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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8
1장 그전 엄마 예찬 15 아버지의 사진 23 엄마의 교육 29 젖 먹여 키운 아이 33 영화 ‘시’ 45 앤에게 51 어리굴젓 타령 57 위대한 침묵 속으로 61 여름의 조각들 68 그리운 저고리 83 엄마 책 나오던 날 91 여행 떠나기 전 아들에게 97 2장 그후 글라디올러스의 기억 103 엄마의 뜰 가꾸기 108 엄마의 목소리 115 사루비아 122 엄마의 말뚝, 그후 129 엄마의 말 137 엄마의 물건 140 엄마의 발 149 엄마의 손 157 엄마의 나목 162 따뜻함이 깃들기를 170 엄마의 감탄사 186 그리운 엄마와 만나는 길 180 3장 고요한 자유 고양이 별곡 197 국화 예찬 200 어느 점심 풍경 203 저어기 잠수교가 보이네 206 어떤 마무리 209 땅에서 구름까지 212 작은 꽃의 의미 215 몸살하는 시간 218 나의 사랑하는 생활 221 혼자 핀 복수초 224 가서 밥을 해주어라 227 엄마의 힘 230 북촌의 봄밤 233 최순우 옛집에서 236 수성동 계곡 물소리 239 무엇이 시간 낭비일까? 242 함께 들고 가는 가방 245 여름의 묘약 249 고독이 피서 253 꿈꾸는 여행 256 일본의 밥맛 259 빈대떡 타령을 하는 까닭 262 어머니의 어머니, 외할머니의 기억 2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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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시면서 일의 양을 조절하고 몸의 상태와 의논하면서 지내는 현명한 지혜는 본받고 싶은 덕목이다.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버리지 않아 정신적인 젊음을 유지하신다. 힘겨워하면서도 쏟아져나오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으신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외면하지 않고 적당한 노동을 피하지 않으신다.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걷고 아직도 혼자 다니실 때는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면서 세상 사람들과의 부딪침을 피하지 않는다. 엄마는 폐지를 주워가는 할머니, 우체부 아저씨, 야채 파는 아줌마, 정원사나 집을 고쳐주는 아저씨들과 친밀함을 유지하신다. 그건 필요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그들에 대한 감사와 존중이기에 언제나 서로 진심이 전해진다.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심에서 작품의 소재가 끊임없이 솟아나오고 또한 다양한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엄마 예찬] 중에서 (18쪽) 내가 또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게 있다. 자식들에게 자유를 준 것이다. 전공을 선택할 때도 연애도 결혼도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우리의 자유의사를 존중해주었다. 나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성장해서 내가 가정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자유롭게 놓아두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된다.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게 하여 독립된 개체로서 키워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쩜 부모 자식 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그런 자유의지와 자립의 문제 때문인지도 모른다. : [엄마의 교육] 중에서 (31쪽) 왜 이렇게 몸과 마음이 빈껍데기처럼 느껴질까? 그러면서도 몸과 마음이 천근같이 무겁다. 이 계절을 지내기 힘들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 가장 지내기 힘들어하셨던 계절인데 나한테까지 옮아 전해지는 것일까? 나는 엄마 탓을 한다. 뭐든지 힘들거나 속상하거나 마음대로 안 되면 나는 마음놓고 엄마 탓을 한다. 엄마가 이 세상에 안 계시기 때문. 그러나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서가 아니라 엄마가 죽지 않은 것 같다. 엄마의 글에서 들려주는 목소리가 너무 생생하기 때문이다. 나는 더욱더 엄마의 눈길을 피할 수가 없고 자유롭지 못하다. : [글라디올러스의 기억] 중에서 (103쪽) 엄마는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하여 즐거운 식탁을 차리셨다. 딸들이 도와주기도 했지만 메뉴는 꼭 엄마가 정하셨고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양과 메뉴 선택으로 꾸미셨다. 초대받은 젊은 문인들과 엄마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엄마가 꾸민 식탁을 오래도록 못 잊어했다. 그것은 엄마가 평생 식구들을 위해 차려주었던 일상의 숱한 식탁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마당가에 올라오는 머윗잎을 따다가 데쳐서 된장에 싸먹으며 엄마 생각을 하게 된다. 