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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역 공원 출구
작가의 말 (유미리) 옮기고 나서 (김미형) |
Miri Yuu,ゆう みり,柳 美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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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에 태어나 일흔둘이라든지, 내 아들도 살아 있으면 마흔다섯이 된다는 식의 고백은 일체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술에 취해 슬픔의 방향으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세심히 주의를 기울였다. 버릴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은 모두 상자에 담아 버렸다. 상자에 봉인을 한 건 시간이었다. 시간으로 봉인된 상자는 열어서는 안 된다. 열자마자 과거로 굴러 떨어질 뿐이다. (……) 타인의 비밀을 들은 자는, 자신의 비밀 역시 말해야 한다. 비밀이 반드시 숨겨야만 하는 일을 뜻하지는 않는다. 숨겨야 할 만한 일이 아니더라도,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밀이 된다. 늘 여기 없는 사람에 대해서만 곱씹는 인생이었다. 곁에 없는 사람에 대해 곱씹는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람에 대해 곱씹는다. 그것이 비록 가족이라 하더라도, 여기 없는 사람을 여기 있는 사람에게 말하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기 없는 사람에 대한 추억의 무게를, 말을 함으로써 줄여 버리기는 싫었다. 내 비밀을 배신하기 싫었다.
--- p.104~106 세쓰코는 평소에 아침 일찍 일어나 내가 눈을 뜨는 일곱 시 무렵에는 빨래와 마당 청소까지 대충 다 끝내고 부엌에서는 된장국과 밥 짓는 냄새가 퍼져 나왔다. 오늘 아침엔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다……. 뚝, 뚝, 홈통에서 떨어진 물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빗줄기가 제법 굵은가 보다…….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커튼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집안을 비에 젖어들게 했다. 얼굴을 옆으로 돌리자 옆 이불에 세쓰코가 누워 있었다. 깨우려고 팔을 뻗자, 차가웠다?. 만진 건 이불 위로 빠져나온 세쓰코의 팔이었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이불을 젖히고 몸을 흔들어 봤지만 이미 사후경직이 시작되고 있었다. --- p.122 그 남자는 반년 가까이 우에노에 있었으나 신주쿠 도야마 쪽으로 자리를 옮기겠다며 오두막을 치워 갔고, 중학생들에게 맞아 죽었다는 후문을 들었다. 도쿄와 요코하마와 오사카에서 노숙자들을 습격하는 소년 범죄가 꼬리를 물었고, 내일은 자기에게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만연해서였는지 그 소문은 입에서 귀로 전해지면서 서로가 느끼는 공포로 부풀어 갔다. 각목과 금속 방망이로 때리고 오두막에 불을 붙였다……. 오두막에 폭죽을 던져 넣고 놀라서 뛰쳐나온 남자에게 모두가 돌을 던졌다……. 소화기를 오두막에 분사시켜 거품투성이가 되어 뛰쳐나온 남자를 공기총, 간판, 쇠지렛대로 뭇매질을 했다……. 때리고 발로 차고 폭행을 가하자 실신했고, 그 바로 옆에서 불꽃을 터뜨려 실명시킨 다음 나이프로 난도질을 했다……. --- p.131 우에노 공원 안과 주위에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아 천황가 분들이 방문하시는 전람회나 행사가 잇따라 열리는 경우도 있다. 전용차 경로에 우에노 공원의 마사오카시키 기념 구장 앞 도로도 들어가 있는데, 도로에서 보이지 않는 오두막까지 강제 철거를 하는 걸 보니 천황가 행차를 빌미로 우에노 공원에 사는 500명이 넘는 노숙자들을 공원에서 쫒아내고자, 올림픽 유치를 계획하는 도쿄도가 꾸민 일일 것이다. 그 증거로 천황가 사람들이 황거나 아카사카 어용지로 돌아간 다음에도 몇 시간이나 오두막을 세우지 못하게 했고, 밤이 되어 원래 장소에 가 보면 출입금지 간판이나 울타리, 화단이 설치되어 노숙자들은 공원에서 쫓겨나 하릴없이 헤매었다?. 그걸 알면서도 행행이나 행계 때에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태풍이 치든, 오두막을 철거해 공원 밖으로 나가야 했다. --- p.147 마리는 핸들을 잡고 액셀을 밟아 후진한 채로 국도 6호선을 향했으나 검은 파도가 자동차를 뒤쫓아 집어삼켰다. 