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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제2부 제1장 밤 제2장 밤 제3장 결투 제4장 모든 이의 기대 제5장 축제 전야 제6장 표트르의 바쁜 하루 제7장 모임 제8장 이반 왕자 제9장 스쩨빤 뜨로피모비치의 가택수색 제10장 해적들, 운명의 아침 작가 소개 작가 연보 책 속의 역사 문화 산책 작품 해설 판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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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혁명의 설계자, 공허의 왕: 도스토옙스키 『악령 2』를 열다 『악령』은 위험한 책이다. 이 작품은 관념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잠식하고, 선한 의지가 어떻게 괴물을 낳으며, 사회가 어떻게 집단적 광기에 사로잡히는지를 병리학자의 메스처럼 냉정하고 집요하게 해부한다. 도스토옙스키는 19세기 러시아의 한 지방 소도시를 무대로, 20세기 전체주의의 끔찍한 비극을 예언했다.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인류 정신사에 대한 섬뜩한 경고문이다. 『악령 2』는 바로 그 경고가 현실이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의 심장부다. 1부에서 조용히 깔리던 불길한 전조들은 2부에서 마침내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되어 도시 전체를 집어삼킬 듯 위협한다. 여기서 우리는 두 명의 거대한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간 영혼의 드라마, 혹은 비극적 희극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혁명의 설계자 표트르 베르호벤스키와 공허의 왕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이다. 카오스의 연출가, 표트르 베르호벤스키 표트르 스테파노비치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 그는 악의 연출가이자, 혼돈의 프로듀서다. 그는 이념이나 신념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파괴 그 자체를 위해, 그리고 자신이 그 파괴의 중심에 서는 쾌감을 위해 움직인다. 그의 무기는 총이나 폭탄이 아니라 인간의 허영심, 나약함, 그리고 비밀이다. 그는 상대의 가장 깊은 욕망과 가장 수치스러운 비밀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해 상대를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든다. 『악령 2』에서 그의 천재적인 연출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는 스스로를 바보처럼 보이게 만드는 전술을 구사하며 사람들의 경계심을 무너뜨린다. 그는 스타브로긴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사실 여기 오면서 처음에는 침묵을 지킬까 생각했어. 하지만 침묵도 큰 재능이라서 내게는 맞지 않고, 둘째로 침묵은 어쨌든 위험하거든. 그래서 마침내 말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그러나 재능 없이 말하기로 결심했어. 즉, 아주 서둘러 설명하다가 결국 자신의 설명 속에서 스스로 헷갈리게 되어, 듣는 사람이 끝까지 듣지 못하고 어깨를 으쓱하며 떠나거나, 더 좋게는 침을 뱉으며 떠나게 하는 거야. 그러면 첫째로 자신의 순박함을 믿게 하고, 둘째로 사람들을 지루하게 하며, 셋째로 자신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들어 일석삼조야!" 이 얼마나 무서운 자기 분석인가. 그는 사람들을 조종하기 위해 기꺼이 경멸의 대상이 된다. 지사 부인 율리야 미하일로브나의 허영심을 부추겨 사교계의 중심으로 만들고, 아버지 스테판 트로피모비치의 감상적 나르시시즘을 자극해 그를 파멸로 이끌며, 카르마지노프 같은 대문호의 비겁함을 이용해 그의 지지를 얻어낸다. 그는 모든 관계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본다. 그에게 인간은 그저 체스판 위의 말에 불과하다. 공허의 왕, 니콜라이 스타브로긴 표트르가 혁명의 설계자라면,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은 그 혁명이 세우려는 공허의 왕이다. 그는 이 소설의 태양이지만, 빛을 발하는 태양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그는 압도적으로 매력적이고, 지적이며, 강인하지만 그의 내면은 텅 비어 있다.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신념과 회의 사이에서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그저 권태로운 유희로 모든 것을 대할 뿐이다. 이 공허함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힘이자 비극이다. 사람들은 그의 텅 빈 내면에 자신들의 이상과 욕망을 투사한다. 혁명가 샤토프는 그에게서 러시아를 구원할 메시아의 모습을 보고, 광신적 무신론자 키릴로프는 그에게서 신을 넘어선 '인신(人神)'의 가능성을 본다. 그리고 표트르 베르호벤스키는 바로 이 공허한 우상, 스타브로긴을 '이반 왕자'로 내세워 민중을 선동하고 대혼란을 일으키려 한다. 스타브로긴을 향한 표트르의 광적인 고백은 『악령』 전체의 핵심을 꿰뚫는다. "스타브로긴, 자네는 아름다워! ... 자네는 나의 우상이야! 자네는 아무도 해치지 않지만 모두가 자네를 미워해. 자네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지만 모두가 자네를 두려워해. 그게 좋아! ... 자네는 지도자고, 자네는 태양이며, 나는 자네의 벌레야." 이처럼 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어떤 의지도 갖지 못한 채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두 인물을 통해 이념이 아니라 의지의 부재와 왜곡된 의지가 어떻게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우스꽝스러운 혁명의 민낯 『악령 2』의 백미는 비르긴스키의 집에서 열리는 혁명가들의 비밀 모임 장면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장면을 통해 '위대한 대의'를 부르짖는 자들의 실체가 얼마나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지를 통렬하게 폭로한다. 그들은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모임이 회의인지 아닌지'를 두고 투표를 벌이며 쩔쩔매고, 인류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에서 연설가의 손톱 깎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인류의 10분의 9를 노예로 만들어 나머지 10분의 1에게 지상낙원을 선사하겠다는 '시갈료프주의'가 진지하게 논의되는 이 장면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무한한 자유에서 시작했는데 무한한 전제주의에 도달했다"는 시갈료프의 고백은 혁명 이데올로기가 필연적으로 전체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무서운 통찰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어릿광대들의 모습을 통해, 고상한 이념을 내세우는 혁명이란 결국 소수의 지적 오만과 다수의 어리석음,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무지가 결합된 거대한 사기극에 불과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왜 지금 『악령』을 읽어야 하는가 우리는 왜 150년 전 러시아의 한 지방 도시에서 벌어진 이 광란의 기록을 읽어야 하는가. 표트르 베르호벤스키가 꿈꿨던 세상은 우리와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중요한 힘 - 모든 것을 결속시키는 시멘트는 자신만의 의견을 갖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에요. 그것이야말로 힘이죠! ... 그들은 독창성을 수치로 생각해요."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유행하는 이념과 구호에 자신을 내맡기는 사람들, '좋아요'와 '공유'로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려는 군중,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에게 맹목적으로 열광하며 그를 '우상'으로 떠받드는 모습. 이 모든 것이 21세기 우리의 자화상은 아닌가.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은 단순한 고전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며, 우리 영혼을 검진하는 청진기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을 거치고 나면, 우리는 우리를 사로잡으려는 '악령'들의 정체를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거대한 혼돈의 서막이 오르는 『악령 2』의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문학이 가진 힘이며, 우리가 기꺼이 이 위험한 책을 손에 들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