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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차
그 사색의 열린 공간
정동주
다른세상 200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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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책소개

목차

Ⅰ. 차와 차살림론

1. 차란 무엇인가
2. 차살림론
정화수 살림┃부엌 살림┃동제 살림┃고수레 살림

Ⅱ. 차의 기원

1) 조로아스터교와 하오마Haoma
2) 힌두교와 소마Soma
3) 불교와 알가Argha
4) 산스크리트 다Dha와 불교
5) 《묘법연화경》의 영산회상과 영산재

Ⅲ. 차의 역사

1. 불교의식과 차
2. 중국 불교와 차
1) 불교 전래 이전의 중국과 차
2) 불교 전래 이후의 중국 차
3) 중국인과 차문화
4) 중국 선불교와 차-백장 청규를 중심으로
3. 한국의 차살림
1) 정화수 사상
칠성각┃칠성당┃삼신상┃천도교의 청수의식┃대종교의 천수의식┃조왕신앙
2) 풍류와 팔관회
3) 가야의 난액蘭液과 변방便房
4) 백제의 옥천玉泉과 마라난타
5) 중국 구화산의 지장보살 김교각과 금지차金枝茶
6) 경주 남산 삼화령 미륵불과 충담의 차
7) 차례문화
차례茶禮┃다례茶禮
8) 선비의 차문화
목은 이색의 ‘산중사山中辭’┃도은 이숭인의 차시茶詩┃점필재 김종직의 차┃매월당 김시습의
차와 삶┃한재 이목의 ‘다부茶賦’
9) 불교의 차 정신과 상생相生의 철학
원효의 무애차┃혜소의 상생차┃의천의 대승차┃혜심의 일심차┃충지의 다선일미차┃휴정의
보살차┃언기의 중생차┃유일의 화일차┃초의의 구원차
4. 일본의 다도茶道
1) 끽다문화의 일본 전래
2) 선종과 말차법
3) 가마쿠라시대의 차문화
4) 쇼인즈쿠리 건축양식과 차

Ⅳ. 한국 차살림과 일본 다도의 관계

1. 초암차草庵茶 시대의 전개와 조선문화
1) 무라타 쥬코의 와비차풍
2) 교토, 사카이의 상공업자들
3) 다케노 조오의 차실과 차도구 개혁
4) 센노 리큐의 다도 확립
2. 일본의 조선문화 배워 가기
1) 삼포왜관 설치와 일본 국왕사 승려들의 비밀
2) 김시습을 찾아온 일본의 외교관들
3) 일본 승려들의 조선문화 배워 가기
4) 조선 승려의 발우공양법과 농차

Ⅴ. 한국의 차와 찻그릇의 세계

1. 찻그릇의 역사와 문화
2. 전통시대의 찻그릇
1) 토기-가야시대 찻그릇과 선사시대
2) 신라와 백제의 찻그릇
3) 불교문화와 찻그릇-탑, 불상에 새겨진 찻그릇
석굴암의 차 공양상과 법 공양상┃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상 광대부의 차 공양상┃승안사지
삼층석탑 기단부의 보살 차 공양상┃청량사 석조석가여래좌상 중대석의 보살 차 공양상┃봉
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의 보살 차 공양상┃충주 중원 봉황리 마애불상군의 보살 공양상
4) 청자와 백자
청자시대와 고려의 차문화┃백자시대와 조선의 차문화
5) 이도찻사발
3. 한국의 찻그릇 세계
크고 둥근 맛의 사기장, 토우 김종희
한국 찻사발의 크고 깊은 샘물, 도천 천한봉
양반 사기장의 찻사발과 다양성, 도봉 김윤태
전통에 대한 견고한 믿음, 백산 김정옥
종교적 상징의 보편화와 그 형식, 연파 신현철
전통과 현대의 분리 혹은 조화, 우동진
한국 산과 암벽의 상징 마애불꽃병, 죽연 서영기
비교도자학의 세계, 청마 유태근
옛것을 새롭게 읽는 힘과 고뇌, 박성욱

Ⅵ. 차의 덕德과 계율戒律

1. 차와 덕성론德性論
1) 겸(謙, humble)
2) 자(慈, benevolence)
3) 검(儉, frugality)
4) 향(香, fragrance)
5) 정(淨, purity)
6) 선(仙, fairy)
7) 예(禮, propriety)
2. 차와 계율
1) 십악十惡을 범하지 않기 위한 계율
2) 세 가지 업業을 범하지 않기 위한 계율

