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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보여도
아직 할 수 있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 스티븐 호킹 누구의 생명이건 언젠가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다만 나는 그 골목의 끝을 이미 볼 수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 많은 것이 절약된다. 가령 나중에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고, 이 골칫거리 여드름이 언제쯤 사라질지, 여자친구를 만나기나 할지 고민할 이유가 없다. 내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들을 괴롭히는 수많은 문제를 나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그게 그리 좋지는 않았다. --- p.10 “시간은 환상에 불과한 것 같아. 실제로는 전혀 가지 않는 거지. 그런데 우리가 과거, 현재, 미래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고.” 마누엘의 생각은 쫓아갈 수 없을 때가 참 많았다. 나보다 세 살 어리지만 어떨 땐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것 같고 어쨌거나 나보다 훨씬 똑똑한 것 같다. “무슨 말이야?” “생각해 봐. 현재는 존재할 수가 없어.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순간에 이미 생각을 했으니까 과거인 거야. 그리고 현재가 없다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우리의 모든 관념은 의미를 잃게 되겠지. 책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문장이 줄을 지어 쭉 적혀 있고, 우리가 그 문장을 읽을 때는 생생한 이야기가 탄생하는 것 같잖아. 30쪽을 읽고 있으면 그것이 현재인 것 같고 앞 페이지에 적힌 내용은 과거인 것 같으며 34쪽과 112쪽은 아직 미래에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실제로 그 책은 전부 다 이미 쓰였고 모든 문장은 동시에 존재하지.” --- p.24 “기계로.” “맞아요. 인간을 만드는 것은 팔과 다리, 눈과 귀만이 아닙니다. 그게 다 없어도 여전히 인간인 사람들이 있거든요. 두뇌 역시도 엄밀히 말하면 인간을 정의하지 못합니다.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우리, 말하자면 우리의 에센스는 생각과 기억, 바람과 목표, 희망과 근심, 사랑과 불안이지요. 두뇌는 이 소프트웨어, 즉 우리의 영혼이 돌아가고 있는 하드웨어에 불과해요. 그래서 우리는 소프트웨어를 다른 기계로 옮길 수 있듯 인간도 그렇게 하려 합니다.” “그럼 그 기계에도 영혼이 있게 되는 건가요?” --- p.40 납치범들은 연락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확신이 들었다. 보안업체 대표의 말처럼 마누엘에게 너무 강력한 마취제를 사용해서 깨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납치로 인해 병이 심해져서 폐가 멈춰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마누엘이 죽었을 확률은 높았다. 몇 달 동안 우리는 마누엘의 죽음을 준비해 왔다. 하지만 늘 그 순간에 그의 곁에 있을 것이고 그와 작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못할 경우를 감안해야 했다. 마누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 더 괴로웠다.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내 다시 잔혹하지만 희미한 희망의 불꽃이 꿈틀거렸다. 어쩌면 납치범들이 우리랑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된 것이어서 다시 연락을 시도할지 모른다. 몰래 헤닝하고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헤닝이 우리의 희망을 꺾지 않으려고 일부러 숨기는 것일 수도 있다. 마누엘이 지능형 의자 덕분에 도망을 쳐서 연락이 안 되는 어디 외진 곳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 p.183 “마누엘, 넌 인간이니?” 에바가 물었다. “둘 다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인간적인 기계, 기계적인 인간, 두 세계를 연결하는 결합조직.” 내가 대답했다. “질문에 대답해. 마누엘. 넌 인간이니? 예야, 아니오야?” 이 질문도 또 하나의 테스트에 불과하다는 걸 나는 잘 안다. 하얀 방과 그 이후에 일어난 그 모든 일들이 그러했듯. 그들은 나를 가지고 놀았고 연이어 속임수를 쓰면서 나를 관찰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내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도 배운 것이 없지 않다. 인간이건 기계건, 삶은 쉬지 않고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우리가 내린 결정은 많건 적건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될지를 좌우한다. 나는 결정을 내린다. “예. 나는 마누엘이에요. 나는 인간이에요.” 내 누나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 p.3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