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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중 조작된 도시에서 살고 있는 586, 영웅인가 괴물인가?
이호림
글도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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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자아비판시대를 위한 고언苦言-서문에 갈음하여 / 4
제 I 부 화려한 휴가에서 강철서신까지
프롤로그-단상 하나 / 16
1. 186세대와 『화려한 휴가』 / 29
2. 286과 『임을 위한 행진곡』 / 43
3. 리영희와 『8억인과의 대화』 그리고 『전환시대의 논리』 / 64
4. 민족문학담론과 586 / 81
5. 후일담문학과 586 / 96
6. 주체사상과 강철서신 그리고 황장엽 / 113

제 II 부 홍콩느와르에서 조작된 도시까지
7. 홍콩느와르는 무엇이었을까 / 140
8. ‘괴물’이 『괴물』을 만들다-586의 자의식 / 161
9. 동막골은 어디에 있는가 / 188
10. 『조작된 도시』 / 209

제 III 부 미개사회에서 야만사회로
11. 혁명이 직업인 아이들 / 236
? 우리 시대의 영웅은 다름 아닌 혁명가라는 것 / 239
?혁명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주의라는 것 / 242
? 혁명은 설계이고 혁명가는 설계주의자라는 것 / 245
? 한국사회는 태동부터 설계주의에 입각 / 249
?설계가 삶을 위하여 있는 것이냐 삶이… / 256
12. 영웅의 시대, 날조의 시대 / 266
13. ‘위대한 세대’와 586 / 287
? 이승만 / 296
? 박정희 / 300
? 민주화 세대 / 304
14. 미개사회에서 야만사회로 / 314
에필로그-결론結論을 대신하여 / 336
[후기] 한국의 산업화는 진짜였지만, 민주화는 가짜였다?

저자 소개 1

출판사 대표이자 소설가, 평론가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5년 [작가세계] 소설부문 신인상, 2000년 [라뿔륨], 2002년 [문학공간] 평론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2005년 성균문학상(우수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웅녀야 웅녀야』, 『이매, 길을 묻다』, 『다시 그날』, 『북에서 온 여자』,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친일문학은 없다』, 『자유주의, 전체주의 그리고 예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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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50쪽 | 490g | 150*212*17mm
ISBN13
9791187058342

