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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 주요 구절 해석 카발라와 성경해석
김태항
하모니 202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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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1장 신약 성경 해석

태초에 이성이 있었다. 19
예수 탄생과 성령의 숨겨진 의미 21
예수의 소년 시절 27
선지자 세례요한과 예수가 이 세상에 온 이유 30
물의 세례와 성령의 세례, 그 숨겨진 의미 34
첫 번째 기적 38
인자(사람의 아들)의 참 의미 40
새로 태어남의 의미 45
하느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 46
예수의 권위와 우주법칙 48
금식의 참 의미,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50
안식일의 참 의미 53
12 제자 선정 60
마음이 가난한 자는 왜 복이 있는가? 61
율법의 완성인가 법칙의 완성인가! 63
악에 저항하지 말라. 64
원수를 사랑하라! 67
너희도 하느님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68
신방과 지성소 69
참된 기도의 비밀 74
제3의 눈 82
먼저 하느님 나라를 구하라! 83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려라! 85
황금률 정신 88
좁은 문, 중도의 길 88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 카르마 법칙 90
구원은 믿음이 아니라 영지, 대속론 비판 92
말씀을 듣고 실행하라! 96
세례요한에 대한 예수의 증언. 윤회와 전생 97
십자가의 비밀 102
인자보다 위대한 성령의 힘, 삼위일체 105
어리석고 허무한 삶이여! 108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114
회개의 참 의미, 신에게 복귀 116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이냐? 119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121
보물과 진주와 그물의 비유 123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 위약효과 125
열두 제자의 전도 여행과 예수의 당부 128
예수가 전하는 진리인 생명의 떡 131
강요가 아닌 선택, 자유의지 133
율법 준수와 개념 넘어서기 134
기적을 요구하는 유대인들, 바르도 137
교황수위권의 오해와 예수의 배려심 139
악령에게 사로잡힌 아이, 믿음과 앎 144
하늘나라와 이원성 넘어가기 146
죽은 사람이 죽은 자를 묻게 하라. 150
진리가 그대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152
눈멀게 태어난 죄, 영혼과 윤회 154
죽은 나사로를 살리다. 157
죽음은 없다 160
신약의 명상법 163
예수 제자의 자격 요건 164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소중함 166
하느님 나라는 외부가 아니라 그대 마음 안에 있다. 168
육체 결혼과 영적 결혼, 아담과 이브의 비밀 170
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와 제자들의 무지 173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운가? 175
부활의 참 의미, 누구나 생전에 부활해야 한다. 178
기독교 사후관, 지옥과 천국 그리고 부활 182
빛이 사라진 바깥 어둠 189
최후의 만찬, 천주교 미사 191
하느님은 너희를 신이라 불렀다. 193
내 안에 거주하는 하나님 198
하느님은 염색공 199
예수의 기도와 사명, 하느님 이름의 비밀 201
유다의 죽음과 진실 203
예수 부활과 그 신비적 의미 208
예수의 승천 215

2장 카발라 기본 개념

1 구약과 카발라 221
2 카발라의 기본 개념 이해하기 227

3장 구약 성경 해석

창세기의 하늘들과 창조 목적 247
창세기의 공간과 원초 질료 250
신의 형상으로 태어난 인간 253
하나님의 이름 엘로힘 256
두 가지 인간 창조와 동성애 260
인간 창조: 생명의 숨과 생명의 혼 264
인간 창조, 음양의 법칙 267
아담의 추락과 자유의지 269
아담의 원죄 272
노아의 방주 276
할례의 영적 의미 278
스스로 있는 자, 신의 이름 280
성막과 지성소 그리고 송과선, 하느님과 모세의 대화 285
십계명 “나 이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288
신과 인간의 속성 289
야훼는 나의 목자 291
성경 속의 명상 실제 293
모든 것은 신의 숨일 뿐이다. 299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 303
신을 항상 내 앞에 모시니. 306
에스겔의 비전과 카발라 307
모음 없는 히브리어가 낳은 오해 309

