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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1984』 일러두기 · 6

1부 · 9
2부 · 159
3부 · 339
보유 신어의 원리 · 451

역자의 말_우리가 읽고 있는 『1984』는 정말 오웰의 『1984』일까? · 473
조지 오웰 연보 · 484

저자 소개 2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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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Orwell,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언론인, 비평가로 활동하였다. 1903년 6월 25일, 영국령 인도의 벵골 주 모티하리에서 세관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 사립예비학교에 들어갔으나, 이곳에서 상류층 아이들과의 심한 차별을 맛보며 우울한 소년시절을 보냈고, 장학생으로 들어간 이튼교에서의 학창시절 역시 계급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22년부터 5년간 미얀마에서 대영제국 경찰로 근무했으나 영국 제국주의가 저지르는 악마적 만행을 두 눈으로 목격한 그는 자신의 직업에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언론인, 비평가로 활동하였다. 1903년 6월 25일, 영국령 인도의 벵골 주 모티하리에서 세관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 사립예비학교에 들어갔으나, 이곳에서 상류층 아이들과의 심한 차별을 맛보며 우울한 소년시절을 보냈고, 장학생으로 들어간 이튼교에서의 학창시절 역시 계급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22년부터 5년간 미얀마에서 대영제국 경찰로 근무했으나 영국 제국주의가 저지르는 악마적 만행을 두 눈으로 목격한 그는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껴 직장을 그만두고 파리로 건너가 작가수업을 쌓았다.

유럽으로 돌아와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작가가 되기로 한다. 파리와 런던에서 노숙자, 접시닦이, 교사, 서점 직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 속에서도 소설을 쓰고 서평과 에세이를 발표했다. 1933년에 파리와 런던에서 겪었던 생활을 바탕으로 한 첫 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생활(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과 1935년 식민지 백인 관리의 잔혹상을 묘사한 소설 『버마 시절』이다. 이 시기부터 그는 죽음의 원인이 된 결핵을 앓기 시작했다. 사회 정의의 문제에 민감했고,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던 그는 첫 소설 『버마 시절』에 이어 『목사의 딸』, 『그 엽란을 날게 하라』를 출간했고,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의 가난한 삶을 그린 사회주의 색채가 짙은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발표했다. 중·장년 시절에는 버마(현재 미얀마)에서 경찰관으로 재직했지만, 식민지배의 불합리성을 목격한 후 사직을 하고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빈곤한 생활을 겪다가 전체주의를 혐오한 그는 스페인 내전에 가담하여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 체험을 기록한 1936년 『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는 뛰어난 보도 문학으로 평가된다.

1941년부터 1943년까지 BBC방송국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후 [트리뷴]의 문학 담당 편집자로 일하면서 정치와 문학 분야의 논평을 정기적으로 썼다.그리고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에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을 우화로 그린 『동물농장』으로 일약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해 그는 아내를 잃고 자신도 지병인 폐결핵의 악화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1946년 스코틀랜드 주라 섬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전체주의의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년』을 집필하였고, 1949년에 출간되었다. 『1984년』은 전제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 놓인 한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다가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 그 과정과 양상, 그리고 배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작품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의 극한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나라이다. 오세아니아의 정치 통제 기구인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 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한편, 정치 체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하여 당원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당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과 동시에 당원들의 사상적인 통제를 위해 과거의 사실을 끊임없이 날조하고, 새로운 언어인 신어를 창조하여 생각과 행동을 속박함은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까지 통제한다. 『1984년』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의 『우리들』과 더불어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히며, 이후 많은 예술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런 당의 통제에 반발을 느끼고 저항을 꾀하지만, 오히려 함정에 빠져 사상경찰에 체포되고, 혹독한 고문 끝에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 '골드스타인'을 만났다고 자백하고, 결국 당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무기력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1984년』은 오웰을 20세기 최고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만들었다.

