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탱고, 그건 각자의 인생이지
2. 인생이 예측 가능하다는 생각, 이게 우리의 덫이야 3.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면 허구가 분명해 |
이상운의 다른 상품
|
지금 내가 그녀 곁에 있다는 것을. 내가 곁에 없을 때 조차도 우리는 늘 이 세계 속에 있다는 것을. 그녀도 나처럼 믿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말없이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수면제에 대해서, 그리고 수면제를 빼고 돌려준 핸드백에 대해서,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또 생각했다.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세계는 우리에게 더 큰 복수를 할지도 모른다. 이윽고 혜리는, 걷고 싶은데 괜챦으냐고 물었다. 나는, 좋다고 대답했다.
--- p.111 |
|
나는 혜리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서로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들은 숲 속의 아름다운 집에 산다. 동화적인 그 공간은 혜리가 잃어버린 시간의 그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불의의 사고로 얼굴이 상하고, 그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그의 상한 얼굴은 존재의 함정에 걸려든 자의 표지인지도 모른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그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남자의 흉측한 얼굴은 비유이리라. 여자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남자가, 아름다웠던 그 남자처럼 아름다운 남자가 다가왔을 때, 여자는 더욱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남자가 싸우기 시작한다. 모두가 비수를 준비하고 있다. 사랑이 죄가 되어버린다. 모두가 함정에 빠져버렸고, 모두가 미궁을 헤매고 있다. 숲 속의 집에서, 솔향기 가득한 아름다운 집에서, 세 사람이 함께 살 수는 없을까? 혜리는, 이 사랑의 이야기를, 혹은 죄의 이야기를, 혹은 미궁 같은 탐정 놀이를, 혹은 말 많은 이 침묵을 왜 내게 들려준 것일까?
--- pp.105-106 |
|
존재의 궁극성에 대한 물음 …
저토록 무한하게 큰 우주와 이토록 무한하게 작은 나란 도대체 무엇이며, 내가 현존하는 '지금 이곳'이라는 시공간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낯익으면서도 낯선 질문은, 신성한 전율과 평범한 일상의 절대적인 균열에서 솟아오른 질문이다. 어떻게 이 균열을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볼 것인가. 이 모색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이상운은 포스트모던 맥락에 걸맞는 문학적 전략을 생각해낸다. 지금은 돌아가 숨을 수도원도 없는 시대이며, 시장의 이데올로기가 삶의 깊숙한 곳까지 참견을 행사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상운은 산으로 가지 않고 포스트모던 난장에서 우주를 불러들인다. 극히 사소하고 통속적인 일상의 사건들을 통하여, 존재의 궁극성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는 연애소설과 탐정소설이라는 통속 이야기 틀을 해체하여,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의 궁극적 의미를 묻는 진지한 성찰의 장을 연출해내고 있다. 작금의 젊은 소설들이 소비주의로 침윤된 일상의 피상적 묘사에 머물고 있음을 생각할 때, 『탱고』가 제기하는 저 근본적 질문은 질문 그 자체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다.
『탱고』는 존재의 궁극성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다른 한편으로, 지리멸렬한 일상 속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 인간 삶의 역사성까지 읽어내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이상운은 90년대 문학을 '반성'하는 자리에 서 있다. 그는 몰역사적이며 탈정치적인 동세대의 작가들과는 분명한 변별성을 가지고 있다. 『탱고』는 단순한 소재의 차원이 아니라, 문학 '내부'의 방식으로 7,80년대를 반성하는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탱고』의 기본 줄거리인 남녀간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구윽성에 대한 질문과 연결될 뿐더러, 더 나아가서 지난 역사에 대한 반성(과 해석)의 과정이라는 알레고리로까지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탱고』는 현재의 대중 소비문화와 본격문학의 생산적 화해 가능성을 모색한 작품이기도 하다. 거칠게 말해서 '하향'평준화로 요약할 수 있는 대중소비문화 시대에 정통 본격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은 본격문학이 추구해온 주제와 소재가 현재의 문화소비자인 대중들에게 점점더 멀어져버릴 것이며, 본격문학 자신의 전통을 버리고 대중 편향으로 자세를 낮춘다면 대중문화의 가벼움 속으로 흡수되고 말 것이다. 『탱고』는 이러한 양 갈래 길의 공존을 모색해 본 작품이다. 즉, 대중적 장르인 '탐정소설'과 '연애소설'이라는 서사문법을 해체하여, '철학소설'과 '메타픽션'이라고 하는 본격문학으로 재생하면서, '나는 현재 어디에 서 있으며,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난 역사는 나에게 무엇이었던가' 따위의 문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극히 고상한 문화적 산물을 극히 통속적인 문화적 산물들과 나란히 놓아보면 대단히 생산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유사한 맥락에서 소설 『탱고』는 '시간과 실존과 역사와 이야기'라고 하는 매우 진지한 질문을 '교통사고와 우연한 만남과 출산시의 사망'이라는 매우 통속적인 소재와 연결지음으로써, 우리의 타성화된 의식에 생산적인 충격을 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