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Jean-Louis Fournier
장 루이 푸르니에의 다른 상품
최내경의 다른 상품
|
졸부를 꿈꾸는 우리들의 숨기고 싶은 초상
이 책은 부자와 가난뱅이의 인생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59가지의 장면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삶의 형태와 방식에 대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얼핏 하나로 보이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저자는 유럽식 위트의 정수를 보여주는 웃음의 밑바닥에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과 사회학적 통찰력을 이중으로 배치해두었기 때문이다. 만일 독자가 자신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단순하게 대입시키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그는 푸르니에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꼭 그런 의미는 아니라하더라도 단순대입은 금물이다. 개콘이나 웃찾사를 관람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편하게 3인 3색의 삶을 구경하다보면 막이 내릴 때쯤 우리는 가슴 한 구석에서 어떤 느낌이나 감성을 하나 새로 만나게 된다. 굳이 그것을 억지로 정리해서 말이나 글로 표현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이미 그 순간 우리는 삶에 대한 깨달음을 하나 추가한 상태이므로.
부자이야기 날 때부터 부자였다. 젊었을 때는 별로였지만 부자아빠와 결혼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예뻐진 엄마의 훌륭한 교육과 가정환경 탓에 부자, 어쩌면 귀족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훌륭히 익혀낸다. 부자마나님 역시 여기저기서 들어 온 쓸데없는 물건들을 파출부 여편네에게 선물할 정도의 배려심을 발휘하며 살아간다. 이들 부부는 가난뱅이 처녀나 미남을 만나면 왜 사회가 불공평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으며 그 불평등을 해소하기위해 그 처녀나 미남과 정신적 육체적으로 교류할 만큼 사회의식도 강하다. 그들은 가난뱅이에게는 두뇌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휴가 때 파출부 집에 맡겨놓은 샴고양이가 왜 갑자기 싸구려 고양이처럼 행동하는지 궁금해 하면서도 정작 그 도도한 샴고양이가 가난뱅이네 집 늙은 숫고양이의 새끼를 밴 사실은 모르고 살아간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이 멍청하다는 것을 모른다. 감히 누구도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으니까. 졸부스토리 날 때에는 가난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돈을 잘 벌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때부터 정신을 못 차린다. 도대체 뭘 어떻게 살아야하나. 그래서 갑자기 예술을 사랑한다. 그것도 아주 비싼……비싼 것은 아름다우니까. 화랑의 담당자는 졸부가 올 때마다 흠모와 존경의 표시로 그림은 보여주지 않고 액자 뒤에 붙은 가격표만 보여준다. 베르사이유 궁전보다 더 화려한 별장에 금으로 도배를 해놓고 손님을 청하지만 그들은 위화감 때문에 두 번 다시 놀러 오지 않는다. 오랜만의 독일여행. 품격을 찾느라 아내가 선택한 코스에서 바그너 음악이 얼마나 잔인한 고통인지를 깨달으며 싱거운 맥주만 마시고 돌아 온 졸부는 화가 머 리 끝까지 치밀어 가난한 백설공주를 찾아 떠나버리지만 마나님은 혼자서도 여전히 예술활동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들의 거실에는 아무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도 그랜드 피아노가 당당하게 서있다. 물론 글라디올러스 화분 받침대로는 약간 크기는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멍청한지 그렇지 않은지조차 잘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눈빛으로만 말하니까. 그리고 가난뱅이 날 때부터 가난했다. 물론 죽을 때까지 가난하다. 젊었을 때 마누라는 썩 괜찮았는데 뭘 먹어대는지 걷지는 않고 굴러만 다닌다. 그래도 가난뱅이는 바람을 피우지 않는다. 뭐 여자를 꼬실 돈이라도 있어야지... 어쩌다 간 싸구려 단체 패키지여행에서 ‘여왕의 집’을 본 마누라 는 넓은 ‘거실’을 청소하고 싶은 욕망을 애써 억누른다. 파출부로 일하는 부자집 마나님이 선심쓰듯 초대한 리셉션에서도 이 넓은 방을 청소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끝없이 계산해대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텔레비전의 말을 가난뱅이 부부는 순진하게도 그대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침마다 우체통이나 신문에 끼어있는 광고전단의 경품응모권 혹은 할인권을 열심히 모으지만, 그들이 받는 것은 경품당첨 초대장이 아니라 사고뭉치 아들을 데리고 오라는 경찰서의 소환장이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이 멍청하다는 것을 잘 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인간이 가지는 특징 중 하나는 심리적 자위능력이 아닐까. 잘 찾아보면 가난뱅이를 위한 그 자위성 잠언 비슷한 말들도 많다. 뭐 뻔한 얘기겠지만 “마음이 부자라야 부자”라거나 “인생에서는 돈 말고도 중요한 요소가 많다”, 혹은 “사람나고 돈났지 돈나고 사람났나”라는 따위. 그런데 지금은 그런 말의 정신적 위안능력은 갈수록 퇴화되어 별다른 약효를 발휘하지 못한지 이미 오래다. 적어도 돈이 있어야 마음도 부자가 될 수 있으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돈이고, 분명 이 세상에서는 돈나고 사람난다. 초월인지 포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스스로를 돈에서 분리시킨 소수의 사람을 제외한다면 인간을 분류하는 가장 막강한 일반적 기준은 돈이다. 그런데……그런 자위성 말들은 혹시 부자들이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왜 드는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