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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악의 꽃
제12장 반혼향(反魂香) 제13장 백로 아가씨 제14장 거품의 시대 제15장 달단의 꿈(??の夢) 제16장 거성이 떨어지다 제17장 5대손 하나이 백호 제18장 고성의 낙일(孤城落日) 제19장 비단잉어 제20장 국보(??) 해설 |
Shuichi Yoshida,よしだ しゅういち,吉田 修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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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를 그만둘 수 있는 배우가 있는 걸까?
나는 언제까지나 무대에 서고 싶어!” ‘춤’이 곧 ‘삶’이 되어버린 ‘키쿠오’의 ‘슌스케’ 가슴이 먹먹해지는 마지막 피날레가 펼쳐진다! ‘삶과 죽음’, ‘허와 실’, ‘남과 여’가 하나로 녹아드는 몽환의 세계 요시다 슈이치 문학의 새로운 경지 평생의 라이벌이자, 친형제 같은 우정을 나누는 ‘키쿠오’와 ‘슌스케’의 마지막 여정이 《국보》 하권에서 펼쳐진다. 상권 ‘청춘편’과 하권 ’화도편’을 통해 배우로서 누렸던 그들의 찬란한 삶과, 춤과 연기에 대한 그들의 불꽃 같은 열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국보》는 기존의 요시다 슈이치의 문학 세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삶과 죽음’, ‘허와 실’, ‘남과 여’ 같은 서로 이질적인 것이 하나로 녹아드는 몽환적인 가부키 세계의 매력을 사실적으로 표현해낸다. 특히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예술과 인생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국보》의 상권 ‘청춘편’이 주인공인 ‘키쿠오’와 ‘슌스케’가 혹독한 훈련을 통해 가부키 배우로서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중심으로 다루었다면, 하권 ‘화도편’에서는 ‘키쿠오’와 ‘슌스케’가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확립해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다룬다. ‘하나이 한지로’의 후계를 두고 서로 다른 길을 갔던 키쿠오와 슌스케. 이후 드라마틱한 삶의 변화를 거치면서 그들은 가부키 배우로서의 자부심과 무대 위에서 펼치는 춤과 연기에 대한 열정이 더 단단해지게 된다. ‘완벽한 무대’를 향한 불굴의 집념 무엇이 그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오랜 방황의 시간을 끝내고 다시 탄바야 가문으로 돌아온 슌스케는 가부키 배우로서 내적으로 더욱 단단해져 있었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연기와 춤에 대한 답을 찾고자 가문의 이름도 버리고 아주 작은 무대를 전전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ㅤ슌스케는 오히려 배우로서 한층 더 단단해졌다. 젊은 나이에 현실과 부딪치면서 가슴속에 담아둔 ‘희로애락’의 감정을 무대 위에서 춤과 연기로 폭발시킨다. 그리고 슌스케의 춤과 연기를 대하는 관객도 그의 노력과 정신에 감응하며 큰 박수와 갈채를 보낸다. 슌스케와 마찬가지로 키쿠오도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춤과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스승이면서 아버지 같았던 2대손 하나이 한지로가 세상을 떠난 후 키쿠오는 주연은커녕 무대 위에서 비중이 거의 없는 조연도 겨우 맡는 지경에 이른다. 배우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허락되는 무대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키쿠오는 이 상황을 타계하고자 전통 가부키 무대가 아닌 ‘신파(新派)’ 쪽으로 이적한다. 전통 가부키에서 갈라져 나온 계파인 신파는 서양 연극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이 특징이었다. 신파 쪽으로의 이적은 키쿠오에게 ‘신의 한 수’가 된다. 산파 무대에서 자신의 미모를 살린 키쿠오의 연기는 새바람을 일으켰고, 세계적인 여성 소프라노 가수와의 협연 기회까지 얻게 된다. 이로써 전통 가부키 무대의 중심에 선 슌스케와 더불어 세상이 주목하는 가부키 배우로 자리 잡게 된다. 저자는 ‘완벽한 무대’를 꾸미기 위해 매진하는 키쿠오와 슌스케를 통해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서로 다른 것 같은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현재의 결과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관객의 호응을 기폭제 삼아 자기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아 보완함으로써 ‘완벽’에 도달하고자 한다. 두 사람 모두 배우이자 예술가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무결점의 춤과 연기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채찍질한다. 누군가는 그들을 일러 ‘결벽이다’, ‘집착이다’, ‘완벽주의다’라고 하며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러한 맹목에 가까운, 집착에 가까운 노력을 경주한 사람이 바꾼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이러한 삶의 메시지를 저자는 키쿠오와 슌스케를 통해 다시 한번 일깨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