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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南 최태용 감독을 기리며
발간사 신학의 글 오충일│신앙 혁명으로 복음교회를 이룬 최태용 목사 이양호│테르툴리아누스의 생애와 사상 염승철│바울의 복음 민유홍│생명의 길, 죽음의 길 (에스겔 18장) 김진호│21세기 교회의 선택, ‘혐오의 공론장’인가, ‘사랑의 공론장’인가 임의진│구약성서 욥기 42장 5절과 낙골교회 전도사 김흥겸의 노래 〈민중의 아버지〉 간의 공명(共鳴) 연구 최경석│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자유 박숭인│최태용의 신앙 운동, 신학 운동, 교회 운동 - ‘영적 기독교’의 내용과 그 생명 신앙적 전개 특별 기고 김경재│한국교회 비주류 신앙 운동의 비판정신의 본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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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이 되면서, 최태용은 남한의 정치 사회적 혼란을 보고 건국 운동에 몸을 던진다. 교단의 일은 백남용 목사에게 그가 시무하던 서울교회는 지동식 목사에게 맡기고, 그는 국민계몽 운동에 뛰어든다. 기독교인이 기독 정신을 가지고 나라와 민족을 세우는 일에 나서야 한다는 것은 그의 평소 지론이기도 했다. 그는 1945년 12월 신생회, 1947년 1월 신국가건설단,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는, 1949년 6월 국민회 산하에 ‘국민훈련원’을 세우고 그의 “신((新)국가론”을 비롯한 민주주의, 반공 의식. 영농개량법 등을 교육했다. 그러던 중, 1950년 6 · 25가 발생하고 6월 26일 국민 훈련원 8기생 종업식과 그 잔무를 하다 피난하지 못하고 9월 9일 아침 인민군에 의하여 체포된 후 아무도 그의 마지막을 아는 사람이 없다.
--- 「신학의 길 _오충일 | 신앙 혁명으로 복음교회를 이룬 최태용 목사」 중에서 테르툴리아누스는 160년경에 태어나서 225년경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7년 이전에 기독교로 개종하였으나 207년경에 몬타누스파로 전향한 것 같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신앙을 강조하고 이성을 경시한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테르툴리아누스가 보기에는 기독교 신앙의 내용이 합리적이라면 이해하면 되지 굳이 믿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불합리해서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내용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이성에 따라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신학의 길 _이양호 | 테르툴리아누스의 생애와 사상」 중에서 바울이 전하는 평등의 복음은 로마 제국의 도시 한복판에서 로마 황제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여 고양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유일한 ‘주님’이라고 선언한다. 더욱이 정복 전쟁의 승리를 통해 이루고 식민지에 대한 억압적인 테러로 유지되는 로마의 평화는 제국의 지배질서 유지를 위한 거짓 평화라고 폭로한다. 반면에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의 평화는 인간과 피조물의 온 세상을 구원하고 해방하며, 그리스도의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화해시키며 이루는 참 평화이다. 바울의 참 평화의 복음은 정복과 테러, 황제숭배와 선전 매체를 도구로 하는 로마 제국의 거짓 평화의 복음을 전복시키는 저항 담론이다. 동시에 우월감과 특권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차별과 배제의 다른 복음을 차단하고 평등의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대안 담론이다. --- 「신학의 길 _염승철 | 바울의 복음」 중에서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구원받은 자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영생)’을 현세가 아닌 내세에 받게 될 종말론적인 축복으로만 이해한다. 물론 생명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속한다. 그러나 이런 종말론적 축복과 함께 에스겔이 선포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현존을 통해 주어지는 현재 생명의 축복을 포착하고 누릴 수 있다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더욱더 생동감 있고 풍요로운 여정이 될 것이다. --- 「신학의 길 _민유홍 | 생명의 길, 죽음의 길 (에스겔 18장)」 중에서 그들은 여러 특정 교회에 항구적으로 귀속되기보다는 이곳저곳을 떠돈다. 즉 그들은 교회에 실망하고 떠돌이 신자 생활 과정에서 종교적으로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되었다. 