후기 311
부록: 도마복음 315
참고 문헌 339

저자 소개 1

동국대학교에서 법학을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하였다. 기업체 연수원에서 사원교육을 담당하였고 대학에서 영어강사를 역임하였다. 오랫동안 동서양 가르침 특히 유대신비 가르침인 카발라와 고대 신비 가르침을 공부하여왔으며 현재 출판과 번역 및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유대신비 가르침인 카발라를 심층 연구한 『카발라의 신비열쇠』와 영지주의 복음서인 도마복음을 카발라로 해석한 『도마복음과 카발라』, 그 외에 『슬픈 예수』, 『완성의 길』, 『구도여행과 소리 없는 소리』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모던 매직』, 『유대명상』, 『성경과 명상』, 『인권 운동 이야기
동국대학교에서 법학을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하였다. 기업체 연수원에서 사원교육을 담당하였고 대학에서 영어강사를 역임하였다. 오랫동안 동서양 가르침 특히 유대신비 가르침인 카발라와 고대 신비 가르침을 공부하여왔으며 현재 출판과 번역 및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유대신비 가르침인 카발라를 심층 연구한 『카발라의 신비열쇠』와 영지주의 복음서인 도마복음을 카발라로 해석한 『도마복음과 카발라』, 그 외에 『슬픈 예수』, 『완성의 길』, 『구도여행과 소리 없는 소리』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모던 매직』, 『유대명상』, 『성경과 명상』, 『인권 운동 이야기』, 『진화의 비밀』『너와 나의 우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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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6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153*225*30mm
ISBN13
9791185010151

책 속으로

호구 조사 때문에 요셉이 1천 년 전에 살았던 조상인 다윗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헤롯왕의 시대에 예수가 탄생했다는 마태의 주장과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일 때 예수가 태어났다는 누가의 주장은 서로 다르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자료를 비롯한 많은 역사적 자료에 따르면 구레뇨는 서기 6년경에 총독이 되었고 이 시기는 헤롯이 죽은 지 10년이 지난 때였다.
--- p.23

예수의 동정녀 출생은 예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복음서 저자들의 장치였지만 동시에 그것에는 깊은 상징이 숨겨져 있다.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하였다고 하는데 이 성령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 p.25

성령의 세례는 마음과 의식으로부터 기존의 모든 교리나 신념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왜곡이나 방해 없이 진리에 다가갈 수 있고 진리를 받을 수 있다. 성령으로 세례받을 때 그릇된 오랜 개념이나 생각은 깨끗해지고 과거의 개념에 방해받음이 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 p.35

인자(사람의 아들)는 예수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의 신성한 영혼을 상징하기도 한다.
--- p.43

유대인들은 물질에 불과한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집착이 무척 강하였고 신을 즐겁게 하려고 성전에서 양을 잡아 신에게 공물로 바치는 것을 즐겼다. 예수는 이런 외부 의식을 거부하고 각자의 내면으로 들어가 신에게 예배드릴 것을 전파하였다.
--- p.47

예수가 한 말은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 안의 내부 성소에 들어가서 기도하라는 말이었다. 오컬트 가르침에 따르면 머릿속의 공동(空洞)인 제3뇌실(腦室)이 내부 성소이다. 예로부터 신비 단체에서는 이 내부 성소에 있는 송과선을 혼이 거주하는 장소로 보았다.
--- p.70

영지가르침에서 이 골방(송과선)은 신방 혹은 지성소로 상징되는데 이는 마치 남녀가 신방에서 합방하듯 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우리 영혼이 다시 신과 합일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상징적으로 육체는 신의 사원, 머리의 3뇌실은 사원의 성소, 송과선은 신의 제단이 놓인 지성소이다. 영지 복음서에는 신부의 방에 대한 언급이 많다.
--- p.71

성경의 좁은 문과 불교의 중도(Narrow Gate and Middle Path)는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 p.89

