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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이별의 문턱에 서면 언제나 눈이 내렸다
2화 언제쯤 겨울이 그치고 봄이 피어오를까 3화 유난히 시린 계절이었다 4화 부푼 마음으로 천천히 속도를 높였다 5화 그야말로 혼란의 밤이었다 6화 일렁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7화 결국 다시 사랑이었다 8화 머릿속은 눈처럼 하얗게 비워졌고 혼란은 더 또렷해졌다 9화 그 모든 진실이 고스란히 담기고 있었다 10화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번외 나는 아직 겨울에 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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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게도 이별의 문턱에 서면 언제나 눈이 내렸다. 동화 속 짓궂은 마녀의 저주처럼. 엄마만큼 사랑한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십 대의 절반을 함께한 한봄에게 이별을 고했을 때도, 다영이 세상을 등졌을 때도. 하늘에서는 어김없이 눈이 내렸다. 그래서인지 눈이라면 열음은 영 달갑지 않았다.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포근한 이불에 몸을 숨기니 피곤이 녹아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방은 조용했고 눈꺼풀 움직이는 속도는 느려졌다. 그렇게 단잠에 빠지기 직전 공기가 스산해지더니 바람이 거세게 몰쳐 창문을 두드렸다. 거기다 정체불명의 소음까지 들려와 열음의 잠을 깨웠다. 우우우우우우우웅.
--- pp. 24~25 이제 전원 버튼만 누르면 된다. 깜빡거리는 화면과 커지는 진동을 잠재우기 위해 열음은 전원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잠깐 망설이기도 했지만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3, 2, 1. 열음이 손가락에 힘을 주려는데 그 순간 진동이 가라앉고 화면의 흔들림이 멈추었다. 열음의 눈에 포털사이트의 상단에 돌아가는 인기 검색어가 들어왔다. 오늘의 날씨, 코스피 지수, 그리고 최한봄 사망. ‘최한봄, 사망?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채 모니터를 바라보는 여름의 등 뒤로 창밖에는 여전히 싸라기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 p. 26 “보고 싶었어, 항상.” 떨리는 목소리가, 흔들리는 눈빛이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그 난데없는 진심은 고약하게도 나약한 마음을 힘없이 주저앉혔다. 낡아 빠진 감정이라, 딱딱하게 굳은 마음이라 방심했던 걸까. 오래도록 단단히 쌓아온 마음이 순식간에 곤두박질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이 흔들리고 무너졌어도 열음은 혼란스러운 진심을 감춰야만 했다. 열애설로 빙판길에 엉덩방아를 찧어서도 아니고 가짜 뉴스에 눈물을 흘렸기 때문도 아니었다. 단지 예전처럼 사력을 다해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아마도 상처받게 될까 두려워서겠지. 이런 마음은 찰나일 테니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말 테니까. 그래서 열음은 선택했다. 자신의 진심을 감추기 위해 한봄의 진심을 외면하기로. “난 아니야. 난 너 보고 싶었던 적 없어. 살면서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 적 있는데, 그게 내 마음처럼 잘 안 되네. 이렇게 만나는 거 보니까.” “넌 왜 그렇게 내가 싫어?” “넌 나한테 해로우니까.” --- pp. 41~42 최한봄 선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 사망 원인 조사 중 한 시간 전 기사였다. 열음은 텅 빈 눈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어떤 움직임도 소리도 없이. 거대한 슬픔이 몰아치기 직전의 고요함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도대체 왜 모든 기사의 발행 날짜가 4월 1일, 만우절인 걸까. 아직 오지도 않은 날짜에 발행된 기사라니. 게다가 만우절이라는 점 때문에 마치 장난처럼 느껴져 기분이 불쾌해졌다. 그런데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언론사의 기사에도 어김없이 날짜는 4월 1일을 가리키고 있었고 열음의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 유명 홍콩 배우가 만우절에 사망했다는 뉴스가 머릿속에 떠올랐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초조해졌다. 모두가 처음 보도를 거짓이라 믿었지만 결국은 진짜였던 그 일. 거짓말 같은 진짜 사건. 어쩌면 내가 정말 앞날을 ‘미리보기’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과 함께 열음의 심장은 빠르게 요동쳤다. 그날따라 바깥은 스산했고 바람은 거칠게 불었다. 기척없는 그림자처럼 눈이 내리고 있었다. 거리의 나무는 힘없이 흔들렸고 예보에 없던 눈 소식에 사람들은 저마다 분주히 움직였다. 그야말로 혼란의 밤이었다. --- pp. 96~97 서로를 다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한봄은 열음의 친구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그 후 열음이 얼마나 긴 고통의 시간을 홀로 견뎌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제야 열음이 왜 한봄을 애타게 기다렸는지, 왜 깊이 원망하고 미워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 또다시 사라질까 두려워하며 살아왔다는 사실까지도. 