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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부드럽고 어두운 곡물 수프
2인칭/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속/ 끝끝내 코딱지/ 머나먼 코털 이야기/ 부드럽고 어두운 곡물 수프/ 유신론자에게 보내는 편지/ 나의 유령에게/ 진눈깨비 마음/ 4월/ 잊기로 결심했으나, 결국 잃고 말았습니다/ 왜, 어떻게/ 팥죽과 시간/ 엄마 연습/ 색약을 앓는 벚나무에게 2부 숲은 자세히 헤어진다 가지 진료소/ 검은 바다 동아리/ 슬픈 곤충학자의 꿈/ 슬픈 참매미 업무/ 엮다/ 투명 태아/ 점심시간/ 광화문의 발명/ 오리 수집가의 꿈/ 영화처럼/ 모과 엽서/ 이중 슬릿 슬픔 실험/ 숲은 자세히 헤어진다 3부 잠의 잠 잠의 잠/ 곱게 자랐습니다/ 꿀벌의 우울증/ 농사꾼 귀신에게/ 뒤/ 까막새의 교육법/ 낱알답게/ 어둠 감각/ 퍼스널컬러 2/ 전세 대출을 받은 친구에게/ 천하무적 오이(들)/ 퍼스널컬러/ 시절인연 인터뷰_시 이후의 시, 삶 이후의 삶 (변윤제x포엠매거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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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시라니 시는 슬픔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다 슬픔이 되어 보는 일 눈물 흔들리는 사려나무 그늘 슬픔의 가는 가지를 가만히 주무르는 일 거기 스며드는 볕과 영혼의 냄새를 그저 짐작만 해보는 일 ---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중에서 엄마 이 속에 마음이 있다는 걸 나는 믿을 수가 없는데 속이 상해, 그 말을 들으면 적어도 그 속을 열고 함께 발자국 소리를 낼 수 있을 것만 같아 --- 「속」 중에서 정말로 무서운 건 귀신의 고독이 아니지 진짜로 두려운 건 귀신을 외롭게 만드는 그 한 명의 사람 온전히 귀신의 손을 들어 주지 않는 슬퍼만 하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자꾸 참혹을 그리려 하는 --- 「나의 유령에게」 중에서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이 바닷가에서 헤어졌는가. 누군가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그때, 먼바다의 섬은 선언처럼 붙박이는 성질. 하지만 난 얼마나 많은 연인이 이 바다에 다시 태어났는지 기억하고 싶었어. --- 「검은 바다 동아리」 중에서 나는 갑자기 소년이 미래에서 도착한 내 아이란 생각에 당도하고. 아니, 과거에서 도착한 내 아버지란 몽상에 도착하고. 아버지이자 내 아이란 이상한 믿음에 도달하면서. 주황빛 삽날의 춤에 하염없이 빠져들었다. 아이는 지금 흙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다. 흙장난을 일구는 것이다. 마침내 해내는 것이다. --- 「광화문의 발명」 중에서 엄마가 죽은 뒤로 깨달은 건 엄마가 죽은 사람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사실. 엄마가 죽은 시인이 세상에 많고, 엄마가 죽은 코미디언이 무대에 오르고, 엄마가 죽은 선생님이 다음 날 학교에서 아이들과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것. --- 「오리 수집가의 꿈」 중에서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순간 내 몸은 하나인데 내 마음은 무한 갈래로 찢어지는 일 그때, 슬픔은 끓는 물에 데친 양배추 냄새 위로를 힘 있게 건넬 수 있는 자는 대체로 자신에게 그 위로가 필요한 경우이다 --- 「이중 슬릿 슬픔 실험」 중에서 그런 믿음일 뿐. 오래 쓴 가구에 사람의 살냄새가 밴다고 생각하는 일. 재차 그런 믿음일까. 숲이 오래도록 부린 인간에게선 나무의 냄새가 돈다고 생각하는 일. 등을 기대고 있던 두 사람의 영혼서 동일한 향나무 냄새 올라오는데. 그러니까 우리의 연인은 자세히 헤어진다. --- 「숲은 자세히 헤어진다」 중에서 쓴다와 산다는 내겐 같게 느껴진다. 나의 작은 어둠에선 자꾸만 연필 냄새. 죽음이 산 자의 일이듯, 어둠은 빛의 업무일지 모른다 --- 「어둠 감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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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슬픔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다
슬픔이 되어 보는 일” 모든 존재가 서로의 외로움을 공유하는 세계 슬픔과 유머, 사랑과 죽음이 뒤섞인 변윤제만의 감각적인 애도 변윤제의 세 번째 시집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를 읽으며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슬픔 자체가 아니라, 슬픔이 인간의 몸 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가에 대한 감각이다. 이 시집에서 슬픔은 하나의 정서로 고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냄새가 되고, 벌레가 되고, 곡물의 온기와 팥죽의 냄새가 되며, 때로는 코딱지 같은 우스움으로 변형된다. 변윤제는 슬픔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슬픔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그 내부의 감각을 더듬는다. 그래서 그의 시는 언제나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더 가까워진다. 