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붓과 칼 사이의 질서
조선의 무관 제도사
가격
30,000
30,000
YES포인트?
0원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 조선 후기 무관직, 그 의미를 묻다 | 11

1부 무관의 개념과 무관직 구조

1장 무관의 개념과 정책
1. 무관의 개념 | 31
2. 무관 관련 용어 | 35
3. 무관 정책의 특징 | 43

2장 서반관계의 구성과 운용
1. 서반관계의 구성 | 47
2. 서반관계의 운용 | 57

3장 『속대전』의 무관직 구성
1. 서반 경관직의 종류와 규모 | 67
2. 서반 외관직의 종류와 규모 | 81

2부 중앙 고위직과 청요직

4장 서반 최고위 아문 중추부
1. 중추부의 조직과 규모 | 99
2. 중추부의 임무와 사회적 위상 | 105

5장 훈련원의 지속과 변화
1. 훈련원의 확대 | 111
2. 훈련원의 변화 | 118
3. 습독관과 권지 | 123

6장 무관 청요직과 천거
1. 서반 최고 청요직 선전관 | 128
2. 선천宣薦의 운용과 특징 | 147
3. 부장과 부천部薦 | 162
4. 수문장과 수천守薦 | 180

3부 오위와 체아직

7장 오위도총부의 변화
1. 오위도총부의 구성 | 195
2. 오위도총부의 임무 | 202
3. 도총관의 부족 | 212

8장 오위장의 새로운 운용
1. 오위장의 구성 | 218
2. 오위장의 임무와 위상 | 223

9장 오위 체아직의 구조와 운용
1. 체아직 관련 용어 | 235
2. 오위 체아직의 지급 기준 | 242
3. 원록체아와 잡체아 | 249

4부 군영 아문

10장 군영아문의 구조와 구성원
1. 군영아문의 성립과 종류 | 267
2. 군영아문의 조직과 구성원 | 280

11장 군영아문 소속 장관의 역할
1. 장관의 임용 방식 | 293
2. 중군 | 296
3. 천총과 파총 | 303
4. 금군장-내금위장·겸사복장·우림위장 | 323

12장 군영아문 소속 장교의 임무
1. 지구관知?官 | 339
2. 교련관 | 352
3. 기패관 | 364
4. 국출신 | 372

13장 무관 산직散職
1. 내사복시와 내승 | 378
2. 능마아청과 능마아강 | 389

5부 지방의 변장과 보좌직

14장 변장의 개념과 규모
1. 변장의 개념과 범주 | 401
2. 변장의 규모 | 403

15장 첨절제사와 동첨절제사
1. 첨사의 규모 | 413
2. 첨사의 운용-변지·이력·체부·구근·자벽 첨사 | 422
3. 첨사의 자격과 역할 | 436

16장 만호와 권관
1. 만호의 규모와 운용 | 444
2. 권관의 규모와 운용 | 463

17장 절도사 보좌 무관직
1. 우후 | 478
2. 북평사 | 495

나가는 말 : 붓과 칼 사이, 조선을 지탱한 또 하나의 질서 | 506

부록 | 517
참고문헌 | 525
찾아보기 | 537

저자 소개 1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선 후기 무과급제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 논저로는 『조선의 무관과 양반사회 -무과급제자 16,643명의 분석 보고서』(‘2021년 세종도서 학술 부분’ 선정), 『조선 엄마의 태교법』(‘2018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 「정조대 《어제전운시》의 유입과 병자호란 기억의 재구성 -나덕헌·이확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정해은의 다른 상품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6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544쪽 | 152*225*35mm
ISBN13
9791190429368

책 속으로

오늘날 경복궁 근정전과 덕수궁 중화전 앞뜰에는 어도御道 좌우로 품계석品階石이 남아있다. 남쪽을 향해 앉은 임금을 바라볼 때, 오른쪽(동쪽)에 놓인 품계석은 문관이 서는 자리였고, 왼쪽(서쪽)은 무관이 서는 자리였다. 그래서 문관을 동반東班, 무관을 서반西班이라 했으며, 이를 합쳐 ‘양반兩班’이라 불렀다. 이때의 ‘양반’은 반상班常을 구분하는 신분 개념이 아니라 문·무로 나뉜 벼슬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 p.31

