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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는 근본주의자 7
옮긴이의 말 177 |
Mohsin Ham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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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가을, 프린스턴은 캠퍼스를 찾은 회사 신입사원 모집자들을 위해 치마를 걷어 올리고 그들에게 속살을 약간 보여 줬죠. 프린스턴이 보여 준 속살은 물론 좋은 속살이었죠. 가능한 가장 젊고 말 잘하고 영리한 속살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4학년 때, 내가 모든 속살 중에서도 아주 특별하다는 걸 알았죠. 말하자면, 나는 완벽한 가슴이었어요. 촉촉하고, 중력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황갈색 가슴 말이죠. 나는 내가 원하는 어떤 직업이든 갖게 될 걸 확신했어요.
--- p.10 나는 그녀가 이런 식으로 나한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사실이 영광스럽고 기뻤어요. 나는 그녀의 눈을 쳐다보았어요. 나는 처음으로 그 뒤에 뭔가 부서진 것이 있는 걸 보았어요. 확대경을 통해 봐야 보이는 다이아몬드의 작은 금처럼 말이죠. 보통 때는 보석의 휘황찬란함에 가려져 있죠.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녀가 얘기했던 보석을 만들게 했는지 알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런 걸 물어보는 건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것들은 상대가 시간과 대상을 골라 스스로 밝히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그녀를 이해하고 싶은 내 마음을 표정을 통해서 전달할 수밖에 없었어요.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 p.54 그런데 얘기 도중에 화가 났던 게 떠오르는군요. 에리카의 아버지가 나한테 우리나라 상황이 어떠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나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라며 관심을 가져 주셔서 고맙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경제가 나빠지는 건 아닌가요? 부패에 독재까지 겹치고, 다른 사람들은 고통당하는 데 부자들은 왕자들처럼 살잖아요. 실속 있는 사람들이죠. 내 말 오해하지 말아요. 나는 파키스탄인들을 좋아해요. 하지만 엘리트 계층이 그곳을 제대로 능욕한 건 사실 아닌가요? 그리고 근본주의도 그렇고요. 당신네들은 근본주의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겪잖아요.” --- pp.56-57 다음 날 저녁은 우리가 마닐라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될 예정이었어요. 나는 방에서 짐을 싸고 있었어요. 텔레비전을 켰을 때 처음에는 영화가 나오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계속 보니까, 영화가 아니고 뉴스더라고요.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건물이 하나둘 무너지더군요. 그때, 나는 미소를 지었어요. 그래요, 혐오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의 첫 반응은 놀랍게도 즐거움이었어요. --- p.73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 공격의 희생자들을 생각한 게 아니에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죽음은 그것이 허구적일 때 내 마음을 가장 많이 움직이죠. 여러 일화를 통해 내게 친숙해진 인물이 죽으니까 그런 거죠. 그런데 그 순간은 그게 아니었어요. 나는 그 모든 것의 상징성에 빠져들었던 거죠.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사실에 그랬던 거죠. 아, 내가 당신을 더 불쾌하게 하는 모양이군요. 물론 이해합니다. 자기 나라의 불행에 다른 사람이 흡족해하는 걸 보는 건 가증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당신도 그런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거예요. 당신은 미국 무기가 적의 건축물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최근에 상당히 유행하는 비디오 클립을 보면 즐겁지 않나요? --- p.74 *“예니체리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나요?” “없습니다.” 그가 설명했어요. “예니체리는 오스만 제국에 사로잡혀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였던 이슬람 군대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기독교 소년들이었어요. 그들은 사나웠고 대단히 충성스러웠죠. 그들은 그들 자신의 문명을 없애려고 싸웠죠. 그들에겐 돌아설 곳이 달리 없었어요.” --- p.145 *나는 근대적인 예니체리였어요. 미국이 나와 같은 혈족인 나라를 침략하고 또 내 나라가 전쟁 위협에 직면하도록 공모하는 상황에서, 미국이라는 제국의 하인 노릇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나는 몸부림쳤죠! 물론 마음이 찢긴 상태였고요! 나는 언더우드샘슨 사람들, 제국 관리들과 함께 내 운명을 함께하면서도, 후안바우티스타와 같은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꼈죠. 제국이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무 생각 없이 삶을 뒤집어엎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이죠. --- p.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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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짜 근본주의자인가? 그는 왜 주저하는가?
