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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맥주와 함께 춤을
1. 인류 문명, 어쩌다 맥주 2. 오시리스여, 생명과 맥주를 주시나니 3. 천박한 맥주, 민중의 와인이 되다 4. 대영제국의 몰락한 꿈 5. 라거가 세상을 지배했을 때 II. 전지적 맥주시점입니다만 1. 영화, 전지적 맥주 시점으로 보다 2. 맥주잔을 보여주세요. 당신이 누구인지 맞춰볼게요 3. 맥주 팝 판타지아 4. 일상의 휴식처가 된 노동자의 쉼터 5. 축구 동반자, 그 이름은 맥주 III. 맥주, 세상을 외치다 1. 맥주 한 잔을 들고 있는 당신, 자유롭다 2. 맥주야, 정치를 부탁해 3. 맥주 히치하이커를 위한 취향 안내서 4. 낭만 터지는 브로맨스 맥주 5. 녹두거리의 전설, 링고의 꿈 IV. 반항아들의 합창 1. 바보야, 문제는 맥주가 아니야 2. 하우스 맥주, 수제 맥주, 크래프트 맥주 3. 크래프트 맥주에게 정치를 묻다 4. 공간 속 피어난 크래프트 맥주 5. 피지 않은 봄을 달래주는 맥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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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가 처음 태어난 이곳의 삶은 처절했고, 그래서 아름다웠다. 맥주는 신의 선물이 아니다. 맥주는 치열한 생존의 산물이다. 맥주에는 수메르인들이 자연에 맞섰던 결기가 들어있다. 좋은 시카루를 위해 닌카시에게 기도했던 간절함이 깃들어있다. 전쟁의 두려
움을 잊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눈 행복도 담겨있다. 맥주 뒤에는 인간의 역사가 있다. 맥주의 역사를 거슬러보는 것은 인간의 역사를 탐닉해 보는 것과 같다. 더 이상 맥주에서 닌카시의 손길을 느낄 수 없지만 수메르인들의 영혼은 남아있다. 맥주를 벌컥 들이켠 후, ‘캬’를 내뱉는 우리네 모습 속에. --- p.13~14 영화는 개인과 사회의 경험에 따라 개별적으로 해석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말한 봉준호 감독처럼 타자에 의해 강요되지 않는 이런 개별성이 영화를 문화로 만든다. 그 속에는 자유와 다양성이 있다. 영화처럼 맥주 또한 자신만의 스토리로 간직된다. 맥주와 영화가 문화로 만나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 p.62 얇은 다리가 넓은 몸체를 받치고 있는 트라피스트 에일 잔은 성배 같다. 정식 이름은 애비 고블릿. 넓은 입구는 트라피스트 에일의 풍부한 향과 알코올을 즐기는 데 적합하다. 잔을 들고 있으면 손의 온기가 맥주로 전달되어 향은 더 도드라진다. 그래서 수도원 에일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즐겨야 한다. 마치 우리 인생이 그러하듯. 수많은 맥주가 자신만의 잔을 통해 정체성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맥주잔만 봐도 어떤 맥주를 마시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제 아무 잔에나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 맥주 스타일과 향미를 고려해 세심하게 선택한다. 전용 잔을 모으는 취미도 더 이상 생경하지 않다. 시나브로 맥주잔은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문화로 진화했다. 손 위에 어떤 맥주잔이 들려있는가. 어쩌면 그 맥주잔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 p.72 IPA는 써야한다. 뉴욕에 있어도, 신사다움과 품격은 지켜야 한다. ‘쓴맛’은 IPA의 정체성이자 자존심이다. 뭉근한 단맛과 이룬 균형감은 정중동을 의미한다.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나다움을 지키는 가치. 이 뉴욕 출신 IPA는 스카프를 두르고 뉴욕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쿠엔틴 크리스프, 그 자체다. --- p.78~79 리버풀FC와 파트너십을 기념하기 위해 칼스버그가 창조한 맥주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2017년 25주년 기념 맥주로 출시한 필스너는 각별했다. 칼스버그는 이 이벤트를 위해 특별한 홉을 준비했다. 연구원들은 리버풀 경기가 나오는 스크린을 실내 농장에 마련했고 홉이 자라는 동안 꾸준히 영상과 소리를 노출시켰다. 리버풀FC의 영혼을 이식하기 위함이었다. 아니, 홉에게 축구팀의 영혼을 입히다니, 상상이나 되는가? 레드 홉으로 명명된 이 홉은 발효 후 홉을 넣는, 드라이 호핑 방식으로 맥주에 첨가됐다. 황금색 레드 홉 필스너는 리버풀FC 팬과 같은 붉은색 심장을 품고 있는 맥주였다. --- p.106 맥주 추천을 원한다는 것은 맥주 한 잔에도 실패를 피하고 싶다는 뜻이다. 도전이 두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도전은 취향의 세계로 떠나는 첫 관문이다. 