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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토신역 부 안설 맹자집주 懸吐新譯 附 按說 孟子集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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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경사연구소 국역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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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간행사
추천사
이 책을 내면서

序說
梁惠王章句 上
梁惠王章句 下
公孫丑章句 上
公孫丑章句 下
?文公章句 上
?文公章句 下
離婁章句 上
離婁章句 下
萬章章句 上
萬章章句 下
告子章句 上
告子章句 下
盡心章句 上
盡心章句 下

朝鮮朝 內閣本 銅活字 刊行 來歷
跋文
편집후기

저자 소개 1

충남(忠南) 예산(禮山)에서 태어나셨다. 가정에서 부친 월산공(月山公)으로부터 한문을 수학하셨고, 월곡(月谷) 황경연(黃璟淵), 서암(瑞巖) 김희진(金熙鎭) 선생으로부터 사사했다. 민족문화추진회 부설 국역연수원 연수부 수료,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한문교육과를 수료하였고,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명예교수, 전통문화연구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사단법인 해동경사연구소 소장을 역임 중이다. 사서집주(四書集註), 『시경집전(詩經集傳)』, 『서경집전(書經集傳)』, 『주역전의(周易傳義)』, 『고문 진보(古文眞寶)』,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심경부주(心經附註)』, 『통감절요(通鑑節
충남(忠南) 예산(禮山)에서 태어나셨다. 가정에서 부친 월산공(月山公)으로부터 한문을 수학하셨고, 월곡(月谷) 황경연(黃璟淵), 서암(瑞巖) 김희진(金熙鎭) 선생으로부터 사사했다. 민족문화추진회 부설 국역연수원 연수부 수료,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한문교육과를 수료하였고,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명예교수, 전통문화연구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사단법인 해동경사연구소 소장을 역임 중이다.
사서집주(四書集註), 『시경집전(詩經集傳)』, 『서경집전(書經集傳)』, 『주역전의(周易傳義)』, 『고문
진보(古文眞寶)』,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심경부주(心經附註)』, 『통감절요(通鑑節要)』, 『당
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 소식(蘇軾)』, 『고봉집(高峰集)』, 『독곡집(獨谷集)』,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송자대전(宋子大全)』, 『약천집(藥泉集)』, 『양천세고(陽川世稿)』, ??우계집(牛溪集)??, 『여헌집(旅軒集)』, 『율곡전서(栗谷全書)』, 『잠암선생일고(潛庵先生逸稿)』, 『존재집(存齋集)』, 『퇴계전서(退溪全書)』, 『부안설 논어집주(附按說 論語集註)』, 『부안설 맹자집주(附按說 孟子集註)』, 『부 안설 대학·중용집주(附按說 大學·中庸集註)』, 『배우고 익히는 논어(전3권)』, 『최신판 논어집주(論語集註)』, 『최신판 맹자집주(孟子集註)』, 『최신판 대학·중용집주(大學·中庸集註)』, 『조선후기 한문비평(전2권)』 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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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11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928쪽 | 190*255*40mm
ISBN13
9788997970124

책 속으로

■ 狗?食人食而不知檢하며 塗有餓莩而不知發하고 人死어든 則曰 非我也라 歲也라하나니 是何異於刺(척)人而殺之曰 非我也라 兵也리오 王無罪歲하시면 斯天下之民이 至焉하리이다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것(양식)을 먹는데도 단속할 줄 모르며, 길에 굶어 죽은 시체
가 있어도 창고를 열 줄 모르고, 사람들이 굶어 죽으면 군주가 말하기를 ‘내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요 年事 때문이다.’ 하니, 이 어찌 사람을 찔러 죽이고서 ‘내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요 병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王께서 年事에 죄를 돌리
지 않으시면 天下의 백성들이 〈魏나라로〉 올 것입니다.”

