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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正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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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로를 열나흘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걸으며 느꼈던 것은 우리 국토가 지금 무분별한 난개발로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이다. 영남대로의 옛길은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새로운 길로 바뀌거나 사라져 버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중략) ‘살 제 진천, 죽어 용인’이라는 말과 달리 용인 일대는 장지로 각광받았던 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몰려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용인을 지나 성남의 판교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 전역이 땅 투기장으로 변한 느낌이었다.”
-머리말 중에서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림 같은 강가에 작은 집을 짓고 말년을 지내고자 생각했다. 그 강이 섬진강이 될지, 아니면 금강이나 한강 그리고 낙동강이 될지 모르지만 답사 때마다 눈 여겨 보았던 여러 곳 중에서 한 곳이 나의 말년을 의탁할 곳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그 계획을 안전히 접고 다른 계획을 세웠다. 어차피 나는 죽는 날까지 떠돌 것인데 아무리 그림 같은 좋은 집이라도 집은 머물러 살아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며칠씩 떠나 있으면 누가 그 집을 관리하고 사랑해 준단 말인가?” -본문 23쪽 중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풍수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필자는 금강을 따라 걷던 2000년 가을 공주의 공산성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잇는 하나의 풍수적 사고방식을 목도한 적이 있다. 금강빌라 뒤편 금강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면 삼대가 망하리라’는 게시판이 있었는데, 주목할 것은 그 ‘망(亡)’자가 빨간 페인트로 쓰여져 있다는 것과 그 밑에는 껌 종이 하나 버려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순히 삼대가 망한다는 표지판 밑에는 쓰레기가 전혀 없고 1백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표시판 밑에는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본문 259쪽 중에서 --- 본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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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에서 가거지(可居地)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부분이 복거총론이다. 따라서 이중환의 저술 의도는 복거총론에서 핵심적으로 나타나는데 다음의 4가지 조건 즉, 사람이 살 만한 곳을 고를 때는 “첫째로 지리가 좋아야 하고, 다음 생리가 있어야 하며, 다음은 인심이 좋아야 하고, 또 다음은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방법론이자 내용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이것을 토대로 조선 전역을 사람이 살 만한 곳과 살 만하지 않은 곳으로 나누어 관찰한다.
<다시쓰는 택리지4> ‘복거총론-어디에서 살 것인가’ 역시 택리지의 내용을 좇아 사람이 살만한 곳을 찾아 나선다. 우선 계거(시냇가에 살만한 곳)로부터 시작하여 강거, 해거 등으로 나아간다. 이중환은 사람이 살만한 곳 중 가장 좋은 곳을 계거(溪居), 즉 시냇가 근처라 하였다. 물이 있으면 들이 있고 들이 있으면 오곡이 잘 자라니 그보다 더 살만한 곳이 어디 있겠냐는 것이다. 그 다음 좋은 곳을 강거(江居), 즉 강변마을을 꼽았고 마지막으로 해거(海居), 즉 바닷가 마을을 꼽아 가장 살기가 힘든 곳으로 생각했다. 강변과 해변의 단점은 항상 물난리의 피해가 있기 때문이다. 계거로 가장 이름난 곳은 예안과 안동, 순흥, 예천 등 태백산과 소백산 아래의 지역을 꼽는데 대표적인 마을이 예안의 도산, 안동의 하회마을 등이다. 두 번째로 꼽았던 곳이 진안, 금산, 장수, 무주 등의 금강 상류 일대인데 시내와 산세는 뛰어나지만 들이 넓지 않아 삶은 팍팍할 수밖에 없다고 단점을 지적한다. 강가에 살 만한 곳으로서 가장 으뜸은 평양의 외성 지역이다. 평양은 주변에 백 리에 달하는 넓은 들이 있고 강물의 폭 또한 대단히 넓어 많은 장삿배가 드나드는 등 생리가 좋은데다가 산색과 지세, 들의 모양 등 지리와 산수가 좋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러한 택리지의 복거관을 가지고 이 책은 국토의 골짜기 골짜기를 더듬는다. 