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정끝별의 다른 상품
|
돈을 새처럼 풀어 주었더니 경기도 안성에서 쓴 돈이 제주도 한 술집에서 나에게 돌아왔다. 이렇게, 돌고 돌아서 돈이란다. ‘돈줄이 막힌다’, ‘돈줄이 탄다’, ‘돈독이 오른다’는 말은 돈이 돌지 못할 때의 악전고투를 이르는 말이다.
지혜로운 자는 돈을 풀어 되돌아오게 하고 돈으로 하여금 쫓아오도록 한다. 어리석은 자는 돈을 움켜쥐고 돈을 쫓아다닌다. 돈에 날개나 신발이나 바퀴 등을 그려 풀어 놓자. 그리고 기다려 보자, 돌고 돌다 어떤 모습으로 되돌아오는지를. 또 다른 감옥인 돈의 수레바퀴 안에는 어떤 인연의 사슬이 돌고 도는지를. -33쪽 밥값보다 싼 게 목숨값이고 밥값보다 비싼 게 커피값이고 술값인 세상이다. “돈과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살아” 간다면, “더 이상 인간에게서/ 성자가 나오지 않”(바다 의 성자)을 것이다. 비록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 주지 않”(술 한잔)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소나 염소들이 하는 꼴(여물)값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밥’처럼 뜨시뜨시하고 ‘값’처럼 값진, 인간 제 몫의 밥값을 하며 사는 날이기를. -35쪽 내가 아는 한 시인은 책장 맨 꼭대기에 우르르 꽂힌 《세계를 간다》 시리즈 중 ‘남아프리카’ 편에 10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숨겨 놓고 수시로 그 안위를 확인하느라 바쁘단다. 또 한 시인은 마누라 몰래 통장 하나를 꿰찼으나 좀체 쓸 데도 없고 차마 쓰지도 못해 6개월에 한 번씩 통장정리 해 보는 게 일이란다. 돈도 써 본 놈들이 쓰는 법이다. 있는 놈들이 더하 고, 가진 놈들이 더 무서운 까닭이다. 돈 앞에서 이 대책 없는 속수무책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시인들의 속수유책인지도 모른다. 시가 자본주의의 적n, 그것도 강적强n인 까닭이다. -91쪽 돈만 도는 게 아니다. 목숨이나 인연도 돌고 돈다. 전생에서 구걸을 하던 내가 이생에서는 적선을 하기도 하고, 과거의 내가 현재의 당신이 되기도 하고 미래의 그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오늘 내가 걸인에게 건네는 ‘지폐 몇 장’은 걸인이었을지도 모르는 전생의 나를 위한 것이다. 미래의 당신이 될지도 모르는 이생의 나를 위한 것이다. 세상 모든 선한 의도와 행위가 곧 스스로를 구제하는 일인 셈이다. 이 생과 저 생은 이어져 있고 너와 내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걸인을 위해 지폐를 몇 장을 남긴 ‘이유’가 ‘이러’했을 것이다. -117쪽 누군가는 함께 나누는 사랑을, 누군가는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또 누군가는 삶에 대한 만족감을 성공의 조건으로 정의했으나,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야말로 성공의 가장 확실한 조건임을 부인할 수 없는 시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총이나 돈이 아닌, 시와 음악을 꼽는 사람을 나는 여럿 알고 있다. 시와 음악이 있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말이다. -127쪽 아버지는 어디에서 시작되어 무엇으로 끝나는가 세상을 알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와 불화했다. 밥벌이를 시작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했고, 밥벌이에 좌절하면서 아버지를 용서했다. 그리고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야 아버지와 화해했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야 아버지를 사랑하게 됐다. 세상 모든 아버지는 돌아가신 뒤에야 완성되는 존재다. 