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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뉴욕에서 길 잃기 미래완료형 시제 이삿짐의 고고학 뉴욕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오래된 뉴욕, 진짜 뉴욕 팬데믹의 기억 한아름마트에서 울다 가난한 외국어 슬픈 한식 기억이 담기는 장소 세계의 끝, 코니아일랜드 2부 뉴욕에서 길 찾기 뉴요커가 되기 위한 체크리스트 타임스스퀘어를 좋아하는 법 가면 증후군의 반대말 뉴욕의 맛 여름 김장 근본주의자의 햄버거 사치스러운 피크닉 직장인의 갤러리 산책 재즈 클럽 크리스마스의 차이나타운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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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서울은 나에게 명백한 오답이었다. 하지만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서울을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게 되었고 그곳에도 다른 버전의 정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먼 미래에 뉴욕을 떠날 때 똑같은 방식으로 이곳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 p.8 공항에는 떠남과 돌아옴이 있고 만남과 헤어짐이 있고 기다림과 허전함이 있다. 물론 이 같은 감정들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모든 곳에 균질하게 분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감정들은 특정 장소에서 더 밀도가 높다. 공항은 사랑과 그리움, 설렘, 그리고 내가 속한 도시로 돌아왔을 때의 안도감, 보고 싶었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기쁨의 밀도가 높아지는 곳이다. --- p.24 내가 만났던 많은 뉴욕 사람들이 말버릇처럼 행운을 이야기했다. 행운이라는 단어는 개인적이고 특수한 상황을 보편적으로 만들어준다. 마치 여기에 도착한 것이 우주적 섭리의 일부이며 정해진 운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리고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생존은 중요한 문제이다. 거대하고 불안정한, 예민하고 냉정한 뉴욕에서 살아남는 데는 정말 운이 필요하다. 뉴욕은 그 운이 자기 것이라고 믿는 운명론자들을 위한 도시일지도 모른다. --- p.36 처음 뉴욕에 왔을 때 H마트는 ‘한아름마트’라는 조금 더 정겨운 이름이었고 규모도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미국의 그로서리에서 살 수 없는 삼겹살이라든가 무말랭이나 오징어채 같은 밑반찬, 포장 김치 같은 것들이 시야에 있는 것만으로도 타지 생활이 훨씬 더 견딜 만해졌다. 이제 와서는 H마트가 없는 이민 생활은 상상하기 힘들다. 누가 미국 어떤 도시로 이사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큰 걱정은 아마도 ‘거기는 H마트도 없는데?’일 것이다. --- p.65 종종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 전지적 시점이 되어 남들이 치열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회의 속에서 혼자 초등학생 같은 문장으로 말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고는 한다. 모국어가 유려하면 유려할수록 내 영어 문장은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이런 바보 같은 모습을 외면해야 외국 생활을 견딜 수 있다. 새로운 언어에 충분히 익숙해질 때까지 대략 몇 년, 길게는 몇십 년 동안 어눌한 상태, 좋게 말하면 어린아이 같은 상태를 버티고 있어야 한다. 어지간히 낙천적이거나 둔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 p.75 “뉴욕 사람들이 지겨워지면 언제든 타임스스퀘어에 가면 돼. 거긴 뉴요커들이 없거든.” 타임스스퀘어의 초입에서 친구가 시니컬한 농담을 던졌다. 우리는 미드타운을 가로지르는 42번가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영국 사람들이 끊임없이 영국 음식으로 농담하는 것처럼 뉴욕 사람들은 타임스스퀘어로 농담을 한다(어느 도시나 이런 농담거리가 하나 정도는 필요하다). --- p.117 여행자와 이민자와 뉴욕 토박이 들이 길바닥에 뒤섞여 8달러짜리 무슬림의 음식을 먹고 있다. 이 풍경 속에서는 누구나 뉴욕이라는 거대한 모자이크의 한 조각이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이 장면보다 더 뉴욕이라는 도시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 p.149 재즈는 무규칙적이고 즉흥적이면서 지적이다. 화음과 코드 진행은 늘 우리의 예측을 벗어난다. 자유롭고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무한히 확장한다. 이 음악은 뉴욕이라는 도시를 닮아 있다. 뉴욕에서 재즈가 발전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당연한 인과관계처럼 느껴진다. 지난 세기 내내 7번 애비뉴 한구석 피자집과 세탁소 사이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오래된 재즈 클럽의 문을 열고 열다섯 개의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생각한다. 현재의 뉴욕에 사는 나도 지금 재즈 역사의 한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증인일지도 모른다고. --- pp.186-187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내가 느끼는 편안함도 사실 비슷하다. 미국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뉴욕 주류에 영원히 편입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있지만, 한편 변두리에 있어서 안심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적당한 무관심이 만들어내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기. 나의 크리스마스는 영원히 이들의 크리스마스와 같아질 수 없겠지만 뉴욕이란 도시는 너무나 다양해서 어딘가에는 나 같은 사람이 반드시 존재할 거라는 안도감.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언제든 마주칠 수 있는 장소들. --- p.1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