여기서 예수는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라고 하고 각자가 자신을 충만하게 하여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는 자신이 명령한다 해도 제자들 스스로가 충만하게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 즉 구원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우리가 내적으로 지혜롭게 되어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정통 기독교와 영지주의 가르침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여기서 충만하게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예수가 전하는 비밀 지식 혹은 영지(그노시스)이다.
--- p.95

사실 4세기까지만 하여도 기독교 사회에서 윤회가 큰 거부감 없이 논의되었고 특히 기독교 영지주의 학파에서는 윤회가 교리의 중심에 있었다. 정통교회가 여러 학파와의 다툼에서 승리하고 로마 황제가 정통교회를 인정한 후에 영지주의 가르침은 탄압을 당하여 사라지고 윤회사상도 같은 운명에 처하였다.
--- p.98

진정한 회개와 구원은 무엇일까? 구약을 신비적으로 해석하는 카발라 사상에 보면 인간의 회개는 우주적 차원의 복귀 과정이고 구원은 신에게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신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신의 피조물로서 천국에 거주하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신과 하나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 p.117

신은 모든 한계를 초월한 존재이므로 이원성 너머에 있다. 천국은 이원성을 극복한 자가 가는 곳이다. 물질계에만 선과 악,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이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다만 자신의 한정된 생각이나 개념을 가지고 보니 구분되어 보일 뿐이다. 우리에게 어떤 대상이나 사물은 원래 그대로의 대상이나 사물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 개입되어 반영된 대상이나 사물일 뿐이다.
--- p.149

카발라 가르침에 따르면 남녀의 창조 전에는 남녀는 하나로 존재하는 영혼이었다. 하나 속에 둘이 존재하는 상태였다. 그때는 그 자체로 완전한 상태여서 지금처럼 자신의 짝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하나는 둘로 나뉘어 인간의 육체로 들어왔다. 이것은 음양의 분리였고 비정상적인 상태였다. 남녀가 하나가 되는 것이 원래의 모습이고 정상이다.
--- p.172

부활의 참 의미는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생전에 육체 속에 갇힌 신성한 우리 영혼의 부활 즉 신성 회복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 재림을 우리 영혼이 신성을 회복하여 부활하는 개별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 해석이다.
--- p.179

종교마다 사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다르다. 고대 그리스도교와 그것의 기반이 된 유대교에도 단일한 사후관이 없었다. 성경에는 사후 인간이 가는 세계에 대한 언급이 모호한데 그러다 보니 천주교에서는 천국과 지옥 중간의 세계인 연옥이 생겨났고, 개신교에서는 편하게 불신지옥 예수천국을 외친다.
--- p.185

그런데 이런 부활을 믿는 것과 이 사건에 대한 의미 부여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의 종교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211

카발라의 신비를 담고 있는 고대 지혜 가르침에 따르면 모세오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가 우화나 비유라고 한다. 구약의 역사적 내용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신성한 우주 법칙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 p.221

기독교인의 사유 체계에 절대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신과 인간의 분리 의식이다. 즉 절대적 존재인 창조자와 미천한 피조물인 인간을 확실히 구분 짓는 의식구조. 이런 생각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는 구약의 창세기와 예수 사후에 교부들이 만든 원죄론을 들 수 있다.
--- p.253

유대 신비 가르침인 카발라에서는 구약에 나오는 신의 이미지를 신의 속성으로 이해한다. 신의 신성한 속성으로 창조된(카발라에서는 창조란 말보다는 발출이라는 말을 쓴다) 인간이므로, 인간은 신이 지닌 모든 속성을 지니고 있는 신성한 존재이다. 인간은 신에서 나온 신성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 p.254

성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신의 이름으로 엘로힘과 야훼가 있다, 전자는 신을 이르는 보통 명사이고 후자는 신에게만 있는 이름 즉 고유명사인 것이 다르다. 카발라 명상에서는 후자의 이름(YHVH)이 상당히 중요시된다. 신에게 돌아가는 비밀을 담고 있는 열쇠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 p.256