모든 것을 알고 나서야 한봄은 감당할 수 없는 미안함에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한봄은 열음의 오래된 상처를 들여다보았고 열음은 한봄의 죄책감이 어린 눈물을 마주했다. 한참을 고개 숙인 채 울고 있는 한봄을, 열음은 말없이 따뜻하게 안아주며 말했다. 우리는 그저 사고를 당했을 뿐이라고.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갑작스럽게 닥쳐온 사고였다고. 단지 그것을 피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그 말과 함께 얼어붙었던 열음의 마음도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서로의 존재는 위로이자 위안이었음을. --- pp. 151~152 또 하나의 생각은 다시 한봄의 세상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을 때 이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운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검색 결과를 바꿀 수만 있다면, 그래서 너를 지킬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감수하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막상 정신이 희미해지니 생각이 종잇장 뒤집듯 달라졌다. 한봄과 함께할 미래가 궁금해졌고 깊은 고통 속에서 혼자 남겨질 한봄이 걱정스러웠다. 그와 동시에 한봄의 곁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뭐, 결국은 다 욕심이겠지만. --- pp. 182~1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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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검색된 너의 운명
그 운명을 내가 되돌릴 수 있을까 유난히 일이 풀리지 않는 날. 출근길 버스를 놓치고 새로 사서 입고 간 옷에는 음식물이 튄다. 이어폰 한쪽을 잃어버린 데다 촬영까지 말아먹은 5년 차 방송작가 한열음의 하루를 더욱 최악으로 만든 것은 전 남친 최한봄의 열애 소식. 이제는 남 일이라며 신경 쓰지 않는 척 넘기고 퇴근 후 남은 일을 하기 위해 노트북을 켰으나 노트북까지 이유 없이 고장 나는 바람에 열음은 결국 욕설을 내뱉고 만다. 오래 간직하던 친구의 노트북을 발견하고 그 노트북으로 작업을 시작하는 열음 앞에 낯선 포털사이트가 열리고 인기 검색어에는 ‘최한봄 사망’이라는 뉴스가 뜬다. 이것이 진짜일까? 한봄의 열애설처럼 무시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찜찜함. 밖에는 언제부터인지 싸라기눈이 내리고 있다. 이후 우연한 계기로 열음은 한봄과 재회하고 한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확인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마주하는 사망 뉴스. 포털사이트에 뜨는 최한봄의 사망일은 거짓말 같은 만우절. 앞으로 열흘이 남았다. 초봄인 데도 드물지 않게 눈이 잦은 시기, 눈이 내리는 동안에만 특정 노트북으로 그 뉴스가 검색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열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한봄의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바꾸기로 마음먹는다. 여자를 위해 조용히 떠나버린 남자 그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여자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은 사랑의 모든 감정들을 그린 이야기 아픈 상처를 품고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열음. 자신의 삶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열심히 꾸릴 줄 아는 그녀와 수영선수로 좌절을 겪고 열음 앞에서 사라진 한봄은 다르지만 닮은 구석이 있는 인물이다. 작가는 두 인물에게 로맨스 소설의 남녀 주인공이 지닐 법한 전형성을 부여하는 한편 제3의 인물 학연을 등장시켜 두 인물의 연약함을 부각시킨다. 모든 일을 열음의 의지와 한봄의 사랑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과 적절히 연결시키면서 사건을 극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캐릭터의 입체감이 더해지며 사건이 진행되는 순간마다 더욱 다채로운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작가가 마지막에 숨겨놓은 반전은 사랑에 기반한 열음의 적극적인 도전으로도, 정해진 운명에 맞설 때 감당해야 할 인생의 공식으로도 읽힌다. 내어준 만큼 가져가며, 뺏은 만큼 돌려주는 삶의 등가교환 앞에 인간은 무력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으로써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둘 수 있다면 그보다 귀한 일은 없을 것이다. 『너의 겨울에 다시 내가』 전반에 흐르는 이 다정한 메시지야말로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는 따뜻한 봄소식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