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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토폴리 이야기
전쟁 소설집 양장
인디북 200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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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습격
삼림벌채
세바스토폴리 이야기
두 경기병
강등병

저자 소개 1

레프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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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 Nikolayevich Tolstoy,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러시아 툴라 지방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 밑에서 성장했다. 1844년 카잔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 교육에 실망하여 삼 년 만에 자퇴하고 귀향했다. 고향에서 새로운 농업경영과 농민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1851년 큰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 군대에 들어갔다. 1852년 「어린 시절」을 발표하고, 네크라소프의 추천으로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농업경영과 교육활동에도 매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대작을 집필하
러시아 툴라 지방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 밑에서 성장했다. 1844년 카잔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 교육에 실망하여 삼 년 만에 자퇴하고 귀향했다. 고향에서 새로운 농업경영과 농민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1851년 큰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 군대에 들어갔다. 1852년 「어린 시절」을 발표하고, 네크라소프의 추천으로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농업경영과 교육활동에도 매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대작을 집필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뒷부분을 집필하던 1870년대 후반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는다. 1899년 발표한 『부활』에서 러시아정교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1901년 파문당했다. 1910년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부인과 불화가 심해지자 집을 나와 방랑길에 나섰으나 폐렴에 걸려 82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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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11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02쪽 | 94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58560357

출판사 리뷰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외국작가 톨스토이의 영혼과 사랑!
국내 최초의 톨스토이전 기념 톨스토이 라이브러리 출간!

전인류에의 영원한 사랑을 실천한 대문호 톨스토이를 만난다!

평생 동안 100여 권에 이르는 문학작품을 남겼으며, 위대한 사상가이자 민중에 대한 사랑과 교육에 대한 관심을 직접 실천하였던 톨스토이의 유품과 작품, 일리야 레핀의 회화와 함께 우리나라를 찾는다. 세계적인 대문호의 작품과 그 영혼의 세계를 감상하면서 동시에 러시아 문화를 체험하는 계기가 될 전시회가 마련된 것이다.
작가 톨스토이의 명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독자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으며 자랐다. 그의 알파벳 공부법에서 시작해서 『유년시절』,『소년시절』,『청년시절』을 읽으며 성장한다. 어른이 되면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부활』등과 같은 대작뿐만 아니라, 『세 죽음』,『카자크 사람들』,『홀스토메르』,『이반 일리치의 죽음』,『크로이체르 소나타』,『하지 무라트』등의 주옥 같은 단편작품과 『어둠의 힘』,『교육의 열매』, 『산 송장』, 『빛은 어둠 속에서도 빛난다』등과 같은 희곡작품도 접하게 된다.
지난 150여 년간 톨스토이에 대한 논문과 서적 그리고 연구가 이루어진 것만도 수천 여 건에 달한다. 그의 작품은 쉼 없이 출판되고 있다. 아마도 톨스토이에 관한 것은 가능한 모든 것이 출판되거나 연구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풀어야 할 "톨스토이의 수수께끼"가 남아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열릴 이번 톨스토이 전시회가 톨스토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톨스토이는 이미 20세기 전반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난 혼란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극심한 정신문화의 공백을 메우며 광범한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시공을 초월하여 톨스토이의 불멸의 대작들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톨스토이 단편선』은 2003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200만 부가 팔려 나가면서 일반 대중에게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평범한 인간들의 고뇌와 행복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하고 또 그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위대한 작가, 그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며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쳐주고,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것을 우리 모두에게 나누어줄 것이다.
톨스토이에 대하여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200킬로미터 못 미처에 툴라 현이라는 곳이 있다. 거기서 약 14킬로미터 들어가면 야스나야 폴랴나라는 마을이 나타난다. 이 지명의 뜻은 ‘숲 속의 밝은 땅’으로 레프 톨스토이는 바로 그 마을의 양지 바른 언덕 밑의 이층집에서 태어났다.
톨스토이는 이곳에서 귀족으로서 부유한 삶을 누리지만 두 살이 되기 전에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여덟 살 때에는 아버지마저 노상에서 급사하여 톨스토이 남매는 고모에게 부양된다.

