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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내 이름은 노화
1부 섬, 그 섬 이야기 희망은 첫발을 내디디며 섬은 왜 섬이었을까 첫발의 용기, 겨울을 지나는 온기 섬섬옥수처럼 고운 별빛이 깃들 때 2부 봄날이 오다 새싹 나듯 피어오르다 사람, 사람, 섬 섬의 마음들 곁에서, 옆에서 건네는 마음 3부 다정함의 바다 가운데 문을 열다, 열매를 맺다 병원의 색깔은 섬색 4부 외따로이 두지 않는 마음 누구도 원하지 않은 일 외딴 시간은 여전히 흐른다 섬으로부터 섬에게로 에필로그 시간의 지층 그 아래 부록 대우재단 낙도오지 의료사업의 역사 김우중 의료인상 역대 수상자 이 책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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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내 땅에 묘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큰 배들이 섬으로 자재를 실어 나르고, 산과 바닷가에서 모래와 흙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바다였던 곳이 점점 땅이 되었고 내 지경이 넓어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오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담하고 우직한 건물이 세워졌다. 그리고 그곳에 ‘병원’이라는 간판이 걸렸다. 미안한 말이지만 처음에는 뭐 하는 곳인지 몰라서 심술도 좀 부렸다. 내 땅에서 머물고 놀고 살던 사람들이 나보다 더 사랑하는 곳이 생긴 것이 살짝 질투도 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이 고마워졌다. 내가 손쓸 수 없었던 사람들을 그곳이 살려내고 있었다.
--- p.10, 「프롤로그 〈내 이름은 노화〉」 중에서 눈 감았다 뜨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처럼 바쁘게 돌아가던, 어떻게든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에 모두가 경주마처럼 달리던 시절이었다. 배려보다는 경쟁이, 돌아봄보다는 거침없는 성공이 더 절실하던 그때,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는 그 모든 흐름을 한 번 더 넘어서려는 회의가 길게 이어지는 중이었다. 회의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창밖으로는 봄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그 바람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테이블 위에는 한국 의료의 현실을 담은 보고서가 펼쳐져 있었다. 경제 성장의 그림자에 가려진 이들의 삶이 숫자와 그래프로 정리되어 있었다. --- p.16-17, 「1부, 〈희망은 첫발을 내디디며〉」 중에서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을 때, 우린 그저 하늘만 쳐다보며 빌었어.” 섬에 병원이 들어선다는 말을 들었던 김분례(가명, 87세) 씨는 바다를 보며 중얼중얼, 오래 가슴에 담아둔 것이 분명한 말을 툭 내뱉었다. 병원이 없어 아버지를 눕혀놓고 그저 천지신명에게 빌기만 했던 것이 십수 년, 아버지 얼굴마저 가물거릴 정도로 오래된 일이지만 가슴에 돌덩이처럼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던 까닭이었다. 이 한마디에 섬에서의 병이란 게 단순한 아픔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사건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p.22-23, 「1부, 〈섬은 왜 섬이었을까〉」 중에서 네 개의 대우병원은 낙도와 오지에 의료시설 이상의 의미를 가져왔다. 그것은 그동안 팔자로 받아들였던 많은 일이 팔자가 아니라 접근성의 문제였음을 알게 해주었다. 아이들이 뱀에 물려 죽지 않아도 되고, 노인들이 만성질환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되며, 산모가 배 위에서 출산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병원은 또한 한창 일하며 가정을 이룰 나이의 젊은이들이 섬을 떠나지 않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 p.53-54, 「1부 〈섬섬옥수처럼 고운 별빛이 깃들 때〉」 중에서 오래된 믿음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진심 어린 관심과 존중으로 다가간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배웠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는 대립이 아닌 이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섬에 뿌리내린 오랜 관습들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의료진들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믿었다. 언젠가는 이 섬의 아이들이 뜨거운 돌로 배를 지지는 일 없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 p.83, 「2부 〈섬의 마음들〉」 중에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은 육체적 치료를 넘어 삶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이었다. 이웃을 돌보는 과정에서 의료진은 그들의 사명감뿐 아니라 삶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삶이란 무수히 많은 작은 연결고리로 이루어져 있다. 때로는 골목길을 달리는 자전거 바퀴, 때로는 환자를 찾아가는 한 사람의 발걸음. 이 모든 것이 모여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간다. --- p.115, 「2부 〈곁에서, 옆에서 건네는 마음〉」 중에서 베푸는 일에는 그 행위 자체 외의 목적이 없어야 한다. 그저 선물처럼, 따스한 바람처럼 흘러가야 한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지 않지만, 바람이 닿았던 순간의 기쁨은 사라지지 않는다. 섬에 부는 바람처럼 베풂도 그랬다. 섬은 여전히 외롭지만 돌아오지 않는 약속을 기다리지 않는다. 베푸는 것으로 그만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 p.131, 「3부 〈문을 열다, 열매를 맺다〉」 중에서 이미 섬사람들은 의료진에게 ‘그냥 환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고립된 지역에서 나와 함께 땀 흘리는 이웃이고, 가족이었으니 그만큼 더 들여다보고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희망을 잃은 한 사람이 또 세상을 향해 일어서는 기회가 왔다. 