원죄를 굳이 인정한다면 그것은 개인이 해결해야 할 업의 다른 이름이다. 신성한 영혼이 부정/어둠에 둘러싸여 자신의 신성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 원죄이며 카르마이다. 이런 업을 극복하라고 성인들이 가르침을 주었고 그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하늘나라를 발견하였다.
--- p.274

고대 지혜의 가르침에 보면 진리를 얻는데 가장 큰 장애물로 그릇된 개념이나 신조를 든다. 이것은 잘못된 개념이나 믿음이 우주 법칙에 맞는지 아닌지를 조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냥 받아들여서 생겨난다.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너무 게을러서 교리를 이성적으로 연구하고 비교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물질적으로는 부지런해도 정신적으로는 무척 게으른 것이 인간이다. 머리로 깊게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결국 그릇된 개념이나 신조는 진리의 가장 커다란 장애물로 자리 잡게 된다. 자신의 믿음에 근거하여 즉 톨 속에 갇혀 모든 것을 판단하니 진리가 받아들여질 수 없게 된다.
--- p.277

상징적으로 영의 할례는 영의 세례와 같은 것이다. 영의 세례는 진리의 세례로 우리의 그릇된 개념을 정화하여 우리가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영의 세례처럼 영의 할례도 영혼을 가리는 어둠을 제거하여 우리가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 p.279

기독교인들은 구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러나 카발라에서는 구약을 비의 지식을 담고 있는 상징으로 보고 있다. 구약에는 우리의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터무니 없는 내용이 얼마나 많은가? 글에 담긴 상징을 모르면 참 의미를 알 수 없어서 거짓을 진실로 믿게 된다. 지금의 교회가 그렇다. 구약의 내용에 어떤 상징이 숨어있는지 출애굽기 33장에서 살펴보자.
--- p.286

이처럼 하느님은 우리의 강력한 보호자이시고 목자이시다. 우리가 맹목적 믿음이 아니라 지혜와 우주 법칙에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는 늘 하느님으로부터 보호되고 사랑받는다.
--- p.293

지금은 누구나 성경을 볼 수 있지만 종교개혁 전까지는 성직자가 아닌 일반인들은 성경을 볼 수가 없었다. 당시 로마교황청은 라틴어 성경만을 사용해서 무식한 일반인은 성경이 주어져도 읽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인쇄술이 발달 되지 않아서 필사본에 의존하던 시기였고 필사본은 교회의 귀중한 보물로 여겨지던 시기였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성직자가 말하는 내용에 대하여 검증할 자료도 없어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15세기에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1445년) 후에 비로소 성서는 교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게 된다.