어린 시절부터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의 행복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이라 믿어왔던 톨스토이는 이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가장 먼저 문학을 선택했다. 처녀작 단편 『유년시절』에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에 이르기까지 460여 권이 넘는 출판물을 통해서 톨스토이가 우리에게 하고자 했던 말은 무엇일까.
톨스토이의 인생은 적극적인 활동 그 자체였다. 1890년대 러시아에 대기근이 덮쳤을 때, 톨스토이는 기근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빈민구호활동을 펼쳤으며, 자신을 찾아오는 부랑자들을 모두 받아주고 그들에게 은화 한 닢씩을 나누어주는 따뜻한 사랑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무엇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인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인생의 뒤안길에 접어들면서, 톨스토이는 인간과 자연을 구속하는 모든 제도를 버리고자 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조차도 인간을 원초적인 행복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었다. 노자의 무위사상을 바탕으로 한 톨스토이의 이 같은 사상이 결국 톨스토이로 하여금 자신의 마지막 껍데기인 가족마저 버려둔 채 차가운 철길 위에서 숨을 거두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 사상가, 사회활동가, 교육자……이러한 것이 모두 톨스토이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이다.

세상은 한가운데로 빛이 비치는 거대한 사원과도 같다. 빛을 사랑하는 모든 이는 그 곳으로 향한다. 도처에서 빛을 보고 모여든 자들이 가운데로 모여 하나가 된다.
『일기』톨스토이. 1889년 6월 7일(61세)
전쟁문학과 톨스토이
이 권을 이루고 있는 작품은 1852년부터 1856년까지 톨스토이에 의하여 창작된 것들이다.
이 몇 해는 젊은 톨스토이 인생의 길의 확정에 있어서, 작가로서의 그의 확신에 결정적인 의의를 갖고 있다. 『유년시절』로 화려하게 문단에 등단한 뒤를 이어 독자들과 비평가에 의하여 적지 않게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질 몇몇 작품이 나타났다. 그는 그때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인간세계의 심층을 찾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1857년 당대의 대비평가인 N.G. 체르이쉐프스키는 “거의 모든 새로운 작품에서 그는 새로운 생활영역에서 자기의 단편소설의 내용을 취하고 있다” 하고 말했다.

전쟁의 온갖 비극과 참상, 모순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전쟁소설집
톨스토이의 초기 단편소설은 카프카스에서 쓰였다. 그리고 큰 구상은 카프카스에서 잉태되었다. 그는 『카프카스 오체르크』를 쓸 작정이었으며 그 프로그램은 산민(山民)의 삶, 카프카스에 대한 인상, 군사사건 등에 의하여 시사받은 지극한 다양한 슈제트를 포함하고 있다. 카프카스에서 톨스토이는 처음으로 전장이라는 것을 보았다.
용감성, 전투에서의 인간의 행동에 대한 고찰, 군인생활의 새로운 인상은 톨스토이로 하여금 전쟁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게 했고 그것에 대한 자기의 관계를 결정하게 했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해명하려고 시도하면서 톨스토이는 자기에게 있어서는 이 현상은 불가해 하다 하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습격』저작 과정에서 ‘이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 평가할 줄 모르는 ‘혐오스러운 사람들’에 의하여 생겨난 부자연스러운 현상으로서의 전쟁에 대한 톨스토이의 태도가 한결 더 많이 정해지고 있다.
처음에 톨스토이는 전쟁을 흥미롭고 시적이고 감동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연합군의 세바스토폴리 상륙은 톨스토이로 하여금 목전의 여러 사건에 대하여 한결 더 진지하게 깊이 생각하게 했다. ― 그는 통절히 여러 세바스토폴리 사건을 체험하고 자신이 직접 도시를 방어하고자 했다.
이렇게 여러 전쟁의 사건을 좇으며 더 이상 전쟁은 그에게 있어서 구경거리가 아니라 무서운 현실이 된다. ‘애국심’ ‘국가주의’라는 포장된 무기로 서로를 해치고, 또 그 속에서 인간의 내면의 넋까지 파괴하는 전쟁은 결국 인간에 대한 무서운 재앙임을 사실적인 묘사와 서술로써 폭로하고 있다.

