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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작가세계』가을호에 「호수에 갔었다」와 「가설무대를 설치하며」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호림 씨의 첫 창작집 『그믐달을 베고 눕다』가 간행되었다. 이 창작집에는 표제작인 「그믐달을 베고 눕다」외에 「호수에 갔었다」「가설무대를 설치하며」「모노레일」「이상한 여자」「저기 먼 하늘」등 총 7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주제의 비단일화, 인용의 과감화, 의식의 파편화, 시공간 감각의 산만화, D와 G와 같은 이니셜을 사용하는 기법 등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특징들을 적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90년대 중반에 신경숙, 김인숙, 공지영 등 63년생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면 90년대 후반은 서서히 이호림, 정영문, 배수아, 윤효 등 65년생 작가군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기 시작하고 있다. 63년생 작가들이 삶의 의미나 진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면 65년생 작가군들은 삶의 의미 없음과 인생의 불가해성, 비극성인 운명의 수락 등에 대해 쓰고 있다. 또한 63년생 작가들이 80년대를 지나오며 변화된 현실 속에서 역사와 사회에 대한 부채로 괴로워 했다면 65년생 작가들은 역사나 사회로부터 자유롭다. 특히 이호림의 경우에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가볍고 경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마음속에 신을 만들지 않고 살아가는 인물, 즉 유토피아나 이상향을 꿈꾸지 않는 인물들을 창조하고 있다. 표제작 「그믐달을 베고 눕다」에는 그믐달이 뜨는 날을 빼고 나머지 날들은 인간으로 변할 수 있었던 여우이야기가 나온다. 그 여우는 영원히 인간으로 살고 싶어서 서낭신에게 그믐달이 뜨는 날에도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빈다. 그래서 결국은 소원을 이루어 여우는 그믐달이 뜨는 밤에도 여우가 되지 않고 인간이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호신의 저주를 받아 거꾸로 그믐달이 뜬 달을 뺀 나머지 날들에는 여우가 되고 만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작가는 이러한 옛날이야기의 세계를 통해 현실의 세계를 부조해내고 있다. 소설 속의 화자인 '나'는 어느날 영화관에서 추운 한겨울 날씨에도 반팔옷을 입은 여자를 보고 호기심에 그 여자를 뒤쫓아가서, 여자가 사는 '원형의 집'에까지 들어가나 그렇게 바라던 그녀와의 섹스는 이루지 못한다. 그것은 그녀의 집 한구석에서 들려오는 탱커라는 곰의 울부짖음 때문이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소리만으로도 겁을 먹은 '나'는 그녀와의 관계에 번번이 실패하는 것이다. '나'는 그녀를 '원형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지만 거기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녀와의 관계에 실패하고 만다. 곰의 울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통제된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다. 곰은 감시자로 상징할 수 있다. 푸코식으로 말해서 감옥에 갇힌 죄수가 간수가 없어도 감시당한다고 생각하고는 스스로를 규제하는 것과 같다.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밝히고 있듯 학교나 병원, 병원과 공장에서는 여러 규칙과 규정 아래 내밀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사찰의 시선, 생활과 신체의 극히 미세한 사태에 대한 규제가 배면에서 인간을 조정한다. 이러한 감시체계는 하나의 기계장치의 면밀히 배속된 톱니바퀴에 있으며, 원시적인 계약이 아니라 영원한 강제권에 기본적인 인권이 아니라 무한히 발전적인 훈육에, 일반의지가 아니라 자동적인 순종에 있는 것이다. 옛날이야기의 알레고리를 통해 현재라는 시공간에 재현되는, 주술에 걸린 듯한 기이한 이 이야기는 그대로 후기자본주의 사회라는 거대한 감옥과 그 안에서 스스로 순응적인 인간이 되어버린 현대인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현대의 '이야기'이며 '전설'이고 '신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