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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여진이 있었어
최필립
타이피스트 202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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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내가 너의 잡음을 이해한다고 해도 괜찮아?

그건 어떤 의미였고/ 밤새 여진이 있었어/ 천착하는 마음/ 게겐샤인/ 계속 밀려나기/ 청어/ 알리바이/ 부싯돌을 부딪치며/ 당신은 멋져/ 석촌호수/ 북채로 가린 얼굴/ 새로운 기후/ 실새삼은 웃을 때 칭칭 소리를 내지/ 파레이돌리아/ 모르는 얼굴인데 초인종 소리만 듣고 문을 열어 버렸어

2부 네가 장성해 벌써 이름이었다는 걸


비주기 노스탤지어/ 푸성귀 다듬기/ 마른 껍질이 있는 정물화/ 테라코타/ 덩굴장미/ 조소/ 곁에서 표류하고 있었고/ 피상에서/ 산탄총의 문제/ 스칸디나비아/ 넘어지는 송곳들/ 흔들의자 위에 떠오른 별자리/ 고개 베는 큰 칼로/ 차나무밭/ 성춘향은 이몽룡을 모른다

3부 영원을 위한 맥거핀


변장술/ 아르무아/ 히에로파니/ 편안한 상태/ 유실점/ 소년 소녀 귀가기/ Psst...!/ circuit/ 기우/ 물총새는 뛰어들어서/ 바구니 가득 증류하는/ 마루가 부러지고 희디흰/ 조영술/ 아스키 연애/ 영원을 위한 맥거핀

산문_노스탤지어와 몇 가지 장면

저자 소개 1

2021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음악의 3요소는 에코와 필과 소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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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204g | 120*190*10mm
ISBN13
9791199365377

책 속으로

연인이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 준다. 역무원이 다가와 애정 행각을 멈추라고 제재한다. 짐짓 억울한 표정으로 우리의 행위는 소생술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 「그건 어떤 의미였고」 중에서

밤새 여진이 있었어 너는 못 들었겠지 여긴 우리뿐이니까 몸에 가득한 주저흔은 칼날이 흔들린 만큼 남아 있고 영원히 집에 갇힌 사람들이 울부짖고 저 중에 우리가 낳고 기른 아이도 있을까
--- 「밤새 여진이 있었어」 중에서

너는 살고 싶은데?
살면서 절망하고 싶은데
어디로 도망쳐도 깨끗한 나무 도마 위
--- 「계속 밀려나기」 중에서

잠시 눈을 감으면 네가 알던 세상은 무너질 거야 문득 어디서 시작했는지 기억도 안 나겠지만 나는 너의 그림체를 닮아 가고 왜 따라 하느냐고 문책하지 말아요 다른 표정으로는 웃을 줄 몰라서 난
--- 「석촌호수」 중에서

키스하는 연인 사이로 라마가 지나간다

너는 숙제가 뭐였냐고 묻는다
뭔가 지나갔다고 한다?
나도 봤냐고 한다?
좋아하는 차가 있다고 한다

방학이 시작했다고 말하지 못했다
--- 「마른 껍질이 있는 정물화」 중에서

빈방에서 빈방으로?
온기에 대해 상상하지 않는다

어떤 애정은 누군가의 일생이 되기도

우리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지
떨어지는 것은 닦았고?
물리는 것은 멈췄고
아름다운 건 계속 피 흘리도록
--- 「산탄총의 문제」 중에서

기억을 한 번에 들이켜 버리자 유영의 속도를 줄여 나가며
목구멍에 처넣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만

이몽룡은 고대의 책에서 공룡으로 등장한 바 있다
거울을 이해하지 못하면 화석이 돼야 해?
뷰파인더에 잡힌 성춘향은 이족 보행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얼굴을 매만져도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있나
--- 「성춘향은 이몽룡을 모른다」 중에서

밤에 밑줄을 쳤다 창밖에는 소설이 내렸다 고양이가 거닐던 층에 유리알이 굴러다녔다 너의 동공을 닮은 빛이 이리저리 산란했다 이 세상에 없는 이에게 비로소 겨울로부터 살아남았다고 적습니다
--- 「변장술」 중에서

네일을 하고 싶었어?
물든 손톱으로 친구를 할퀴고?
상처가 예쁘니까 괜찮다고 하고 싶었어

우리의 영혼을 망친 죄로
더는 시를 쓰지 않는다고 거짓말했는데

--- 「아스키 연애」 중에서

출판사 리뷰

“밤새 여진이 있었어너는 못 들었겠지, 여긴 우리뿐이니까”

