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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새벽
춤을 추다 시발 롤 모델 소라의 겨울 지훈이의 캔버스 정수야 정수야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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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경찰들은 완전하게 이곳에서 철수한 듯했다. 많은 생각이 스쳤다. 이 창고에서 10분, 아니 5분이라도 더 있을 수 있다면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좁은 공간에 단둘이 있었다는 것이 그냥 상황이 준 경험인지, 둘에게만 있었던 특별한 것인지도 헤아리기 어려웠다. 사실 나는 시종 설렜지만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관계의 끝은 예상할 수 없다. 나에게 좋은 쪽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결과에 대비하여 감정 소모를 절제해야 했다. 나와 경애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고, 삶과 생활, 친구, 대화, 취미 모든 것이 달랐다. 현실에서 우리를 잇는 끈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창고 안을 더욱 허허롭게 했다.
--- 「그날 새벽」 중에서 엄마가 가끔 주는 생활비는 지영에게 생명줄이었다. 지영은 알고 있었다. 내가 너무 힘든 내색하면 엄마도 미안해 할 것이고, 동생들도 불편할 테니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가끔 설움이 북받쳐 혼자 숨죽여 울었지만 평소엔 그러고 싶어도 시간이 없었다. 무엇보다 지영에게는 특유의 낙관이 있었다. 그냥 ‘잘될 거야’를 되뇌면 시간이 지나갔다. 지동이도 작년보단 올해 돌보기 쉬워졌고, 지훈이도 자기 혼자 즉석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반찬과 함께 먹을 줄 아니 그것도 고마웠다. 힘들었지만 살 만했다.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 「춤을 추다」 중에서 민 선생은 쉬는 시간 10분을 다 보내고 나서야 아이들을 뒤로 한 채 교실을 나왔다. 교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긴장했던 몸에서 정기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사과를 받아 내고야 말겠다는 녀석의 확신에 찬 태도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걸까. 만약 내가 화를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이거나 욕을 했다면 바로 아동학대 혐의자로 신고를 당했겠지. 그나마 끝까지 화를 내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인가. 아니면 학생과 들러붙어 싸우기라도 해야 했을까?’ 여러 잡념이 민 선생을 서글프게 했다. --- 「시발 롤 모델」 중에서 소라에게 쉼터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계속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오고 며칠 머무르다 어디론가 나갔다. 이제 이곳에서는 소라가 가장 오래 있는 셈이었다. 센터장은 가끔 어디서 전화 온 데 없느냐고 물었다. 사회복지사는 이제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를 했다. 무슨 일이 있는지, 가족이나 친척에게서 연락이 왔는지 물었다. 누구도 이곳에 오래 있는다고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무료한 날들이 지나갔다. 정미 언니와 분위기가 비슷했던 언니도 어느 날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 「소라의 겨울」 중에서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간 교실이 고요했다. 서쪽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책상을 비스듬하게 비추었다. 지훈이가 도안한 서른네 개의 이름표가 햇빛을 받아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사물함의 이름표에도 지훈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지훈이의 손이 간 환경 구성과 게시물, 학급 표식도 그대로였다. 지훈이는 교실을 떠났지만, 녀석의 숨결과 손길이 교실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교실은 지훈이의 캔버스였고 지훈이의 세상이었다. --- 「지훈이의 캔버스」 중에서 삼십 년 만에 너는 말했다. 선생님 댁에서 먹었던 그 밥이 농아원 밥보다 맛있었다고. 삼십 년 전 선생님의 집에서 먹었던 그 따뜻한 밥에 ‘전율’했었다고. 너는 먹는 행위에 ‘전율’이란 표현을 썼다. 맞다. 먹는 행위는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먹었는지가 중요하지. 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너를 전율하게 했던 경험이었다. 너는 가끔 그 밥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난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울었다. 네가 그 밥을 추억하는 삼십 년 동안 난 여전히 음식을 가리고, 음식 앞에서 입 짧은 못난이 행세를 했거든. 그날 나는 너에게 고백했다. 정수야, 오늘은 네가 내 선생이다. --- 「정수야 정수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