씁쓸하면서도 개운하고 흙내음에 가까운 향취에 흙으로 돌아가신 분의 생각에 잠기게 된다. 지천으로 올라오는 부춧잎을 캐어 오이소박이를 담가놓으며 부추 뿌리에서 나는 신선한 흙냄새에 생기를 되찾는다. : [엄마의 뜰 가꾸기] 중에서 (113쪽) 그 유연함과 함께 어머니를 따르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집중력이었는데 감히 다가가기 어려운 경이로울 경지였다. 초기에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살아 있는 날의 시작』을 신문에 연재할 때는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과 끈질김이었다. 나는 글쓰는 엄마를 외면했다. 도와줄 수도 없고 간섭할 수도 없는 엄마만의 일이었으므로. 그러나 엄마에게 가족의 일은 그렇지 않았다. 노망이 든 할머니와 늘 해왔던 아버지 수발과 해마다 돌아오는 아이들의 입시로부터 어머니는 놓여날 수가 없었다. 그 가족사를 회피하지 않으면서 결국에는 다 문학으로 풀어내셨다. 그 어떤 것도 외면하지 않고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 [엄마의 목소리] 중에서 (119쪽) 다섯 시간 넘게 걸린 수술로 담낭은 물론 간의 많은 부분도 떼어내게 되었다고 했다. 온갖 호스를 붙인 엄마는 나를 보시더니 내 손바닥 위에 “몇시니?”라고 적으셨다. 엄마에게는 항상 시간이 중요했다. 중환자실 침대 위에서도 명료한 사실과 시간의 축, 그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셨다. 우리 자매들은 엄마 투병중에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행복해했다. 엄마가 작가이기 이전에 온전히 우리 엄마이기만 하였듯이 병상에서 드디어 엄마는 우리 차지가 되었다. 부은 발을 씻겨드리고 피가 돌도록 문질러드렸던 그 시간은 엄마에 대한 경배의 시간이었다. 엄마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 투병하시다 눈발이 날리는 새벽, 우리 곁을 떠나셨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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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어머니, 박완서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사 년이 되었다. 고인이 노년에 아치울 노란집으로 거처를 옮겨와 늘 한 손에는 호미를 들고 허리를 숙인 채 땅에서 움을 틔워 올라오는 작디작은 생명들을 돌보던 마당 그 자리에, 이제 딸 호원숙이 대신 웅크리고 앉았다. 엄마 생전의 따뜻하고 환한 웃음을 고스란히 머금고.
고인이 십 년이 넘도록 집필실로 사용했던 글노동의 거처이자 손톱에 시커먼 흙먼지가 끼도록 손수 마당을 가꾸며 육체노동을 병행했던, 구리 아치울 노란집. 여전히 그곳에는 알록달록 색색의 꽃들과 식물이 가득하지만 어쩐지 조금 허룩해져버린 마당을 가꾸며 이따금 딸은 생각한다. 엄마는 어디 갔을까.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자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보물! 더없이 벅찬, 당신이라는 축제 엄마라는 커다란 존재 앞에서 딸은 그 나이와 관계 없이 아이가 된다. 엄마를 잃은 딸은 더욱 그렇다. 볼 수 없으므로 더욱 만나고 싶고, 만질 수 없으므로 더욱 어루만지고 싶다. 손이라도 한 번 더 잡고 싶고, 뺨이라도 한 번 더 부비고 싶다. 딸이 아니었던 사람도 이토록 그리울진대, 딸의 심정은 오죽하랴. 엄마의 육필원고를 직접 신문사나 출판사에 들고 나르던 어린 딸은 이제 엄마를 활자로만 만날 수 있게 되어버렸다. 한국문학사의 큰 획을 그은 故 박완서 작가에게 맏딸 호원숙은 더없이 살뜰한 식구이자, 다정한 친구이자, 든든한 조력자이자, 냉철한 비평가였다. 남편과 아들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가정의 여러 근심거리를 큰딸과 함께 나누었던 것은 물론, 국어교육을 전공한 딸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어머니의 문학을 함께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절판되거나 판권이 만료된 어머니의 책을 개정판으로 새롭게 엮어 펴내거나 새로운 글들을 발굴해 책으로 묶는 작업을 도맡아해왔으며, 이번에는 박완서 작가 타계 4주기를 기념하여 엄마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기억하는 자신의 두번째 산문집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엄마 박완서를 쓰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다』를 출간한다. 이 책은 총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그전’은 박완서 타계 전 엄마와 딸의 평범하고도 소소한 일상으로 꾸려져 있다. 아주 오래전 아이를 낳을 때 직접 산구완을 해주시던 어머니를 회고하는 것에서부터 최근 들어 함께 영화관 나들이를 나서던 날까지, 엄마의 모습을 소상히 회고한다. 어머니는 딸들에게 매사 자유를 주면서도 깊은 신뢰의 마음으로 의지하고 지켜보아주었다.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오랜 세월 이어온 긴밀하고도 쫀쫀한 가족의 정은 현재를 지탱하게 하는 귀중한 힘으로 작용한다. 2장 ‘그후’에서는 사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날 이후의 일들이 펼쳐진다. 