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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충분히 좋은 드로잉 007
예술이 없이는 013 길가에 뒹구는 낙엽들 018 눈 한 번 깜빡이는 사이 022 고요하게 살아 있는 죽음 028 감정의 통로, 추상 031 방랑의 시간들 034 이름을 잊어버린다는 것 037 나 하나의 전쟁 039 해를 향해 나아가는 049 식물이라는 반려 053 내 마음엔 잡초가 자란다 054 염세주의라는 열정 063 괴로움이라는 근원을 알 수 없는 과잉 에너지 067 새는 날아서 075 해가 없는 날, 무사하게 살기 참 힘들다 078 발이 땅에 닿지 않아도 081 바다를 보러 가야 한다 082 꿈꿀 시간 085 43년의 시간 087 에필로그: 곡선에 대하여 0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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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는 피카소의 말을 나는 믿는 편이다. 따라서 한때 어린이였던 모든 인간은 예술가였다고 생각한다.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은 언어와 약속의 세계로 편입되면서 꿈과 놀이를 가슴 깊이 묻어나가는 일이다. 이 슬픈 일은 하지만 영원히 계속되는 것 같지는 않다. 어느 세상에서나 노인들이 점점 어린이처럼 되어가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또 “드로잉이란 보이지 않는 힘이 보이는 것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라는 요셉 보이스의 말도 믿는다. 신기하리만치 정확하게 표현된 이 말을 수없이 체험하면서 오늘도 선을 긋는다. 선에 집중하면서 매일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 그 자체가 위로이고 보상인 연습, 그 자체가 좋다.
--- p.8 맨 끄트머리에 달려 있다가 결국엔 떨어져 나와 땅에 뒹굴지만 그동안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탓일까, 어쩐지 화석처럼 보이는 마른 낙엽들은 말이 많아 보인다. 그 말들에 귀를 기울이며 선을 긋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색, 여러 가지 재료로. 죽음이 품은 삶과 삶 속에 들어 있는 죽음이 동시에 보인다. 찬란하다. --- p.18 훈련되지 않은 내게 추상화는 방법을 모르고 해내야 하는 무엇이어서 어떤 몰입의 순간에 잘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망친다. 문제점을 생각해서 수정하고 고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망친다. 망치지 않는 창작의 흐름 속에 있기 위해 자꾸 조바심을 내게 된다. 그런 까닭에 나는 정물, 인물, 풍경을 그리는 일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한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마음과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을 모르는 손이 갈등하고 있으니 늘 엎치락뒤치락 씨름을 하는 형국이다.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림이 내게는 글과는 달리 머리를 통하지 않고 바로 감정과 접속하는 것이어서 어떻게든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감정 덩어리를 내보내는 출구와 통로를 찾아야 하는 이 작업은 오늘도 나를 살게 한다. --- p.31-32 염세주의는 엄청난 열정이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젊음의 몫이다. 흘러간 것들의 흔적을 가만가만 돌이키면서 젊음의 밀도가 유지되지 않는 것은 다행이라는 인생의 법칙 하나를 이해한다. --- p. 63 이미 해둔 넘쳐나는 드로잉과 여러 가지 종이들을 이리저리 붙여서 비구상 드로잉을 해보았다. 드로잉 안에 보이는 텍스트는 졸저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와 『입안에 고인 침묵』 두 권을 해체해서 뜯어 붙인 것이다. 아무렇게나 뜯어 붙였기 때문에 글의 내용은 파편적이고 구성은 우연적이지만 붙이면서 다시 읽어보면 아무래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그 안에 담겨 있는지라 숨죽여 다시 읽는다. 평화와 고요의 흔적. 진짜 삶은 언제 시작하는 걸까? 누군가의 슬픔. 60억의 타인들. 어떤 청취의 형태. --- p.70-71 원고지와 뜯어진 책의 낱장에 쓰인 글자들을 읽으면서, 동시에 또 지우면서, 젯소와 잉크로 신나게 작업했다. 글에서나 삶에서나 늘 절제와 정제를 추구해왔던 스스로를 한순간에 해방시켰다.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때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온 시간을 가늠해본다. 1981년에서 2024년까지, 과연 이 작업을 하는 데 43년이 걸렸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43년 동안 한 가지 뜻을 마음 깊이 품고 살아온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 p.89 곡선은 흐름의 리듬이다. 이것과 저것을 연결하고 끝이 없고, 끊어지지도 않는. 생은 내게 곡선의 리듬으로 살라 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무언가 했다면 그건 내 안의 직선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잘 갈무리할 수 없었던 나의 직선들은 꺾이고 부러지고 동강이 나서 거칠고 볼품이 없다. 자기 직선들을 갈고 닦아 죽죽 벋어나가는 인간들, 대체로 남성인 그들이 부러웠던 때가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아무렇게나 터져나와 삐뚤빼뚤 울퉁불퉁, 도대체 모양새가 안 잡히는 직선들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던 때였다. 그림 덕분에 좀 나아졌다. 나의 직선들은 약간 부드러워졌고, 곡선들은 조금 단단해졌다. 곡선인 듯 직선인, 직선인 듯 곡선인 나만의 선으로 자유를 만끽하는 꿈을 꾸며 오늘도 텅 빈 캔버스 앞에 선다. 