이것은 진리 추구 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고정되고 절대적인 진리를 찾으려 하는 게 아니라, 변화 가능하고 유동적이며 관계적이고 다원적인 진리를 찾으려 하는 이들이 그런 정교적 공간을 찾으려 몇몇 교회를 찾아온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그들은 교회를 여기저기 찾아다닐 뿐 아니라, 종교 간을 오가고, 비종교적 영역에도 거리낌 없이 엮이는 실천에 참여한다. 이런 신앙 유형을 나는 멀티 신자(multi-believers)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자신이 찾아간 교회가 자신들의 멀티적 진리 추구 행위에 부합하기를 요구한다. … 주목할 것은 그 교회들이 멀티 신자들과 더 깊게 연결되면서, 좀더 다양한 담론들과 더 성찰적으로 대면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데 있다. 어쩌면 교회와 신앙의 쇄신 가능성은 이렇게 모색될 수 있을 것 같다. --- 「신학의 길 _김진호 | 21세기 교회의 선택, ‘혐오의 공론장’인가, ‘사랑의 공론장’인가」 중에서 이 김흥겸의 시는 통렬하고 장엄하다. 마치 욥기에 기록된 한 구절을 읊는 것과 같은, 이와 같은 시를 적으면서 그는 마음에서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민중의 아픔과 함께했고 주님의 뜻을 목격하여 서술하였다. 그를 기억할 때, 살아생전의 특별한 장례식은 민중의 얼굴, 민중의 프로파일(profile)을 짜 모으는 거대한 연희의 현장이었다. 그가 노래했던 화상 당한 이, 얼굴을 돌리시는 이, 늙으신 아버지, 병들어 죽게 된 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 가족을 잃고 서럽게 우는 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분노하고 춤을 추는 모든 얼굴들에 담긴 고유한 경험과 투쟁, 해방의 주체들이야말로 곧 그리스도의 현현이라고 고백한다. 신학의 길 _임의진 | 구약성서 욥기 42장 5절과 낙골교회 전도사 김흥겸의 노래 --- 「민중의 아버지_간의 공명(共鳴) 연구」 중에서 성서와 종교개혁 전통의 루터에게서 추론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유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서 책임적 자유다. 이는 이웃사랑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이웃사랑의 책임적 자유가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를 통해 발전된 인공지능의 디지털 시대에 고려되고 통용되기 위해서 성서 특히 십계명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 요구된다. … 더 논의되어야 할 부분은 기독교에서 이해된 자유의 개념을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세상에로의 적용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형태에서 법으로 제도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정치적 압력단체로 활동하는 것이 제시될 수 있다. --- 「신학의 글 _최경석 |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자유」 중에서 최태용의 사상은 운동적 성격을 띤다. 완결된 체계로서가 아니라, 그에 의해 시작된 신앙 운동으로, 후학들에 의하여 언제나 새로이 현재화되어야 할 한국의 주체적 신학 운동으로, 뿐만 아니라 오늘도 그의 뜻을 계승하는 복음교회의 모습으로 진행중에 있는 교회 운동으로서만 최태용의 사상은 그 바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신학의 글 _박숭인 | 최태용의 신앙 운동, 신학 운동, 교회 운동」 중에서 진리는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교단 교세와 재정 능력의 크기, 집회 동원 능력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교회사를 뒤돌아 볼 때,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비호나 십자군 전쟁이 ‘참 복음의 전진’에 도움된 것이 아니며, 14~15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중남미 무력 선교가 ‘인간화와 생명 평화’를 가져다준 것도 아니었다. 국민 95% 이상이 기독교인이었던 독일 국가교회는 히틀러의 제3제국의 집권과 발호를 막지 못했다. 기독교는 19~20세기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 등 소위 제3세계의 많은 국가와 인민들을 ‘식민지화’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 빈곤과 정치적 비극의 원인이 되도록 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미국을 비롯한 국가들의 직간접적 지원 아래 17~19세기 동안 기독교 선교가 이뤄졌다는 역사적 진실 앞에 정직해야 한다. --- 「특별 기고 _김경재 | 한국교회 비주류 신앙 운동의 비판정신의 본질」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