따로 문학관을 만들지 말고 아치울 노란집에 맏딸이 들어와 살기를 원하셨던 고인의 유지에 따라 호원숙은 엄마의 보금자리에서 엄마를 추억하고 되새기며 진정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글을 썼다. 엄마의 손, 엄마의 발, 엄마의 말, 엄마의 뜰, 엄마의 물건 등등 엄마의 모든 것을 썼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대문호 박완서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또 많은 것을 함께 해낸 자로서의 소상한 고백이자 가장 큰 그리움이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문학관이며 산증인인 셈이다. 3장 ‘고요한 자유’에서는 호원숙 스스로의 이야기를 모았다. 평소 꾸준히 문학을 가르치면서도 본인의 글쓰기를 계속해오며,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의 순간순간을 포착하여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아침산책길이나 여행길에서도 살아생전 어머니의 언행은 늘 마음속에 함께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삶의 곳곳마다 여전히 살아 숨쉬며 살아가는 데 귀중한 지침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실보다 치열하고, 소설보다 아름다운…… 생생하게 펼쳐지는 옛 추억 그리고 되살아나는 아련한 그리움의 만남 책의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故 박완서와 맏딸 호원숙 그리고 다른 자매들과의 오래된 흑백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면,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오래전 그날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박완서의 소설 속 등장하는 가족의 모습과 뼈아픈 시대 상황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진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이 가족이 지내온 역경의 시간들 너머에 따스하고 애틋한 정과 사랑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느낄 수 있다. 또한 평소에 박완서와 친분이 두터웠던 후배 문인 이병률 시인이 고인의 집에서 직접 촬영한 유품들의 사진이 곳곳에 소개되어 있다. 고인이 살아생전 직접 사용하던 그릇이나 카메라, 재봉틀과 액세서리 등 손때 묻은 물건들이 그 자체만으로도 정갈하다. 물건들은 말이 없지만 오랜 세월 함께했을 시간을 건너 다정하게 놓여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표지에 쓰인 붉은 맨드라미 손그림은 어머니의 마당에서 식물들을 가꾸며 호원숙 작가가 직접 그린 것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애모의 정을 한층 더 진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 최근, 개정판으로 새 옷을 갈아입은 박완서 산문집 『호미』출간 당시에도 작가가 틈틈이 그려두었던 그림이 본문에 어우러지면서 한층 더 화사하고 따스하게 해주었다. 호원숙의 그림은 정교하거나 미려하지는 않지만 특유의 선명한 색감과 투박한 듯하면서도 조화로운 색연필의 질감에서 묘한 정서를 느끼게 한다. 이 책은 박완서에 대한 이야기이자 동시에 그 자체로 호원숙의 이야기가 된다. 모녀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박완서가 곧 호원숙이고, 호원숙이 곧 박완서이다. 엄마는 어디에 간 것이 아니었다. 아직도 여전히 여기에 있다. 바로, 우리 곁에 말이다. 박완서 산문집 전 7권 (문학동네) 동시 출간! 더욱이, 이번 호원숙 산문집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는 『박완서 산문집』(전 7권, 문학동네)과 함께 출간되어 더욱 뜻깊은 의미를 지닌다. 그리운 이름, 박완서 작가의 4주기에 맞춰 출간되는 일곱 권의 산문집은 1977년 출간된 첫 산문집을 시작으로 1990년까지 박완서 작가가 펴낸 책들로서, 초판 당시의 원본을 바탕으로 중복되는 글을 추리고 재편집한 것이다.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작가 박완서의 생생한 경험담과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 소소한 일상에서의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각각의 책에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길게는 40년 가까운 시간이, 짧게는 2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일곱 권의 산문집 안에 담긴 이야기는 2015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가슴을 울린다. 그 울림의 끝에 맏딸이 사랑하고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져 아릿하지만 더욱 단단한 모녀의 사랑과 가족의 끈끈함, 그리고 시대를 넘나드는 문학의 향기가 코끝을 찡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