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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검은 비닐 봉지의 추억
2. 그들은 왜 여기에 왔는가? 3. 란드룽으로 가는 길 4. 아, 산소 덩어리들.. 5. 네팔에서 마주친 <거짓말> 6. 일회용 친구 7. 타멜 거리의 노총각 8. 반스바리의 오! 선교사님 9. 시간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10. 카트만두의 꿈, 서울의 꿈 11. 인도 비행기가 납치됐어요! 12. 20세기의 마지막 날, 당신은 무엇을 했나요? 13. 과자 봉지 속의 인형 14. 환상이 끝난 자리에서 상상력이 시작한다 15.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 16. 괴테를 읽다 17. 페마는 얼마나 속이 쓰릴까? 18. 내 영혼의 목요일 19. PN 20. 앞으로 올 인간, 제3의 성 21. 오두막 난롯가 22. 현대적 반항 23. 저러다 홍수나겠네! 24. 네팔 아가씨 브린다 25. 마야 부인의 찌아 만드는 비법 26. 카트만두여,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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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비극은 확실히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건이 많을수록 우리는 물건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책이 별로 없던 시절에는 책 한 권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했던가. 처음 영화를 보고 비디오 테이프를 보았을 때 사람들은 감격에 떨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이제 우리를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남았는가.
--- p.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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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와 나는 먼 시간을 사이에 두고 같은 지점에 서 있다. 우리의 여정은 작가라는 입장에서 같은 성격이면서 다른 점이 있다. 그러나 삶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느껴진다. 괴테는 도피 하듯이 고향을 떠났지만 손에는 잠재된 일거리를 들고 있었다. 나 역시 무작정 떠나려던 마지막 순간에 덜미를 잡힌 것처럼 일거리를 떠안고 이곳에 왔다. 위대한 쾨테와 나를 비교하다니, 참으로 미안하면서도 또한 쾌감을 느끼게 하는 발상이다.
괴테는 졸고 있는 마부와 함께 근사한 풍경 속을 미친 듯이 달리는 마차 속에 앉아 있다. 그렇게 떠도는 동안 수많은 쪽지에 메모를 했다. 어느 날 밤은 그 동안 쌓인 메모지들을 바라보면서 전율한다. 그 속에 자신의 미래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메모'하면 나 역시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울퉁불퉁한 길을 내달리는 차 안에서는 정신을 집중해서 오래 적는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럴 대는 메모가 적격이다. 단순히 지명이나 도로, 사람 이름 같은 것들을 짤막한 단어로 적어 둘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에는 영감에 사로잡혀서 마구 쏟아붓듯이 써내려갈 때도 있다. 이런 식의 메모가 하루만 쌓여도 엄청난 분량이 된다. 수첩의 낱장이 계속 넘어가자 불안해졌다. 이것을 다시 풀어 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결국 어제부터는 달리는 차 안에서 허벅지에 노트를 놓고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천천히 한 획씩 긋는 것처럼 썼는데, 차츰 익숙해져서 수첩에 적는 것보다 많이 쓸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제대로 된 상황은 아니지만 가끔씩 스케치를 하기도 한다. 언젠가 평론가 한 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바쁜 도시에서 살아야 삶에 탄력이 있는게 아닙니까." 답답한 소리이다. 양식한 물고기와 먼바다를 떠돌던 물고기를 잡아 각각 매운탕을 끓이면 그 맛이 다르다. 인간도 비슷한 속성이 있다. 매일 부대끼며 사는 사람과 자연 속에서 넉넉하게 사는 사람이 내뿜는 에너지는 그 색깔부터 다르다. 탁 트인 하늘과 싱싱한 초목에 파묻히면 시들었던 영혼이 새롭게 빳빳해진다. --- p.