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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청년과 함께 이 시를
1부 1장 홀로서기 - 한용운, 「알 수 없어요」 2장 해방의 기쁨 - 서정주, 「추천사」 3장 떳떳한 가난 - 천상병, 「나의 가난은」 2부 4장 세우면서 서기 - 허수경, 「우리는 같은 지붕 아래 사는가」 5장 뒤통수가 하는 말 - 황병승, 「커밍아웃」 6장 아직 죽지 않음 - 황인찬, 「미래 빌리기」·차도하, 「나의 사물됨」 감사의 말 참고 문헌 |
Kim Ig-Kyun,金益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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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미학의 대상인 예술작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그 일부를 구성하는 텍스트다. 시는 상호 텍스트성이 본질이다. 시를 읽는 일은 현실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부단히 복수화하는 생산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세계는 독서 활동을 통해 보충되어야 무너지지 않는다.
--- p.9 「들어가며」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한용운의 모습은 스님이다. 스님이라면 당연히 불교의 깨달음에서 자신의 인생을 전환했다고 짐작할 법하다. 하지만 한국사에서만이 아니라 아시아 문명의 역사에서도 돌출되어 있는 인물의 선택을 종교적 결단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공간적 맥락에서 볼 때 20세기 초 강원도에는 개화를 향하는 청년을 뒷받침할 역량이 있었다. 근대에 이르러 조선 시대의 중앙 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얻은 지방 사찰들의 새로운 중심이 바로 강원도였다. 오늘날의 ‘지방 소멸’ 현실과는 달리, 당시 지역의 역량은 강원도에서는 특히 불교에 집약되어 있었다. 미국으로 간 안창호, 일본으로 간 최린과 달리 청년 한용운은 강원도로 갔다. 제국으로 유학을 가지 못했지만, 전통 사회를 떠난 한용운을 근대 문명으로 인도해 줄 세력이 강원도에는 있었던 것이다. --- pp.30-31 「1장 홀로서기: 한용운, 「알 수 없어요」」 중에서 대학원 수업에서 서정주를 읽는다.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한데 문학사에서 인정하는 시적 성취와 친일이라는 낙인 사이에서 ‘중립’을 택한다는 점에서는 일관된 측면이 있다. 나는 문학사의 좁은 틈바구니를 벗어나 시와 시인을 둘러싼 담론을 포괄적으로 전달하려 노력하지만 시가 주는 감동과 시인의 행적을 넘어서는 판단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수업 시간에 지식의 전달이라는 틀을 넘어서는 것은 항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학생 시절 ‘김남주도 읽고 서정주도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가 386 선배에게 불호령을 들은 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런 선배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시를 읽고 스스로 판단해 봐’라는 말이 무책임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시를 읽고 나서 “시는 좋지만……”이라고 말하는 독자는 물론이고, 시 자체를 읽지 않으려 하는 잠재적 독자에게도 서정주의 시가 온전히 향유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서정주의 삶과 시가 독자에게 존재 전환의 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김남주에서 서정주로 나아갔던 내 청춘의 시 읽기를 내기물로 거는 일이기도 하다. --- pp.45-46 「2장 해방의 기쁨: 서정주, 「추천사」」 중에서 천상병에게서 시인은 자신의 실존에 강박되지도 않고 전략전술이라는 목적론에 긴박되지도 않는 ‘무상한 행위’를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지식인의 실존으로 환원되지 않는 시인의 행위에 주목한다. 