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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두루미가 바라보는 곳은? 007
두견새 우는 밤, 사랑의 계절이 왔어요 032 정육점의 고기들 070 피 묻은 도마 103 손저울에 앉은 파리들 139 푸주한의 돼지들 189 돼지들의 합창 238 숨은 방 286 작가의 말 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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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송이는 마치 박주가리의 씨처럼 가벼웠다. 한없이 넓은 하늘에서 내려와 작은 풍경과 탑 위에 내려앉은 눈은, 그러니까 기막힌 인연이나 다름없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강요해도 할 수 없는 그런 인연의 줄 위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_88쪽
“이제 여기가 어딘지 알겠냐?” 고개를 끄덕였다, 옥자는. “어디냐?” “……세상 끝에 있는 정육점 같습니다. 고기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여긴 절간인데 왜 그렇게 생각하냐?” “그냥 제 눈엔 자꾸만 그렇게 보여요.” “그래? 그럼 정육점 구경 잘 하고 가라.” 큰스님은 전나무 숲 사이로 뚫린 언덕길을 올라갔다. 옥자는 스님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스님, 제가 살았어요? 죽었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_175~176쪽 지하 곳곳에서 비명소리와 고함이 벽을 뚫고 건너왔다. 서러운 울음소리까지. 지하실의 구조는 단출했지만 살벌했다. 가운데에 놓인 탁자와 의자 두 개, 겉면에 타일을 붙여 만든 세면대와 그 옆 물이 고여 있는 좁은 탕, 배설물을 받아내는 데 쓰이는 양동이, 철제침대, 마지막으로 벽에 걸려 있는 각종 고문도구들. 창은 없고 오직 철문만 하나 있는데, 영원히 열릴 것 같지 않은 문처럼 보였다. 천장 가운데에 매달린 백열등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이 고문실의 모든 걸 묵묵히 비춰주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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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것들뿐인 것 같아.
어떤 기억이 부르면, 가고 싶지 않아도 그 자리에 달려가야 하는 거잖아.” 우리가 사는 이곳은 어쩌면, 세상의 끝 정육점. 갈고리에서 풀려난 두 육신이 조각난 시간들 속을 유영한다. 삶과 죽음이 그렇게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삶과 죽음이 그토록 확연하게 구별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삶과 죽음이 만나면 한쪽은 침묵하고 한쪽은 통곡을 불러온다는 사실도 처음인 것처럼 선연했다. 삶과 죽음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아예 기가 막혀 말도 못 꺼낸다는 점도 처음 알았다. 지금껏 옥자에게 다른 사람의 죽음은 그렇게 멀리 있었다. 그런데 그 죽음 속에 자신이 있었고 또다른 이들의 죽음을 자신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_본문 중에서 허균문학작가상, 무영문학상, 강원문화예술상 수상 작가 김도연 누추한 삶과 환상의 경계를 지우는 폭설 같은 글쓰기 유폐된 개인과 그 고독이 빚어내는 길 잃은 꿈으로 삶의 지리멸렬함에 균열을 내왔던 작가 김도연의 다섯번째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그는 “‘꿈같은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 같은 꿈’”을 드러내는 것이 그의 환상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평(이경재, 문학평론가)을 들은 바 있다. 이번 작품에서 그 독특함은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변주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그가 택한 공간은 오대산 월정사와 사하촌의 정육점이다. 그의 ‘현실 같은 꿈’에서 인간세상이란 배 가른 돼지들을 갈고리에 널어놓은 정육점과 같다. 결혼식 다음날 교통사고를 당한 신혼부부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쫓고 쫓기며 벌어지는 뒤죽박죽 신혼여행 결혼식 다음날 교통사고를 당한 도식과 옥자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약 반세기에 걸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십일 일간의 환상적인 신혼여행을 한다. 그들은 부모가 살았던 한국전쟁 이후의 혼란스러운 풍경과 어린 시절 풍문으로 들었던 역사의 비극적 현장을 생생히 체험하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멋대로의 시공간에 떠밀려 다닌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제대로 죽지 못하고 여기에 있는지, 왜 이런 장면들을 보고 있는지, 우리는 과연 무얼 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것은 곧 작가가 독자인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일 것이다. 종횡무진하며 현실을 치유하는 꿈, 그 낮은 곳에 자리한 사랑이라는 영원한 신화! 영혼 상태인 도식과 옥자는 여행 도중 만난 사람들에게 말을 걸거나 행동하며 사건에 참여할 수 있는 때도 있는가 하면, 눈앞에 벌어지는 끔찍한 고문 장면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바라만 보기도 한다. 작가 김도연은 80년대 말, 토요일의 디스코텍과 군부독재시절 대공분실을 한데 겹쳐놓으며, 평화로워 보이는 지금-여기의 삶이 비극에 울퉁불퉁 덧칠한 눈가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통찰을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죽음과 그에 맞서는 강렬한 동물적인 호기심, 그 분출하는 생명력이 도식과 옥자의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성에 대한 탐닉으로 이어지며 무게감 있는 서사의 한 축과 절묘한 짝패를 이룬다. 죽었으나 죽지 않은 상태로 세상을 떠돌며 여행하는 도식과 옥자 부부,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제대로 된 죽음을 살아야 한다는 역설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한바탕 뿌듯한 꿈을 꾼 듯한 해방감을 주는 소설. 절 아래에서 오래 살았다. 절은 신비로운 공간이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절간을 기웃거렸다. 어떨 때는 미궁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또 어떨 때는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하기도 했다. 절의 일주문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사실 어두운 수챗구멍으로 졸졸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적이 더 많았다. 햇볕 쨍쨍한 어느 날 술에 취한 나는 절간의 돌계단에 앉아 오고가는 스님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왜 부모형제가 있는 집을 떠나 멀고먼 이 산골짜기로 들어와 머리를 밀고 잿빛 승복을 입은 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왜 탑을 돌고, 종을 치고, 법당에 앉아 목탁을 두드리는 것일까. 무엇을 찾으려고……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