【按說】‘‘檢’에 대하여, 朱子는 檢束 즉 제재의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趙岐는

임금이 단지 개와 돼지만을 길러 사람의 먹을 것을 먹게 하고, 法度(制度)로 〈남는 곡식을〉 거두어들일 줄 모르는 것이다.〔人君但養狗? 使食人食 不 知以法度檢斂也〕

하였으며, 《漢書》〈食貨志〉에도

孟子도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것을 먹는데도 거두어들일 줄 모르는 것을 비난하였다.〔孟子亦非狗?食人之食不知斂〕

하여 ‘檢’이 ‘斂’으로 되어 있다. 茶山은

개나 돼지가 사람의 먹을 것을 먹는 것은 풍년이고,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는 것은 흉년이다.……趙岐의 舊說에 ‘檢’을 ‘斂(거두다)’이라 하였으니, 이것은 옳으나 임금이 개와 돼지를 기른다고 한 것은 잘못이다. 이는 〈아래 4장의〉 ‘〈임금의〉 푸줏간에는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다.’와는 뜻이 다르다.〔狗?食人食 ?年也 塗有餓莩 凶年也……舊說以檢爲斂 此則是矣 但云人君養狗?非矣 此與?有肥肉 廐有肥馬 意不同〕

하였다. 楊伯峻은 ‘檢’을 ‘斂’으로 보는 해석에 대해 李?가 말한 平?(官에서 풍년에 적절한 가격〔平價〕으로 식량을 구입?저장해 두어 흉년에 대비하는 것)과 같은 뜻이니, 閻若?의 《四書釋地三續》에

옛날에 비록 풍년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먹는 것으로 개와 돼지를 먹이는 경우는 없었다. ‘狗?食人食’은 아래 章의 ‘〈임금의〉 푸줏간에는 살진 고기가 있다.〔?有肥肉〕’의 뜻이다.

라고 한 說이 따를 만하다고 하여, 朱子처럼 ‘檢’을 ‘제재하다’의 뜻으로 해석하였다.
‘檢’을 ‘斂’의 뜻으로 보아 풍년에 곡식을 거두고 흉년에 흩어주는 것으로 보는 해석은 얼핏 보기에 매우 편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이 역시 시행하기 어려운 제도이다. 아래 〈梁惠王下〉 17장 章下註에 范祖禹가 말한 “倉?과 府庫가 있는 것은 백성을 위한 것이다. ?年에는 거두고 凶年에는 흩어 준다.” 한 것도 그 제도가 확실하지 않으니, 公田의 수입만을 거두어 보관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본인은 1965년부터 1976년까지 대략 12년 동안 직접 농사를 지으며 농촌지도자(자원봉사자)로서 활약하였는데, 당시 작농하는 규모가 3,000평 미만이었는데도 농한기가 거의 없었다. 가을 수확이 11월까지 이어지고, 農地稅와 水稅 등 국가에 납부해야 할 세금은 의무적으로 현물인 租穀(벼 1가마 54kg)으로 납부하였는데, 조곡을 그냥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건조율이 수분 14% 이내가 되어야 했다. 곡식을 이처럼 건조시키지 않으면 장기간 보관할 경우 부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겨울 날씨에는 며칠을 말려도 이 수준이 되지 않으며, 마을에 창고가 없어 면사무소가 있는 곳까지 정해진 날짜에 맞추어 지게로 지고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합격하지 못하면 다시 되짊어지고 와야 했다. 또한 군량 등 비축미를 위하여 정부에서 租穀을 똑같은 방식으로 ‘買上’이란 이름으로 수매하였는데, 정부의 매입 가격이 시중의 쌀값보다 결코 낮지 않았는데도 농민들이 매상에 호응하지 않아 면사무소와 농촌지도소의 직원들이 본인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하여 매상에 응할 것을 권유한 일이 있었다. 보관창고와 수송 수단이 원만하지 못했을 당시 풍년에 곡식을 거둔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강제성을 띠면 아전들의 무리한 독려가 이어져 민원이 발생하고, 자율에 맡기면 호응하는 자가 적음은 明若觀火하다. 더구나 옛날 추수가 끝나면 띠풀을 베어다가 지붕을 해 이고 군사훈련과 교량 등 토목공사의 부역이 뒤따름에 있어서랴.
--- p.51~54


■ 惻隱之心은 仁之端也요 羞惡之心은 義之端也요 辭讓之心은 禮之端也요 是非之心은 知(智)之端也니라

惻隱之心은 仁의 단서요, 羞惡之心은 義의 단서요, 辭讓之心은 禮의 단서요, 是非之心은 智의 단서이다.

