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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정진홍
-서장 <바보의 벽> 저편 어쩌면 좋을까요? / 무너진 벽 너무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 '죽음'이라는 최종해답 / 사람이 죽지 않는 아파트 -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가 자신의 운명조차 모르는 인간 / 죽이기는 간단하지만... / 되돌려놓을 방법이 없다 / 파리로 다시 태어난 할아버지 / 두 번 다시 만들 수 업는 것 / 인간 중심의 사고는 위험하다 -죽지 않는 병 정보화 사회의 착각 / 왜 나는 죽어야만 하는가 / 혼은 없어도 의식은 영원하다? / 지금의 내가 나다 / 죽을 수 없는 존재 / 죽음과 똥 / 신체가 사라졌다 / 알몸의 도시 그리스 / 죽음과 친근했던 중세 / 죽음의 문화 / 장례식은 고인의 집대성 / 죽음을 실감하지 못한다 / 이케다 아동 살상 사건 / 숫자로 환치된 죽음 / 시신을 보여주라 -삶과 죽음의 경 삶과 죽음의 정의 / 죽음의 순간은 언제일까? / 애매한 삶과 죽음의 경계 / 살아 있는 것이란 무엇인가 / 구연산 회로 / 사람은 시스템의 집합체 /안정성과 가변성 / 사회가 정하는 죽음 / 뇌사가 곧 죽음은 아니다 / 이 사람은 죽은 것 같다? / 죽은 것으로 '보였던' 청년 / 삶과 죽음의 결정 -시신의 인칭 시신이란 무엇인가 / 1인칭의 시신-존재하지 않는 시신 / 2인칭의 시신-시신으로 보이지 않는 시신 / 3인칭의 시신 -나와 무관한 시신 / 시신은 물체가 아니다 / 해부를 할 수 없었던 시절 -시신은 왕따 소금을 뿌리는 의미 / 원 밖으로 밀어내다 / 인비인 / 이 세상은 멤버스 클럽 / 탈퇴의 방법 / 속아내기 / 베토와 도끄가 일본에는 없는 이유 -뇌사와 따돌림 뇌사와 장기 이식법 / 따돌림당할 존재를 정하는 문제 / 이란인의 화장 / 전범도 죽으면 신? / 사형은 인위적인 따돌림 / 죽은 것은 아니지만 장기 적출은 인정한다 / 살아 있든 죽었든 인간은 인간이다 / 대학도 일종의 공동체 / 케네디는 뒷구멍으로 입학했나? -테러ㆍ전쟁ㆍ대학분쟁 다른 생각도 있을 수 있다 / 정의의 강요 / 전쟁으로 잉여 인구 줄이기 / 대학 분쟁은 취직활동 / 반권력과 반체제는 다르다 / 패장의 변 / 전쟁의 득실을 따져야 한다 / 전쟁의 통한 진화 / 무엇이 국익인가 / 만들기에 집착하는 일본 -안락사와 엘리트 안락사는 의도도 고통스럽다 / 엘리트는 가해자 / 산파의 무거운 짐 / 죽이는 쪽의 입장 / 진정한 엘리트가 없어졌다 / 은제 심장 항아리 / 해부는 누가 했을까 / 하늘의 길, 사람의 길 / 명문화가 곧 진보는 아니다 / 생명 존중은 어디까지? / 공공기간에 서류가 많은 이유 / 자신에 대한 공포 / 해부학 교실의 꽃 -죽음과 인사이동 죽음의 공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생각해봐야 소용없다 / 노년의 추함이란 무엇인가 / 인간은 괴로워하는 존재 / 자살해서는 안 되는 이유 / 내 아버지의 죽음 / 인사를 잘 못하는 이유 / 죽음의 효용 / 어쩔 수 없다 / 살아남은 자의 과제 / 인생의 모든 행위는 돌이킬 수 없다 저자 후기 |
Takeshi Yoro,ようろう たけし,養老 孟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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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인류 역사상 죽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현대인들은 이 문제를 왕왕 간과하고 있지만 살아있는 동안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죽음'의 문제이다. 밀리언셀러 '바보의 벽'의 저자 요로 다케시는 그의 새 책 '죽음의 벽'에서 "근대에 들어와 '인간은 결코 변하지 않는 존재'라는 의식이 보편화되면서 죽음의 문제를 삶에서 배제하고 '나는 죽어도 내의식은 영원불멸'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인간이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으며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삶은 죽음 때문에 의미 있는 것... 삶의 최종 해답은 죽음이다. 저자는 우리가 외면해온 죽음의 문제를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특유의 통찰력과,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급스런 담론, 문명사회를 향해 던지는 폐부를 찌르는 비판을 통해 쉽고도 경쾌하게 담아낸다. 