『습격』― 이 단편소설은 처음 1853년 《동시대인》지 제3호에 ‘L. N.'이라는 서명으로 발표되었다. 단편소설의 기초에는 실제 사건, 1851년 여름 톨스토이가 그 참가자의 한 사람이 되었던 산민들의 마을에 대한 습격이 놓여 있다. 『습격』의 인물들 가운데의 대다수는 실제 원형을 가지고 있다. 1852년 5월부터 12월까지 톨스토이는 이 단편소설을 집필하였다. 저작 과정에서 작품의 구상이 바뀌었다. ― 화자인 작가가 쓴 『카프카스로부터의 편지』(맨 처음의 제목)는 여러 사건이며 사람들의 마치 곁에서, 전투에 경험이 많은 사람의 위치에서 관찰되고 있는 듯한 『의용병의 이야기』로 발전하고 있다. 그 뒤의 개작은 작품 가운데에서 객관적 서사시적 요소를 강화하고 있다. 톨스토이의 일기와 편지에서 이제 단편소설은 『전쟁기술(記述)』이라는 제목으로 나타나고 있다. 12월 24일 저작은 끝나 작자는 페테르부르크의 N. A. 네크라소프에게 부쳐졌다.

『삼림벌채』― 1855년 《동시대인》지 제9호에 ‘L. N. T'라는 서명과 I. S. 투르게네프에게 헌정하는 헌사와 함께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삼림벌채』의 기저에는 카프카스 군단의 여러 부대의 여러 전투에 참가했던 톨스토이의 개인적 관찰과 인상이 깔려 있다. 단편소설은 1853년 여름 카프카스에서 기고되었다. 톨스토이의 새 작품은 그의 일기와 편지 가운데에서 처음에 『한카프카스의 장교의 수기』, 『한 카프카스의 장교의 일기』로, 그 다음에 『삼림벌채』와 『한 포병하사관의 수기』로 나오고 있다. 1854년 8월 20일 톨스토이는 일기에서 적고 있다. “『삼림벌채』를 완결했다.” 1855년 6월 18일의 일기에는 “아침에 『한 사관학교 생도의 수기』(부제로 남아 있는 『삼림벌채』의 새 제목)를 탈고하고 편지를 써서 부쳤다……” 하고 적은 메모가 나타나 있다. 톨스토이는 I. S. 투르게네프에게 새 단편소설을 헌정하고 싶어했다.
1855년 8월 18일 네크라소프는 투르게네프에게 쓰고 있다. “《동시대인》지 제9호에 당신에게 헌정된 한 사관학교생도의 단편소설 『삼림벌채』가 발표되고 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그때는 아직 톨스토이와 개인적으로 면식이 없었던 투르게네프는 1855년 10월 3일자 젊은 작가에게 보내는 자기의 첫 편지 가운데에서 자기에게 『삼림벌채』를 헌정한 것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표현하였다. “나의 전 문필생활가운데에서 아직 이처럼 나이 자존심을 만족시켰던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고 그는 쓰고 있다.

『12월의 세바스토폴리』― 1855년 《동시대인》지 제 6호에 ‘L.N.T'라는 서명으로 맨 처음 발표되었다. 1854년 11월에서 12월에 걸쳐 세바스토폴리에 머물었을 때의 톨스토이의 첫인상이 이 단편소설의 자료가 되었다. 그때 세바스토폴리에 대한 논문의 가장 초기의 구상이 생겼다.
1855년 3월 톨스토이는 다양한 양상의 세바스토폴리와 장교 생활의 목가를 써야겠다고 작정하면서 이 구상으로 돌아왔다.
『12월의 세바스토폴리』는 4월 12일 탈고되어 이내 페테르부르크로 부쳐졌다.
『12월의 세바스토폴리』는 독자들에 의하여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네크라소프는 1855년 6월 15일 톨스토이에게 이렇게 쓰고 있다 ― “이 논문은 아주 잘 쓰였습니다. 러시아 사회에 있어서 그 논문의 가치를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 그것에 크게 성공했습니다…….” 투르게네프는 I. I. 파나예프에게 부친 편지 가운데에서 “세바스토폴리에 대한 톨스토이의 논문은 놀랍습니다! 나는 그것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만세! 하고 외쳤습니다……. 톨스토이의 논문은 여기에서 모든 사람의 절찬을 받았습니다…….” 하고 고백하고 있다.