【按說】‘端’에 대하여 趙岐는

‘端’은 首(시작점, 첫머리)이다. 사람은 모두 仁·義·禮·智의 首가 있어 끌어내어 쓸 수 있는 것이다.〔端者 首也 人皆有仁義禮智之首 可引用之〕

하였는바, 이는 惻隱·羞惡·辭讓·是非의 마음을 仁·義·禮·智의 근원으로 본 것이다. 반면 朱子는 ‘端’을 ‘가운데에서 밖으로 나온 실마리’라고 해석하였는데, 潛室陳氏(陳埴)는 이를 다음과 같이 부연하였다.

‘端’이란 단서이니, 물건의 실마리이다. 누에고치의 실에 비유하면, 밖에 한 가닥의 실마리가 있으면 곧 안에 한 덩어리의 실이 있음을 알 수 있으니, 만약 안에 실이 없다면 실마리가 어떻게 밖에 나올 수 있겠는가.〔端者 端倪也 物之?也 譬之繭絲 外有一條? 便知得內有一團絲 若其無絲在內 則?何由而見於外〕

茶山은 이 가운데 趙岐의 註를 취하여 ‘惻隱·羞惡·辭讓·是非의 마음이 발현된 것을 끌어내어 확장하는 것이 仁·義·禮·智를 행하는 시작’이라고 보았으며, 또 朱子와 달리 仁·義·禮·智를 性으로 보지 않았는데,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仁·義·禮·智의 명칭은 일을 행한 뒤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랑한 뒤에 이것을 仁이라고 하니, 사람을 사랑하기 이전에는 仁이라는 명칭이 성립되지 않는다.……어찌 仁·義·禮·智의 네 덩어리가 분명하게 있어 복숭아와 살구의 씨처럼 사람의 마음속에 잠복해 있겠는가.……仁·義·禮·智를 행하여 이룰 수 있음을 알면, 열심히 노력하여 그 德을 이루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仁·義·禮·智를 本心의 온전한 德으로 알면, 사람이 할 일은 다만 面壁하여 마음을 바라보고 自我를 성찰하여 이 心體를 虛明하고 환히 통하게 해서 어렴풋한 仁·義·禮·智 네 덩어리가 있는 것을 마치 본 것처럼 여기고서, 자신의 涵養을 받아들일 뿐일 것이니, 이것이 어찌 先聖이 힘쓰신 바이겠는가.……有子는 “孝와 弟는 아마도 仁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 하였고, 孔子는 “仁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하셨고, 曾子는 “당당하구나, 子張이여. 함께 仁을 하기 어렵도다.” 하였으니, 仁이 본래 안에 있는 理라면 어찌 ‘仁을 한다〔爲仁〕’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爲’는 作과 같으니, 힘을 써서 일을 행하는 것을 爲라 이르고, 착수하여 功業을 도모하는 것을 爲라 이르니, 마음속에 있는 理에 어찌 착수하여 힘을 쓰겠는가. 총괄하건대, ‘端’은 ‘始(시작)’이다. 사물의 본말을 兩端이라고 한다. 그러나 반드시 시작하는 것을 端이라 하였으므로, 《中庸》에 ‘君子의 道는 夫婦에서 시작되니〔造端〕,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天地에 밝게 드러난다.’ 하였으니, 端이 시작이 됨이 이미 명백하지 않은가.……惻隱之心이 마음속에서 발현된 것을 끌어내어 확장하면 仁政을 행할 수 있으니 惻隱之心이 仁政이 시작되는 바가 아니겠는가. 辭讓之心이 마음속에서 발현된 것을 끌어내어 확장하면 禮法을 행할 수 있으니 辭讓之心이 禮法이 시작되는 바가 아니겠는가.