아버지를 이어 살아 내면서 완성시켜야 하는 존재다. -147쪽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돈이 없는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다. 상품에 불과하다. 급기야는 제 피를 팔고 제 장기를 팔아야 하는 개인을 그 사회와 국가는 책임지지 못한다. “나라가 있어야 개인이 있는 것이”라는 말이 허울 좋은 허구에 불과한 이유다.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를 조금씩 떼어서 해외로 수출”할 수밖에 없는, 돈 없는 나라의 안녕을 글로벌 자본주의는 책임지지 못한다. 불평등과 매매가 만능인 시대를 걱정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니 돈으로 사지 못할 게 없는 사회에서 돈이 없는 사람들은 단 하나뿐이자 단 한 번뿐인 “자신의 생으로 뭔가를 증명해야”만 한다. 이 신자유-자본주의 화장실 벽에 “제일 싼팝니다,/ 자본주의 만세!”라고 쓰면서! -183쪽 돈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과 사회를 주조한다. 돈은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과 한패여야 하는 인간을 차가운 계산기로 만들곤 한다. 돈에 관해서라면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부모 형제는 물론 마누라나 친구도 버리게 만든다. 돈이 사람을 울리고 돈이 사람을 속인다. 마술사에게 조종당하는 뱀처럼 너나없이 돈의 최면에 들린 사람들에게 돈은, 정말 마술사 처럼 그 모든 것과 자유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그 모든 것에로의 자유’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리는 물어야 한다. “왜 나는 두개골로 말 하지 않고 돈으로 말하는가”(질문)라고. 왜 우리는 사람으로 말하지 않고 돈으로 말하는가라고. -185쪽 고쟁이든 몸뻬든, 속곳이든 쓰봉이든, 그 속주머니에 전 재산을 넣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마르고 거친 손으로 주섬주섬 그 속주머니를 뒤지곤 하는 엄마들이 있다. 돈이 멀리 있는 사람들일수록 그렇게 돈을 몸 한가운데 품고 산다. 그런 쓰봉 속 십만 원을 전 재산으로 남기고 가셨다니, 솜처럼 가볍게 새처럼 훨훨 날아가셨겠다. 이가 부러질 정도로 꽉 깨물었던이생의 고생과 고통 다 놓아 버리고 이승의 어둠 가뿐히 건너가셨겠다. 고요하고 거룩한 그 성탄의 밤하늘, 적막하고 막막하셨겠다. 따뜻하다고 말하고 싶은 이 낯익고 진솔한 풍경이라니……. -203쪽 혼자서는 제 몸 하나 껴안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껴안아 줘야 하는 존재다. 내가 너에게 중요하고 네가 나에게 필요하다는 걸 온몸으로 확인하는 행위, 네가 표현하지 못하는 네 외로움을 내가 공감하고 내 슬픔을 네가 위로해주는 행위가 ‘프리’ 허그Free Hug다. 말 그대로, 연대하는 ‘공짜’ 안아 주기다. 돈과 교환가치에 저항하는 맨몸의 역습이랄까. 그 안아주기가 “가시 많은 몸”을 단지 “끌어안고 울어 주는” 것에 불과하더라도. “쓰디쓴 희망”이 “식도를 넘어 우리들의 눈물이 될 뿐”이라도. ---본문 중에서 |
|
“왜 우리는 사람으로 말하지 않고 돈으로 말하는가”
정끝별 시인이 시를 통해 읽어 낸 자본주의의 증상들 돈에 속수무책인 시와 시인들의 속수유책들 ‘자본주의 바깥’ ‘돈의 바깥’에서의 사유, 그 작은 혁명들 돈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 삶은 얼마나 비루하고 염치없는 삶이겠는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 피지 않으랴》《시가 말을 걸어요》등을 펴내며 독자들에게 꾸준히 시로 말을 걸어 온 정끝별 시인이 ‘돈’과 ‘시’를 접목시켜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이야기한 시 해설 선집 《돈 시》가 마음의숲에서 출간되었다. ‘돈’과 ‘시’는 나란히 연결하기에는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두 단어이다. 