- 제목에 담긴 중의적인 의미 찬게즈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9.11 테러’ 이후, 인종과 피부색 때문에 어딜 가든 ‘이슬람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라고 의심받는다. 테러 이전에는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섞이는 기분을 느꼈지만 이제는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이유 없이 욕설을 듣기 일쑤고 심각한 수준의 위협을 받기도 한다. 뉴욕 한복판에 있는 그의 회사에서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찬게즈는 자신에게 대놓고 질문하는 사람은 없지만 동료들과의 관계가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직감한다. 이때 ‘주저한다(reluctant)’는 의미는 찬게즈 스스로 내키지 않음에도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취급되고 어쩔 수 없이 떠밀리는 상황을 보여 준다. 한편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이 회사의 사훈은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라’. 이때 ‘근본’은 자본주의 원칙을 의미한다. 이들은 오로지 수익성만을 추구하면서 세계 여러 지역의 사업들을 ‘효율성’이라는 기준 아래 재편해 간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는 일들이 반복되지만 이것은 이 회사의 관심사가 아니다. 찬게즈는 미국의 자본주의의 핵심을 본뜬 듯한 회사의 철학에 동조하고, 성공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시스템이 비윤리적이고 파괴적이라는 의심을 품게 된다. 그러니까 윤리적인 고민 없는 자본주의 역시 하나의 근본주의인 셈이다. 이때 그가 ‘주저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근본주의에 물들어 있으면서도 과연 이것이 옳은가, 하고 의심하는 순간의 ‘위화감’을 드러낸다. 위태롭고 안타까운 러브 스토리, 혹은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혹은 알레고리 소설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었을 민감한 정치 주제를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거기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찬게즈의 사랑 이야기다. 모신 하미드는 정치적 주제와 사랑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자연스럽게 녹여 냈다. 프린스턴에 진학해 이제 막 새로운 삶에 대한 꿈에 부푼 찬게즈에게 있어, 미국 여성 에리카는 아메리칸드림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찬게즈와 에리카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다. 에리카에게는 잊지 못하는 첫사랑이 있고, 그 첫사랑은 에리카를 고립 속으로 몰고 간다.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는 연인에게 9.11은 위기로 다가온다. 위태롭고도 은밀한 사랑 이야기는 때로는 안타깝게, 때로는 아찔하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러브 스토리에 더해 이 소설은 또 하나, ‘스릴러’의 외피를 입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라호르의 옛 시가지, 한 파키스탄 청년과 미국인 남자가 식당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이 미국인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며, 그의 목소리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웨이터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태도, 안주머니 속에서 불룩 솟은, 마치 권총과도 흡사한 실루엣과 함께 하늘을 날아다니는 “스키피”한 박쥐 무리까지, 어딘지 음울하고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작품 전반을 휘감는다. 찬게즈의 이야기가 언제 어떻게 끝날지 독자들은 알 수 없고, 찬게즈와 이 미국인이 결국 어떤 선택을 할지는 더욱 알 수 없다. 다만 숨죽이며 찬게즈의 목소리를 따라갈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필연적으로” 알레고리 소설이다. 프레더릭 제임슨은 “제3세계의 텍스트는 필연적으로 알레고리적이며, 국가적인 알레고리로 읽”히는데 그 이유가 “사적이고 개인적인 운명에 관한 이야기가 늘 제3세계의 공적인 문화 및 사회의 절박한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 기능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리카(Erika)라는 이름은 ‘아메리카(America)’를 연상시키고 찬게즈(Changez)라는 이름 또한 숨은 뜻이 있다. 하미드는 인터뷰를 통해 주인공의 이름을 ‘칭기즈 칸(Chingiz Khan)’에서 따 왔다고 했다. 그는 그 이름을 통해 주인공의 ‘전사’ 이미지를 부각하고 싶었다고 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찬게즈’라고 표기하게 되었지만 그의 이름은 챙기즈, 챈기즈, 칭기스로도 발음될 수 있으며 또한 그의 이름 철자는 ‘변화’를 의미하는 ‘체인지(change)’도 연상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 소설로 읽든, 스릴러 소설로 읽든, 혹은 러브 스토리로 읽든,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재미있으며, 읽을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모신 하미드는 이 작품을 통해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리며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발돋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