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책머리에 / 5
│ 식민지시기 안재홍의 옥고 횟수와 기간 재검토 / 김인식 1. 머리말 2. 제1차 옥고: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사건, 총 30개월 13일 3. 제2·3차와 4차 옥고: 두 차례의 필화와 민중대회 사건, 총 8개월 20여 일 4. 제5차 옥고: 만주동포 구제금 유용 사건, 8개월 20여 일 넘게 5. 제6·7·8차 옥고: 남경군관학교 학생모집 사건(6·8차)과 흥업구락부 사건(7차), 총 32개월여 6. 제9차 옥고: 조선어학회 사건, 총 100여 일 7. 맺는말 │ 미군정기 『한성일보』의 남한단정론에 대한 비판적지지 / 오영섭 1. 머리말 2. 미군정의 남한단독정부 수립설 3. 독립전취국민대회 석상에서 김규식의 남한단독정부 수립설 4. 이승만의 정읍선언과 단계적 통일정부수립론 5. 이승만의 방미활동에 대한 비판적 지지 6. 맺음말 │ 1930년대 민세 안재홍 조선학운동의 지평 재점검 / 이주현 1. 들어가며 1) 문제의식 설정과 예비적 담론 2) 선행 연구 분석과 연구의 목적 2. 다산을 읽은 민세의 맥락 1) 1920년대: ‘세계’로 조선을 편입하려는 시도 2) 1930년대: 새로운 사상적인 구호 - ‘조선적인 것’의 제창과 지식인들의 분열 3. 민세의 다산 독해와 평가 1) 민세의 다산 독해 2) 민세의 다산 독해, 그 평가와 의의 4. 민세의 다산 확장 -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 5. 나가며: ‘지금-여기’와 ‘조선색을 짜너은’ │ 지역 문화콘텐츠로써의 역사인물 활용 방안 / 방유미 1. 서론 2. 평택의 문화자원과 안재홍의 문화적 가치 3. 역사인물 기반 지역문화콘텐츠 활용 사례 및 시사점 4. 안재홍을 활용한 평택 지역문화콘텐츠 개발 방안 5. 결론 │ 안재홍의 근현대 체육 확산 활동 연구 / 황우갑 1. 머리말 2. 일제 시기 안재홍의 체육 확산 활동 1) 안재홍의 생애 2) 1920년대의 체육활동 3) 1930년대의 체육활동 3. 해방 후 안재홍의 체육 확산 활동 1) 국민당 정강정책과 체육 활동의 중요성 언급 2) 조선체육회 고문 등 경기단체 지원 활동 3) 대한 올림픽후원회 회장으로 올림픽 복권 발행 등 지원활동 4. 맺음말 |
김인식의 다른 상품
吳瑛燮
오영섭의 다른 상품
이주현의 다른 상품
방유미의 다른 상품
황우갑의 다른 상품
민세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의 다른 상품
|
김인식은 「식민지시기 안재홍의 옥고 횟수와 기간 재검토 」에서, 안재홍의 총 옥고 기간은 7년 15일여로 추산할 수 있으며 기간에는 병보석으로 석방된 날과 출옥일은 제외하였고, 피체일이 분명하지 않을 경우에는 가장 늦은 날짜를 피체일로 계산하였으므로 30여 일 전후의 오차가 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7년 3개월’의 기간 중 ‘9차례’에는 포함되지 않은 옥고를 가정할 수 있으며 안재홍은 1917년 3월 5일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勵契) 사건에 연루되어 「보안법」 위반으로 검사국에 송치되었는데, 송치되기 이전 경찰서 유치장에 수일간 구금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지방 순회 강연 중 내용이 문제가 되어 수시로 구류되었을 예도 다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오영섭은 「『한성일보』의 남한단정론에 대한 비판적 지지」에서, 일제시기에 이상재와 YMCA와 『태평양잡지』를 매개로 인연을 맺은 이승만과 안재홍은 독립과 건국의 대의를 실현하고자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양인의 협력관계는 일제시기 말기에 단절되었으나 해방된 조국에서 재개되었고 이때 양인은 자주적 통일민족국가의 건설이라고 하는 광복대업의 최종목표를 달성하고자 분투하는 과정에서 안재홍이 사장을 맡은 『한성일보』를 통해 협력관계를 이어갔다. 