우리는 부모의 죽음을 맞닥뜨리며 비로소 인생의 의미를 절절히 깨닫기 시작한다. 저자는 "죽음이 있기에 인간은 자신과 주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면서 "일상생활에서는 느끼지 못하지만 인생의 모든 행위는 돌이킬 수 없으며, 죽음만큼 그런 인생의 진리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다"고 말한다. 악이 있기에 선이 의미를 갖는 것 처럼, 삶은 죽음 때문에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한 발 더 나가, 그는 말한다. "인생의 최종 해답은 죽음이다." '나의 죽음'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시산에도 1,2,3인칭이 있다고 말한다. '1인칭 시신'은 관찰하는 주체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1인칭 시신, 즉 '내 시신'은 없는 셈이다. '2인칭 시신'은 가족 친구 등의 시신으로, 우리가 흔히 아는, '죽음의 슬픔'이란 감정을 동반하는 시신이다. '3인칭 시신'은 경찰서 게시판에 게시된 '어제의 교통사고 사망자 00명'과 같이 나와는 무관한 시신이다. 우리가 죽음의 공포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1인칭의 시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 1인칭의 시신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오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너의 죽음'이나 '그들의 죽음'은 존재해도, '나의 죽음'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으 ㄹ실제 이상으로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도쿄대학 의대 해부학 교수 출신의 저자는 우리가 시신을 두려워하고 불결하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럴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연상하는 시신이란 영화나 소설에서 관객이나 독자에게 공포를 심어줄 목적으로 변형시킨 시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뇌사, 안락사, 자살, 사형제도 저자는 삶과 죽음은 경계가 불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는 어떤 형태로든 경계를 정하기를 요구한다.선을 분명히 긋기를 원하는 것이다. 실체와는 무관하게 언어로 구성된 법률은 그것을 규정할 수 있다. 사망진단서에는 사망시각을 기록하게 마련이지만, 그것은 사회적 통념에 불과하다. 그 시각을 경계로 그 다음은 죽은 상태라고 편하게 생각하는 것뿐이다. 말하지면 죽음의 순간이란 삶과 죽음이란 말이 생긴 시점에서 생겨난 개념일 뿐 실제로는 존재히자 않는다는 것이다. 뇌사란 '앞으로 있을 죽음을 향해 불가역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 있는 상태'란 정의가 있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애당초 인간이란 존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불가역적으로 진행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뒤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안락사의 기준을 법률로 정하자는 것은 공동체 룰을 겉으로 드러내 명문화하자는 것이다. 의사는 싫든 좋든 사람의 죽음에 관계되는 경험을 하게 마련인데 그런 의식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다. 환자를 인간이 아니라 진로기록부에 정리된 자료의 집적, 정보로 밖에 여기지 않는 의사들이 많다. 저자는 인간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 시스템의 일부라고 말한다. 타인이라는 시스템을 돌이킬 수없게 만든다는 것은 바로 자신이 속해 있는 시스템의 주변을 파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이 자연이라는 시스템의 일부라는 사실을 망각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타인이니까 망가뜨려도 상관없다'고 멋대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중심주의 위험이 바로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