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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개정판을 내며 제1부 11월의 끝 / 여행하지 않는 여행자 / 밤의 대릉원 / 난청의 시절2 / 바다 옆의 방 / 도망가는 사랑 / 그러는 동안 / 톨스토이역에 내리는 단 한 사람이 되어 / Moon Snow globe / 설야雪夜 / 헌책방에서 / 흔적 / 밤 강물 곁에서 제2부 영원한 비밀 / 실루엣의 세계 / 옛 일기장을 찢으며 / 파란 달 / 강변북로 / 어둠속에서 다시 한 번 / 진부령의 구름처럼 / 밤이 준 것 / 2월에 매화를 보다 / 난청의 시절3 / 우문愚問 / 검은 눈물 가득한데 / 행복을 표절하다 / 해빙기2 제3부 봄의 환지통 / 첫눈 무렵 / 선셋 증후군 / 눈물에도 전성기가 있다 / 기억 극장 / 제비꽃을 위하여 / 악몽 / 따뜻한 반어법 / 봄밤 / 나의 엄마들 / 마흔아홉 / 재스민나무의 데스마스크를 보며 / 난청의 시절4 / 망각은 이렇게 온다 / 살구나무에게 가서 울다 제4부 이것은 겨우 나의 자유 / 정박碇泊 / 페넬로페의 노래 / 떠돌이까마귀처럼 / 훔친 기억 / 난청의 시절1 / 건조주의보 / 고백을 위해 / 밤의 노래 / 기억의 환지통 / 비행운을 보는 저녁 / 다시, 동해로부터 / 겨울 일기 / 발굴이 될 때 해설 고봉준_상실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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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한
나는 어떤 것도 상속받지 못해서 팔도 없이 껴안고 손도 없이 붙잡으려 했어 빛에서 어둠만을 도려낸 듯 검정보다 검은 네 얼굴을 나는 닫힌 눈꺼풀 안의 눈으로만 보았지 세상에 없던 방식으로 벼락이 사랑스러운 이유만큼 너를 보듬고 싶었는데, 강물이 음악이 된 그때 그날 나의 눈물과 봄과 내일을 주고서라도 누군가의 두 팔을 빌려 왔더라면 작은 가슴이라도 빌려 왔더라면 메마른 네 그림자를 가질 수 있었을까 더 이상 다르게 올 수 없는 너를 우주처럼 슬프고 자정처럼 아름다운 너를 빗방울 지는 소리에 묻지 않아도 되었을까, 사랑에 관한 한 나는 아직 너에게 나를 잊을 권리를 주고 싶지 않은데 --- 「도망가는 사랑」 중에서 사랑을 멈추면 몸이 녹을까 사랑은 뜨거운 것이라는데 그 모든 세월 동안 나는 얼어붙어 있었다 심장이 먼저 얼고 눈물이 얼고 입술이 얼어서 꿈속의 손길로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더 차갑게 더 투명하게 얼어서 내 안의 단단한 슬픔으로 산산조각 나기를 너는 바랐다 마침내 핏방울이 얼고 살빛이 식어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미움밖에 없을 때 사랑을 멈추면 내가 녹아 없어질까 --- 「해빙기 2」 중에서 나는 방금 햇살 속에서 돌아왔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 창문에서 저 창문으로 옮겨 가는 햇살만 따라다니다 돌아왔다 하늘이 녹아드는 세상의 가장자리로부터 푸르른 빙하와 외로운 섬을 지나 이름 없는 무덤가에 꽃을 피워 주고 온 햇살 아무 풍경이 없는 풍경에 대해서도 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 햇살처럼 멀리 있어서 영영 잃어버리지 못하는 것들을 생각했다 햇살과 함께 걸을 수 있는 만큼 걸어갔을 때에는 나에게 오는 길을 끝까지 다 오지 못한 이들과 다정하게 헤어져 주었다 오늘도 나는 비둘기 한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보다도 멀리 가지 못하고 기억한 것보다 더 많이 잊어버리며 햇살 속에 가만히 잠겨 있다가 절반쯤만 돌아왔다 --- 「여행하지 않는 여행자」 중에서 |
영화 〈마네의 제비꽃 여인〉에서 마네는 베르트 모리조에게 한편의 작은 액자 그림으로 못 다한 말을 다한다. 이운진 시인의 시에는 편편마다 그 간절함이 마치 화선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연둣빛처럼 숨쉬고 있다. “수인(囚人)이었으며 사랑이 던져버린 돌멩이” 하나로 시인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뎌온 것일까. 언제부턴가 낭만과 함께 절실함이 사라진 한국의 시단에 그가 혼잣몸으로 노래하는 간절함은 시적 청명과 순수를 소환하는 부활의 메시지로 그만의 소중한 자산이다. 나는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마치 베르트 모리조의 숨은 화폭을 마주하는 듯한 벅찬 숨결을 느낀다. 그의 시는 행간의 침묵, 생략된 부호 하나조차도 절실함으로 무장된 숨가쁜 은유다. - 이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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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진의 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모순된 인식은 시를 비통하게 만든다. 때문에 그의 시는 뼈저리게 아프고 내밀하며 자신을 투신할 것 같은 위험이 있다. 비통함이 폭발하여 맹점을 폭로하고, 폭발하여 이별을 간직하고, 폭발하여 노래와 숨결이 되는 시집. 시인이 가진 창의적인 인식은 표면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이제 막 자유를 연습하기 시작”한 여행자, “여행하지 않는 여행자”의 여행기. 비통과 자유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를 간직한 시집. 모든 자유는 내부에서 먼저 온다. - 강미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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