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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출, 1995
안녕, 레나 자전거 타는 여자 외출 왜 던지지 않았을까, 소년은 이사 목포행 완행 열차 사루비아 햇빛 밝은 한 마을과 두 가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해설/레나, 성숙의 근거를 찾다?이명원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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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를 처음 만난 것은 토론방에서였다. 그날은 아침부터 운이 없는 날이었다. 회의와 상관없는 엉뚱한 자료를 복사해서 회의실에 들여보냈고, 원두커피를 추출하는 유리주전자를 깨트렸다. 내가 근무시간에 자주 접속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부장은 한번만 더 들키면 가만있지 않겠다며 경고를 보냈다. 주 거래처가 부도를 맞은 후 흉흉해진 공기는 아침에 출근한 사장이 회사를 닫거나, 사람을 좀 정리해야겠다는 말을 하면서 착 가라앉았다. 다들 무언가 언짢아 있었고, 그들에게는 내가 가장 만만했던 것이 틀림없다. 하루 종일 나는 여기저기 채이며 싫은 소리를 들었다. 나는 이발사처럼 대나무 숲에 들어가 땅을 파고 싶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외치는 대신 이 씨발눔의 세상, 이라고 욕하고 싶었다. 부장은 내가 만만했겠지만, 나는 통신이 만만했다. 통신은 우우 바람소리도 내지 않는 대숲과 같았다.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나는 뭔가 큰 소리로 떠들 만한 방을 찾아 접속을 시도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레나가 있던 토론방이었다. 성희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던 중이었다. 성희롱뿐만 아니라, 성적 위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는 미성년자 성폭행범에 대한 비난이 열기를 띠고 있을 때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초등학교 때, 다니던 학원 원장에게 성폭행을 당하고서는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옆집 언니의 이야기를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내게 싫은 소리를 한 부장과 꼭 같이 생긴 범인을 지어내며 나는 비로소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함께 부장을 욕했다. 바람이 불어도 임금님에게 고자질하지 않는 대숲. 나는 거짓말에 도취되어 있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너무 무서워요, 하는 말을 쳤을 때는 정말로 내게 그런 일이 있었던 것만 같은 서글픔과 부장에게 복수를 했다는 통렬함을 동시에 느꼈다.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은 느끼지 못했다. 없던 일을 꾸며낸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들이 왜 중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절실하게 표현했으니 좋은 일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나는 퇴장명령어를 치려고 했다. 그때 불쑥 귀엣말로 메시지가 들어왔다.
―「안녕, 레나」에서 “시상에 그걸 보니께 을매나 기가 막히던지, 내가 가방끈은 짧아도 알파벳은 틀려본 적이 없는데, 암씨 봐도 E동이 있어야지. 해서 관리사무소 가서 물어봉게 저그 안 있냠서 가리키는데 봉게 그게 에푸동여야, 암만 임대아파트 사는 처지라고 해도 그렇지 에푸동이 뭐다냐. 나두 대학 나온 아들이 있는데 에푸가 뭔지 왜 모르겄냐. 그게 다 우덜이 낙제인생이라고 깔보는 거 아니겄냐 말이시. 속창아리가 다 뒤집어져서 소장한테 소락대기 한번 지를라구 팔을 안 걷어붙였겄냐.” 어머니가 싸우는 모습은 보지 않아도 눈앞에 선하다. 기차화통을 너댓 개는 삶아먹어도 모자랄 목청으로 일단 판세를 장악한 다음에, 상대가 남자라서 급한 마음에 주먹을 쥐면 맞고 드러눕겠다는 의사를 여실히 드러내 보이며 작고 똥똥한 몸매를 갖다 붙이고, 상대가 여자라서 덩달아 목청을 돋우면 함께 싸우기가 민망할 만큼 상소리를 던지는 것이다. 어머니는 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다. “글구 인제 우리는 세입자 처지가 아니잖냔 말이다. 당장이야 세를 내지만 조만간 턱 사버릴 테니께 우찌되었거나 내 집이 아니냐 말이다. 와 지들이 내집 간판에 에푸 딱지를 떡 붙이냐 말여, 안 그냐? 내가 관리사무소를 한판 다 뒤집어 엎어놓고 안 왔냐.” 그리고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던 태평한 얼굴로 다시 묻는다. “근디, 너 이삿날도 회사 가야하냐? 짐도 벨스럽게 없는데 돈 주고 장정사기는 좀 아까워서 말여.” 나는 이따금 어머니의 혈관을 흐르는 피의 내력이 궁금해진다. 피를 내린 사람을 찾다보면 어느 혈기왕성한 장군 두엇쯤 나오지 않을까. 그만큼 어머니는 전투적인 기질이 강하다. 아니 그것은 기질이 아니다. 어머니는 전사이다.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싸울 때 어머니의 눈빛에서 피어오르는 전의를 보노라면 위기일발의 전쟁터를 앞장서서 지휘하는 장군의 그것이 저보다 더 맹렬할까 싶은 탄복이 절로 나왔다. 굶주린 야수가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듯한 비장함. 그것이 타고난 천성인지, 아니면 서른둘에 쥐방울만한 자식 둘 달고 청상이 된 순간 살기 위한 방편으로 택한 일인지는 모를 일이다. 내 유년의 가장 첫 기억에도 어머니는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으니까. 싸움의 전조가 될 만한 시비를 거는 쪽도 대개는 어머니였다. 특별한 이유랄 것도 없었다. 이유라면 전의를 갖춘 순간 수십 개는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어머니였다. 얌전히 발꿈치를 들고 옆을 스치는 행동에도 시비를 붙일 수 있었다. 따로 가리는 상대도 없었다. 마땅한 주위 사람을 찾지 못하면 어머니는 내게 싸움을 걸어왔다. 어려서는 그런 어머니가 얼마나 싫었는지 모른다. 무당이 한바탕 살풀이춤을 추듯 그렇게 신명나게 싸우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나는 꼭 그만한 증오를 퍼붓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머니에게 완전히 투항했다. 누구도 어머니와 싸워 이길 수는 없다. 어머니와는 싸우지 않는 것이 승리라면 승리이다. 해서 나는 마땅히 그럴 참이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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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레나」의 화자인 ‘나’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사장을 포함해서 직원 다섯 명이 전부인 작은 회사”의 직원이다. ‘나’는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싶지만 “인생이 다섯 평짜리 좁은 사무실 안에서만 정착하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자주 우울”하다. 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뭔가 확 저지르고 싶은 충동이” 나를 들쑤신다.