1466년에 세조가 관제를 재조정하면서 정비한 서반관계는 이전과 비교하여 두 가지 변화를 보였다. 첫째, “절충장군折衝將軍은 당상관으로 올린다.”라고 했듯이 절충장군을 당상관으로 승격했다. 이 조치로 2품 이상이 없는 서반관계에 당상관이 새롭게 생겼으므로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 p.55

시기별로 지역의 변화도 주목된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서반 외관직의 규모는 경상도 103자리, 전라도 87자리, 충청도 69자리, 평안도 65자리, 함경도 57자리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속대전』에서는 경상도가 여전히 134자리로 가장 많았으나, 그 뒤를 평안도 124자리, 전라도 110자리, 함경도 105자리, 경기 79자리가 차지했다. 특히, 평안도(59자리 증가, 증가율 91%), 함경도(48자리 증가, 증가율 84%), 경기(30자리 증가, 증가율 61%)의 증가율이 높으므로, 조선 후기에 북부 지역과 경기의 외관직이 크게 확대된 점이 두드러진다.
--- p.89

조선 후기에도 훈련원은 무과 급제자가 아니면 들어오지 못했다. “훈련원은 문관으로 치면 승문원과 마찬가지여서 음관을 의망할 수 없습니다.”라는 지적대로, 훈련원은 음관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남항 부장南行部將의 경우 중추부, 도총부, 선전관청, 수문장청, 부장청 등에 등용되었으나, 훈련원만은 허용되지 않았다.
--- p.120

한편, 법전에는 반영되지 않았으나 정조 대의 조치가 두드러진다. 첫째, 1795년 겸내금위兼內禁衛 제도의 실시로 참하 부장 15명 전원이 1번 내금위를 겸임했다. 2년 뒤인 1797년에는 정조가 금군 겸임 대상을 1번 내금위에서 금군 6번 전체로 확대한 ‘겸사금군兼仕禁軍’ 제도를 실시하자, 참하 부장의 소속처도 변경되었다.
--- p.167

오위도총부는 서반의 정2품아문으로, 서반의 정1품아문인 중추부中樞府 다음으로 높은 위상을 가진 기관이었다. 그러나 중추부가 실제 군무를 담당하기보다는 소임이 없는 고위 관료들을 예우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 전기 서반의 실직적인 최고 기관은 오위도총부였다고 할 수 있다.
--- p.198

다음으로, 조선 후기 오위 체아직의 지급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 『속대전』의 관련 내용을 〈표 22〉에 정리했다. 지면의 제약으로 습독관과 의원 관련 내역은 〈표 23〉에 별도로 제시했다. 『대전통편』의 관련 규정은 『속대전』과 동일하므로, 이 두 표는 『속대전』과 『대전통편』에 기재된 오위 체아직의 지급 규모를 함께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아울러 『경국대전』의 세부 내역은 〈부표 4〉, 『대전회통』의 세부 내역은 〈부표 5〉로 각각 정리했다.
--- p.245

넷째, 조직의 구조적 변화도 일부 확인된다. 호위대장이 기존 3명에서 1명으로 축소되었고, 금위영에는 병조 판서가 으레 겸임하는 제조의 자리가 새로 설치되었다. 이어서 금위영과 어영청에 기사장이 신설되고, 어영청에는 별후부천총이 새로 추가되었다. 기사장은 1746년에 기사를 통솔해 온 초관哨官의 칭호를 변경하여 마련한 직책이다. 별후부천총은 1758년 영종진을 다시 첨사진으로 승격하고, 영종 첨사가 이를 겸임하게 하면서 새롭게 추가한 자리였다.
--- p.290

첫째, 지구관은 훈련도감 군사가 오를 수 있는 최고위 장교였다. 『속대전』 등의 규정에 따르면, 훈련도감의 기패관은 훈련도감 군병 가운데 취재取才를 통해 선발했으며, 지구관은 기패관을 거쳐 승진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로였다. 즉, 군병 → 기패관 → 지구관의 순서로 진급하는 체계였다.
이와 같은 승진 구조는 1734년(영조 10) 평안도 청강淸江 동첨절제사(종4품)로 임명된 김준휘金俊輝가 하직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영조가 그의 이력을 묻자 직접 답한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준휘 이력은 훈련도감군 → 기패관 → 만호 → 지구관 → 수군동첨절제사(서생포) → 지구관 → 병마동첨절제사(청강) 순이었다.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 p.349