Ⅶ. 차살림의 실제와 미래

1. 차농사의 문제
1) 차나무의 역사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
2) 백화차白樺茶를 어떻게 볼 것인가
3) 일제시대 인도산 차 종자의 보급
4) 차농사와 외국 차의 수입
2. 차 만들기
1) 옛 한국의 차 만들기
2) 1960년대의 덖음차 만들기
3) 혼돈의 시대
찻잎 시들리기┃비비기의 문제┃덖는 횟수의 문제┃발효 방법의 문제
3. 차살림의 병폐
1) 차인茶人의 문제
차살림의 예법┃평상심으로 펴는 차살림┃차인이란 뭘 하는 사람인가
2) 외국 차문화의 범람과 문화적 종속
3) 차살림을 왜곡시키는 몇 가지 원인
4) 차살림 교육론

Ⅷ. 동다문화론東茶文化論

1) 미래 산업으로서의 차-농업과 농민
2) 찻그릇의 미래와 차
3) 한국 땅은 아직도 축복이다

저자 소개 1

정동주

1948년 경남 진양에서 태어났다. 장편시 『순례자』, 서사시 『논개』를 비롯해 대하소설 『백정』 『단야』 『민적』, 장편소설 『콰이강의 다리』 등 40여 권의 시집과 소설집을 발표했다. 마당굿 「진양살풀이」와 오페라 「조선의 사랑 논개」의 대본을 집필했다. 1990년 초부터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여 『카레이스끼 또 하나의 민족사』 『부처, 통곡하다』 『어머니의 전설 』 『늘 푸른 소나무』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 등 역사·종교 분야를 읽고 썼다. 1990년 중반 이후 한국·중국·일본의 차문화를 비교하여 한국 차문화의 독자성을 세우기 위한 비교차문화론 연
1948년 경남 진양에서 태어났다. 장편시 『순례자』, 서사시 『논개』를 비롯해 대하소설 『백정』 『단야』 『민적』, 장편소설 『콰이강의 다리』 등 40여 권의 시집과 소설집을 발표했다. 마당굿 「진양살풀이」와 오페라 「조선의 사랑 논개」의 대본을 집필했다. 1990년 초부터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여 『카레이스끼 또 하나의 민족사』 『부처, 통곡하다』 『어머니의 전설 』 『늘 푸른 소나무』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 등 역사·종교 분야를 읽고 썼다. 1990년 중반 이후 한국·중국·일본의 차문화를 비교하여 한국 차문화의 독자성을 세우기 위한 비교차문화론 연구와 강의를 시작했다. 2013년 ‘차살림학’을 정립하여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한국 차살림』 『한국인과 차 』 『우리시대 찻그릇은 무엇인가』 『차우림이에 담긴 한중일의 차 문화사』 『조선 막사발과 이도다완』 『차와 차살림』 등 차와 도자기 문화에 관한 비평적 연구의 성과물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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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12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478쪽 | 918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7660571

출판사 리뷰

차를 알면 가치가 보인다.
차는 차나무의 잎 한 가지로만 만든다. 단 하나의 재료로 만든 음식이면서도 음식이 지녀야 할 맛, 향기, 색깔, 영양은 물론이고, 품격과 역사적인 면에서 다른 어떤 음식보다 빼어나다. 즉 하나이면서 모든 것이라는 점, 이것이 차의 미학적 근원이며, 이러한 차의 근본 바탕이 불교철학의 기틀인 연기사상緣起思想과 결합하면서 승려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차는 음식으로서의 차, 정신으로서의 차 그리고 약으로서의 차를 모두 알았을 때 비로소 인간과 인간 그리고 나 자신과 만물의 관계를 깨닫는 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차 정신을 지키기 위해 일정한 의식과 예절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이때 의식과 예절은 종교의 영향이나 민족, 역사, 사회의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차살림, 중국의 다예茶藝, 일본의 다도茶道는 종교의 영향에 따라, 정치 환경과 역사적 변화에 따라, 유교와 불교의 접촉·충돌·변화에 따라 각기 독특한 모습으로 특유의 사상을 형성하면서 발전해 왔다.