……四端의 뜻은 孟子가 직접 스스로 註를 내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며 샘물이 처음 나오는 것과 같다.’고 하셨으니, 두 개의 ‘始’字가 우뚝하여 ‘端’이 시작이 됨이 또한 이미 분명하다. 四端은 仁·義·禮·智의 네 가지 일에 근본이 되므로 聖人이 사람을 가르칠 적에 이로부터 공부를 시작하고 이로부터 기초를 닦아 확충하게 하였다. 만약 四端의 이면에 또다시 이른바 仁·義·禮·智라는 것이 있어 은연히 잠복하여 주인이 된다면, 이는 孟子의 확충 공부가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잡으며, 머리를 놓아두고 꼬리를 잡은 것이다.〔仁義禮智之名 成於行事之後 故愛人而後謂之仁 愛人之先 仁之名未立也……豈有仁義禮智四顆 磊磊落落 如桃仁杏仁 伏於人心之中者乎……仁義禮智 知可以行事而成之 則人莫不?焉?? 冀成其德 仁義禮智 知以爲本心之全德 則人之職業 但當向壁觀心 回光反照 使此心體 虛明洞澈 若見有仁義禮智四顆 依??? 受我之涵養而已 斯豈先聖之所務乎……有子曰 孝弟也者 其爲仁之本 孔子曰 爲仁由己 曾子曰 堂堂乎張也 難與竝爲仁矣 仁本在內之理 則何以謂之爲仁 爲猶作也 用力行事之謂爲也 著手圖功之謂爲也 在心之理 何以著手而用力乎 總之 端也者 始也 物之本末 謂之兩端 然猶必以始起者爲端 故中庸曰 君子之道 造端乎夫婦 及其至也 察乎天地 端之爲始 不旣明乎……惻隱之心 發于內 引而長之 則可以行仁政 惻隱之心 非仁政之所始乎 辭讓之心 發于內 引而長之 則可以行禮法 辭讓之心 非禮法之所始乎……四端之義 孟子親自注之曰 若火之始然 泉之始達 兩箇始字 磊磊落落 端之爲始 亦旣明矣 四端爲四事之本 故聖人敎人 自此起功 自此肇基 使之擴而充之 若於四端裏面 又有所謂仁義禮智者 隱然潛伏 爲之奧主 則是孟子擴充之功 舍其本而操其末 放其頭而捉其尾〕
하였다. 茶山은 仁義禮智를 本性으로 보지 않고 단지 嗜好나 行爲로만 인식하였다. 그의 이러한 見解는 여러 곳에 자주 보이는바, 이미 《論語》〈學而〉와 〈이 책에 대하여〉에서 옳지 않음을 밝혔으므로 여기에서는 再論하지 않는다.

--- p.221~223


■ 萬章曰 父母愛之어시든 喜而不忘하고 父母惡(오)之어시든 勞而不怨이니 然則舜은 怨乎잇가 曰 長息이 問於公明高曰 舜이 往于田은 則吾旣得聞命矣어니와 號泣于旻天과 于父母는 則吾不知也로이다 公明高曰 是는 非爾所知也라하니 夫公明高는 以孝子之心이 爲不若是恝이라 我竭力耕田하여 共(恭)爲子職而已矣니 父母之不我愛는 於我에 何哉오하니라

萬章이 말하였다. “父母가 사랑하시거든 기뻐하여 잊지 않고, 父母가 미워하시거든 더욱 노력하고 원망하지 않아야 하니, 그렇다면 舜은 원망하셨습니까?”
孟子께서 말씀하셨다. “長息이 公明高에게 묻기를 ‘舜이 밭에 간 이유는 제가 이미 가르침을 들었지만 旻天과 父母에게 號泣한 것은 제가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자, 公明高가 말하기를 ‘이것은 네가 알 바가 아니다.’ 하였으니, 저 公明高는 생각하기를 ‘효자의 마음은 이처럼 무관심할 수 없다. 나는 힘을 다해 밭을 갈아 공손히 자식이 된 직분을 할 따름이니, 부모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음은 나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인가.’라고 여긴 것이다.