천상병이 처음으로 쓴 산문시 「새」(1966)는 지성의 참가를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인식하려는 고투의 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최신형 기관총좌를 지키던 젊은 병사는 피비린내나는 맹수의 이빨 같은 총구 옆에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날 병사는 그의 머리 위에 날아온 한 마리 새를 다정하게 쳐다보았다. 산골 출신인 그는 새에게 온갖 아름다운 관심을 쏟았다. 그 관심은 그의 눈을 충혈케 했다. 그의 손은 서서히 움직여 최신형 기관총구를 새에게 겨냥하고 있었다. 피를 흘리며 새는 하늘에서 떨어졌다. 수풀 속에 떨어진 새의 시체는 그냥 싸늘하게 굳어졌을까. 온 수풀은 성 바오로의 손바닥인양 새의 시체를 어루만졌고, 모든 나무와 풀과 꽃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부르짖었다. 죄없는 자의 피는 씻을 수 없다. 죄없는 자의 피는 씻을 수 없다.”(천상병, 「새」 전문) --- pp.89-91 「3장 떳떳한 가난: 천상병, 「나의 가난은」」 중에서 허수경은 이제 지식인 시인으로서 모두의 집으로 인도하기를 그치고 혼자 가는 길 위에서 스스로 “공터”가 된다. 아버지와 딸의 이중체가 무수한 타자들에게 개방됨으로써 시인 허수경은 1980년대의 정점에서 몰락하기보다는 차라리 1990년대의 더 큰 시련 속에서 리라를 켜는 오르페우스, 사랑의 현신이 되고 만다. 사랑은 타자와의 만남의 순간을 처음부터 재인지하게 한다. 어떤 의미에서 사랑은 종래의 자아를 새롭게 구성하기 위해서 자기 내부로 타자를 영접함으로써 나 자체를 손상시키는(이때 면역 체계는 자기 자신에 맞서 작동하게 된다.) 자기면역 활동이다. 이로 인해 나든 이미 나의 일부가 된 사랑이든 그것은 만남의 순간과 함께 썩게 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나의 것도 그대의 것도 아닌 세월의 것인지도 모른다. --- p.119 「4장 세우면서 서기: 허수경, 「우리는 같은 지붕 아래 사는가」」 중에서 문학작품은 그 자체로 통일성을 갖추고 있다기보다는 공백을 내장하고 있다가 사회적 현실의 온전한 인식, 즉 과학이나 철학이 생산한 담론의 맹목을 드러낸다. 철학이 사변적 인식, 과학이 객관적 인식을 대표한다면 문학은 균열과 공백의 인식을 대표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작품이 생산하는 균열과 공백에 그 주체성이 거처한다. 문학작품의 주체성은 심리적이고 경험적인 개인인 저자로 환원되지 않으면서 스스로 균열을 변용의 힘으로 작동하게 한다. 그 힘이란 예견할 수 없다. 이쯤에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만난다. 철학이나 과학의 타자로서 고유한 물질성을 갖는 문학에는 타자가 존재할 수 있는가? 문학이란 분명히 고유한 생산성을 갖는 역량이자 일종의 폭력이기도 하니 말이다. --- p.146 「5장 뒤통수가 하는 말: 황병승, 「커밍아웃」」 중에서 오늘날 연대로 이어지지 않는 소수자들의 웅성거림은 몫 없는 이들의 정치를 불길하게 감싸고 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청년들의 목소리는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의 목소리인가, 아직 죽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인가? 자살이 사망 원인 1위인 자살 국가 한국에서 얼마 전까지 자살은 10~30대에 집중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40대의 사망 원인도 자살이 1위로 집계되기 시작했다. 청년의 자살은 우리 모두를 죽음의 시선 아래에 두게 만든다. --- p.158 「6장 아직 죽지 않음: 황인찬, 「미래 빌리기」 · 차도하, 「나의 사물됨」」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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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마모되어 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 바로 시를 읽을 시간이다. 문학평론가 김익균이 1879년생 한용운에서 1999년생 차도하까지 일곱 시인의 청년 시절 시를 읽는다. 시와 시인 사이, 시인과 세상 사이에서 익숙한 시를 새롭게, 낯선 시를 살갗으로 만난다. 그렇게 시를 읽는 독자는 청년이 된다. 청년이라는 “인생 전체와 대결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한 계절”(천상병)로 되돌아간다.