장르에 상관없이 언제나 확고한 정치적 신념을 바탕으로 글을 썼으며 소설, 에세이, 르포, 평론 등 700여 편의 작품을 남기고, 1950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지 오웰의 47년간의 삶 중 시대적 배경은 전쟁으로 인한 평화가 무너지는 격변기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전체주의(집단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사상이 다변화되면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대표 언론가로 상징된다. ‘조지 오웰’은 21세기 새 시대를 맞이하여 199년 영국 BBC 조사한 ‘지난 천년동안 가장 위대한 작가 3위’, 2008년 [더 타임스]가 선정한 영국 작가 50인의 2위로 선정되었다. 게다가 영문학에서는 ‘오웰주의’, '오웰주의자'라는 뜻의 Orwellism이나 Orwellian이라는 표현이 따로 있을 정도이니, 이 정도면 그가 서양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주로 당대의 문제였던 계급 의식을 풍자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였으며, 또 일찍이 스탈린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거기서 다시 현대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는 악몽과 같은 전체주의의 풍토를 작품에 정착시켰다. 그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자신의 글 중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쓴 글들만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버마의 나날』, 『목사의 딸』, 『엽란을 날려라』,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카탈로니아 찬가』, 『숨쉬러 올라오기』, 『고래 뱃속에서』, 『사자와 일각수』, 『동물 농장』, 『비판적 에세이』, 『영국 사람들』, 『1984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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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번역가이자 소설가. 지은 책으로 『이방인』과 카뮈를 소재로 쓴 메타소설 『카뮈로부터 온 편지』,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의 목소리를 발견한 번역 과정과 숨은 뒷이야기를 담아낸 메타소설 『어린 왕자로부터 온 편지』를 비롯하여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이방인』 『페스트』 『어린 왕자』 『1984』 『노인과 바다』 『투명인간』, 『위대한 개츠비』, 『타임머신』 등이 있고, 원전대로 새롭게 해석한 『수행자의 거울_선가귀감』, 『금강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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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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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57.46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24.1만자, 약 7.8만 단어, A4 약 151쪽 ?
ISBN13
9791170801276

출판사 리뷰

『1984』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어둡고 암울한 결말의 소설이 아니다
마침내 원형을 회복한 완전한 『1984』를 만나다!

왜 다시 『1984』인가


오웰의 『1984』는 세계적으로 수천만 부가 판매된 20세기 대표 고전이다. 한국에서도 오래전부터 “빅 브라더의 세계 지배”로 끝나는 암울한 소설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역자는 이러한 인식이 작품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작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신어의 원리 (The Principles of Newspeak)」는 단순한 부록이 아니라, 오웰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보유(補遺)’**다. 이 부분이 일관되게 과거시제로 쓰여 있다는 사실은, 빅 브라더의 전체주의가 결국 실패했음을 암시한다. 오웰은 주인공 윈스턴의 패배로 소설을 끝맺지만, 동시에 보유를 통해 사회와 도덕적 질서가 회복 되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토머스 핀천이 말한 『1984』의 결말

현대 문학의 거장 토머스 핀천은 『1984』의 결말을 두고 “상상할 수 있었던 만큼 어두운 결말”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는 소설 본문까지만 읽은 경우에 한정된 해석이다. 작품을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마지막 보유가 드러내는 반전과 오웰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역자는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1984』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번역의 문제와 이번 개정판

역자는 기존 한국어 번역들이 「신어의 원리」를 현재시제로 옮김으로써, 오웰이 남긴 결정적 암시를 왜곡했다고 지적한다. 이번 개정판은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아, 오웰이 원래 의도한 구조와 메시지를 충실히 살려냈다.

“문학작품은 단순히 줄거리를 읽는 일이 아니다. 번역자의 선택 하나가 원작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 놓을 수도 있다.” (역자 서문 중에서)

지금, 다시 『1984』를 읽어야 하는 이유

역자는 초판 출간 이후 지난 5년 동안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며, 『1984』가 단순한 고전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적 의미를 가진 텍스트임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권력의 사유화, 왜곡된 언론 보도, 민주주의의 후퇴와 국민적 저항까지, 우리는 여전히 오웰이 예견한 세계의 한복판에 서 있다.