책 속으로

자아비판시대를 위한 고언苦言-서문에 갈음하여

바야흐로 혁명의 시대다. 21세기 초반(2018년 현재) 한국사회는 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권을 잡은 자들이 그렇게 혁명정부임을 자임하고 있고, 이에 호응하는 대중들이 상당하다. 특히 젊은 대중들 사이에서 그 호응도가 높다. 나이 든 사람들은 철 지난 보수로 낙인 찍혔으며 사회적으로 무시되는 말로 ‘틀딱’이란 미명하에 역사 밖의 존재로 취급당한다. 혁명은 바야흐로 시작되었고, 한국사회는 그 끝을 예견할 수 없는 곳으로 달려나가고 있다.
‘혁명’의 시대에 혁명을 부인하는 것은 위험하다. 혁명은 필연적으로 독재를 낳고, 혁명에 대한 거부는 독재를 낳은 그 명분에 대한 거부가 된다. 독재에 대한 거부나 저항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 혁명은 늘상 사람들이 뿌리는 그 피로 장식된다. 혁명의 빛깔이 흔히 붉은색인 것은 그것이 핏빛이기 때문이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특별히 한국사회에서 혁명이란 무엇인가.
‘혁명’이란 게 역사 가운데 등장한 이래 이에 대해 설명하고 정의 내린 식자들은 수도 없이 많다. 크롬웰, 로베스피에르, 당통, 맑스, 레닌, 스탈린, 모택동 등 모두 이런 혁명을 정의한 식자들 가운데의 몇 사람들이다. 21세기에 혁명은 전혀 새롭지 않다. 낡은 고전에 불과하다. 혁명이 탄생하고 전개되어온 역사가 결코 적지 않음을 놓고 볼 때.
한국사회에서도 혁명은 심심찮게 있었다.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 혁명에서부터 시작해 4.19학생혁명, 박정희의 5.16혁명, 유신혁명 그리고 80년대로 넘어와 5.18광주사태, 87년의 6월시민혁명, 90년대에는 세계화혁명을 거쳐 2000년대 노무현의 서민혁명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는 가히 끊임없는 혁명의 시대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가히 혁명에 굶주린 사회였다고나 할까.
한국사회는 왜 이렇게까지 혁명에 굶주린 사회가 되었던 걸까. 적잖은 혁명을 수행해 왔으면서도 왜 여전히 혁명에 굶주린 채 목말라하고 배고파하는 걸까.
당연히 나오게 되는 의문이다.
혁명에 관한 그 수많은 설명과 정의 가운데에서 여기서는 딱 하나 ‘설계’라는 차원에 초점을 맞춰 그것에만 천착하기로 한다. 혁명에 목말라하고 굶주려하는, 마치 혁명좀비 같은 양태를 보이고 있는 한국사회를 이해하는데 무엇보다도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개념이라는 생각에서다. 설계라는 관점에서 볼 때 혁명은 설계를 위한 도구다. 설계주의를 가능케 하기 위하여 제일착으로, 제일선에 서야 하는 것이 혁명이라는 것이다.
해방 이후로 한국사회는 보여지는 그대로 가열 찬 설계의 시대였다. 그 대표적인 게 이승만의 ‘대한민국건국혁명’과 박정희의 ‘5.16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설계는 의외이긴 하지만, 크게 성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상당히 의미 있는 ‘부’를 축적하며 세계 굴지의 경제국으로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들 양자의 설계가 의외로 성공한 데에 대하여는 한국인이라면 경의를 표하는 게 마땅하며, 또한 예의가 될 것이다. 20세기에 독립한 그 어떤 후진사회도 이만한 높이 이만한 경지에까지 성공한 사례가 달리 없는 탓이다. 그래서이겠지만, 이를 성공사례로 해서 연구와 탐구가 아주 다양한 방면에서 심도 있게 그리고 방대한 양에 걸쳐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조명과 재조명 그리고 재재조명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게 좋은 견본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들 양자의 혁명이 성공한 원인에 대하여 통상적인 접근과는 다른 관점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이들 양자의 혁명이 새로 탄생한 나라에 피와 살을 붙이려는 설계이긴 하였으나, 설계주의로까지는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 김일성의 강력한 설계주의와 비교하면 이 점이 더욱 분명하게 눈에 잡힌다. 6.25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설계주의 노선을 걸었던 북한의 김일성은 그로 인해 실패하고 세계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점이 이를 실증한다.
이승만 박정희. 이들 양자의 혁명이 설계를 넘어 그와 같은 설계주의로까지 나아갔다면 이 양자의 설계는 성공이 아니라 김일성과 마찬가지로 필연적 실패로 끝나고 말았을 거라는 것이 필자의 관점이다. 물론 이들 혁명에도 설계주의의 그늘이 보이기도 했던 게 사실이긴 하다. 박정희의 유신혁명이 그것이었다. 유신혁명이 고개를 들었을 때 이승만의 건국혁명과 박정희의 5.16혁명은 더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에 반기를 드는 자들이 형성되었으며, 결국 그들의 벽에 부딪히고 그 위대한 설계는 그만 막을 내리게 되고 마는 것이다.
유신혁명이라는 설계주의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이 다름 아닌 박통의 죽음을 기점으로 해서 나타난 286세대이다. 이들 286세대가 386, 486을 거쳐 지금 현재의 586세대에 이르고 있다. 286세대가 역사의 영웅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설계주의 관점에서 볼 때 역사적 필연이었다고 볼 수 있다. 위대한 건국 대통령 양인의 대한민국 건국 설계가 설계주의라는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것을 막고 정상화시키는 데에 일조를 하였던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286세대를 기꺼워하며 젊은 386세대에게 정권을 몰아주고 486세대를 거쳐 586세대의 혁명마저 기꺼이 허용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해피엔딩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그것 자체가 그다지 간단하게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나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제 와서 역사는 286, 386, 486세대와는 달리 586세대에 대하여 전혀 다른 결론, 다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혁명을 통하여 정권을 잡았다고 주장하는 ‘586세대의 혁명정부’에 대하여 역사는 한국사회에서의 진정한 설계주의자들은 586세대 바로 그들이라고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설계주의가 바로 이들 586세대의 정체성이며 본질이라는 의미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586세대의 정체성, 본질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신물 나게 언급이 되고 추적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서문의 모양새로 필요한 것 하나만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설계주의의 종말에 관해서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설계주의의 궁극에 관해서이다.