취향을 찾고 싶다면 도전이 필요하다. 작은 성공과 실패가 쌓여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결과를 오롯이 들여다보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취향이라는 궁극의 답이 나온다. --- p.132~133 취향을 향한 작은 도전에 맥주는 좋은 출발점이다. 맥주에는 우주의 별만큼 스타일이 넘쳐난다. 스타일이 많다는 것은 취향에 맞는 맥주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전통적인 황금색 라거부터 밀 맥주 바이스비어, 신맛이 도드라지는 람빅, 에스테르 향이 멋진 영국 에일, 수도원에서 만드는 트라피스트 에일, 과일 향이 폭발하는 미국 IPA,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친 임페리얼 스타우트까지 그 수는 백여 가지가 훌쩍 넘는다. --- p.134 술의 미학은 쾌락이었다. 오랫동안 인류는 술에 기대어 사랑을 나누고 슬픔을 잊었다. 술은 뮤즈가 되어 선율을 연주했고 미네르바의 올빼미로 날아와 문학이 되었다. 하지만 과도하면 케레스로 변해 질병의 괴로움을 선사했고 타나토스로 다가와 죽음을 선물했다. --- p.141 맥주 양조사의 철학과 가치는 다르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세상에 존재하는 맥주는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의 맥주가 탄생하기까지 양조사는 맥주의 존재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곤 한다. 답이 나오면 그간 했던 고민들은 향미가 되고 이름이 되어 맥주는 출생신고를 마치고 세상에 나온다. --- p.169 크래프트 맥주는 대기업 맥주에 없는 가치들을 갖고 있다. 혁신, 도전, 재미, 발칙함 같은 문화적 가치를 담고 있을뿐더러 나아가 정치, 젠더, 환경 문제처럼 사회적 가치가 녹아있기도 한다. 전통적인 맥주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양조 방법이나 향미도 중요한 덕목이다. 맥주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부가물을 섞거나 양조 순서를 비틀기도 한다. --- p.171 맥주보다 더 중요한 건, 맥주도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 환경이다. 맥주가 대통령을 비판해도 탄압받지 않는 사회, 소수자를 대변하고 환경 문제를 떠들어도 비난받지 않는 사회, 어쩌면 어떤 맥주인지가 아니라, 자유 의지가 허용되는 사회문화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권력을 향한 풍자에 발끈하는 사회에서 크래프트를 논하는 거 자체가 아이러니일 수 있다. --- p.205~206 그래서 맥주는 문화가 된다. 나는 작은 양조장에서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 문화가 우리 공동체에 작은 울림으로 변해 선한 영향력으로 퍼지길 바라며 한 주를 보낸다. 그렇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이유가 없다. 정동 맥주의 존재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의 길도 그곳에 있다고 믿는다. 맥주가 누군가에게 작은 의미가 되길, 그래서 그들의 인생에 작은 행복이 되기를. --- p.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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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저 맥주 한 잔이었다.너무 익숙해서 별 감흥도 없었고, 뭘 물어볼 거리도 없었다.그런데 그가 물었다.“당신, 라거 좋아해요? IPA는 좀 쓴데 괜찮을까요?”
그때 알았다.맥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나에 대해 알고 싶은 눈빛이었다는 걸.그는 맥주 얘기를 꺼내지만, 듣고 싶은 건 내 하루의 온도, 내 입맛의 기울기, 내 취향의 진심 같은 거였다. 《맥주의 유혹》은 그런 책이다.냉장고 안에 늘 있었지만, 이제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되는 술.그건 지적인 대화의 핑계이자, 연애편지의 서문 같기도 하다. 그는 맥주의 기원을 말하면서 고대의 신화를 꺼내고,IPA가 건너간 바다를 따라 기억과 감정도 함께 건너간다고 말한다.취향의 선택에 숨어 있는 내 진짜 얼굴을 보여주겠다는 듯, 조용히 웃으며 한 잔을 건넨다. 읽다 보면 그와 나 사이엔 점점 말이 줄고, 대신 장면이 남는다.영화 속 키스 직전의 맥주, 노동 후 지친 어깨 위에 놓인 한 잔,우리가 술 대신 건넨 어떤 위로 같은 것들. 《맥주의 유혹》은 맥주를 이야기하면서 당신을 유혹한다.단 한 번도 맥주가 이렇게 다정하고 깊게 말을 건 적은 없었다. “당신, 어떤 맥주 좋아해요?”그 질문은 결국 이렇게 들린다.“당신이라는 사람을 더 알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