“2025년, 최첨단 AI 시대, 그것도 민주국가에서 어떻게 그런 국가적 비극이 가능했던 것일까? 그 시기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 바로 이 작품, 『1984』였다.” (역자 서문 중에서)

그렇지만 기이하게도, 그것은 완전히 끝은 아니다. 우리는 페이지를 넘겨, 일종의 비평적 에세이처럼 보이는 ‘신어의 원리’가 덧붙여진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처음에, 각주의 방식으로, 책의 맨 뒤로 돌아가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선택권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기억한다. 어떤 독자들은 이것을 하고, 어떤 이들은 하지 않는다 - 우리는 그것을 오늘날의 하이퍼텍스트의 초기 예로 볼 수도 있다.

1948년에, 이 마지막 부분은 미국 이달의 책 클럽(Book-of-the-Month Club)에게 충분히 성가신 것이어서, 그들은 이 책이 받아들여지는 조건으로, 이매뉴얼 골드스타인의 책에서 인용된 장들과 함께 「신어의 원리」가 잘려 나갈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미국 판매에서 적어도 4만 파운드를 잃을 처지였지만, 오웰은 수정을 거부하고 그의 대리인에게 말했다.

“한 권의 책은 균형 잡힌 구조로 세워져 있고, 전체를 다시 짜 맞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한, 여기저기서 단순히 큰 덩어리를 떼어낼 수는 없습니다……. 나는 정말이지 내 작품이 일정한 지점을 넘어서 엉망이 되는 것을 허락할 수 없고, 또한 그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지도 의심스럽습니다.”

3주 후 이달의 책 클럽은 물러섰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왜 이토록 격정적이고, 폭력적이며, 어두운 소설을 학문적인 부록처럼 보이는 것으로 끝내는가?

그 답은 단순히 문법에 있을지도 모른다. 첫 문장부터, 「신어의 원리」는 일관되게 과거시제로 쓰여 있다. 마치 신어가 문자 그대로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1984년 이후의 역사 속 어떤 부분을 암시하는 것처럼 - 마치 어떤 면에서 이 부분의 익명 저자가, 신어가 그 시대에 그 본질이었던 정치 체제에 대해 이제는 비판적이고 객관적으로,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그 에세이를 쓰는 데 사용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신어 이전의 영어이다. 신어는 2050년까지 일반화될 예정이었으나, 그럼에도 그것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못했던 듯하다, 승리는 고사하고. 표준 영어에 내재된 오랜 인문주의적 사고방식은 계속되어 왔고, 살아남았으며, 궁극적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대변하는 사회와 도덕적 질서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회복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내용이 토머스 핀천의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좀 길지만 매우 중요한 내용이므로 원문과 함께 그대로 인용한다.

But strangely, it is not quite the end. We turn the page to find appended what seems to be some kind of critical essay, "The Principles of Newspeak". We remember that at the beginning, we were given the option, by way of a footnote, to turn to the back of the book and read it. Some readers do this, and some don't - we might see it nowadays as an early example of hypertext. Back in 1948, this final section apparently bothered the American Book-of-the-Month Club enough for them to demand that it be cut, along with the chapters quoted from Emmanuel Goldstein's book, as a condition of acceptance by the club. Though he stood to lose at least £40,000 in American sales, Orwell refused to make the changes, telling his agent, "A book is built up as a balanced structure and one cannot simply remove large chunks here and there unless one is ready to recast the whole thing . . .

I really cannot allow my work to be mucked about beyond a certain point, and I doubt whether it even pays in the long run." Three weeks later the BOMC relented, but the question remains, why end a novel as passionate, violent and dark as this one with what appears to be a scholarly appendix?

The answer may lie in simple grammar. From its first sentence, "The Principles of Newspeak" is written consistently in the past tense, as if to suggest some later piece of history, post-1984, in which Newspeak has become literally a thing of the past - as if in some way the anonymous author of this piece is by now free to discuss, critically and objectively, the political system of which Newspeak was, in its time, the essence. Moreover, it is our own pre-Newspeak English language that is being used to write the essay. Newspeak was supposed to have become general by 2050, and yet it appears that it did not last that long, let alone triumph, that the ancient humanistic ways of thinking inherent in standard English have persisted, survived, and ultimately prevailed, and that perhaps the social and moral order it speaks for has even, somehow, been resto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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