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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민족'이라는 신드롬
연표 1897~1945년까지의 사건들 1장 소화 11년(1936), 손기정 신드롬 불면의 광화문 호의 시대 그날 베를린은 무척 더웠다 "조선이 세계를 이겼다" 신드롬 신드롬 승리가 남긴 것 2장 운동장에서 민족을 만나다 조선이 암만 해도 나라가 되겠다. 왜? 축구를 잘 하니까 체육이 없인 애국 열성도 소용 없다 운동장 속 '상상의 공동체' 경기장 밖 경기, 패싸움 기억력 좋은 관중 "조선인, 해부학적으로 야만인" 세계로, 세계로 3장 봉건의 썰물과 근대의 밀물이 해일을 일으키다 1926년 봄, 마지막 왕의 죽음 슬픔의 성격 1926년 6월의 인간 네트워크와 투쟁 6월 10일 표상을 둘러싼 투쟁 4장 파시즘, 조선과 일본을 집어삼키다 1930년대로 일장기 말소사건 일본, 파시즘이라는 악질에 걸리다 8월 26일, 폭우 전후 돌아선 조선 총독부 뜨거운 감자, 손기정 5장 스포츠의 죽음, 민족의 일시 사망 소화 12년 새 아침 이상의 1937년 종말의 풍경들 파시즘, 스포츠를 '민족'의 손에서 압수하다 식민지 근대성의 전회 죽은 '개구리'를 애도함 에필로그 그 신드롬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주석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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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밤에도 광화문은 잠들지 못했다
---조선영(ssct@yes24.com)
1936년 8월, 식민지의 조선인들은 비 내리는 광화문통에 모여 올림픽 실황 라디오 중계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베를린 마라톤에 출전한 손기정 선수를 응원하고 있었다. 마침내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 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는 승전보가 전해지고, 사람들의 입에서는 '손기정군 만세'에 이어 위험하고도 상징적인 '조선 만세'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2002년 6월에도 광화문통을 붉게 물들인 사람들이 박지성의 슛과 홍명보의 미소에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던 것처럼.
『끝나지 않는 신드롬』은 1926년 순종 인산과 6.10 만세운동, 그리고 1936년 손기정의 베를린 마라톤 우승과 일장기 말소 사건을 중심으로 '그때 그 사람들'의 일상을 손에 잡힐 듯 그려내고 있는 책이다. 또한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스포츠 민족주의'가 어떻게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지를 한 축으로 하여, '민족'이라는 20세기 근대 발명품의 허구를 들여다 보는 책이기도 하다. 일본에 의한 식민 지배는 근대를 살던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충격적이고 수치스러운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엽전은 어쩔 수 없다'라고 자조적으로 비아냥거리며 열등의식에 빠져들었다. 근대 스포츠는 국민국가 만들기와 제국주의 강화의 욕망을 실현하는 충실한 도구로 자리잡으며, 이러한 국민적 열등감을 증오와 우월감으로 환치시켜주었다. 피지배자인 '조센징'과 지배자인 '쪽발이'는 곧 운동장에서도 서로가 서로의 숙적임을 금새 알게 되었으며, 축구와 달리기, 야구 등의 경기는 곧잘 인종적 갈등으로 변질되곤 하였다. 비록 지금은 지배를 받고 있으되, 일본을 무릎꿇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스포츠 경기뿐이라고 조선인들은 믿었다. 그렇기에 '그때 그 사람들'은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서양인보다 더 우월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준 엄복동을 사랑하고 스포츠가 가져다주는 승리에 환호했다. 그러던 차에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이 5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26년 4월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은 유례없는 애도의 물결로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이미 식민지배가 시작된 지도 16년이 흐른 후 망한 나라의 힘없던 임금의 죽음이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계기로 비로소 '망국'을 느끼고 조선 민족의 비애를 절감하게 된 것이다. 6월 10일, 순종 인산일은 장례 행렬을 보기위해 모인 군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으며, 흰색 광목과 모시의 소비가 급증할만큼 추모를 위한 흰색 옷이 하나의 유행이 되어버렸다. 저자는 이 사건을 통해 '만인이 만인의 움직임을 알고, 만인의 움직임이 다시 만인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공간이 이 해에 활짝 열렸다'라고 말한다. '대중'의 존재를 증명했던 1926년의 이 신드롬은 1936년 손기정 선수의 우승으로 마침내 최종 완성되었다. 이 대단한 사건 앞에선 소록도의 나병환자부터 도시의 부르주아지, 수많은 근대 지식인들도 자신을 잊고 '우리는 하나'가 되어 열광한다. 신문과 방송은 연일 이 소식을 전하고, 많은 이들은 이에 열광한다. 우리도 할 수 있구나! 우리도 비로소 일본인 서양인과 동등한 존재가 되었구나! 초이성적이며 비합리적인 우월감, 그리고 열등감이 범벅되어 나타나는 이 신드롬에는 대중의 열망이 들어있다. 허나 그 뒤에는 음험한 국가이성과 냉철한 자본의 논리가 움직이고 있다. 손기정의 우승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책은 일본의 식민 지배 논리와 자본의 논리가 얽혀서 맞물리는 '일장기 말소사건'과 언론 탄압들까지 종횡무진 누비며 당시에 완성된 '스포츠 민족주의-신드롬'이 2002년의 광화문, 오늘날의 축구 감독 경질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다. 과연 인문서의 저자에도 '이야기꾼'이라는 수사를 붙여주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으나, 천정환은 좋은 이야기꾼이다. 부분부분 소설의 형식을 적절히 차용하기도 하고, 신문 기사를 인용하는 등 다양하고도 1930년대 식민지 조선 사람들의 일상을 마치 어제 있었던 것처럼 섬세한 결로 복원해냈다. 아쉬운 점은, '스포츠 민족주의'에 관한 책이라는 것을 제목이나 부제에서 좀 더 명확하게 드러냈더라면 하는 점이다. '끝나지 않는 신드롬'이라는 제목에 '친일과 반일을 넘어선 식민지 시대 다시 읽기'라는 부제는 이 책을 그저 그런 식민지 시대를 그린 역사서로 보이게 한다. 이 흥미로운 내용을 좀 더 알려줄 수 있는 제목과 표지였더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