이때의 협력양상은 많은 논쟁과 논란을 낳은 이승만의 신국가 건설방안인 남조선단독국가건설론(남한단정론)에 대해 안재홍의 『한성일보』가 거의 대부분의 언론 매체들과 달리 비판적 지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평가했다. 이주현은 「1930년대 민세 안재홍 조선학운동의 지평 재점검」에서 민세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조선 인민이, 일제 압박에서 벗어나 그릴 청사진의 단위 또한 민족국가로 제시함으로써 식민지 조선의 문제 의식을 계승하였고 끊임없이 전통의 서사를 주체적인 민족문화로 재구성하고자 하였으며, 재구성의 도구는 다산이었다고 보았다. 민세가 1930년대에 진행한 다산 독해는 분명 굴절되어 있었지만, 그 굴절은 다시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가치를 형성했으며 그가 제시한 이상사회의 가치가 지금의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에서 그의 ‘지금-여기’가 어떻게 이해되었는지 다시금 독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방유미는 「지역 문화콘텐츠로써의 역사인물 활용 방안: 평택시의 안재홍을 중심으로」에서, 상대적으로 활동 업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부족한 평택 출신 역사인물 안재홍에 대해 재조명함으로써 지역문화콘텐츠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였으며 정체성이 부재한 평택시의 문화적 정체성 구축 방안을 제시하였다. 실용적 측면에서는 안재홍 콘텐츠 개발은 평택만의 고유한 문화 브랜드 구축, 문화관광 활성화를 통한 지역경제 발전, 교육적 가치 실현을 통한 시민 의식 향상과 지역 공동체 결속 강화라는 세 가지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황우갑은 「안재홍의 근현대 체육 확산 활동 연구」에서 안재홍은 일제 강점기 조선일보를 기반으로 축구, 농구, 야구, 권투 등 다양한 체육 분야에서 경기인들과 협력하며 스포츠를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고 조선농구협회 초대 회장으로 한국 농구 발전에 초석을 놓았으며 해방 후에도 안재홍은 조선체육회 고문, 한국프로권투협회 고문 등으로 체육발전에 기여했고 민정장관 재직시절인 1947년 12월 대한올림픽 후원회 회장으로 한국 최초 복권인 올림픽 후원권을 발행 1948년 6월 신생 대한민국이 최초로 런던 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게 지원했음을 규명했다. 안재홍기념사업회는 2000년 창립 이후 꾸준하게 민세 관련 학술대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관련 연구내용을 정리해 민세학술총서로 발간해왔다. 이는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다양한 활동과 함께 방대한 글과 자료를 남긴 민세 안재홍의 삶과 정신을 재조명하는 목적사업을 충실하게 추진하고자 하는 실천에서 나온 소중한 결과였다. 앞으로도 민세학 정립을 위한 학술 출판사업은 꾸준하게 추진될 것이다. 민세 학술연구총서의 꾸준한 발간은 ‘민세 정신’의 선양과 재조명 사업에 애정을 아끼지 않는 평택시의 한결같은 후원에 힘입었다. 본 발간사업을 지원해주신 정장선 평택시장님과 묵묵히 보훈정신 선양에 힘써온 복지정책과 보훈팀 담당자들께도 거듭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도서출판 선인의 윤관백 사장님은 2011년부터 사업회와 좋은 인연을 맺고 매년 민세학술연구 총서를 꾸준히 발간해 주셨다. 윤사장님과 편집기획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2025년 8월 15일안재홍 선생 서세 60주기를 맞이하는 광복 80주년에 높은 절개를 지닌 국가의 선비 안재홍 선생의 정신을 기리며 민세학술연구 총서 15권 편집위원 일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