가장 속된 것과 가장 순수한 것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돈’과 ‘시’는 닮은 점이 꽤 많다. 둘 다 ‘산다’라는 단어에서 출발한다는 점, ‘쓰다’로 인해 태어난다는 점이 그렇다. 정끝별 시인은 ‘돈’과 ‘시’라는 두 단어가 지닌 이러한 공통분모에서 우리 삶을 읽어 보고자 ‘돈-시’의 세계에 주목했다. 《돈 시》에 실린 66편의 시들은 ‘돈’으로 대표되는 우리 생활의 면면과 그로 인한 삶의 비애들, 나아가 현대사회의 단면들과 그것이 비추는 자본주의의 증상들을 담담하고도 뜨겁게, 압축적이지만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정끝별 시인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예리한 통찰력과 생활인으로서의 뜨거운 가슴으로, 양극단에 있는 두 단어 ‘돈’과 ‘시’를 한 몸으로 포개 놓았다. 동시가 아이들을 위한 시라면 ‘돈시’는 ‘돈에 울어 본’ 어른들을 위한 시이자 ‘세상 모든 것에 관한 시’이다 가장 속된 것과 가장 순수한 것이 만나 이루는 생활의 세계 유쾌하지만 슬프고, 절실하지만 느긋하게 펼쳐지는 ‘돈-시’의 세계! 우리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에서 한 단계 더 고착된 ‘호모 머니쿠스’다. 이런 시대일수록 돈으로 수렴되지 않는, 돈으로 환원될 수 없는 영역을 상상해 보는 것이야말로 작은 혁명이다. ‘자본주의의 바깥’ 아니 ‘돈의 바깥’에서 사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민주주의에 가까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돈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 삶은 얼마나 비루하고 염치없는 삶이겠는가. 돈-들이 출발하는 지점이다. _책을 펴내며 중에서 동시를 읽고 자라 마침내 어른이 되면 ‘돈-시’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지옥에 한번 다녀오”듯 출근하고 퇴근하는 삶(정호승, 밥값), “한 달 동안 몸 안의 소금기를 내주고 월급을 받는” 삶(윤성학, 소금 시), “아르바이트는 죽을 때까지만 하고 싶”은 삶(박후기, 아르바이트 소녀), “당겨쓴 카드빚과 텅 빈 통장을 생각하”는 삶(최금진, 팝니다, 연락주세요)이 바로 그것이다. 어째서 우리네 삶은 ‘돈’과 연결되는 순간 지질하고 궁상맞아지는가. 그럼에도 “나막신 하나 남 주고도 부자”인 삶(무산 조오현, 무산 심우도), “오마넌은 외상을 달아놓고, 그래도 딱 한 잔만 더” 마시는 삶(김사인, 봄밤), “걸인을 위해 몇 장의 지폐를 남”기는 삶(김선우, 이런 이유) 또한 우리네 삶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장 속된 ‘돈’이 가장 순수한 ‘시’를 만나는 지점이며, 유쾌하지만 슬프고, 절실하지만 느긋한 ‘돈-시’의 세계인 것이다. 《돈 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한 해 계절의 순환은 곧 인간사의 순환이고, 돌고 도는 ‘돈’의 순환이 그 속에 오롯이 들어 있다. 계절에 따라 삶의 풍경이 바뀌듯 돈의 흐름이 바뀌는 모습을 살펴보는 것 또한 이 책을 읽는 재미다. 겨우내 직업소개소를 찾아다니던 사람들이/ 벚나무 아래 노점을 차렸습니다/솜사탕 번데기 뻥튀기/ 벼라별 것들을 트럭에 다 옮겨 싣고/ 여의도광장까지 하얗게 치밀어 오르는 꽃들,// 보다 보다 못해 벚나무들이 나선 것입니다/ 벚나무들이 전국 체인망을 가동시킨 것입니다 (손택수, 벚나무 실업률) - 비 그치고/ 돈왔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거리로 흘러가고/ 그리고 시간 공장에서는// 하늘이 하늘 하늘/ 구름이 서늘 서늘// 비 그치고/ 돈 왔다/ (비 그치고/ 돈 왔다고/어느 TV가 재방송을 돌리고 있군요)// 비 그치고/ 돈 갑니다. (최승자, 비 그치고 돈 갑니다) - 개인이 겪는 슬픔 따윈 아무것도 아닌/다수의 다수를 위한 두루마리화장지처럼/계속 풀려나오는/ 누군가의 슬픈 낙서 앞에서/나라가 있어야 개인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말자/ 누가 나를 좀 팔아다오/ 나도 그에게로 가서/ 기꺼이 삼사만 원의 현찰이 되어줄 테니 (최금진, 팝니다, 