재작년(2016년) 한국사회는 박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아내면서 신물 날 정도로 박 전 대통령을 욕하고 욕보였다. 광화문 네거리에 박 전 대통령의 나체 그림을 내걸고 발로 차고 때리고 화살촉(다트촉)으로 찔러대고 그것도 모자라 국회 로비에 박 전 대통령이 씹하는 그림과 사진을 걸어 놓기도 하였다. 이러면서 한국사회는 키득거리며 좋아 날뛰었고, 십 년 동안 쌓인 변비가 해소되는 듯한 쾌감과 만족감을 만끽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마녀사냥이라 하였고, 한국사회의 비정상성이라고 하였지만, 이런 소리들은 세월호 노란 리본 상징에 밀려 묻혀지고 말았다.
이렇게 박 대통령을 제거하고 명실공히 586혁명정부가 들어서고 난 작년(2017년)부터는 이제 대한민국 자체에 대한 마녀사냥에 사람들이 광분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이며, 북한에 비하여 현저히 부정하고 부당한 나라이며, 실제로 정통성이 없는 나라 아닌 나라라는 것. 다시 말해, 한반도에는 두 개의 정부가 있는데, 그 중 대한민국은 정당성 없는 부정의한 정부이고 김일성의 북한이야말로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정당성이 있는 정부라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박 전 대통령을 비방하고 욕하고 능욕하는 데에서 만족과 쾌감을 느꼈던 것과 똑같이 이번에는 대한민국을 욕하고 비방하고 욕보이는 데에서 쾌감과 즐거움을 찾고 있다. 대한민국에 대한 이런 저주와 비방, 능욕에서 한국사회가 쾌감과 만족을 느끼고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이긴 하나, 사실이다.
그럼, 한국사회의 전 대통령에 대한 능욕과 대한민국 자체에 대한 비방과 저주 욕보이기는 대한민국을 감옥에 쳐놓고 역사적으로 매장시켜버리면 마지막 종착지에 가 닿게 되는 걸까.
대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번 봇물이 터지기 시작한 비방과 저주 능욕은 쉽사리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대상자를 바꿔가며 계속되어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 대상이 자기자신밖에 남지 않을 때까지….
종착지는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설계주의의 종착역은 ‘나’ 아닌 외부, ‘나’ 밖의 것들에 대한 비난과 저주 능욕으로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내’가 ‘나’를 비난하고 저주하며 욕보이고 능욕하는 그 지점, 흔히 말하는 ‘자아비판’의 지점에 도달해야 비로소 목적지에 도달됐음이 선언된다.
한국사회의 종착지는 2018년의 봄이 무르익고 있는 지금 어느 정도 그 윤곽선이 잡힌다. ‘내’가 ‘나’를 비난하고 저주하며 능욕하고, ‘내’가 ‘나’를 고발하며, ‘내’가 ‘나’를 교수형에 처하는 자아비판의 시대가 기다리고 있다는 예측이 강력하게 다가들어 온다. 살아있는 전 대통령 세 명 모두를 감옥에 쳐 넣거나 능욕하고 대한민국을 비방하고 저주하며 급기야 참수형에 처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 지금, 한국사회의 다른 미래를 기대하고 예측할 수 있는가.
설계주의의 미래는 명확하다. 자아비판사회의 도래이다. 그리고 자아비판사회는 우리들이 생각하고 그려보는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끔찍하고 참혹하리라는 것. 이 점을 의심 없이 믿어도 좋다고 본다.