균열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세계
파편으로 완성되는 투명의 미학

2021년 『현대시』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필립의 첫 시집 『밤새 여진이 있었어』가 타이피스트 시인선 011번으로 출간되었다. 등단 당시 “붕괴하거나 금세 사라져 버리는 세계에 대한 불안의 정동을 효과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평을 받은 최필립 시인은 익숙한 문법을 낯설게 만들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게 한다. 한 번의 진동으로 끝나지 않는 감정, 말해지지 않은 잔향, 부서진 세계의 조용한 떨림이 그의 시 안에서 여진처럼 이어진다.

흔들리고 남은 것들 위에 내려앉은 언어

밤새 여진이 있었어 너는 못 들었겠지 여긴 우리뿐이니까 몸에 가득한 주저흔은 칼날이 흔들린 만큼 남아 있고 영원히 집에 갇힌 사람들이 울부짖고 저 중에 우리가 낳고 기른 아이도 있을까
-「밤새 여진이 있었어 」 중에서

둘만의 고립된 공간(“여긴 섬이고 우리뿐이야”)에서조차 소통이 단절되어 있고, ‘여진’이라는 말에는 관계의 균열이 이미 시작되었으나 한쪽만이 그것을 인지하고 있는 비대칭적 상황을 암시한다. 즉 단순한 파괴의 잔해가 아니라, 상실의 한가운데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감정의 파동을 보여 주는 것이다. 최필립의 시는 절망 이후의 감각, 즉 ‘멈추지 않는 감정의 잔향’을 탐구한다. 그의 시에는 붕괴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붕괴는 도미노를 상상하는 것처럼 쉽게 일어났다

(중략)

흰 꽃으로 장식한 관을 방부 처리하는 일 나는
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붕괴를 상상했던가
-「계속 밀려나기 」 중에서

「계속 밀려나기」에서 세계의 붕괴는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내재된 구조의 흔들림이다. 그는 무너짐을 비극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붕괴의 장면은 언어가 다시 태어나는 자리이며, 불안정한 균형 속에서도 언어를 지탱하려는 시인의 윤리가 있다.

먼지 낀 구석에 앉아 불난 집을 그리는 아이

잘 안 보이지? 이제 흐릿해서

마비된 손가락으로 또래들이 들을 수 없다던 음역을 어루만졌다
보기 좋게 깨진 가족사진 속 웃는 것처럼 보여
모르는 얼굴이
-「파레이돌리아」 중에서

시집의 중반부에 실린 「파레이돌리아」는 무의미한 형상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심리적 현상을 제목으로 한다. “오래된 거실// 먹다 남은 맛살처럼 눅눅한/ 붉은 물감이 흐르고”, “먼지 낀 구석에 앉아 불난 집을 그리는 아이// 잘 안 보이지? 이제 흐릿해서.” 불에 탄 집, 불분명한 그림자, 모호한 윤곽. 최필립의 시는 이렇듯 사라진 것의 흔적과 잔상으로 세계를 다시 구성한다. 그는 선명한 해석 대신 흐릿함 속에서 감각의 윤곽을 세우며, 불안을 통해 언어의 생명력을 되살린다.

흐릿한 윤곽 속에서 감각을 세우는 일

터널 끝에 가닿았는데 공백을 포함합니까
빛이 명맥을 멈추는데 우리는 돌아갑니까
-「비주기 노스탤지어 」 중에서

손잡이가 거꾸로 매달리고 있다 뼈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궁금하다 너는 이불보를 개고 습관처럼 청귤차를 마신다 꿀꺽이며 밤은 찾아온다 숲으로 간다 성에로 가득한 편백나무 숲에서
나는 너를 잃어버리고
-「마른 껍질이 있는 정물화 」 중에서

1부에서 “붕괴”에 주목했다면, 이어지는 2부에서는 붕괴와 유사한 개념으로서 ‘비틀림’과 ‘반복’이 다뤄진다. “터널 끝에 가닿았는데 공백을 포함합니까/ 빛이 명맥을 멈추는데 우리는 돌아갑니까”(「비주기 노스탤지어」)라는 질문 속에서, 화자는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끊임없이 뒤를 돌아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최필립의 시에서 ‘노스탤지어’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비주기적”이라는 점이다. 규칙 없이 불규칙하게 찾아오는 기억의 파편들이 현재를 교란시키면서,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고 “비틀림의 반복”을 통해 “가정은 훨씬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일반적으로 시에서 이미지는 은유를 통해 의미를 확장하지만, 최필립의 시에서는 이미지 자체가 분열하고 파편화되어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한다. 능청스럽고도 정교한 이 언어 감각은 3부 ‘영원을 위한 맥거핀’에 이르러 ‘영원’이라는 관념을 호명해 낸다.