이후 능마아청을 새롭게 정비한 국왕은 효종이었다. 1655년(효종 6) 봄에 효종은 능마아청을 다시 설치하고, 연소한 무관 20여 명을 선발해서 2개월에 한 차례씩 병학을 익히게 한 후 시험을 치르게 했다. 이는 효종이 북벌을 추진하면서 새로운 전법의 확립을 위해 전문적인 병학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한 결과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능마아청이 효종 대에 창설되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 p.392

조선 후기에 연대기 자료를 제외하고 첨사의 구분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자료는 『전율통보典律通補』(1787)와 『전주찬요銓注纂要』(1823년경)이다. 먼저 『전율통보』에는 첨사 19명이 변지첨사, 이력첨사, 체부첨사로 구분되었고, 위치는 아래와 같다. 이 중 갈파지는 병마동첨절제사의 자리이므로, ‘변지’, ‘이력’, ‘체부’ 등의 명칭이 첨절제사와 동첨절제사 모두를 대상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 p.423

조선 후기에 수군 만호의 규모는 병마 만호와 달리 뚜렷한 감소 추세를 보였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속대전』과 『대전통편』을 중심으로 수군 만호의 배치 지역을 〈표 47〉에 정리했다. 아울러 조선 후기의 변동을 전후로 비교할 수 있도록 『경국대전』의 내용도 함께 반영했다. 『속대전』을 기준으로 수군 만호는 총 37명으로, 기존 『경국대전』의 54명에서 17명이 줄어들었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1명씩 줄어들어 각각 18명과 14명이었으나, 경기, 충청도, 황해도, 강원도, 함경도는 1명씩만 남기고 모두 폐지되는 변화를 겪었다. 도별로 수군 만호의 배치 지역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면 다음과 같다.
--- p.450

우후는 절도사의 보좌관이므로 전임專任 절도사에게 1명을 배속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경국대전』 체제에서는 경기·황해도·강원도에 전임 병마절도사를 파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서는 병마 우후가 없었다. 단, 함경남도에는 전임 병마절도사가 있었으나 우후를 두지 않았다. 수군절도사의 경우 황해도·강원도·함경도·평안도에 전임 수군절도사를 두지 않았으므로 수군 우후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경기 수군절도사 2명 중 1명은 전임이었으나 이 또한 우후를 두지 않았다.
--- p.480

북평사 박래겸도 1827년 12월 17일부터 1828년 2월 5일 청인들이 강을 건널 때까지 개시를 관장했다. 당시 회령에 도착한 청인은 총 396명이었으며, 이들이 이끈 말은 1,443필, 노새는 12필에 달했고, 길쌈 용구인 발거撥車가 71개였다. 교역은 공시公市부터 시작했으며, 소금, 보습, 소 등이 주요 거래 품목이었다. 이듬해 1월 3일에는 사시私市, 1월 4일에는 마시馬市가 열렸다. 1월 18일에는 회령부에 이어 경원부에서 공시가 열렸고, 이때 관아에 머문 청인의 규모가 통관 이하만 70여 명이었다. 이후 1월 19일부터 21일까지 사시가 이어졌으며, 주로 가축을 교역했다. 1월 22일에 마시가 열리며 개시가 마무리되었다.
--- p.502~503

나아가 이들의 존재는 단순한 직제 변화나 통계상의 증감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17세기 중반 이후 무장 전기가 출현하고, 무관들이 직접 병서를 저술하며 군사 이론을 체계화한 일련의 흐름은 이전의 존재 방식과 다른 질적 전환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는 무관과 그 모집단의 비약적 팽창이라는 여건 속에서 꽃피울 수 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이 조선 후기 무관직에 대한 기본적인 조망과 분석을 제공했다면, 다음 단계는 이 제도 속에서 살아 움직인 구성원들을 더 풍부하게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 p.517

출판사 리뷰

조선 후기 무관직, 그 의미를 묻다

이 책은 조선 후기 무관직 제도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한 연구 결과물이다. 최근 역사학 방법론이 다양해지면서 연구 주제와 관점도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제도사를 다룬다는 것이 자칫 최신 경향에 뒤떨어진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제도는 변화와 연속성에 접근하는 출발점이자, 한 사회의 기본 틀을 형성하며 권력 분배와 자원 배분,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서반관계西班官階에 2품 이상의 고위 품계를 두지 않은 점, 국왕을 직접 대면하는 사은숙배謝恩肅拜와 윤대輪對에 문관은 1품부터 9품까지 전부 참여할 수 있었던 반면 무관은 4품 이상만 참여하도록 규정한 제도는 양반 관료 사회에서 무관이 처한 차별의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제도에 대한 탐구는 단순히 과거 사실을 밝히는 것을 넘어, 사회의 조직 원리나 작동 방식을 깊이 이해하는 길잡이이자 역사 속 개인과 집단의 경험을 입체적으로 접근하는 창구가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선 후기 무관직 제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역시 무관의 실질적인 존재 양태를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양반 관료 사회의 본질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왜 무관직 연구인가?