『오월의 세바스토폴리』― 1855년 《동시대인》지 제9호에 『오월의 세바스토폴리에서의 봄밤』이란 제목으로 작자의 서명이 없이 맨 처음 발표되었다.
단편소설의 바탕에는 톨스토이가 목격한 사건 ― 10일에서 11일에 걸친 전투가 놓여 있다.
맨 처음 단편소설은 그래서 『5월 10일』이라는 제목이 붙여졌었다.
단편소설은 며칠 만에 (18일에서 26일까지) 쓰였다.
네크라소프는 단편을 읽고 나서 1855년 8월 15일 투르게네프에게 “그것을 발표하기 않으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냉정하고 깊은 진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고 쓰고 있다.

『1855년 8월의 세바스토폴리』― 1856년 《동시대인》지 제1호에 ‘L.N.톨스토이 백작’이라는 서명으로 맨 처음 발표되었다.
단편소설의 기저에는 영혼의 심부까지 톨스토이를 진감시켰던 사건 ― 세바스토폴리의 강습과 함락이 놓여 있다.
단편소설은 1855년 9월 15일 세바스토폴리에서 기고되어 같은 해 12월 27일 탈고되었다.
네크라소프는 1856년 《동시대인》지 제2호에 실린 논문 『잡지에 대한 감상』가운데에서 톨스토이의 새 작품을 가장 정확히 평가하고 있다. 『1855년 8월의 세바스토폴리』는 “작자가 예사롭지 않는 문재를 부여받고 있음을 결정적으로 확신시켜 주고 있다”라고 그는 쓰고 있다. “중편소설의 가치는 최상급이다” 하고 그는 쓰고 있다. “정확하고 독특한 관찰력, 여러 사물과 전형적 전형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통찰, 엄격한 그 무엇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진실, 지혜가 번득이며 형안에 놀라게 하는 순간의 감상의 충만, 언제나 자유롭고 갑자기 그러나 언제나 알맞게 확 불타오르는 시정의 풍부함, 그리고 끝으로 힘 ― 하나하나의 행, 아무런 생각 없이 불쑥 내뱉는 하나하나의 낱말 가운데에서 그 존재가 들리고 있는 도처에 넘쳐나는 힘 ― 이것이 바로 중편소설의 장점이다. 세바스토폴리의 마지막 며칠의 느낌을 안내하여 그것을 독자에게 젊은 고결한 갓난이 같은 아름다운 아직 생활의 쓰레기로 더렵혀진 겨를이 없었던, 영혼의 프리즘을 통하여 보여 주려는 그 생각 자체 속에서 우리들은 예술가들에게만 주어지고 있는 그 시적 절도를 우리들은 볼 수 있다. 『1855년 8월의 세바스토폴리』를 네크라소프는 현대의 가장 살아 있는 문학 현상으로 보고 있다.

『두 경기병』― 중편은 1856년 《동시대인》지 제5호에 누이동생인 백작영애 마리야 니콜라예브나에게라는 헌사와 함께 처음 발표되었다.
톨스토이는 1856년 3월 12일부터 4월 14일까지 중편소설을 저작하였다. 맨 처음 이 중편소설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제목이 주어져 있었으나 저자는 네크라소프의 충고에 좇아 인쇄 원고에 『두 경기병』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강등병』― 단편소설은 처음 『한 모스크바의 알음알이와의 진중해우. 네흘류도프 공작의 메모 중에서』라는 제목으로 1856년 《독서문고》지 제12호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의 기저에는 하급병으로 강등당하여 카프카스군에서 복역했던 인물들과 카프카스에서 사귄 인상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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