붕괴 이후에도, 인간의 목소리로

네일을 하고 싶었어?
물든 손톱으로 친구를 할퀴고?
상처가 예쁘니까 괜찮다고 하고 싶었어

우리의 영혼을 망친 죄로
더는 시를 쓰지 않는다고 거짓말했는데
-「아스키 연애」 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최필립 시의 음악성이다. “음악의 3요소는 에코와 필과 소울이라고 생각한다”는 시인의 약력에 들어간 문장처럼, 이 시집에는 독특한 리듬감이 흐른다. “풀피리 필릴리립”(「아스키 연애」)처럼 의성어를 실험적으로 활용하는가 하면, “베버리지, 베버리지”(「바구니 가득 증류하는」)처럼 단어를 리듬처럼 반복하며 음악을 창조한다. 재즈의 즉흥성과 클래식의 구조미, 노이즈의 실험성이 어우러진 최필립의 시는 ‘최필립’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악기처럼 울린다.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이 언어들을 돌아보고 탐구하게 만든다.

『밤새 여진이 있었어』는 감정의 파편과 현실의 균열을 정직하게 직면하는 시집이다. 그는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지 않는다. 대신 잔해 위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온기를 감지하고, 그 흔들림 속에서 말의 구조를 세운다. 보이지 않는 균열에 대한 집요한 관찰과 끊임없는 재구성, 과거와의 끈질긴 연결 덕분에 최필립의 시세계는 내내 진동하는 중이며, 다시금 새롭게 태어난다. 그것은 절망의 복기이자 희망의 변주이며, 감정의 기록이자 감각의 사전이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진동은 결국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로 작동할 것이다.

시인의 말

깨진 유리 조각을 거울처럼 들고 내 얼굴을 비춰 보았다.
투명해서 무엇이든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2025년 10월
최필립

추천평

깨진 거울 조각에 얼굴을 비추듯, 최필립의 시는 균열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세계를 보여준다. 부서지고 흩어지는 언어로 전에 없던 탑을 쌓고는, 곧 허물어뜨린다. “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붕괴를 상상했던가”(「계속 밀려나기」)라는 구절처럼, 그의 시는 균열하여 허물어짐으로써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을 붙잡는다. 낯설게 파편화한 이미지는 삶의 투명한 층위를 드러내고, 상처는 미학이 아닌 물성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시집을 덮으면, 밤새 여진이 있었던 자리에는 하나의 시어가 남는다. 최필립. 그 이름에서는 “풀피리 필릴리립”(「아스키 연애」) 같은 악기 냄새가 난다. ‘붓[筆]’을 ‘세우다[立]’라는 뜻으로 들리기도 한다. 시인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고유한 작가의 이름”(「그건 어떤 의미였고」)이다. - 이현호 (시인)
레고 놀이에서는 머리, 상반신, 하반신 레고를 조합해 사람 모양을 만든다. 파란색 멜빵바지 상반신에 파란색 하반신과 안전모를 매칭하면 수리공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파란색 멜빵바지 상반신에 빨간색 수영복 하반신을 매칭하고 머리 대신 손 모양 레고를 끼울 수도 있다. 어떤 조합으로도 사람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최필립의 시에서 단어는 레고 같다. 소리 조각을 모아 글자를, 의미 조각을 모아 더 큰 의미를 만드는 레고 놀이의 최소 단위. 이야기를 꾸려 갈 최소 조건으로서의 수리공. 그의 시는 그 단위를 더 작은 조각으로 갈라 당연한 듯 맞붙어 있던 것들의 사이를 본다. 벌어진 조각들을 움직이면서 사람의 모양을 자꾸 다르게 그린다. 그 때문에 최필립의 시는 내내 진동하는 중이다. 부딪는 것들의 소리로, 지나간 모양들의 목소리로. - 홍성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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