선의 충동을 소화해나가는 것이 어느덧 나의 인생 과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과제가 있는 인생이라니, 모든 의무와 책임이 스트레스였던, 삐딱했던 젊은 시절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 p.97-98 내가 과연 남은 인생에는 지도에 나타난 길을 따라 꾸준하게 갈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렇지만, 늦게나마 지도와 신호등이 생겨 적어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적잖이 든든하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새로운 출발선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지금까지 살면서 만나온 모든 사람들 그리고 뭔가 유난히 취약했던 내게 닥쳤던 유난히 어려웠던 많은 일들 덕분이었던 것 같다. 젊음이 갔다. 온갖 갈등을 싸고 메고 지고. 늙음이 온다. 고요의 수레를 타고. 인생이 공평하게 느껴진다. 적어도 이 순간은. --- p.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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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질서 대신 선의 충동으로
내 안의 혼돈을 다스릴 수 있을까? 그리하여 마침내 다다른 해방에 대하여 『선의 충동』에서 초고의 90퍼센트가 지워질 정도로 압축과 생략을 거친 글과 단순하지만 힘 있는 드로잉의 조합은 단순한 글과 그림의 결합 이상을 보여준다. 조형언어와 문자언어가 서로 넘나들고 어울리면서 자신의 작업 과정 자체를 성찰하는 예술가의 삶을 그려내고, 더 나아가 예술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미술 작업에 담긴 의미를 명징하게 파악해낼 수 있었던 것은 언어의 질서 안에서 살아온 오랜 경험 덕분일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사무실로 출근하는 산책길에 줍는 플라타너스 낙엽이나 한국 문학 번역 워크샵에서 강의하기 위해 찾아간 프랑스 아를의 고흐 기념관 이야기처럼 흥미로운 일상 이야기가 담겨 있는 동시에 고흐를 비롯해 니콜라 드 스탈, 헤르만 헤세 등에 대한 다양한 예술가들의 일화가 곁들여진다. 여기에 저자가 가려 뽑은 예술 관련 경구들을 읽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피카소, 잭슨 폴록, 앙드레 말로, 존 업다이크 등 예술가들이 남긴 말들은 저자가 문학을 읽고 쓰고 번역하고 출판하는 과정에서 건져낸 언어의 정수이다. 예민한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저자는 평생 글을 쓰며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왔지만 예순이 넘어서는 “젊음의 밀도가 유지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는 내내 낯설고 불안하고 슬픈 기분과 만성적인 병들로 인해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듯 불안정한 상태로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마침내 ‘선의 충동’을 받아들인 저자에게 드로잉 작업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편이다. 사무실에 있는 화분이나 가로수를 지그시 오래 바라보거나 자신의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또 다른 눈으로 응시할 수 있는 것도 한층 너그러운 시선을 갖게 된 덕분일 것이다. 짧은 글에 담긴 응시와 관찰, 묘사,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놓인 추상화는 기법에 얽매이기보다 사물의 내적 표현을 중시한 문인화의 전통에 닿아 있는 듯 보인다. 홍익대 최욱 교수는 이 책에 대해 “한 사람의 정신성을 선의 미학으로 담아낸 그림이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의 문인화인 만큼 평생 읽고 쓰고 사유하는 자의 문향이 그녀의 잉크로 그린 드로잉에도 스며 있다”고 설명한 뒤, 저자의 드로잉을 “‘부드러워진 직선과 단단해진 곡선으로’ 그 수수한 선묘의 맛이 슴슴하면서도 깊다”고 평가했다. 펜과 붓을 이용한 드로잉뿐 아니라 인쇄소에 책을 운반하려고 덧댄 박스 종이를 이용한 유화나 43년 전 소설 습작을 담은 76장의 원고지를 오랜 세월에 걸쳐 붙이고 뜯고 선을 긋고 색칠하여 완성한 콜라주 작품에도 작가의 문자향과 일상의 체험이 담겨 있다. 예술이 우리의 실제 삶과 단단히 묶여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만하다. 짧고 시적인 글과 아름다운 드로잉이 보는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인문교양서를 읽는 듯 지적 만족감도 줄 수 있는 에세이이다. 아무 데나 펼쳐서 음미하고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기를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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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이라는 예술 작업에 자신의 일상적 존재를 조금씩 포함시키고 내어주면서 선의 전개와 동행해온 시간의 특별한 기록이 여기에 있다. -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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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목소리와 공명하며 자기만의 선을 그려 나간 작가의 지난한 과정에서 지금껏 몰랐던 ‘충동’의 낯선 얼굴을 본다. 충동이 이런 것이라면 스스로를 조금 더 믿어봐도 좋지 않을까. - 박서영(무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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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정신성을 선의 미학으로 담아낸 그림이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의 문인화인 만큼 평생 읽고 쓰고 사유하는 자의 문향이 그녀의 잉크로 그린 드로잉에도 스며 있다. - 최욱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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