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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지구 생명과 어디서든 함께한다. 나무를 이해하는 건 생명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나무 수업』 페터 볼레벤과 프랑스 그래픽 아티스트 벤자민 플라오가 함께 나무에 관한 그래픽 노블을 만들었다. 매혹적인 그림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과학적인 설명이 어우러진 걸작 그래픽노블. - 손민규 자연과학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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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지구의 탄생 │ 나무 밑의 식물 │ 광합성과 파란 하늘 │ 나무, 살아 있는 건물 여름 건조 경보! │ 나무와 비 │ 산림욕 │ 번식 │ 도시와 나무들 가을 나뭇잎의 색 │ 나이와 질병 │ 나무의 성장 속도는 느림 │ 나무와 균류 겨울 나무와 탄소 │ 겨울 그리고 다양한 사건 │ 지능과 기억력 │ 상부상조와 의사소통 다시 봄 이동하는 나무 │ 원시림 지지하기 |
Peter Wohlle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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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흰 태양 빛을 모두 끌어당겼다면 우리 눈에는 나무가 검게 보였을 것이다. 광선의 97퍼센트가 나무의 상층부인 수관에 흡수되거나 차단되고, 3퍼센트 정도만 숲속 바닥에 도달한다. 그런 이유에서 숲속 키 작은 나무들은 초록 잎색이 어스름하다.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녹색은 결국 역설적으로 나무에는 쓸모없는 색이란 얘기다.
--- 「광합성과 파란 하늘」 중에서 어느 날 나는 책에서 아마두 말리의 작가이자 역사가이자 민족학자. 암파테 바가 “노인이 죽는 건 도서관이 불타오르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 걸 읽고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는 곧이어 생각했다. ‘나무가 죽는 건 건물이 거주자들과 함께 무너져내리는 것과 같다!’ --- 「나무, 살아 있는 건물」 중에서 산림관리인으로서 죽은 나무가 부패할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것의 효용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간이 잘 손질한 숲은 결국 반은 죽은 숲이다. 생물 다양성이 클수록 다른 생물에 피해를 주면서 성장하는 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번은 나무 전문 생물학자가 끔찍한 실험을 했는데 한편으론 많은 교훈을 남겼다. 몸체 지름 2미터, 높이 52미터에 무려 600살이나 된 나무에 살충제를 뿌린 것이다. 그 결과, 257종에 달하는 무려 2,041마리의 동물들이 자신들이 살던 이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내가 사는 동네 휨멜에는 이 동물 개체수의 5분의 1도 안 되는 인구가 살고 있다. --- 「나무, 살아 있는 건물」 중에서 모든 너도밤나무와 참나무가 매년 풍부한 열매와 도토리를 만들어낸다면, 배고픈 멧돼지들에게는 아주 좋은 먹이가 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새끼 멧돼지가 자라면 너무 많은 멧돼지가 소중한 씨앗을 모두 먹어치울 것이다. 그래서 너도밤나무와 참나무는 방법을 고안했다. 의도적으로 풍요와 빈곤을 교차시키는 것이다! 4, 5년간 연속해서 씨앗을 매우 조금만 생산한다. 몸에 충분한 지방층을 축적하지 못한 멧돼지들은 굶주림으로 겨울을 나지 못한다. (…) 멧돼지 수가 줄면 너도밤나무와 참나무는 이때다 하고 최대한 많은 열매를 맺어서 자신들의 씨앗이 땅에서 발아해 성장할 확률을 높인다. 아니면 무기도 방어도 없이 어떻게 자신의 포식자와 맞서 싸우겠는가. 정말 영리하지 않은가? --- 「번식」 중에서 나무 한 그루는 단 하나의 후계자만을 갖는다. 인구과잉 위험이 전혀 없다! 하지만 80살에서 150살 사이에 생식을 시작하는 너도밤나무는 5년에 한 번씩 오는 개화기마다 대략 3만 개의 열매를 만들어낸다. 400살까지 산다면 180만 개의 열매를 만드는 셈이다! 백양목은 더하다. 어미 나무는 매년 2,600만 개의 씨앗을 만들어내서 평생 10억 개의 씨앗을 만든다! 씨앗은 자신이 떨어질 장소를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디서 싹 틔울지 선택할 수도 없고. 그렇긴 해도 일단 새싹이 뿌리를 내리면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다. --- 「번식」 중에서 숲에서는 괜찮지만 도시에선 사정이 다르다. 사람들은 자각하지 못하겠지만, 도시 나무들은 자라는 게 아니라 생존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무는 도시에서 장식품으로 여겨졌다. ‘노상 시설’처럼 말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간의 안녕을 위해 훨씬 더 많은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나무들이 주방 환풍기처럼 오염 물질을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숲속의 나무만큼 아름다운 게 없다! 예술평론가처럼 나무 전문가도 결코 나무에 ‘웅장한’, ‘멋진’, ‘우아한’ 같은 형용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무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가장 사랑스럽고 놀라운 생물 중 하나다. --- 「도시의 나무들」 중에서 이웃 나무가 아프거나 곤란에 처하면 오직 같은 종의 나무들끼리만 양분과 물을 공급하며 서로 돕는다. 즉, 서로 어떤 종에 속하는지 정확히 안다는 뜻이다. 가장 밑에서 윗부분까지 나무들은 서로를 식별한다. 만일 서로 같은 종이라면 서로를 존중하고 이웃 나무가 빛을 받는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지 사이로 이렇게 아름다운 푸른 하늘이 보이는 공간이 생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종일 경우엔 가차 없다. 느리지만, 틀림없이 햇빛을 더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 「상부상조와 의사소통」 중에서 나무가 살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벽난로에서 타고 있는 참나무나 너도밤나무를 보고 우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이 책을 읽기 위해 희생된 나무들에게도 말이다. 내 말이 지나치다고 느껴지는가? 우리 모두의 안녕을 위해 이제 나무를 단순히 상품으로만 보지 말고 나무의 행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인류의 종말’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생명체와 함께하는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다. 큰 나무와 숲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식물을 더 알아가는 것은 언제나 큰 활력소가 될 것이다. (…) 우리 이후에 이곳에서 살아갈 우리의 손자, 그리고 그 후대의 삶을 생각할 때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한번 천천히 해나가보자. --- 「원시림 지지하기」 중에서 |