이 책의 중후반은 전통적인 풍수의 풍부한 사례를 가지고 정자와 누각, 서원이 자리 잡은 입지를 살피는 한편, 팔도의 ‘인심’을 어지럽게 한 당쟁, 조선시대까지의 산업(생리)을 조망하고 있다. 간략하지만 선명하게 정리한 풍수의 원리와 역사를 토대로 나라의 도읍이나 마을의 자리 잡기, 집터 잡기, 묏자리 잡기, 길이나 숲 등 주변 환경이나 인공물의 배치 등을 다룬다. 물론 풍수 외에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생활환경이나 국토의 변화상도 함께 관찰한다. 특히 정자나 집터, 서원 터를 설명할 때에는 아름다운 경치를 선호했던 선인들의 미학적 관점과 교육적 기능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또 ‘인심’을 논하는 내용에서는 붕당의 시초에서부터 정여립의 난이 중심이 된 기축옥사, 예송논쟁, 탕평 등의 사실을 다루고 있으며 ‘생리’에서는 조선시대까지 농업의 주류률 이루었던 여러 작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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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그늘 속에 숨은 전통을 다시 음미해 본다 - 특징1
임하댐 상류인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에는 묘한 아름다움이 있는 성천댁이 있다. 중문 바로 옆에 외양간이 있는데 그런 구조는 강원도 산간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랑방에서 안채 쪽으로 나오면 바로 대청마루로 연결되고 그 옆에는 남향으로 지어진 큰방이 있었다. 그리고 방 앞에는 멍석 한 장을 겨우 깔 수 있을 만큼 작은 안마당이 자리해 있었고, 대청마루에 앉아서 올려다보자 하늘이 손수건 한 장 크기로 보일 만큼 작게 펼쳐져 있었다. 갈 때마다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집이다. 한 곳을 더 가보자. 영남의 4대 길지 가운데 한곳이라고 알려져 있는 경주시 강동면의 양동마을. 이 마을의 유래에 의하면 ‘대대로 외손이 잘되는 마을’, 즉 외손발복(外孫發福)의 터라고 하는데 이곳 손씨 대종가인 서백당은 3명의 훌륭한 선생이 태어날 길지였다. 이곳에서 이미 회재 이언적 등 2명이 태어났으므로 나머지 1명은 외손이 아닌 손씨 집안에서 태어나도록 하는 바람에서 며느리 외에는 그 누구도 거처하지 못하게 했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발과 가슴으로 쓴 국토 교과서답게 국토의 산하를 배경으로 마을들의 다채로운 풍경과 숱한 사연들을 담아낸다. 특히 산업화를 거치면서 우리의 삶터와 생활양식은 몰라보게 변화하였다. 그 과정에 전통은 역사의 그늘 속으로 숨었지만 그것이 또 다른 형태의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저자는 자신이 보고 듣고 기록한 것들을 들려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중환과 신정일은 다르다. 택리지에서 ‘사람이 살 만한 곳’이란 다분히 일반 백성보다는 사대부 중심적이며 이중환이 발견한 것은 “무릇, 사대부가 사는 곳 치고 인심이 무너져 내리지 않은 곳이 없다”는 구절에서 보듯 절망이었다. 저자는 택리지의 복거총론을 저본으로 하고 전통 지리관의 방법에 의거하여 복거총론을 다시 쓰고 있지만 이중환과 달리 그가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희망이었다. 발과 가슴으로 사라져갈 것들에 대해 증언한다. -특징2 저자는 지난 20여 년간 한국의 5대 강 도보답사와 함께 수백 개의 산을 오르내렸으며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황토현문화연구소 주최 정기답사 147회 및 각종 단체 답사를 포함하여 1천여 회 이상의 답사를 하면서 온 국토의 산야를 돌아다녔다. 그런 그가 올해부터는 우리의 옛 길을 따라 다시 길을 나섰다. 조선시대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통하는 큰길인 일곱 대로를 따라 홀로 걸으며 길에 얽힌 역사와 길 위의 사람들, 사라져 가는 문화를 직접 보고 기록하겠다는 것이다. 첫 시도로 지난 4월 ‘삼남대로’로 불리던 전남 해남에서 서울 남대문까지 413킬로미터를 보름에 걸쳐 걸었다. 불과 1세기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걸었던 길이고 우암 송시열과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가며 걸었던 길이라 한다. 다시 10월 1일부터 동래에서 문경새재를 거쳐 서울에 이르는 ‘영남대로’를 열나흘 걸려 걸었다. 영남대로 역시 옛날 과거길이면서 상업로였고,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을 다녀올 때 통과했던 길이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일본군들이 파죽지세로 침입해 올라왔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렇게 걷는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지금이라도 보존하지 않으면 금세 사라져갈 것들에 대한 증언이다. 사라져 가는 길, 사라져 버린 아름다운 옛 이름, 그리고 옛날의 형체를 도무지 떠올리기조차 힘들게 변해버린 산천들을 안타까움으로 찾고 있는 것이다. 《다시쓰는 택리지》는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