【按說】‘於我何哉’에 대하여, 《集註》에는 ‘나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인가.’로 해석하였으나 茶山은 ‘나에게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로 해석하였다. 이는 앞의 ‘孝子의 마음은 이와 같이 무관심할 수 없다.’고 한 말을 이어 받은 것으로 “효자의 마음은 이와 같이 무관심할 수가 없다. ‘나는 힘을 다해 밭을 갈아 공손히 자식이 된 직분을 할 따름이니,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음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라고 여길 수 없다.”는 것으로, 朱子의 해석보다 文理가 순하며 孟子의 ‘怨慕’라는 말씀과 더욱 부합된다고 생각되는바, 中國本(《四書章句集注》)에도 이렇게 해석한 경우가 있음을 밝혀 둔다.

--- p.546~548

출판사 리뷰

경전의 원의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게 한 역작

성백효 선생은 1990년 《논어집주》의 완역을 시작으로 91년 《맹자집주》, 《대학·중용집주》를 완역하였고, 《시경》, 《서경》, 《주역》 등을 모두 완역하여 유가경전 연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의 번역서는 경학을 연구하고 한문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이미 유명한 필독서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 《부안설(附按說) 논어집주(論語集註)》의 출간에 이어, 《부안설(附按說) 맹자집주(孟子集註)》를 출간하였다. 제목은, 집주를 번역하고 거기에 안설(按說)을 붙였다는 의미이다.
안설이란 자신의 생각을 풀어쓴 설이라는 말로, 한문에서는 저자가 어떤 내용을 소개한 후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때 일반적으로 ‘안(按)’이라는 말로 말문을 연다. 번역하자면 ‘내가 생각하건대’ 쯤이 된다. 안설 이외에도, 주자 집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인용문의 출전, 집주를 부연하거나 비판한 제가(諸家)의 설(說), 《맹자집주대전(孟子集註大全)》의 소주(小註)까지 다방면으로 900여 개의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 다산(茶山)의 《맹자요의(孟子要義)》와 호산(壺山) 박문호(朴文鎬)의 《맹자집주상설(孟子集註詳說)》, 양백준(楊伯峻)의 《맹자역주(孟子譯註)》와 여러 학자의 설을 참고하였다.
안설의 예를 들면, 〈양혜왕상(梁惠王上)〉 3장 “구체식인식이부지검(狗?食人食而不知檢)”의 ‘검(檢)’을 주자는 검속(檢束)의 뜻으로 보아 ‘부지검(不知檢)’을 “단속할 줄 모른다.”로 해석하였고, 조기(趙岐)와 다산은 ‘검(檢)’을 ‘렴(斂)’의 뜻으로 보아 ‘부지검(不知檢)’을 “남은 곡식을 거두어들일 줄 모른다.”로 해석하였는데, 어떤 해석이 더 근리(近理)한 지에 대하여 저자는 직접 농사를 지으셨던 경험을 토대로 판단하고 해설한다. 농사에 한번도 종사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감사한 지남철이 아닐 수 없다.
또, 맹자가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의 단(端)이다.”라고 한 것에서, 주자는 ‘단(端)’을 ‘밖으로 나온 실마리’로 해석하여 ‘인(仁)은 심(心) 안의 본유적 성(性)이고, 측은해 하는 마음은 그 성(性)이 발현한 것이다.’의 의미로 보았으나, 다산은 ‘단(端)’을 ‘처음’으로 해석하여 ‘측은해 하는 마음을 미루고 확장하여 인(仁)이라는 외재적 덕(德)을 이룬다.’는 의미로 보았다. 이러한 해석의 차이는 맹자가 심성(心性)을 논한 곳 전체에 나타나는데, 안설에서 거의 빠짐없이 두 해석을 제시하고 비교하였으며 저자의 평 또한 실려 있으니, 독자는 맹자뿐만 아니라, 주자와 다산을 알고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부안설(附按說) 맹자집주(孟子集註)》에서는 전작과 달리 각 章에 제목을 붙였다. 예로부터 〈梁惠王上〉의 7장을 ‘??章’이라 하고 〈公孫丑上〉의 2장을 ‘不動心章’ 또는 ‘浩然章’이라 하였다. 이제 朱子의 《語類》와 陶菴 李縡의 《孟子講說》, 東巖 柳長源의 《四書纂註增補》와 壺山의 《孟子集註詳說》 등을 참고하여 章의 이름을 붙였는데, 때로는 두 제목을 중복으로 표기하여 이용에 편리하게 하였다. 또한 章節이 길므로 章節을 다 표기해 주었다.
이 책에서 저자의 역주에 해당하는 부분은 按說과 각주이다. 按說에서는 經文의 해석에 대한 여러 설들을 소개하고 정리하였으며, 때로는 각 설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덧붙였다. 按說은 經文에 대한 주석이므로 經文과 集註의 사이에 배치하였다.
반면 각주는 集註에 대한 주석이라고 할 수 있다. 集註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인용문의 出典, 集註를 부연한 諸家의 설, 集註를 비판한 설, 大全本의 小註까지 다방면으로 900여 개의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 《맹자》의 주석서 중에 주자(朱子)의 《집주(集註)》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정주학(程朱學)을 수용한 조선조에서는 주자 집주가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인식되어 우리나라 선조들의 사상(思想)을 제대로 알려면 주자 집주를 정확히 알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집주가 우리에게 워낙 친숙하다 보니, 사람들은 집주의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고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막상 그 내용에 대하여 질문을 해보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집주를 비판하거나 넘어서고자 한다면 먼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추천의 말

