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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마을/메아리/실비명/전황당인보기/젊은 느티나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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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소설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간행사

김이석
「실비명(失碑銘)」
「뻐꾸기」

최인욱
「개나리」

손소희
「전말」

유주현
「장씨 일가」

정한숙
「전황당인보기(田黃堂印譜記)」

오영수
「갯마을」
「메아리」
「후일담」

강신재
「젊은 느티나무」

이메일 해설_양윤복·서영인
낱말풀이

저자 소개 3

KANG,SHIN-JAE,康信哉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공부했다.1949년에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소설 「얼굴」, 「정순이」를 「문예」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1959년 단편 소설 「절벽」으로 한국문인협회상을 수상했다. 『젊은 느티나무』등 당시로는 파격적인 불륜을 그린 수많은 애정소설을 발표하여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1967년 장편 소설 『이 찬란한 슬픔을』로 여류문학상을 받았고, 1984년에는 장편 소설 『사도세자빈』으로 중앙문화대상, 1988년에는 같은 작품으로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작품경향은 '임진강의 민들레'(1962), '파도'(1963)에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공부했다.1949년에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소설 「얼굴」, 「정순이」를 「문예」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1959년 단편 소설 「절벽」으로 한국문인협회상을 수상했다. 『젊은 느티나무』등 당시로는 파격적인 불륜을 그린 수많은 애정소설을 발표하여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1967년 장편 소설 『이 찬란한 슬픔을』로 여류문학상을 받았고, 1984년에는 장편 소설 『사도세자빈』으로 중앙문화대상, 1988년에는 같은 작품으로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작품경향은 '임진강의 민들레'(1962), '파도'(1963)에 이르면 사회와 현실문제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주로 여성들의 운명적 불행과 비극적 삶을 형상화하였는데, 다양한 형태의 비극을 역설적인 아름다움과 연결시키고 있다. 주제의 다변화, 상징성, 감각적인 문체의 사용 등으로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소설은 주로 불륜과 삼각관계 등 사회적인 인습을 뛰어넘는 애정관계를 통해 사랑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녀의 심리를 감각적이고 신선한 문체로 표현하여 대중소설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작으로 『명성황후』(전3권), 『젊은 느티나무』등이 있으며, 한국문학가 협회상, 제3회 여류문학상, 중앙문화대상, 예술원상 , 삼일문화상을 수상하였다. 2001년 5월 12일 7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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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漢淑, 일오(一梧)

일오(一悟) 정한숙(鄭漢淑, 1922∼1997)은 1922년 11월 3일 평북 영변군 영변면에서 부 정이석 씨와 모 박병렬 씨의 차남으로 태어난다. 기독교 가풍(家風) 속에서 성장하며, 중학 시절 춘원의 인도주의적 작품에 감동을 받고 소설가를 지망한다. 영변 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방랑 생활을 한다. 1945년 징용을 피해 국경 지대인 만포와 강계에 있다가 해방을 맞는다. 1946년 단신 월남해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고, 1947년 전광용, 정한모, 전영경 등과 《주막(酒幕)》 동인을 조직한다. 1948년 3월 〈흉가〉를 《예술조선》에 발표해 등단하고, 1950년
일오(一悟) 정한숙(鄭漢淑, 1922∼1997)은 1922년 11월 3일 평북 영변군 영변면에서 부 정이석 씨와 모 박병렬 씨의 차남으로 태어난다. 기독교 가풍(家風) 속에서 성장하며, 중학 시절 춘원의 인도주의적 작품에 감동을 받고 소설가를 지망한다. 영변 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방랑 생활을 한다. 1945년 징용을 피해 국경 지대인 만포와 강계에 있다가 해방을 맞는다. 1946년 단신 월남해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고, 1947년 전광용, 정한모, 전영경 등과 《주막(酒幕)》 동인을 조직한다.

1948년 3월 〈흉가〉를 《예술조선》에 발표해 등단하고, 1950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6·25가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해 중앙대학교에서 ‘소설창작론’을 강의한다. 1952년부터 휘문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ADAM의 행로〉(《신생공론》 7, 1952년 12월), 〈배신〉(《조선일보》, 1953년) 등을 발표한다. 1955년 1월 〈전황당인보기〉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이후 매달 《주막》 동인의 합평회를 갖는다. 이 합평회는 1970년대 중반까지 20여 년 동안 지속된다. 1955년 〈금당벽화〉(《사상계》 24, 7월), 〈묘안묘심〉(《문학예술》 5, 8월), 장편 《황진이》(《한국일보》, 8∼9월) 등을 발표하고, 1956년 〈고가〉(《문학예술》 16, 7월), 〈예성강곡〉(《현대문학》 21, 9월) 등을 발표한다.

1957년 고려대학교 문리대 조교수가 되고, 소설집 《애정시대》를 정음사에서 간행한다. 장편 《암흑의 계절》(《문학예술》 23∼28, 3∼8월), 〈수인공화국〉(《자유문학》 9, 12월) 등을 발표하고, 1958년 단편집 《묘안묘심》과 《황진이》를 정음사에서 간행한다. 장편 《암흑의 계절》로 제1회 내성문학상을 수상한다. 장편 《처용랑》(《경향신문》, 1958년 4월∼1959년 4월), 〈낙산방춘사〉(《사상계》 60, 7월) 등을 발표하고, 1959년 장편 《암흑의 계절》, 단편집 《내 사랑의 편력》을 현문사에서 간행하고, 《바다의 왕자》(《경향신문》, 1960년 4월∼1961년 6월) 등을 발표한다. 1960년 〈IYEU도〉(《자유문학》 45, 12월)를 발표하고, 1962년 장편 《끊어진 다리》를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한다. 1963년 〈닭장 관리〉(《현대문학》 101, 5월), 〈쌍화점〉(《현대문학》 105, 9월) 등을 발표한다.