차를 왜 마시게 되었을까?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조로아스터교와 힌두교에서는 제의식 때 하오마나 소마라고 하는 식물의 즙을 짜서 올렸다. 신과 인간의 교감을 위해 필요했던 이 신비스런 음료는 모두 환각 성분을 지니고 있었다.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우주와 인간의 본질적 관계를 깨달으려는 불교가 탄생하면서 환각 성분의 이 식물의 즙 대신‘알가’즉 깨끗한 물을 의식에 사용하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중국으로 가자. 중국은 불교가 전파되기 이전부터 차를 마셨다. 광동과 복건 지역은 지질에 석회질이 많아 마실 물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일찍부터 물 대신 차를 마셨고, 차에는 약효 성분이 있어서 약으로도 사용하였다. 모진 독을 풀어 주고, 잠을 줄여 주며, 갈증을 해소시키고, 소변을 수월하게 하며, 정신을 맑게 하고, 눈을 밝게 하는 약효는 수백 년 동안 거듭 확인되었다. 이러한 차가 고도의 정신성을 지닌 미학적 탐구의 대상이 된 것은 불교와 접촉하면서부터였다.
중국의 불교는 경전 번역과 불교철학의 폭넓은 수용, 선불교와 정토신앙을 통해 활성화되었는데, 특히 중국의 차와 불교의 만남은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특히 선불교에서 차는 승려의 수행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또 불교의식 때 어느 시기부턴가 알가 대신 차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중국의 차문화는 세속의 차문화와 선불교 중심의 사찰 차문화로 양분되어 발전하였고, 세속의 차문화는 다예茶藝의 근간을 이루는 다양한 행다법行茶法과 다구茶具들의 발달을 가져왔다.
중국 선불교의 차문화는 차를 선불교의 핵심적인 제도로 정착시킨 승려 백장白丈 회해(懷海, 749∼814)에 의해 거듭났고, 그의‘청규’ 사상은 종색선사의 《선원청규》를 통해 고려에 전해졌다. 이후 한국 불교의 차문화는 《선원청규》의 매우 정교하고 엄숙한 규칙을 따랐고, 세속에서는 이를 세속에 맞도록 그때마다 적절히 손보면서 고려 특유의 차문화를 이루었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차를 마셨을까?
불교의식에서 물(알가)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듯이 한국에서 물과 관련된 역사는 오래되었다. 웅녀와 단군왕검, 칠성신앙, 용왕신앙, 삼신할매신앙, 조왕신앙, 대종교大倧敎의 천수天水, 천도교의 청수淸水를 비롯해 민간의 오랜 습속으로 전승된 물(정화수)과 관련된 여러 가지 민속 등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시베리아의 여러 민족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작나무 잎으로 만든 백화차를 만들어 마셨다. 여기에 고조선, 고구려, 부여, 예맥, 발해 등 한국 민족도 포함된다. 그 역사적 증거로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를 들 수 있다. 이 그림은 5∼6세기경 작품으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졌다. 이는 최고 권력자와 자작나무의 관련성을 입증하는 매우 희귀한 자료로서 백화차의 실재를 가늠하게 해준다. 특히 토기잔들이 많이 남아 있어 제천의식이나 기타 중요한 국가행사 등에 백화차와 관련된 일련의 차의식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백화차가 북부지방 한민족들에게만 국한되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경상남도 김해, 창원 지역에도 백화차가 있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한반도 전역에 걸쳐 널리 음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실들이 대부분 무시되게 된 이유는 중국 차문화만이 옳다는 중화 사대주의의 폐해 때문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유사》에는 수로왕이 허왕후를 맞는 장면에서 왕후를 모시고 온 신하에게 난액과 혜서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혜서는 향기가 좋은 술을 말하고 난액은 향기가 좋은 음료를 뜻한다. 이때의 난액은 차로 보여진다. 또한 인도의 아삼지방에서 자생하는 차나무가 김해지방을 비롯해 가야의 주요 지역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허왕후가 시집올 때 고향의 차나무 종자를 가져다 김해지방에 심었고, 이 차나무가 곧 가야의 주된 차문화를 이끌었다는 여러 전설과 연구 기록들 또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9세기 중엽에 중국에서 차 종자를 들여와 심었고 그때부터 한국에 차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는 매우 수상쩍은 《삼국사기》의 기록은 중화 사대주의에 의한 역사 왜곡으로 보인다. 중국 구화산의 지장보살로 알려진 신라의 왕자 김교각의 금지차金枝茶, 무령왕릉의 방격규구신수문경의 옥천玉川, 변방便房, 토기잔, 동탁은잔, 경덕왕과 충담의 이야기, 화랑의 차살림, 팔관회 등 한국 차문화의 오랜 역사를 알 수 있는 기록과 흔적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고려는 불교의식을 신라보다 더 폭넓게 받아들였다. 고려시대 차살림의 핵심은 사찰과 승려들의 생활에서 이루어졌고, 귀족과 무사 등 상류사회에서는 차를 생활화하였다.