첫 시집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와 『반국가세력』에서 변윤제는 현실과 환상, 비애와 유머가 뒤섞인 독특한 감각의 세계를 구축해 왔다. 장면과 이미지가 빠른 속도로 충돌하고, 감정은 기묘한 상상력 속에서 번져 나갔다. 그러나 이번 시집에서 그 상상력은 이전보다 훨씬 느리고 깊은 방향으로 침잠한다. 이전 시집들이 세계의 균열을 향해 바깥으로 뻗어 나갔다면,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는 상실 이후 남겨진 인간의 내부를 오래 들여다본다. 특히 어머니의 죽음 이후 시인이 겪는 감각의 변화는 이번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정서적 축이 된다. “죽음은 떠나는 일이 아니라도착하는 일 같다없어지는 일이 아니라만들어지는 일 같다” ― 「부드럽고 어두운 곡물 수프」 중에서 변윤제 시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죽음을 단순한 상실이나 부재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시에서 죽음은 오히려 새로운 감각이 생성되는 장소에 가깝다. 「부드럽고 어두운 곡물 수프」에서 죽음은 곡물의 냄새와 수프의 온기 속으로 스며든다. 병상에 누운 어머니는 더 이상 인간의 언어를 말하지 못하지만, 시인은 그 존재를 “향기의 일종”으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애도는 떠난 존재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남겨진 냄새와 감각을 천천히 헤아리는 일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변윤제가 이 비극을 지나치게 숭고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슬픔을 높여 세우기보다 오히려 생활의 가장 낮고 사소한 감각 속으로 끌어내린다. “코딱지는외로운 것, 기쁜 것을 구분하지 않고모멸과 영광을 넘나들며” ― 「끝끝내 코딱지」중에서 변윤제 시의 가장 독창적인 지점은 바로 이런 순간들에서 발생한다. 죽음의 한가운데에서조차 그는 코딱지와 귀지, 냄새와 벌레 같은 시시한 것들을 시선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다. 삶과 죽음의 위계를 무너뜨리는 이러한 감각은 결국 인간이란 모두 비슷한 육체를 가진 존재이며, 슬픔조차 완벽하게 고결해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의 시에서는 애도와 웃음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웃음은 슬픔을 더 오래, 더 깊게 지속시키는 방식이 된다. 이번 시집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인간과 자연, 사물과 생명 사이의 경계가 끊임없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벌레와 나무, 귀신과 바다 같은 존재들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공유하는 또 하나의 생명처럼 움직인다. “색약을 앓는 나무가매 계절 자신의 빛깔을 증명하는 일에 관하여” ― 「색약을 앓는 벚나무에게」중에서 변윤제의 시에서 자연은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함께 늙고 흔들리며 슬퍼하는 감각의 공동체다. 「슬픈 참매미 업무」에서 매미의 울음은 인간의 슬픔과 뒤섞이고, 「슬픈 곤충학자의 꿈」에서는 벌레의 움직임이 사랑과 작별의 감각으로 번져간다. 이러한 연결 속에서 변윤제는 인간 중심적인 감정의 구조를 조금씩 해체한다. 인간만이 슬픔을 독점하지 않는 세계. 모든 존재가 서로의 외로움을 조금씩 공유하는 세계. 그것이 이번 시집이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다. “엄마를 적을수록 엄마에 대해 단 한 줄도 적은 적이 없는 사람이 되어 간다.” ― 「엄마 연습」중에서 이번 시집은 동시에 ‘쓰는 일’ 자체에 대한 시집이기도 하다. 변윤제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시는 무엇인가. 누군가를 쓴다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사랑하는 존재를 언어 안에 붙잡아 두는 일이 정말 가능한가. 그러나 이 질문은 끝내 해답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계속 실패하면서 쓴다. 엄마를 쓰려 할수록 엄마로부터 멀어지고, 슬픔을 적으려 할수록 슬픔은 다른 냄새와 기척으로 흩어진다. 바로 그 실패와 미완성 속에서 변윤제의 시는 가장 인간적인 얼굴을 드러낸다.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는 상실 이후에도 끝내 삶 쪽으로 기울어지는 마음의 기록이다. 사랑과 미움, 웃음과 슬픔, 생과 죽음이 한데 뒤섞인 채 오래 흔들리는 세계. 변윤제는 이번 시집에서 포엠매거진과 진행한 인터뷰를 함께 수록해, 시와 글쓰기, 상실과 애도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더욱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 오래된 중얼거림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시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왜 인간이 끝내 어떤 마음들은 언어로 남기려 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시인의 말 나는 아름다움이 아닌 아름다움이 필요한 인간을 위해 시를 쓴다 2026년 6월 변윤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