--- p.311

출판사 리뷰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상(가정, 학교, 사회, 국가, 지구촌 등)이 전하는 가치에 세뇌되어 살아간다. 그중에 종교 가르침도 있다. 종교 가르침이 사회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는 이슬람 사회나 힌두교 사회에서 엿볼 수 있다. 이것은 가장 많은 신도를 보유하고 있고 인류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기독교도 예외가 아니다. 종교는 개인의 사고 틀을 만들고 개인은 그 틀 속에 구속되어 사유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인생의 행로가 결정된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에는 원죄설과 구원론 그리고 부활이 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부활하였다고 주장한다. 예수의 부활은 기독교의 생명이다. 부활 없는 기독교는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그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부활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영생을 얻으려면 죄로부터 구원받아야 하는데 오직 예수에게 의존해야 한다고 한다. 당연히 기독인들은 이런 교리에 따라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런데 만약 이런 교리가 예수의 생각이 아니라 로마 교부나 바울의 생각이었다면 어떻게 되는가? 원래의 가르침과 너무도 달라진 예수의 가르침이 진리로 받아들여져서 많은 사람의 삶과 의식을 지배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무섭지 않은가? 왜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걸까? 기독교 교리처럼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일까? 고통스러운 세상이지만 인구는 계속 늘고 있고,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신은 인간이 태어날 때마다 매번 영혼을 창조하여 육체에 배분한다. 어떤 혼은 부자나 선진국에, 어떤 인간은 빈곤하게 혹은 가난한 나라에 태어난다. 여기서부터 신의 정의가 의심된다. 무엇보다 아담의 죄를 새로 만들어진 영혼이 이어받게 된다는 주장은 신의 능력이나 의도를 의심하게 한다. 신의 능력으로 원죄(?) 없이 깨끗하게 혼을 창조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도대체 고통스럽고 혼란한 세상에 불완전한 영혼을 계속 만들어 배치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신은 컴퓨터 게임처럼 세상과 인간을 만들어 게임을 즐기는 건가? 이처럼 예수가 아닌 교부들이 만들어낸 기독교 교리의 문제점은 한두 개가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하느님 아들이란 이유로 그분이 남긴 어록만이 아니라 제자들이 남긴 신앙고백 문서를 문자 그대로 믿는다. 생전에 예수를 만난 적이 없었던 바울이라는 사람의 편지글이 정경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런 현실을 우리는 냉철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바울이 편지글에서 주장한 이신칭의(오직 믿음으로 신이 의롭다함을 우리가 얻음, 즉 믿음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 논리가 기독교의 기본교리(원죄론, 구속론, 예수 신성론)를 형성하고 이 교리가 기독교인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이런 교리가 예수의 어록이 담겨있는 4복음서에 나오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물론 성경이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경전인가 하는 것도 확인이 필요하다.

성경의 진위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어 왔고, 성서학자들은 성경 왜곡(내용 변경, 첨부, 삭제 등)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수는 성경에서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예수는 4복음서에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교회 교리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예수는 직접적으로 원죄론도, 동정녀 성모 마리아론도, 보혈을 통한 구원론도, 연옥도, 삼위일체도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후대에 교부들이 주장한 내용이고 이런 내용의 상당 부분은 바울의 사상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예수의 종교가 아니라 바울의 종교란 말을 하는 학자도 상당이 있다.

4복음서 저자들은 전승 자료를 가지고 자신의 시각으로 새로운 예수를 만들어냈다. 더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끌어들이려는 저자들의 시도였다. 그들은 극의 시작인 초반부에 예수 가계도를 화려하게 꾸미고 세례요한을 통하여 예수가 예정된 메시아임을 밝히려고 하였다. 예수의 구체적 행적이 나타나는 시기부터 공관 복음서는 공동 전승 자료를 각자의 취향에 따라 순서를 배정하고 내용이나 단어에 변화를 주었으며 그 결과 각자의 독특한 복음서가 나왔다. 구약의 예언 성취를 바란 마태복음서는 좋은 예이다. 예수 행적과 언행이 담긴 자료는 단편적이고 지금 복음서에 전해지는 예수 자료에 얼마만큼의 진실이 담겨있는지 알 수가 없다.

실제로 4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어록은 극히 적은 분량이고 그것도 일반 대중을 위한 수준 낮은 비유적 설명이 대부분이다. 이런 한계를 지닌 복음서지만 그래도 정경 중에서는 4복음서가 예수의 진짜 말씀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실 지금 정경으로 인정받고 있는 신약은 여러 종파 간의 싸움에서 승리한 로마 가톨릭의 주장만 담고 있을 뿐이다. 그 결과로 예수의 비밀 가르침으로 알려진 영지주의 가르침은 철저하게 파괴되어 사라졌다. 이 책 본문에서 성경해석을 하면서 영지주의 복음서 구절을 많이 인용하는데, 이는 영지주의 복음서에 예수의 가르침이 많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예수 사후에 존재했던 많은 종파의 가르침은 로마 황제의 기독교 공인과 지금의 기독교 교리를 만든 교부들에 의하여 제거되어 사라졌고 영지주의 가르침이 그러했다.