바다 쪽으로 파도가 빠져나갈 때 손녀딸과 두 마리 개를 태운 차가 함께 바닷속에 잠겼다. 바닷물의 숨이 가라앉았을 때 자동차는 바닷빛에 둘러싸여 있었다. 앞유리 너머로 마리가 다니던 동물병원의 분홍색 제복이 보였다. 코와 입에 바닷물이 들어가고 파도에 떠다니는 머리카락은 빛에 따라 갈색으로, 혹은 검은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부릅뜬 두 눈은 시선을 잃기는 했으나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 틈처럼 보였다. 딸 요코를 쏙 빼닮았고 아내 세쓰코에게서 물려받은 옆으로 긴 눈이었다. 몸통이 긴 고타로도, 시바 견종도, 마리와 함께 자동차 안에서 숨 을 거두었다. --- p.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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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도쿄올림픽, 그리고 후쿠시마
상처 입은 가족을 화두로 한 소설과 희곡들을 발표해 온 유미리. 『우에노 역 공원 출구』(2014)는 가족을 하나하나 잃어 가다가 마침내 남은 혈육의 울타리를 스스로 벗어난 늙은 남성 노숙자의 눈, 코, 귀와 의식의 흐름을 통해 전후(戰後) 일본 현대사의 편린들을 더듬는다. 주인공 ‘모리 씨’의 젊은 날 무작정상경이 1964년 도쿄올림픽 경기장 잡역부 일로 시작된다면, 짧은 안주 후 노년에 다시 집을 떠나 우에노 공원의 노숙자로 전락할 때는 모리의 고향 후쿠시마의 재앙(2011), 그리고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 구상이 무르익는 때다. 장편이라기엔 짧고 중편이라기엔 긴 작품을 처음 구상해 탈고하기까지 12년이 걸렸다. 작품 구상 초기 어느 날, 우에노 공원에서 맞닥뜨린 70대 남성 노숙자(바로 모리 씨와 ‘시게짱’의 연배다)가 불쑥 던진 한마디가 작가의 뼈를 때린다. “당신에겐 있고, 우리에겐 없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 기분을 어떻게 알겠어.” 작가에게 있으나 그들에게는 없는 것?바로 ‘집’이다. 떠나 왔으므로 가정도 가옥도 더 이상 없는 그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붕괴 사고가 일어난다. 우에노 공원 노숙자들 가운데는 모리 씨와 같은 도호쿠(東北) 지방 출신 노숙자가 많았다. 작가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만 6년간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南相馬)시 재난방송 ‘미나미소마 재해FM’의 ‘유미리의 두 사람과 한 사람’ 코너에 고정출연하며 매번 두 사람씩 600여 명의 이재민의 사연을 소개했고, 2015년에는 아예 후쿠시마 원전에서 불과 20킬로미터 떨어진 미나미소마로 집을 옮기기까지 했다. 이때 겪고 듣고 본 사연들이 『우에노 역 공원 출구』에 고스란히 녹아들었음은 물론이다. 재난방송 출연이 끝난 직후 작가는 미나미소마 집을 열린 서점 ‘풀하우스’로 개조했다. 서점 이름은 ‘붕괴된 가족’을 소재로 한 성장소설이자 작가의 출세작인 소설집 『풀하우스』(1996 이즈미 교카 문학상, 노마 문예신인상 수상)에서 온 것. 소리들, 그리고 오감의 탁월한 묘사 “2번 홈에 이케부쿠로, 신주쿠 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노란 선 안쪽으로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기차역 안내 방송 같은 사람 목소리 말고도, 작품은 소리로 가득하다. 다양한 나이와 계층의 행인들의 시시콜콜한 대화부터 기차 도착하는 소리, 새소리, 빗소리, 회상 속 마쓰리의 시끌벅적함, 아들과 아내의 장례식에 울려 퍼지던 스님의 염불 소리……. 소리뿐 아니라 쓰나미에 휩쓸린 외손녀의 머리카락과 제복의 색깔과 눈빛, 고향 아내의 된장국과 밥 짓는 냄새, 행인 대화 속 마시멜로와 정어리구이, 겨드랑이의 선뜩한 끈적함 등까지, 눈 뜬 듯 감은 듯 오감을 총동원해 읽어야 하는 색다른 소설이다. “2번 홈에 이케부쿠로, 신주쿠 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소설의 서두 언저리에 한 번, 중간에 두 번 나오는 안내 방송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하다. 네 번째로 이 문장을 맞닥뜨리고 불현듯 ‘아!’ 하며 책장을 맨 앞으로 되넘겨 보면,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산 자의 회상만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알아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