孟子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仁義思想과 民本主義를 강조하였다. 2,400여 년 전 戰國時代 혼란 속에서 인간의 기본 道理와 共同體로서 국가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명쾌한 논리와 특유의 비유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大丈夫의 삶을 표현하여 “천하의 넓은 집인 仁에 거처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인 禮에 서며 천하의 큰 道인 義를 행하여 뜻을 얻어 높은 지위에 있으면 백성들과 함께 이것을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이 道를 행해서 지조와 절개를 지켜 부귀하여도 방탕하지 않고 빈천하여도 동요되지 않고 위세나 무력에도 굴복되지 않는 것을 大丈夫라 이른다.〔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 與民由之 不得志 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 하였다. 그리고 선비는 “아무리 궁색한 처지에 놓여도 義를 잃지 않고 영달하여도 道를 벗어나지 않는다.〔窮不失義 達不離道〕” 하였으며, “궁할 적에는 홀로 그 몸을 善하게 하고, 영달하면 세상과 더불어 善하게 한다.〔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라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누구나 가슴속에 커다란 울림이 있었으리라. 이러한 孟子의 말씀은 2,40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소중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오히려 利를 추구하기에 급급하여 義를 하찮게 여기며, 民을 근본으로 하기 보다는 黨利黨略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世態에 警鐘을 울리는 큰 교훈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寒松 成百曉 선생께서 출간하시는 《附按說 孟子集註》에는 일반 번역서와 달리 經文의 해석에 관한 여러 說과 함께 선생의 견해를 덧붙인 按說과 集註를 부연하거나 비판한 諸家의 說 등 集註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단 脚註가 돋보인다.

- 노환균(盧丸均, 해동경사연구소 이사 前 법무연수원장)


《附按說 孟子集註》의 저자 成百曉 선생은 어려서 가정에서 부친과 스승을 사사해 전통한학에 대한 조예를 깊이 한 이래 한학후속세대를 양성하는 한편, 고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아 한 길을 걸어 오셨다. 그런 점에서 선생의 필생의 사업은, 지난 시간 전통에 대한 경시를 이겨내며 利慾의 橫流를 거슬러 의연히 우리문화와 전통적 지혜의 源頭處를 향해 올라간 외로운 분투였다.
《附按說 孟子集註》는 그러한 선생의 온축을 온전히 드러낸 노작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의 가치는 按說에서 두드러집니다. 朱子의 集註를 대본으로 하되 거기에 그치지 않고 경학과 전통 사상에 대한 선생의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제가의 해석을 주체적으로 소화해냄으로써 경전의 원의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실로 溫故知新과 法古創新의 사례를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김병일(金炳日,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前 기획예산처장관)