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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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목적지는 지도에 나타난 어느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헤르만 헤세는 여행의 낭만은 절반은 모험에 대한 기대감이며 나머지 절반은 에로틱한 것을 변화시키고 해소하려는 무의식적인 충동이라고 하였다. 이성에게 선사해야 할 사랑을 이 마을 저 마을, 이산과 저 산에게, 바다와 협곡에게, 길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풀을 뜯고 있는 소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여행이라고 했다. 김미진이 찾아간 곳은 히말라야이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찾아가려 했던 곳은 지도에 없는 떠남이 아니었을까. 지구라는 소행성 어느 곳에도 없는 '떠남'이라는 지명. 누구나 한 번쯤 늦은 햇살이 젖어오는 창가에 앉아 무작정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바로 그 떠남이 그녀의 목적지며 사랑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떠남의 설렘 속에는 늘 자유라는 놈이 병균처럼 자라나고 있다. 가끔씩 이유 없이 텅 비고 허무한 슬픈 감정에 휩싸이게 될 때, 사람들은 낯선 공간을 향해 훌쩍 떠나고 싶어한다. 낯선 거리를, 낯선 사람 속을 무작정 헤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떠난다는 것, 그것은 낯선 세계에 대한 동경과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를 느끼고 싶어하는 열망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떠남의 설렘 속에는 늘 불안이 굵은 못처럼 박혀 있긴 하지만 낯선 공간에서 혼자가 된다는 느낌, 철저히 홀로 낯선 것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그 원인 모를 감정에는 병균처럼 심장에서 자라고 있는 자유라는 것이 있다. 눈부신 자유가 폭발하는 곳, 히말라야! '시시때때로 그 모습을 바꾸는 설산은 뭔가 의식적이고 시적인 분위기를 느끼게'하며, 우리가 느끼는 물리적 시공간과 전혀 다른 곳, 전혀 다른 세계, 텅 비어 버린 영혼으로 부딪혀 오는 원시의 시간들. 그것은 완벽한 자유의 순간이다. 눈부신 자유가 폭발하는 그 곳, 히말라야.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이번 여행의 직접적인 동기는 작년 겨울 발간되었던 장편소설 <자전거를 타는 여자>의 배경이 되는 히말라야 답사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연의 첫 매듭을 엮는 구실에 불과 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찾은 히말라야에서 작가는 여행의 낭만과 장대한 설산에 반사된 눈부신 자유를 만났다. 소설의 위기, 세기말의 불명확성 속에서 소설과 자신을 이어 줄 끈을 찾고 싶었던 그녀에게 히말라야는 '거대하고 숭고하고 단순한 것'들을 일깨워 주었다고 한다. 작가 자신을 둘러싼 모호함을 일갈에 흐트리는 설산의 가르침, 그것은 작가 자신을 주눅들게 하고 힘들게 했던 현실의 굴레를 벗겨주는 눈부신 자유의 체험이었다고 말하면 과언일까. 히말라야와 성자 그는 성자를 만나지 못했다. 눈밭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빠진 수도승이나 혹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히말라야 기슭에서 용맹 정진하는 도인을 만나지 못했다. 단지 네팔 시내 한 복판에서 만난 걸인인지 성자인지 구별할 수 없는 '뼈다귀'같은 사람들을 만났을 뿐이다. 그들도 연전히 '삶이라는 지독한 명제'를 껴안고 있긴 하지만 환상 속에 그리던 고결한 성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작가 김미진은 히말라야의 성자 대신 속세의 먼지 같은 모습으로 삶이란 것을 살아가는 때가 꼬질꼬질한 보통 사람들, 히말라야의 자락에서 삶을 영위하는 평범함 사람들을 만났다. 열일곱 아름다운 소녀 가정부 브린다의 맑은 눈빛, 멋쟁이 PN의 애틋한 사랑, 구르지('운전사 선생님'이란 네팔어) 페마의 자부심. 뿌연 네팔의 스모그를 헤치며 눈부신 히말라야의 산록으로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 '삶이라는 지독한 명제'를 묵묵히 풀어가는 성인 아닌 속인들의 모습에서 거대하지만 단순한 삶의 진리와 작가는 만난다. 어쩌면 김미진의 히말라야 기행에서 가장 소중한 성과는 삶을 살아가는 그런 보통 사람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만났던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