독자의 발목을 붙드는 시인과 함께, 위기를 비판하기보다 그 일부가 되어 청년의 시를 청년이 되어 읽기 혐오의 시대에 청년들은 아프다. 한때 전통에 반항하며 역사를 이끄는 주체로 발명되었던 청년이 벼랑 끝에 서 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건 아직 죽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다. 이 책은 120년의 한국 시사와 함께 현재의 위기에 개입한다. 궁핍한 시대를 지나 경제대국이 되기까지 누가 승리했고 누가 다쳤는가? 역사의 폭력 속에서 독서 대중은 시인에게 무엇을 기대했으며 어떻게 시인과 함께 견뎠는가? 문단 내 성폭력처럼 문학이 그 자신의 폭력에 휩쓸릴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가장 어두운 시간에 청년의 목소리는 숱한 타자에 의해 변용된다. 시인과 독자는 청년의 감성에 오염된다. “우리 시대의 위기는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문제를 끄집어내는 계산적 이성으로는 그 곁에 다가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위기를 비판하기보다 나 역시 그 일부가 되고 싶다.”(「들어가며」)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고 “사랑은 지옥이네,” 생각하면서도 “나의 가난은” 떳떳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은 일곱 시인이 청년 시절에 쓴 시를 읽는다. 1부에서는 근대의 시인 한용운, 서정주, 천상병을 만난다. 한국 시사에서 한용운, 서정주, 천상병은 전통에 반항하면서 전통을 이룬 서정시인들이다. 민족의 대선사인 만해, 부역자인 미당, 어린아이 같은 마음의 소유자 천상병이 고정된 상에서 벗어나 현재로 되살아난다. 2부에서는 우리 시대의 시인 허수경, 황병승, 황인찬, 차도하를 만난다. 근대 이후 여성, 퀴어, 비인간이라는 더 적은 주체들이 더 넓은 시야를 요구하고 있다. 시인은 동요하는 대중들의 곁에서 반딧불처럼 함께 헤매고 있다. 독자는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따르는 피동적인 위치에 머물 수 없다. 청년의 시 읽기가 작동하는 것은 바로 독자의 손끝에서다. 새로운 세계를 보는 새로운 세대의 시각 공부와 삶을 잇는 인문 시리즈 ‘탐구’ 새로운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대의 시각. 민음사 ‘탐구’는 오늘날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성과를 한눈에 보는 시리즈다. 지금 주목해야 할 젊은 저자들이 자기 삶에서 나온 문제의식을 솔직하게 꺼내 놓고, 이론과 실천을 연결하는 제안을 독자에게 건넨다. 낯선 학문이 이곳에서 다시 해석되고, 각자의 현실이 새로운 길로 연결된다. 2022년 『철학책 독서 모임』으로 시작해 독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탐구 시리즈는 ‘우울과 몸’, ‘세대’, ‘동물’ 탐구로 계속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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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법을 배우고 또 배운다. 시는 결코 하나의 해설로 귀결되지 않는 장르이니까. 꾸준히 시의 독법을 익히며 열린 눈으로 시를 읽는 일은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갖가지 사건과 사람을 헤아리는 일과도 닮아 있다. 무엇이든 누구든 손쉽게 재단하지 않고 깊게 들여다보는 것. 이 책은 인문학, 사회과학 등을 두루 결합하여 시 읽기의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방대한 독서 경험과 비평적 안목으로 저자는 한국의 시와 시인을 새롭게 조명한다. 그로써 시를 사랑하는 우리가 다시금 열린 눈으로 시적 경이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한다. -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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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천상병은 내게 가난하고 거친 삶을 산 사람도 얼마든지 멋진 글을 쓸 수 있음을 알려 준 사람이다. ‘아버지의 집을 벗어난’ 시인들의 문장은 언제나 시대를 초월하는 공감을 준다. 김익균이 택하고 해설해 주는 시들은 궁상맞은 현실에 발붙인 채 치열하게 살아간 흔적이다. 젊을수록 고통스러운 시대, 청춘 예찬이 기만 같은 요즘. 공감을 찾아 헤매는 청년들은 이 책을 꼭 읽어 보시길. 죽어라 고생하며 한 글자씩 벼려 낸 청년 시인들의 이야기가 우리 현실과 맞닿아 있다. - 천현우 (『쇳밥일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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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시대가 다시 도래하려는 오늘날, 대혼란 앞에서는 누구나 청년이고 시인이다. 청년에게는 발버둥 치는 자기의 시대가 있고, 시는 항상 시인을 딛고 시대를 넘어서려 한다. 독립지사와 망명객, 부역자와 가해자, 병자와 비인간. 여전히 바로 어제 우리를 떠난 듯한 젊은이들과 그들을 떠나보낸 젊은이들의 시가 있다. 화석화된 해석과 타자화된 논란의 틈새를 비집고, 김익균은 ‘나 자신’ 되어 여러 모습의 한국 청년 시를 책임 있게 관통한다. 미래의 독자가 오직 스스로 함께 옴을, 그것이 바로 우리임을 예감시키는 책. - 유리관 (『교정의 요정』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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