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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009
1부 . 풋라이트 . 찰리 채플린 스토리의 진화 017 풋라이트 061 칼베로 이야기 243 2부 . 라임라이트의 세계 . 데이비드 로빈슨 나무 흔들기 271 대본에서 영화로 299 [라임라이트]의 런던 357 채플린 가족의 뮤직홀 389 레스터 스퀘어의 발레 437 가족 초상화 469 에필로그 487 부록 노트 495 [라임라이트] 크레디트 509 [라임라이트] 관련 연보 511 관련인물들 515 참고 문헌 519 |
찰리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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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비극을 ‘웃음의 예술’로 승화시킨 영원한 광대 찰리 채플린
사후 40여년 만에 처음 공개되는 그의 유일한 자전소설 딱 달라붙는 재킷과 두세 사이즈는 커 보이는 헐렁한 바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신발에 어줍은 모자, 네모나게 자른 콧수염. 2014년은 전설적인 영화인 찰리 채플린의 상징과도 같은 캐릭터, 트램프(부랑아tramp라는 이 단어는 채플린의 영화들을 통해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었다)가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하여 뮤지컬, 모던 발레 등 그의 삶과 예술을 기리는 다양한 기념 공연들이 전 세계적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무성영화를 보급, 복원하는 이탈리아의 영화 아카이브 단체 시네티카 디 볼로냐는 대표적인 채플린 연구가 데이비드 로빈슨과 함께 채플린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설레게 할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채플린의 풋라이트》는 사후 40여년 만에 공개되는 채플린의 유일한 소설 [풋라이트]와 그것이 후기 걸작 [라임라이트]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복원해낸 기록적인 작품이다. 스물두 살 [라임라이트]의 시사회장에서 만난 채플린에게 매혹되어 평생을 그 예술과 삶을 기리는 데 헌신해온 데이비드 로빈슨은, 시사회 직후 매카시즘의 광풍에 내몰린 채플린이 미국에서 추방 아닌 추방을 당하면서 함께 내몰린 [라임라이트]가 20여 년 후 다시 개봉되었을 때 가장 따뜻한 글로 반겼다. 이를 계기로 채플린 가족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그는 2014년, 유가족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60년간 잠들어 있던 채플린의 분신과도 같은 소설 [풋라이트]를 되살려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채플린 아카이브의 방대한 자료들을 샅샅이 뒤져,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개인적 사회적 배경과 그것이 영화로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실제 작업 과정을 복원해나간다. 익숙한, 그러나 온전히 무대 위의 모습인 트램프 복장을 벗고 그가 평생 가장 두려워했던 악몽인 ‘한물간 희극배우’로 분한 63세의 채플린, 그에게 [라임라이트]는 단순한 자전적 영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마음속 내밀한 추억과 상처들, 고독한 천재의 예술혼을 모두 쏟아부은 이 작품은 영상화되기 20여 년 전에 이미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서, 소설로서 존재했고, 그것은 채플린의 작업 스타일을 생각할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데이비드 로빈슨에 따르면, 그 시작은 그보다 훨씬 전 스물일곱 채플린이 동갑내기 천재 무용수 나진스키를 만난 순간으로, 아니 어쩌면 채플린이 다섯 살 나이로 보드빌 무대에 처음 올랐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공개 육필원고, 150여 장의 희귀 사진들, 가족과 동료들의 생생한 증언, 오직 이 책에만 허락된 이 놀라운 자료들 외에도, 《채플린의 풋라이트》에는 집요하리만큼 성실하고 세밀한 데이비드 로빈슨의 복원 작업과 충직한 해설이 담겨 있다. 집필 원고의 수정 사항들, 모델이 된 실제 인물들, 영화 제작 기간 동안 때로는 채플린을 구원하고(처음으로 그에게 가장으로서의 기쁨을 선사한 우나 오닐과의 결혼생활, 오랜 전우 같은 스튜디오의 동료들, 영화 제작 그 자체), 때로는 그를 지옥에 빠트렸던(전 세계를 전쟁터로 밀어 넣은 전체주의와 만연한 물질만능주의, 매카시즘의 광풍) 생의 굴곡들을 되짚어나감으로써, 데이비드 로빈슨은 왜 이것이 채플린의 다른 이야기들과는 달리 시나리오 밑 작업을 위한 자료가 아닌 하나의 독립적인 소설로 먼저 태어났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수다하게 많은 생각과 감정의 덩어리들이 서서히 증류되어 두 시간의 소비자 제품으로 결정結晶되는 과정”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우리 독자들은 남겨진 영화만을 통해 마주했던 채플린이라는 거장이 진정 어떠한 존재였는지 실감하게 된다. 19세기 말 무대 위 배우를 비추는 데 쓰이던 조명을 가리키던 말, ‘라임라이트’. 더 이상 어느 극장에서도 이 강렬한 백색광을 쓰지 않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세간의 이목을 끌다’ 혹은 ‘각광받다’ 정도의 관용구에 흔적처럼 남아 있을 뿐이지만, 채플린의 [라임라이트]만은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강렬하게 빛날 것이다. 추천의 글 채플린에게는 모든 칭찬이 무색하다. 그는 가장 위대한 인물이니까. [...] 채플린은 수없이 오용된 ‘인간적인’이라는 형용사를 제대로 쓸 수 있는 유일한 영화인이다. _장 뤽 고다르 채플린이 나오는 장면에서 나는 웃으며 아우성을 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 슬픈 현실에 고통을 느낀다. _제리 루이스 그는 영화를 인간 정신의 위대한 표현으로 격상시켰고, 영화를 예술로 여길 수 있기를 바라는 우리의 희망에 빛을 주었다. _장 르누아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