그러면 영지 가르침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것이다. 주요 종교는 어김없이 수준 낮은 일반 대중을 위한 현교와 수준 높은 소수의 사람을 위한 비밀가르침(밀교)으로 나뉘어 존재해 왔다. 불교의 밀교는 티베트 밀교이고, 유대교의 밀교는 카발라이고, 이슬람의 밀교는 수피즘이고, 기독교의 밀교는 영지주의이다. 그리고 이 영지주의가 바로 예수가 소수의 제자에게 전한 비밀 가르침이다. 예수 비밀 가르침인 영지주의에서는 구원은 율법 엄수나 믿음이 아니라 영지(앎)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영지주의가 기독교의 주류가 되었다면 지금 우리가 만나는 대속론이나 원죄론, 천국론 등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4복음서에는 영지주의 내용이 비유와 상징으로 어느 정도 남아있다.

이 책은 영지주의적 성경해석을 통하여 초대교회나 신학자에 의하여 왜곡되지 않은 예수의 원래 모습과 가르침을 알리려는 것이며, 또한 오랜 세월 인류 의식을 옥죄어 온 교회 교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이 책은 또한 구약의 주요 구절을 카발라 시각으로 해석한다. 구약에는 역사적인 사실도 담겨있지만, 구약의 많은 부분이 신화이고 상징임이 연구를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 구약을 신의 말씀으로 생각하여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너무도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카발라는 영지주의 가르침의 근원이며 모든 종교철학의 모태로 알려진 철학이다.

예수가 그랬듯이 진리는 시공간에 따라 그리고 사람들의 의식 수준에 따라 다르게 설해졌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사실도 무시하고 의식 수준이 낮았던 시대에 방편으로 설해진 가르침을 아직도 금과옥조처럼 따르는 종교단체도 있고, 심지어 지금과는 너무도 달랐던 시절에 설해진 도덕규범이나 지침을 신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따르는 종교단체도 있다. 이들 종교단체는 시공간에 따라 변하는 지침과 영원불변하는 진리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유대 성자 힐렐(BC 1세기)은 “네가 싫은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라는 황금률이 토라의 기본 정신이라고 말하였고 유대 성자 아키바(AD 2세기)는 율법을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라는 말로 요약하였다. 이런 기본 정신만 지켜진다면 세상은 참으로 평화로울 것이다. 간디는 이런 말씀을 하였다. “나는 예수를 사랑하나 크리스천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시각으로 성경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온다. 기존 정통 교리를 배재하고 선입견 없이 성경을 바라보면 전혀 다른 모습의 가르침이 나타난다. 영지주의에 따르면 예수는 붓다처럼 무지와 고통 속에 헤매는 인류에게 영지 지혜를 전하여 인류가 원래의 잃어버린 자리를 다시 찾도록 이 세상에 오셨다. 그것은 누구를 믿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통하여 각자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목마른 사람을 물가로 인도는 하지만 물은 목마른 사람이 마셔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책은 우주의 진리를 담고 있는 카발라와 영지주의 사상에 근거한 성경해석이며, 수천 년간 인간의 의식을 구속하여 온 기독교 교리에 대한 이성적 비판이다.

달라이 라마의 저서 "관용(2010년, Transforming the Mind, p70)"에 이성과 관련된 이런 글이 나온다. 불교에서 비판적 사유 과정은 경전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됩니다. 붓다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치 사람들이 금의 순도를 판단하기 위하여 그것을 용광로 속에 넣어 녹여 보거나 또는 그것을 잘라서 시금석 위에 놓고 검사하는 것처럼 비구들이여, 여러분은 나의 말을 나에 대한 존경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에 받아들여야 한다.”
-붓다-

지금의 유일신교에는 이성이 결여가 되어 있다. 불행하게도 이성 없는 종교 교리가 세상을 지배한다. 이 책이 성경을 이성이 아닌 믿음으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기독교인들의 사고 틀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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