의술 아닌 인술 덕에. --- p.138, 「3부 〈병원의 색깔은 섬색〉」 중에서 유족들과의 지리멸렬한 싸움이 이어지는 순간에도 환자들은 계속 생겨났다. 의료진들은 지난 일을 수습하면서도 새로운 환자를 감당하며 매일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고군분투했다. 의사의 판단이 옳았던 날도, 그렇지 않았던 날도 있었다. 가족들의 고집이 환자를 살린 날도, 그들을 더 위험하게 만든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의료진이 깨달은 것은 하나였다. 모든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결심이 그들을 붙잡아두는 힘이라는 것이었다. --- p.159-160, 「4부 〈누구도 원하지 않은 일〉」 중에서 바다가 잠든 새벽, 노화도 선착장에 도착한 첫 배처럼 그 소식은 조용히 섬에 닿았다. 2022년 5월, 완도군 보건의료원으로부터 온 공문 하나가 오랜 침묵을 깨웠다. 마치 오래 기다리던 이의 편지처럼,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반가운 소식이었다. “함께 만들어가면 어떨까요? 도서민 건강돌봄센터를….” 그 제안은 사업 협력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2023년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첫 사업으로, 옛 완도대우병원 건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자는 것이었다. 40여 년 전, 섬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주던 그 공간이 다시 한번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는 심장으로 뛸 수 있었다. --- p.190-191, 「4부 〈외딴 시간은 여전히 흐른다〉」 중에서 중요한 것은 건물이나 시설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마음과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의 힘이다. 병원이 사라져도 치유는 계속된다. 오히려 더 근본적인, 더 전인적인 치유로 나아가는 길이 열릴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노화도가 꿈꾸는 미래이자 이 오래된 섬이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 p.190-191, 「4부 〈섬으로부터 섬에게로〉」 중에서 사계절이 오고 가며 내 얼굴을 바꾸어놓듯이, 시대의변화도 내 모습을 조금씩 바꾸어놓는다. 하지만 내 본질, 내 영혼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노화도이며, 많은 이의 삶과 꿈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마음치유센터라는 새로운 옷을 입게 될 나의 모습이 기대된다. 아마도 그것은 더 많은 이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따뜻한 존재가 될 것이다. 다시 바람이 분다. --- p.212, 「에필로그 〈시간의 지층 그 아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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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긴 이야기를 어렴풋하게라도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주인공들도 서서히 사그라져가고… 더 늦기 전에 이 기록을 꺼내어 보이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크고 깊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몸소 실천한 사람들의 기록이라 그 울림으로 울컥하고 가슴은 벅차다. 무엇보다 이 험난한 여정을 이끈 가장 용기 있는 리더와 ‘함께 호흡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로 받았다. 김우중 의료인상 시상에 동참하며 받았던 감동과 깨달음을 더 많은 이와 나누고 싶다. - 임채민 (제49대 보건복지부 장관, 김우중 의료인상 선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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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함께 숨 쉬어온 섬의 한 켠에서 40여 년간 군민의 곁을 지켜온 완도대우병원이 예술과 문화로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곳은 의료를 넘어 섬사람들의 일상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이 책은 그 변화의 여정이 담긴 ‘치유의 섬 완도’에 대한 기록이다. 바다의 곁을 닮은 이 이야기가 독자들에게도 잔잔한 위로의 파문으로 닿기를 바란다. - 신우철 (제39대 완도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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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42세에 전 재산을 출연해 낙도오지에 병원을 세운 김우중 회장의 깊고 높은 뜻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노화도 섬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병원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얼마나 많은 의료인의 희생과 봉사가 있었는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대우재단과 완도군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마음치유센터 사업에 큰 발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 장병주 (대우인회 회장, 前 ㈜대우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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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대한민국은 무척 가난하여 낙도오지의 주민들은 병들어 죽는 걸 ‘팔자’로 여기고, 뭍으로 향하던 배에서 애 낳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김우중 회장은 나라를 대신해 의료가 가장 취약한 네 군데에 병원을 열었다. 이에 섬사람들은 “화려한 훈장이나 상금도 따라올 수 없는 훈훈한 인정을 담아”라며 송덕비를 세워 화답하기도 했다. 이 책은 완도대우병원 의료인과 그들이 살린 주민들의 투박한 수채화 같은 이야기다. - 신성식 (중앙일보 국장, 보건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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