2008년 海東經史硏究所를 설립하고, 강독에서 선생으로부터 들은 내용을 문자화해 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成百曉 선생께 선생의 사유가 담긴 지금의 ‘附按說’ 형태의 《論語》와 《孟子》를 출간할 것을 청하였다. 그 결과 선생은 그 작업을 계속하시어 작년에는 《附按說 論語集註》를 출간하였고, 이번에 《附按說 孟子集註》를 출간하게 되었다.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孟子는 당시 富國强兵을 추구하였는데, 혼란한 戰國時代에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仁義道德을 강조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욕심을 버릴 것을 강조하였다. 후세에《孟子》에 대하여 天理를 보존하고 人慾을 막는〔存天理 ?人慾〕 내용이라고 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天理는 바로 仁義道德이고 人慾은 利를 뜻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仁과 義 그리고 禮를 내팽개치고 오직 利를 쫓는 함정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치인이든 공부하는 사람이든 이런저런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 속셈은 자신의 출세나 이익을 추구하는데 몰두한다. 자신의 욕망에 따라 질주하는 이러한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사회는 더욱 혼란에 빠져들 뿐이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孟子集註》를 一讀하기 권한다. 2,400여 년 전, 나라를 다스림에 백성이 주인이라는 民本主義를 그토록 강조한 孟子야말로 선각자가 아닐 수 없다. 책을 읽을 때 이러한 이치를 일관성 있게 해석한 朱子의 集註를 간과해서는 안 되며, 우리나라의 丁茶山과 朴壺山, 중국의 楊伯峻의 說까지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정종섭(鄭宗燮, 안전행정부장관)


선생은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한학(漢學)을 익히며 틈틈이 글씨를 익히셨는데, 우리나라 정통의 선비 글씨로 정평이 나 있어 서예를 전문으로 하는 우리들도 배울 점이 많다고 느껴진다. 대체로 시골 서당에서 글씨를 익히신 분들은 속기(俗氣)를 벗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한송 선생은 절대 그렇지 않다. 당나라 때의 명가(名家)인 유공권(柳公權)은 ‘心正則筆正’이라 하여 “마음이 바르면 글씨도 바르게 된다.” 하였다. 선생의 마음이 바르고 깨끗하기 때문에 글씨 또한 해정(楷正)하고 꾸밈이 없으신 것이다.
이 전시회는 한송 선생의 한학의 조예와 고고한 인품을 볼 수 있어 더욱 뜻깊다 하겠다. “군자는 근본을 힘쓴다 했다.[君子務本]” 기본이 확립된 한송 선생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이다.

-구당(丘堂) 여원구(呂元九) 기념서전 축사


한결같은 熱情으로 古典의 講讀과 國譯에 전념하다

지난해 출판한 《부안설 논어집주》는 풍부한 경학적(經學的) 소양과 해박한 지식으로 주자의 집주를 근간으로 하되, 제가(諸家)의 설을 절충하여 근세에 보기 드문 역작이었는데, 이제 또다시 《부안설 맹자집주》가 뒤이어 출간되니 우리나라 경학계(經學界)는 물론이요 한문학계(漢文學界)를 위해서도 크나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성백효 선생은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仁, 義, 禮, 智가 具現되는 세상을 위해 四書五經을 비롯한 東洋古典을 두루 硏究, 講論, 國譯 하시는 데 일생을 바쳐 오고 계신다. 앞으로 附按說 《大學》, 《中庸》이 계속 출간될 예정인데, 선생의 思惟가 담긴 附按說 四書集註가 완간되어 보다 많은 이들이 읽어 心性을 涵養하고 더 나아가 우리 先祖들의 思想과 精神을 제대로 인식하여 人間의 道德性을 되찾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번에는 한송 성백효 선생의 고희를 맞이하여 기념서전(紀念書展, 12월 3일~9일)과 함께 《부안설 맹자집주》의 출판기념식(12월 3일)을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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