「외출」의 ‘나’는 광고대행사 인턴사원이다. 내가 하는 일은 국장의 커피나 타주고 복사나 하는 잡일이다. ‘나’의 꿈은 자신을 “근사하고 멋지게 포장해서 기가 막히게” 사회에 파는 것이었으나 얻은 결론이라고는 “꼭 외출했다가 길을 잃어, 잘 모르는 길을 종일 헤매다 온 기분”일 뿐이다. 「왜 던지지 않았을까, 소년은」의 ‘나’는 연극 공연 스태프이다. 때는 이른바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 기간. 그러잖아도 장사가 안 되는 공연에 관람객이 있을 리 없다. ‘나’는 생각한다. “소수를 껴안을 수 없는, 다독여 안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소수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는 축제도 축제일 수 있을까.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춤을 추어야 마음이 놓인다면 그건 더 이상 축제가 아니라 매스게임일 뿐이다.” 「이사」의 ‘나’는 아동물 출판사 직원이었지만 지금은 “서른두 명의 해고자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해고 통지를 받은 백수다. ‘어머니’가 그토록 이사하기로 손꼽아 기다리던 임대아파트 E동이 실제로 확인해보니 F동으로 잘못 표기돼 있는 것과 같은 처지다. ‘어머니’의 말씀. “암만 임대아파트 사는 처지라고 해도 그렇지 에푸동이 뭐다냐. 나두 대학 나온 아들이 있는데 에푸가 뭔지 왜 모르겄냐. 그게 다 우덜이 낙제인생이라고 깔보는 거 아니겄냐 말이시.” 한지혜 소설의 인물들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보통형 인간들’이지만 사회의 정상성으로부터 배제돼 있다는 점에서 차라리 ‘음지형 인간들’이라고 불러야 더 적합할 것이다. 체험의 생생함이 묻어나는 「자전거 타는 여자」에서의 ‘아버지’와 「외출」의 주인집 교수가 ‘식물인간’인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특히 한지혜 소설의 주요 모티프 중 하나인 ‘식물인간’은 단순히 육체적 불구를 지시한다기보다는 약육강식의 남성적 힘을 정상적 표준문법으로 요구하는 자본주의적 논리구조에 백해무익한 구조조정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자기 방에 갇힌 외톨이들(「안녕, 레나」), 백수들(「외출」「이사」)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199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외출」로 등단한 지 만 6년여 만에 내놓는 한지혜의 첫 창작집 『안녕, 레나』는 낯설고 새로운 것으로 가득 찬 실험소설도, 극단적 정신의 투쟁으로 기존의 사유를 전복하는 관념소설도 아니다. 한지혜는 자신이 겪거나 보아온 주변의 이야기들을 조금은 가벼운 터치로, 그러나 깊은 여운을 남기는 어조로 ‘경쾌하게’ 풀어나간다. 특히 무거운 소재거리를 다룰수록 작가의 어조는 더욱 경쾌해지는데, 그것이 소설의 분위기를 어둡지 않게 만드는 한편, 비극적 정조를 작가 특유의 방식으로 역설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비극이 날것 그대로 과장되면 신파가 되는 법이지만 작가는 용케도 담담한 어조로 거리두기를 통해 그것을 비켜나간다.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와 비극의 역설을 생생하게 맛보고 싶다면 「목포행 완행 열차」와 「자전거 타는 여자」를 보라. 요컨대 「안녕, 레나」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생활인의 하중과 규범적 틀로부터 배제된 소외된 젊은이들의 우울은 좀처럼 체험이 만져지지 않고 사람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작금의 편향된 소설 구도에 다양성의 무늬를 수놓는 데 일조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