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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둠을 제압하는 빛의 믿음
2. 세상을 변화시키는 믿음 3. 장벽을 돌파하는 믿음 4. 말씀 불패의 믿음 5. 죄에서 해방되는 믿음 |
田炳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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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란 무엇인가?
나에게는 두 딸 혜연이와 혜림이가 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딸의 성장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어린 아기의 성장은 결코 균형적이지 않다. 태어난 직후의 모습은 머리만 큰 괴물의 모습이었다. 성장과정을 보면, 온 몸이 골고루 자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팔만 자라고, 어떤 때는 다리만 자라는 것같이 보일 때가 많았다. 나의 예를 보더라도 어떤 때는 키만 자랐고, 어떤 때는 몸무게만 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생명의 성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정확한 균형에 의해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각 부분이 고루 성장하여 균형을 이루게 되는 것을 본다. 한번 가정해보자. 어떤 부모가 어린 자식의 불균형적인 성장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되었다. “이 아이는 왜 몸에 비해 이렇게 팔이 길지? 이 아이는 왜 몸에 비해 이렇게 다리가 길지?” 그리고는 고심 끝에 그 아이의 다리와 팔을 잘랐다고 하자. 이것은 비극이다. 그 아이의 성장은 그때부터 중단되었을 것이고, 그 이후 아이는 영원한 불구자가 되었을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다(고전 12장 참조). 성도는 몸의 각 지체로서 몸을 세우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리고 몸의 성장을 위해 각 지체는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균형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성장이 빠른 몸의 지체를 잘라내려는 시도를 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때가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표방하여 성장을 방해하고, 잘라내려 하고, 견제하려 한다. 이것은 한마디로 몸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깨는 처사이다. ---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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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8장11절을 보면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분명히 못박는다. 즉, 하나님나라는 운동(movement)으로 오는 것도 아니고, 세속의 힘을 빌려서 오는 것도 아니다. 여러 인간적인 방법론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는 '말씀의 씨'를 심는것에서 온다는 강조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최고의 자리는 말씀의 자리이다.
--- p.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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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의 화두는 민주화였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민주화’라는 말만 하면 가슴이 설레이고, 민주화란 말을 들으면 흥분이 되고, 민주화를 상상하면 눈물이 흘러나오곤 하였다. 일제 시대에는 ‘독립’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이는 중요한 주제였다. 그래서 당시에는 국민들이 독립 이야기만 나와도 심장이 뛰고, 독립을 상상할 때면 피가 솟구쳐 오르곤 했던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단어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나라’라는 단어였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은 상태였다. 나라 잃은 백성에게 나라에 대한 선언은 일종의 혁명 선언과도 같은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바로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셨다.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하였고”(눅 8:1).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에 대한 선언을 들은 유대인의 충격과 전율을 한번 상상해보라!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나라’라는 단어에는 당시 모든 유대 민중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영광과 꿈이 다 녹아 있었다. 유대의 모든 민중은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선언에 모두 다 열광하고 있었다. --- 프롤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