연락주세요) -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고/얼마냐고 묻는 목소리에 눈이 묻는다/이천 원이라는 노파의 목소리에도,/콩알 섞인 함박눈을 비닐봉지에 털어넣는 노파가/ 받아 든 천 원짜리 지폐에도 눈이 묻는다// 멀리서 눈을 뒤집어쓴 버스가 오고/나와 눈과 비닐봉지는 눈 속을 펄럭이며 뛰어간다 (나희덕, 눈 묻은 손) 한국 문단의 대표 시인들, 자본주의의 강적으로서 시 속에 풀어 놓은 돈, 생활, 인생, 그리고 냉엄한 세상 드물게 돈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시이고, 드물게 돈으로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시이다. 그런 시에 인생을 거는 시인이란 대체로 돈 앞에서 무능하기 짝이 없고, 그럼에도 돈 앞에서 쉽사리 굽히지 않는다. 무능하기 때문에 무관해지고, 무관하기 때문에 무심해지고 자유로운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돈에 대해 속수무책인 시와 시인은, 자본주의의 적n이다. 그것도 강적强n이다. _책을 펴내며 중에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돈’이라는 현실의 문제로부터 초월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시인이기 이전에 생활인인 시인들 역시 다를 리 없겠으나, 시인들은 ‘시’를 통해 돈에 지배당하는 인간사를 관조하기에 일견 돈으로부터 초월해 있기도 하다. 시인이 아니면 그 누가 ‘돈’을 ‘노래’할 수 있을까. 생사가 걸린 문제이므로 시인에게도 돈은 절실하다. 하지만 시인의 생사를 쥐고 있는 것은 역시 ‘시’이기에 그들은 돈이라는 현실 앞에서도 꼿꼿하다. 내가 네 번째 감옥에서 나온 뒤/ 그러고도 연금당한 날/ 나는 열 살쯤의 아이로/ 돈 천 원짜리에 새 한 마리를 그렸다 (고은, 재회) - 내게 땅이 있다면/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다만 나팔꽃이 다 피었다 진 자리에/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안도현, 땅) - 돈이 많으면 쉬 늙고, 돈 없으면 없는 대로/ 인생이 간단하단 사실을 생각해 봐요/ 다들 돈의 감옥, 권태의 감옥으로/찰칵, 찰칵, 찰칵/ 스스로를 가두는 이기적인 힘에 끌려가죠 (신현림, 내가 못 본 이야기를 해 봐요) - 시를 쓰니 세상에 빚 갚는 것이고/의지할 시를 자식처럼 키우니 저축 아닌가/ 그래서 나는 절로 웃음이 난다네/ 시시시 가득한 통장에/마이너스는 없다네 (천양희, 시 통장) 시인들은 돈에 울고 웃는 평범한 일상 속의 풍경에서부터 시대와 세대의 풍경, 사회와 제도의 풍경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로부터 기인한 다채로운 장면과 현상들을 포착해 시 속에 담아낸다. 그 안에서 돈의 의미를 탐구하기도 하고,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기도 하며, 돈으로부터 해탈하는 삶을 노래하기도 한다. 시 속에서 시인들은 여느 부호 못지않게 돈을 마음껏 ‘쓴다’. 정끝별 시인은 시의 행과 행, 연과 연 사이에서 추임새를 넣으며 한발 앞서 달려 나가기도 하고, 평론가로서 해설과 해석의 틈새를 오가며 숨은 뜻을 풀어내기도 하고, 연구자로서 의미와 가치와 분석의 지점에서 생각을 모으기도 한다. 시의 결을 따라가며 돈에 대해 갈급해 하다가 자포자기하다가 한없이 느긋해지기도 한다. 해당 시인의 또 다른 시에서 절묘하게 대구를 이루는 구절들을 뽑아 함께 읽어 주는 대목 또한 해설에서 맛볼 수 있는 묘미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괴로운 것, 한없이 속되지만 끊임없이 목마른 것. 그러한 돈과 같이, 돈을 이야기하는 시들 역시 끝도 없이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처럼 읽는 이를 몇 번이고 들었다 놓는다. 시와 짝을 이루는 정끝별 시인의 해설은 촌철살인의 또 한 편의 ‘돈 시’로서 우리 삶의 맨 얼굴을, 날것의 인간사를 그대로 비춰 낸다. 그렇기에 《돈 시》는 사랑을 노래한 무수한 시들만큼이나 뜨겁다.또 아름답고도 슬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