있다. 신성한 지성조차 근본적으로 시간의식이 없다. “동물이 지각하는 것은 시간 아래에 있고 신성한 지성이 직관하는 것은 시간 위에 있다. […] 시간-의식은 인간을 규정하는, 감성sensibility과 이해understanding의 통일이다.” --- 「상황적 사고와 시간 범주들」 중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글로벌 네트워크 안에서 문화와 정치 발전의 논리를 개념화하고 탐색하는 데 도움이 될 관념들을 찾고 있다. 하나의 후보는 하이퍼스티션hyperstition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과대홍보hype’와 ‘미신superstition’의 합성어로서 미래로부터 스스로를 실현하는 허구를 뜻하는 용어이다. 하이퍼스티션은 우리 현재의 기원들을 미래에 두고, 이 새로운 시간성에 대한 진보적 접근이 가능할지 그리고 이것이 어떤 모습일지를 묻는다. --- 「하이퍼스티션의 유령」 중에서 진리는 단순히 현재에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시대의 상대주의자들이 선언한 것처럼 그저 주관적이지도 않다. 실제로 진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상하며, 언제나 먼저 구성되어야만 한다. 헤겔에 따르면 진리는 단순히 실재(의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의 세계 이해 안에서, 가능성과 실재의 통합이다. 오직 재귀적 명령형을 통해서만 가정법의 가능성이 직설법의 현실이 될 수 있다. --- 「재귀와 귀추를 지닌 앞먹임」 중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는 지금 미래의 정치적 형이상학의 핵심 문제들 중 하나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 정치의 본질 그 자체의 성패가 달려 있다. “지상전과 공중전의 각각의 장점에 대한 논쟁은” 샤마유에 따르면 “준-형이상학적 성격을 띤다. 대반란전이 그것의 핵심을 잃지 않고 공중-정책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물론 작전 과정에서 전략이 정치와 함께 구름 속에서 실종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이 있다”. 영토분쟁의 오래된 기준과 구분은 더 이상 2차원이 아닌 다차원적 공간질서와 기후변화로 인한 영토의 액상화에 비추어 증발하고 있다. 땅, 물, 공중의 새로운 정치적 (재)구성은, 이러한 개별 요소들을 망라하여 새로운 전체, 새로운 메레오폴리틱스mereopolitics또는 메레오토폴리틱스mereotopolitics를 형성할, 상응하는 부분전체론적 정치mereological politics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 「메레오토폴리틱스 또는 정치의 승화」 중에서 특히 지금, 우리는 모든 형태의 신앙적이거나 광신적인 ‘사고’에 대항하는 어떤 공격성, 즉 메이야수가 철학 자체의 프로젝트를 구성한다고 주장하는 공격성을 다시 상기해야만 한다. 광신적인 사고는 사실상 사고가 아니라 절대적인 것에 대한 어떤 특권적인 접근권을 소유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오직 철학에 독특한 사변적 잠재력을 상기하는 것만이 이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른 미래는 방어적인 비판적 조치들로 구상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변적으로만 구상될 수 있다. 우리는 오직 그 미래로부터 실재와 사실상의 동시대성을, 즉 과거와도 아니고 그저 현재와도 아닌 미래와의 동지애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 「신앙주의와 사고의 탈절대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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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현실에 접한 형이상학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
기술적 합리성과 과학 전반의 승리는 인류의 주요한 질문들에 결코 해답을 제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새로운 동시에 오래된 질문과 문제들을 제기해 왔다. 21세기의 상황을 파악하고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일상적 시고를 형성하고 있는 철학의 중심 범주들을 새롭게 살펴보아야 한다. 『미래의 형이상학』은 주요한 형이상학적 범주들이 현재를 살피는 데 여전히 중요하다고 다시 말하는 시도로서, 현대의 곤경이 어떻게 우리에게 그 범주들을 외치게 하고 근본적으로 새롭게 비틀어 보게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아르멘 아바네시안은 실체와 우유성, 형상과 질료, 삶과 죽음과 같은 범주를 재해석하고 재배치함으로써, 21세기의 가장 절박한 현실이 사고의 가장 근본적인 범주와 만나는 새로운 형이상학적 지평을 제시한다. 형이상학을 벗어난 생각은 없으며 형이상학적이지 않은 생각도 없다. 오히려 학계의 전문 철학자들의 경우뿐만 아니라 특히 형이상학적 범주들이 암묵적이고 성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곳마다 부적절하거나 불명확한 철학적 사고가 허다하다. 후자의 예로서 디지털 기술에 대한 여러 논쟁을 보면 용어 선택에서조차 의심스러운 형이상학적 전제들을 무심코 드러낸다. ‘네트워크’와 심지어 ‘클라우드’는 모든 계산의 물질적 기반을 모호하게 만드는 그런 기만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두 개념이다. 디지털 플랫폼들 역시 물질적 자원들을 착취해야만 가능하다. (마이크로칩용 실리콘, 리튬-이온 배터리용 코발트 등의) 자연, 그것들을 분해하고 조립하며 설치하는 인적 자원, 그리고 그것들을 사용하고 소비하는 모든 사람들을 착취해야만 한다. 비물질성 또는 탈물질화 이데올로기는 지금의 지배자들에게 봉사하는 안락의자 철학이다. 여기에도 다른 모든 곳과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적으로 잘못된 것과 정치적으로 잘못된 것과의 연결이 있다. 나쁜 형이상학은 항상 나쁜 정치에 봉사한다. _67쪽 “탈물질화의 신화” 아르멘 아바네시안의 하이퍼스티션(Hyperstition) 개념과 미래 현대 철학의 가장 도발적인 사상가 중 한 명인 아르멘 아바네시안의 작업에서 가장 돋보이는 개념인 ‘하이퍼스티션’은 특정한 믿음이나 기대가 현실을 변화시키는 자기 충족적 예언의 성격을 띠는 현상을 의미한다. 즉, 미래에 대한 특정한 믿음이 현재의 행동과 기술 발전을 통해 실제로 미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바네시안의 하이퍼스티션 개념은 미래를 단순히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믿음과 행동이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보여준다. 이는 우리가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인식하도록 돕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실천을 촉구한다. 『미래의 형이상학』을 읽어 가면서 저자가 의미하는 ‘미래’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미래는 미리 정해진 고정된 이상향이 아니다. 허구이기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예상치 못한 것, 낯선 것에 항상 열려 있는 미래이다. 인식론적으로 계속 탈주하고 형이상학적 사변의 힘으로 끊임없이 구상되어야 하며, 실천을 통해 실재가 되는 허구로서의 미래이다. 더구나 이 미래는 기후, 동물, 해양, 그리고 지적 기계와 같은 비인간 행위자들은 물론, 비가시적인 난민들, 아직 존재하지 않은 후손들,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는 것들을 새로운 정치 주체로 참여시키는 미래이다. 이 의미에서 미래는 이질적이다. _옮긴이의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