--- 서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 책은 586세대라는 우리 사회의 특별한 세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일종의 세대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586세대를 알아보는 것은 단순한 세대론을 뛰어넘는다. 이들이 몹시 강력한 정치적 이념적 집단이며 현 정치권력을 장악한 세대이어서다. 다른 세대론을 다루는 자리와 다른 양상을 띠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다시 말해, 다른 세대보다도 특별히 문제적인 세대라는 것이다.
매우 민감한 정치적 물음들을 제시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하여 이렇게 정치적이고도 이념적인 집단체가 되었는가. 이들은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창출하고 장악했는가. 이들의 정치권력 장악과정은 정당했는가. 그리고 정치권력을 장악한 이후의 이들의 행태는 어떠한가. 정당한가. 건설적인가. 아니면, 파멸적인가......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586세대를 살피는 일은 우리 사회의 정보 필요성이라는 차원에서 매우 유의미한 일이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된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간되어 나오게 된 책이다.
그러나, 586세대를 탐색하기 위해 이 책은 정치적 접근보다는 문학담론과 영화 텍스트를 사례로 접근하는 문화적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586세대가 몹시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집단체여서 정치적 접근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바이지만, 의식적으로 그러한 접근방식은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정치적 접근은 아주 민감하고 독자를 쉽사리 식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보여져 이 책에서는 그러한 접근방식은 피했던 것이다. 어쩌면 문화적 접근방식이 오히려 이런 정치적 이념적 집단의 명확한 실체를 파악하는 데에 보다 효과적이고 나은 접근방식일지도 모른다는 고려도 작용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러한 점을 고려하고 독서에 임하게 되기를 바란다.

586세대의 시작은 286세대 때부터 시작된다. 286세대 때라면 이들 586세대가 대학을 다닐 때이다. 286세대에서 이들 586세대의 정체성이 형성된다. 그래서 286세대가 이들 586세대의 시작이다.
그러나 286세대라는 이들의 시작보다 더 앞선 시기도 있다. 시작의 시작 지점이라고도 할 만한 일일 텐데, 어쩌면 시작 지점인 286세대보다 더 중요한 지점이 될는지도 모른다. 186세대다.
286세대가 이들 586세대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지점이었다면 186세대는 신화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아주 무겁고 버거운 주제로 둘러싸인 신화가 이들의 가슴 속으로 머리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시기. 바야흐로 ‘5.18광주사태’다.
586세대는 186세대 때에 ‘5.18사태’라는 역사적 사건을 신화로 받아들이며 성장한 5.18 키즈이며, 286세대로 접어들어서는 이 신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정체성을 세상 밖으로 내어쏟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나아갔던 세대이다. 그리고 386세대 때에 정권 핵심부로 진출하여 권력의 맛을 충분히 보았고 ‘권불 10년’이라 하였던가 486세대로 접어들면서 권력의 핵심부에서 쫓겨나 위기의 10년을 보내고 다시 태어난, 그런 성장과정을 지닌 자들이다. 그리고 이제 중공의 홍위병들처럼 ‘돌아온 오빠’가 되어 자칭 ‘혁명’을 통하여 ‘전前 정권’을 무자비하게 몰아내고 영원한 권력을 세우려고 하는 아직 도정道程의 자들이기도 하다.
“586, 그들이 누구냐고?”
“586, 후 아 데이?(Who are they?)”
“586, 카레라와 다래까?(かれらは だれか)”
이 이야기가 바로 586, 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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