조선시대사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용어 중에는 종종 그 의미가 한쪽으로 치우친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양반’ 연구라 하면서 대체로 문관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과거科擧’ 연구를 표방하면서 실상은 문과文科에 국한되어 있다. 이처럼 ‘양반=문관’, ‘과거=문과’라는 암묵적 등식은 현재 조선시대사 연구에서 사실상 관행처럼 통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고정관념을 변화하지 않은 채 조선 사회를 다각도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조선 후기 무관직은 ‘군영아문軍營衙門’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학계에서 저평가 되어왔다. 조선시대 양반 연구가 주로 정치사적 접근이 강조되면서, 정치권력에서 배제된 무관은 연구의 중심에 설 자리가 많지 않았다. 기존 양반 제도 연구가 권력의 향방에 영향을 미친 문관 청요직을 중심으로 운용의 주체나 독점 양상 등을 탐구하는 데 집중한 결과, 권력과의 연계가 높지 않은 무관직의 경우 군영대장 외에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심지어 무관직을 주제로 한 연구조차 그 논의의 중심에는 왕권이나 문관이 자리하는 경향성을 띠어왔다. (생략) 따라서 조선 후기 무관직 연구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다양한 계층으로까지 역사적 시야를 확장하는 단서가 된다. 곧, 조선 후기 무관직 제도를 연구하는 것은 양반 관료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한 무관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해주는 동시에 조선 사회의 다층적 구조를 제대로 드러낼 열쇠가 될 것이다.

무관직 연구, 어디까지 왔나?

조선시대 무관직 연구는 대체로 오위와 오군영, 진관체제鎭管體制와 속오군束伍軍 등 군제와의 관련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최근에는 무관직 자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중앙 무관직 연구는 군영 대장과 선전관, 체아직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며, 지방 무관직 연구는 절도사節度使, 영장營將, 첨사, 만호에 대한 관심이 높으며, 특히 수군진 관련 연구가 활발한 편이다.
먼저 조선 전기 무관직 연구의 초기 성과로는 차문섭, 이재룡, 민현구, 오종록의 연구가 주목된다. 이들은 1960~1980년대 무관직 연구를 주도했으며, 조선 전기 무관직들이 대부분 후기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무관직의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차문섭은 내금위, 충의위·충찬위·충순위 등 특수 군종과 조선 후기의 영장, 병마방어영 등의 연구를 통해 무관직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차문섭, 1964; 1967; 1973(저)). 이재룡은 조선 초기 서반 체아직에 대한 기초 이해를 정립했으며(이재룡, 1967; 1984(저)), 민현구는 오위의 성립과 중추부, 오위도총부, 훈련원 소속 무관직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민현구, 1983(저)). 오종록은 조선 초기 병마절도사 및 첨사·만호·권관의 존재를 규명하며 지방 무관직 연구를 개척했다(오종록, 1985; 1989; 2014(저)). 이성무는 조선 전기 서반직 규모를 최초로 수치화하여 서반직에 대한 기초 자료를 제공했다(이성무, 1980(저)). (생략)

이상에서 살펴본 연구들은 그동안 소외되었던 무관직 연구를 확장하고 학계의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군영 대장 등 일부 고위직 연구가 여전히 우세하며, 중앙과 지방 소속 일반 무관직에 대한 체계적 연구는 부진한 실정이다. 무엇보다 무관직 개별 사례 연구에 치우친 결과, 무관직 전체를 구조적으로 조망하려는 시도가 미흡하며, 무관을 중심에 둔 새로운 논의 또한 사실상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연구 방법과 접근