차례茶禮를 지낼 때 술 대신 차를 올렸다는대?
차례는 차를 올리는 절차를 갖추고 있는 제례로서 중국에서 전해졌다. 우리나라의 차례라는 명칭도 차를 올린다는 뜻을 내포한 중국 전래의 제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배불론을 펼치며 차문화를 불교문화로 간주하여 모든 의식에서 차를 배제하기 시작하였다. 차례에서도 차를 술로 대치하였다. 조선 중기 이전에는 의식 때 차를 올리고 차를 마신 기록이 있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부터 점차 사라져 갔다.

선비들도 차를 마셨을까?
고려 말, 조선 초의 대학자이자 선비의 이상형이기도 했던 삼은三隱, 즉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도은 이숭인 또는 야은 길재의 차에 관한 생각과 생활은 조선시대 여러 선비들에게 선명한 길잡이가 되었다. 숭유억불 정책을 편 조선시대의 관료로서 또 학자로서 차문화를 숭상하는 것은 시대에 대한 도전이자 저항으로 비칠 수 있었다. 따라서 시문詩文을 짓거나 동무들과 교우할 때 차를 즐기는 것은 상당한 각오가 필요하였다. 차생활을 하기에는 환경이 너무나 열악했기 때문에 차에 관한 글을 남긴 선비들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선불교의 다선일미茶禪一味 정신이 한국에 끼친 영향은?
중국의 선불교禪佛敎에서 잉태되고 성장하여 특유한 사상으로 확립된 다선일미茶禪一味 정신은 선가禪家의 수행철학으로 전승되었다. 여기서 차는 부처에게 올리는 예배의식의 주요한 성물聖物 혹은 법물法物이고‘알가’, 즉 물이 지닌 우주적 상징물로서 모든 것의 하나됨을 뜻한다.‘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 있는 상생의 존재임을 말한다.
이 같은 중국 선가의 정신은 우리나라 수행자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원효의 무애차, 혜소의 상생차, 의천의 대승차, 혜심의 일심차, 충지의 다선일미차, 휴정의 보살차, 언기의 중생차, 유일의 화일차, 초의의 구원차에서 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일본의 다도茶道는 어떤 과정를 통해 확립되었을까?
일본에서 차를 마시는 풍습은 헤이안시대 초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하지만 이보다 앞선 시대인 나라시대에도 차를 마셨다는 기록과 찻잔이 발견되고 있다. 나라시대의 차문화는 중국과 관련이 없고 오히려 백제나 신라와 관련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선불교와 함께 당나라와 송나라의 차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은 가마쿠라시대, 무로마치시대를 거치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무사를 중심으로 열린 거대하고 화려한 차회는 날이 갈수록 사치의 극을 달려 사회의 큰 병폐가 되었다. 이에 문제를 느낀 인물들이 있었다. 무라타 쥬코, 다케노 조오, 센노 리큐 등이다. 일본 다도의 모체가 된 센노 리큐의 차실 꾸미기 원칙을 보자.
지붕은 볏짚으로 된 이엉을 덮는다. 차실 내부는 모두 짚을 잘게 썰어 넣은 황토로 벽을 만든다. 차실의 뼈대가 되는 나무가 드러나게 한다. 차실 안에 세우는 기둥은 되도록 소나무를 쓴다. 자연스럽게 휘어진 것일수록 좋다. 차실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좁고 낮다. 무릎과 가슴이 닿도록 잔뜩 몸을 구부리고 손으로 바닥을 짚고 들어가야 한다. 문 밖에는 신발을 벗어 두는 댓돌을 놓는데, 사람 손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 상태의 돌이어야 한다. 찻잔은 흠집이 있거나 깨어져 금이 간 것도 소중하게 사용한다. 문에 창호지를 발라 햇살이 은은하게 스며들어야 한다. 달빛도 스며들어야 한다. 방 안에는 반드시 땅화로를 둔다. 농차濃茶를 낼 때는 반드시 이도찻사발井戶茶碗을 사용한다.
보라. 기존의 일본 건축양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모습이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바로 조선시대에 흔히 볼 수 있던 우리의 오두막집이다.