1964년 고려대학교 문리대 교수가 되고, 〈훈장〉(《세대》 8, 1월), 〈만나가 나리는 땅〉(《현대문학》 113, 5월) 등을 발표하며, 1966년 장편 《우린 서로 닮았다》를 동민문화사에서 간행하고, 〈누항곡〉(《현대문학》 136, 4월), 〈히모도 손징 화백〉(《문학》 2, 6월)을 발표한다. 1969년 고려대학교 교양학부장이 되고, 장편 《논개》(《한국일보》, 9월∼1972년 9월), 〈백자도공 최술〉(《현대문학》 180, 12월)을 발표하며, 1970년 〈거문고 산조〉(《현대문학》 190, 10월)를 발표한다. 1971년 〈밀렵기〉(《현대문학》 196, 4월), 〈새벽 소묘〉(《현대문학》 202, 10월), 〈금어〉(《지성》 1, 11월) 등을 발표하고, 1973년 저서 《현대한국소설론》, 《소설문장론》을 고려대 출판부에서 간행한다. 1974년 〈산동반점〉(《문학사상》 20, 5월), 〈맥주홀 OB키〉(《월간문학》 65, 7월), 〈어두일미〉(《신동아》 124, 12월) 등을 발표하고, 1975년 저서 《소설기술론》, 《한국문학의 주변》을 고려대 출판부에서 간행한다.

1976년 고려대학교 사범대학장이 되고, 장편 《조용한 아침》을 청림사에서 간행하며 저서 《현대한국작가론》을 고려대 출판부에서 간행한다. 1978년 〈입석기〉(《소설문예》), 1979년 〈거리〉(《현대문학》 295, 7월), 1980년 〈수탉〉(《소설문학》, 6월) 등을 발표하고, 저서 《해방문단사》를 고려대 출판부에서 간행한다. 1981년 단편집 《거문고 산조》를 예성사에서 간행하고, 1982년 〈성북구 성북동〉(《한국문학》 100, 2월) 등을 발표하며, 저서 《현대한국문학사》를 고려대 출판부에서 간행한다.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이 되고, 제1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한다. 단편집 《안개 거리》를 정음사에서 간행하고, 〈소설가 석운 선생〉(《월간문학》 169, 3월) 등을 발표하며, 1984년 〈E. T.〉(《현대문학》 353, 5월) 등을 발표한다. 1985년 소설집 《말이 있는 팬터마임》을 대학문화에서 간행하고, 〈편지〉(《현대문학》 364, 4월) 등을 발표한다.

1986년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하고, 〈그러고 30년〉(《현대문학》 377, 5월), 〈대학로 축제〉(《한국문학》 152, 6월), 〈창녀와 복권〉(《동서문학》 149, 12월) 등을 발표한다. 1987년 작품집 《대학로 축제》를 문학사상사에서 간행하며,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로 정년 퇴임한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대표위원을 역임한다. 1988년 3·1문화상을 수상하고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이 되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는다. 〈유혹〉(《월간문학》, 3월), 〈습작기〉(《문학사상》 186, 4월) 등을 발표하고, 1989년 수필집 《잠든 숲 속 걸으면》을 문학사상사에서 간행하며, 〈자화상〉(《문학정신》 33, 6월), 〈귀울림〉(《한국문학》 148, 10월) 등을 발표한다. 199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이 되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지낸다. 1997년 9월 17일 숙환으로 별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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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은 1921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다. 조부 세열씨는 성리학자로 인근에 이름이 높았는데 항일의병운동에도 참가한 애국자였다. 어렸을 때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우면서 들은 이야기는 훗날 『조선총독부』와 『대한제국』의 밑거름이 된다. 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원산 청진 등을 방랑하다 일본 동경으로 건나가 고학하면서 와세다 대학교 전문부를 다녔다. 졸업을 하지 못하고 귀국한 이후 소설 쓰기에 매진하면서『백민』, 『번요의 거리』로 등단한다. 6.25전쟁때는 국방부 편집실 편수관이 되어 『국방』기관지를 편집하였고, 1.4후퇴때는 『창공』공군문인단 기관지를 만들기도 했다. 195
유주현은 1921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다. 조부 세열씨는 성리학자로 인근에 이름이 높았는데 항일의병운동에도 참가한 애국자였다. 어렸을 때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우면서 들은 이야기는 훗날 『조선총독부』와 『대한제국』의 밑거름이 된다. 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원산 청진 등을 방랑하다 일본 동경으로 건나가 고학하면서 와세다 대학교 전문부를 다녔다. 졸업을 하지 못하고 귀국한 이후 소설 쓰기에 매진하면서『백민』, 『번요의 거리』로 등단한다.

6.25전쟁때는 국방부 편집실 편수관이 되어 『국방』기관지를 편집하였고, 1.4후퇴때는 『창공』공군문인단 기관지를 만들기도 했다. 1954년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오면서부터 그는 전업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바람, 옥문을 열어라』, 『신태양』을 이해 연재하면서 그는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문연재작가로 이름을 떨친다. 이 기간동안 그는 20여편이 넘는 장편소설을 신문과 문예지에 연재하게 된다. 1974년부터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후학양성에 노력한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하고 1978년 척추골절로 병상에 누우면서 교수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1982년 5월 26일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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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07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454g | 148*210*30mm
ISBN13
978893646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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