이 책은 조선 후기 무관직의 구조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춘 개설서에 가깝다. 곧, 『속대전續大典』과 『대전통편大典通編』을 중심으로 무관직의 구조와 성격, 변화상을 분석하여 무관직을 체계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무관의 개념과 관련 용어를 정리하고, 무관직의 전체 구조를 밝히는 기초 작업에 주력했으며, 관직별 구성과 임무 등을 분석하여 개별 무관직에 대한 이해도 높이고자 했다. 이 연구의 중점 사항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 책에서 사용한 ‘무관직’이라는 용어의 범주를 먼저 밝히고자 한다. 여기서 무관직이란 『경국대전經國大典』, 『속대전』, 『대전통편』 등 대전류大典類 법전의 권4 「병전兵典」 조에 수록된 관직을 가리키며, 이는 곧 서반 관직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는 ‘무武’와 관련하여 문·무文武의 ‘무’나 동·서東西의 ‘서’ 자가 널리 쓰였다. 따라서 서반 관직을 지칭하는 용어로 ‘서반직’과 ‘무관직’ 모두 사용할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이해하기 쉽고 더 직관적인 용어인 ‘무관직’을 주로 사용했다. 다만 무관직이라는 표현이 무관만 담당하는 직책으로 오해될 우려가 있으므로, 필요에 따라 ‘서반직’이라는 용어도 병행했음을 밝혀둔다. (생략) 예를 들어, 오위장은 매우 흔한 관직이어서 단순 명예직 정도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오위장은 당상관의 직위이면서도 업무 강도가 상당히 높은 자리였다. 이 때문에 기피자도 있었으나, 집안 배경과 인맥이 부족한 무관에게는 중앙에 있으면서 다음번 관직을 모색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이처럼 이 책은 조선시대 무관직의 구조와 제도를 분석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의미까지 함께 조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무관직 연구의 깊이를 더한 두 자료, 『전주찬요』와 『노상추일기』

이 책에서 참고한 자료 중 『전주찬요』와 노상추의 일기는 특별히 언급할 가치가 있다. 『전주찬요』는 무관직의 연혁을 일일이 확인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노상추일기』는 무관직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당시 무관들이 그 제도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그들의 심리가 어떠했는지를 이해하는 귀중한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전주찬요』는 1823년(순조 23)경 병조 서리 임인묵林仁?이 서반 관련 인사 규정을 정리한 규정집으로, ‘서전고西銓攷’라고도 불린다. 현재 일본 오사카 부립府立 나카노시마中之島 도서관 소장본이 국내외 유일본이다. (생략)

예를 들어, 노상추는 41세에 진동 만호로 임명되었을 때 “세력이 없어 이렇게 쫓김을 당했다.”(1787.6.22)라며 낙담했다. 장교 자리인 기패관에 대해서는 “한번 기패관으로 발탁되면 옛날에 같은 항오에 있던 자들이 자신을 소인으로 칭하면서 당하에서 절하므로, 그들의 존비가 하루아침에 현저히 달라지니 스스로 영광으로 여겼다.”(1808.6.24)라고 기록했다. 이러한 기록은 무관직 제도가 개인에게 미친 영향을 생생하게 보여주어 조선 후기 무관직의 위상이나 역할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만약 『노상추일기』와 같은 자료가 없었다면 무관직 제도를 문관이 남긴 기록에만 의존해야 했기에 제도 밖 실상에 주목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책의 구성과 내용

이 책은 총 5부 17장으로 이뤄졌다. 제1부는 이 책의 토대를 이루며, 조선시대 무관의 개념과 무관직 구조를 다뤘다. 제2부부터 제4부까지는 서반 경관직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했으며, 제5부에서는 서반 외관직 가운데 변장 및 절도사 보좌 무관직을 중점적으로 분석했다. 제1부는 총 3장으로 구성했다. 1장에서는 이 책의 기초 작업으로서 무관의 개념과 이를 지칭하는 다양한 용어를 분석하고, 문치주의를 표방한 조선에서 무관의 권한을 축소하려 했던 정책의 특징을 탐구했다. 무관이란 단순히 무관직 소유자가 아니라,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자를 뜻하며, 동반직이나 동반관계東班官階를 소유할 수도 있었다. (생략) 이상으로 이 책은 무관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조선 후기 무관직의 전체 구조와 개별 직책의 운용 방식을 분석했다. 아울러 무관직이 양반 관료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무관직 임명이 개인에게 갖는 의미도 촘촘하게 담아냄으로써 기존에 시도되지 않은 연구 영역을 개척하고자 했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