일본의 조선문화 배워 가기
1423년(세종5)에 조선 남해안 세 곳에 일본인이 체류할 수 있는 왜관을 설치하여 교역과 접대 장소로 쓰게 하였다. 일본국왕사의 주축을 이루는 승려들은 조선문화를 일본으로 가져갔다. 특히 조선 농촌의 가난한 민중들이 사는 매우 협소하고 작은 오막살이집의 장점들을 알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탐험가 수준이었다. 그들은 일정 기간 조선 민중들이 사는 두 칸짜리 오막살이에서 지내면서 매우 꼼꼼하게 살폈던 것 같다. 한 집에 예사로 예닐곱 명의 식구가 사는 데도 냄새가 나지 않고 방문도 작고, 환기를 시켜 줄 창문도 없다. 그런데도 방 안은 뜻밖에도 쾌적하였다. 흙벽이 숨을 쉬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하나의 신비한 점은 방문을 꼭 닫고 방 안에 앉아 있어도 전혀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 안에 앉아서 명상을 하면 금방 몰입할 수 있다. 그들은 오두막집에서 느낀 것을 고스란히 일본에 전하였다. 또한 조선 선비들이 사용하던 초당, 승려들의 토굴과 독참방獨參房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불교 승려들의 발우공양을 보았다. 일본 다도의 상징적인 차법인 농차는 발우공양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리고 일본인은 왜‘이도찻사발’에 주목하는가? 1578년 10월 25일, 오다 노부나가에게 충성을 바치기 위해 열린‘야부노우치’ 차회에서 고려찻사발에‘이도井戶’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일본 다도 역사상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된‘이도찻사발’이 등장한 것이다. 이 찻사발은 그 이전에도 일본에 알려져 있었지만 크기가 크다 보니 제대로 쓰여지지 않았다. 이 찻사발이 주목받게 된 것은 정치적 이유에서였다. 화려함으로 치닫던 일본의 차회는 또한 정적을 제거하는 자리로 변질되었다. 정적의 찻잔에 독을 타서 대접하다 보니 차회에 초대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이때 센노 리큐가 노부나가에게 찻사발을 돌리면서 차를 함께 마실 것을 권하였다. 즉 큰 찻사발인 이도찻사발에 차를 담아 나눠 마시는 것이다. 이도찻사발은 크기가 커서 안성맞춤이었다. 이렇게 하여 이도찻사발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었고, 이도찻사발에 차를 타서 여러 사람이 돌려 마시는 것을 농차라 부르게 되었다.

일본의 한국 차문화 말살 정책
우리나라 현대사회의 차문화를 말하려면 먼저 전통시대와 현대 사이를 잇는 근대의 차문화를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것이 일본제국주의 식민시대이다. 일본은 그때까지 한국 차문화의 명맥을 이어 오던 사찰에 손을 뻗쳤다. 대처승들은 주요 사찰을 점거하여 사찰을 가정의 소유물로 변질시켰고, 일본의 차문화를 받아들이면서 한국사회에 일본 다도를 보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일본은 한국 자생 차나무를 대거 베어 버리고 대신 일본의 차나무를 심어 녹차를 생산하였다. 대표적인 곳이 보성이다. 그뿐 아니다. 한국의 여성들에게 다도교육을 시켰다. 장래의 어머니가 될 여성들을 일본 여성으로 만들어 민족정신을 말살하려 한 것이다. 그때 교육을 받은 이들이 해방 후 일본 다도를 한국에 보급하는 데 주축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만큼 차문화에는 그 민족의 정신이 아주 강하게 배어 있다.

한국 차문화의 오늘과 미래를 위하여
21세기로 접어든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차는 아직도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녹여 넣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고 있다. 한국의 고대사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과 변조는 두 나라의 정치적 목적으로 인해 중세와 근·현대사에도 미치고 있으며, 한국의 차문화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차문화의 경우는 오히려 한국 차인들 스스로가 중국과 일본의 차문화와 역사에 굴종하고 의존하여 그들의 경제적·문화적 이익을 증대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특히 차문화 관련 잡지나 학술서적 중에는 아예 중국과 일본의 차문화와 역사를 소개하고 선전하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 같은 모습을 과연 세계 어느 나라에서 볼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차인들이 제대로 된 한국의 차문화를 접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 차문화의 부끄럽고 치욕스런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차문화가 지닌 고유한 가치와 아름다움에 귀의하려는 순수 열정으로 차의 미학을 공부하고 깨닫고자 하는 차 인구는 놀랄 만큼 늘어나고 있다. 어느덧 5백여만 명쯤으로 추산되는 차 인구의 증가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제다법의 확립, 세계 시장을 지향한 미래 산업으로서의 차농사 계획, 차문화 비평의 정착, 한국 차살림 중심의 차교육, 차를 통한 외교 등 한국의 차를 알리고 퍼뜨리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중국과 일본보다 우수한 한국의 차를 중국인과 일본인은 오래전에 먼저 알았지만 정작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 가치를 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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