나무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과학적 통찰로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과학책 이 책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에게서 배움을 얻어온 주인공 페터가 산림감독원이 되고 동식물과 숲을 만나면서 품게 된 사색과 통찰을 내레이션 형식으로 전달하는 한 편의 그래픽 소설이자 그래픽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다채로운 일러스트들을 감상하며 페터의 내레이션을 따라가다 보면 페터가 숲 바닥에 앉아 한 줌의 흙을 쥐어 보며 지구에 사는 수많은 생명체들에 관해 사색하는 장면이나 숲길에서 마주친 식물과 나무를 세심히 관찰하는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장면들은 지하에 사는 생명체들과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나무의 내부 구조나 역할, 특성에 관한 풍부한 과학적 지식을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나무는 인간과 닮은 면모가 많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나무의 뿌리는 동물이나 사람의 머리라고 말한 것처럼 나무의 지적 구조는 뿌리에 있다. 아카시아와 같은 나무는 대형 초식동물의 공격을 받으면 자신들의 뿌리 시스템을 통해 먼 거리에 있는 이웃에게 미립자로 구성된 화학적 메시지를 보내 위험을 알린다, 뿐만 아니다. 미모사와 같은 나무는 놀라운 기억력을 지니고 있고, 너도밤나무는 자신의 자식들을 알아보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면모를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생태학적 숲은 인간이 고안해낸 도시적 삶 속에서 황폐화되어버린다. 도시에 살고 있는 나무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자.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도심에서 나무는 크게 자라지 못한다. 도시의 사람들이 땅을 밟으며 다니면 나무의 뿌리는 숨 쉬지 못하고 마비된다. 콘크리트 아스팔트에 서 자라난 거리의 나무들은 낮에 열기를 저장한 도로 포장재를 견뎌야만 한다. 도시의 매연과 오염 물질, 나무껍질을 부식시켜 뿌리를 죽게 하는 도시 반려견들의 소변은 말할 것도 없다. “도시 나무들은 자라는 게 아니라 생존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무는 도시에서 장식품으로 여겨졌다. ‘노상 시설’처럼 말이다.” 이 책은 지구의 탄생부터 나무가 탄생하고 인간이 숲을 이용해 오기까지 기나긴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이러한 나무들의 역사는 특히 ‘기계 동물은 고통도 슬픔도 느끼지 못한다’는 데카르트(1596-1650) 이후 받아들여진 사유 논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나무를 대변해 데카르트의 말과 달리 나무껍질에도 느린 속도로 고통에 대한 반응이 나타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이 나무들의 인지 능력과 학습 능력, 그리고 의사소통 방식과 생존 전략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이유는 분명하다. 나무와 숲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들의 인지 능력과 감각 능력을 제대로 알면 이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무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바이블 “페터 볼레벤은 나무의 말을 듣고 그들의 언어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나무를 대신하여 우리에게 전합니다.” 한 나무 전문 생물학자가 실험을 위해 몸체 지름 2미터, 높이 52미터에 무려 600살이나 된 나무에 살충제를 뿌렸다. 그 결과, 257종에 달하는 무려 2,041마리의 동물들이 자신들이 살던 이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저자가 사는 동네 휨멜에는 이 동물 개체수의 5분의 1도 안 되는 인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나무는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 “살아 있는 건물”이다. 이 책은 나무가 무너지면 거주자들도 함께 무너진다고 말한다. 페터는 산림감독원으로 일하면서 나무숲을 베어내고 살충제를 뿌리는 행위로 죽어가는 숲을 보며 “인간이 잘 손질한 숲은 결국 반은 죽은 숲”임을 깨닫고, 농약을 쓰지 않고 기계 대신 말이나 사람의 손을 이용한 친환경적 산림 경영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저자의 이 자전적 이야기는 앞으로 인간이 나무와 숲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관해 해야 할 진중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 “나무가 살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벽난로에서 타고 있는 참나무나 너도밤나무를 보고 우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이 책을 읽기 위해 희생된 나무들에게도 말이다. 내 말이 지나치다고 느껴지는가? 우리 모두의 안녕을 위해 이제 나무를 단순히 상품으로만 보지 말고 나무의 행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재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 수준은 예전보다 높아졌다. 그런데 나무를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는 여전히 미비하다. 소비자들이 육류 섭취를 점점 줄이고 있으며, 동물을 존중하는 동물 친화적 사육 환경을 중요시하듯이, 동물과 마찬가지로 나무도 불필요한 고통을 받지 않도록 대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가능한가? 저자는 개인의 의지와 정치에 따라 가능하다고 말한다. 현재 삼림보호 단체와 벌목 단체 사이의 교류가 늘 성공적이진 않아도 20년 전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향상됐다. 스위스 연방헌법만 봐도 동물, 식물,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유기체를 ‘생명체의 존엄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대하도록 규정해 길가의 꽃을 꺾거나 잔디를 베는 행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식물에 대한 ‘복지와 존중’은 ‘인간의 존엄, 더 나아가 인간의 행복’을 가져오는 문제다. 이 책은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남녀노소 누구든 나무의 세계에 대한 폭넓은 통찰력으로 나무의 숨겨진 삶을 생생하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