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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말씀으로 창조하다니, 옛날에나 통하던 신화 아닌가? 그러니까 신화지! 접점 인격체로 살기를 포기한 사람 기독교 밖에서나 안에서나 강아지의 헛발질 말도 안 되는 비과학적 신화? 무인도에서 책을 발견한다면 말은 곧 사건이기에 만물을 붙드시는 말씀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집 짓는 말 어제 병원에 갈 거야(?) 존재의 집 말이 씨가 된다 인격과 인격의 만남을 잇는 다리 말이 곧 그 사람 나도 안 보인다 세상 자격 난 도저히 못 믿어! 질서화된 정보 구조 물질의 최소 단위 양자역학의 발견 물질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보이는 것의 근원 영이 어떻게 물질을 창조하나? 빛의 이중성과 하나님의 섭리 나는 세상의 빛이니 세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의 본체 작은 잎사귀 하나까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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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말 몇 마디로 천지 만물을 만들었다고? 그러니까 신화지!” 주위에서 성경을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고 첫 장을 펴서 읽다가 이내 접어버리는 이들이 곧잘 내뱉을 법한 말이다. 실제로 성경 창세기 1장에는 아무런 건축 도구도 없이 하나님께서 말로만 “해 나와라, 달 나와라”라는 식으로 명령해서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말씀을 통한 창조의 신비는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관찰 대상으로 삼는 과학으로 다 설명될 수 없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이야기체로 전하는 선포가 수많은 논문이 동원되어도 턱없이 부족할 천지창조의 세세한 사건을 기록하는 데 가장 무난한 소통 방식이다.
--- p.8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말했고,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세계의 논리적 구조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철학적으로도 말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어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면 세계도 없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물이 창조되었기에 모든 존재가 논리적인 말로 규명할 수 있는 언어적 질서와 구조를 가진다. 사람이 수학 공식이나 과학 법칙, 논리적 명제로 세계를 해독하고 설명할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말씀이 창조의 이성적 설계도가 아니라면 어떤 존재물을 사람이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 또한 전혀 없다. --- p.32 “혼돈하고 공허하던”(창 1:2) 땅에서 에너지와 물질만으로는 질서와 목적을 지닌 유의미한 형태가 만들어질 수 없었다. 물질과 에너지는 그것을 구조화하고 방향성을 부여하는 정보가 없으면 목적과 질서를 지닌 세계로 드러나지 않는다. 정보가 건축 설계도라면 에너지는 그 설계도를 실행하는 공사의 노동력과 같아서 둘이 함께 작동해야 건물이 선다. 창조 사건에서 말씀은 우주의 논리적 틀과 방향을 세우며 동시에 존재를 구성하고 패턴과 형태를 부여하는 창조적 능력으로 작동한다. “있으라 하시니 있었다”는 말씀은 만물이 하나님의 지성과 창조의 능력 안에서 형태와 기능, 곧 의미와 목적을 지닌 질서화된 정보 구조로 현실화되었다는 선언이다. “빛이 있으라”(창 1:3)라는 명령은 단순한 음성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말의 표현성과 논리성, 개념성을 갖춘 빛의 질서화된 정보 구조를 구상하신 그대로 태초에 그 고유한 창조의 능력과 지혜로 시공간 속에서 실체화시키신 말씀, 곧 로고스였다. --- p.46 “하나님은 빛이시라”(요일 1:5)라는 선언은 하나님의 도덕적 거룩함을 넘어 우주의 통치 원리를 암시한다. 빛은 공간을 연속적으로 퍼져나가는 파동성과 특정 시점에 특정 장소에서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입자성을 동시에 지닌다. 하나님은 파동처럼 우주에 편재하시면서 피조물을 유지시키는 일반 자연법칙을 주관하시며, 동시에 입자처럼 필요한 순간에 개별적으로 개입하시면서 기적이나 계시로 특별섭리를 드러내신다. 만물을 살리는 창조주의 능력과 신성(롬 1:20)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해는 광합성 작용으로 지구상의 온갖 식물들을 실제로 살리며 그것들로 때마다 모든 생물을 먹인다. 해는 어디서나 보일 만큼 무소부재하고, 만물을 살릴 만큼 전능해 보이며, 그 영광은 누구든 직시하면 실명할 만큼 밝다.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 --- p.58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영혼이 바깥 세상의 자연만물을 태어나 처음으로 대하는 듯 다시금 새롭게 만나게 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을 지으신 분이 자신이 만난 그 성경 속의 하나님이란 사실이 그제야 영혼 깊은 속까지 실감되어서다. 성경 속에 자연이라는 또 다른 책이 이미 담겨 있었다. 자연에 새겨진 말씀이 성경 속의 바로 그 말씀이니까. 새들의 지저귐,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바람에 살랑이는 작은 잎사귀 하나까지도 다 하나님의 손길이요 숨결이다. 존재의 근원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나면 누구나 이러한 세계관의 중대한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이전에는 그저 익숙한 배경화면처럼 별다른 감흥 없이 느껴졌던 자연세계가 실은 창조주의 영광을 반사하는 빛나는 거울이었다. --- p.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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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창조하다니, 옛날에나 통하던 신화 아닌가?
“말씀으로 창조하다니, 옛날사람들이나 세상을 잘 몰라서 만든 상징적인 신화 아닌가?”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선언에 대해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흔히 보이는 반응이다. 현대 사회에는 만물이 무작위적 우연의 산물이라는 설명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과학주의적 세계관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는 종종 미신으로 치부되고, 기독교 신앙은 지성을 포기한 태도로 오해받곤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과학이 밝혀낸 우주의 수학적 질서와 정보 구조에 대한 이해는, 성경의 창조 기사에서 핵심을 이루는 ‘말씀을 통한 창조’가 결코 비합리적인 신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준다. 성경이 말하는 창조의 근원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곧 로고스(Logos)다. 여기서 말씀은 단순히 입 밖으로 내뱉는 소리의 파동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질서와 의미의 근원이며, 우주를 성립시키는 지성과 의지의 표현이다. 다시 말해 성경의 창조 신앙은 우주에 목적과 의미가 있다는 대담한 선언이다. 그리고 성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말씀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눈에 보이는 육신을 입고 인류 역사 속에 실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말씀이 물질 세계와 무관한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이 세계를 창조하고 지금도 떠받치고 있는 실제적 근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한 창조는 단지 우주의 기원에 대한 설명으로만 끝날 수 없다. 만일 이 세계가 인격적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의도가 구현된 창조물이라면, 그 말씀으로 창조된 인간 역시 그 말씀과 무관한 존재일 수 없다. 결국 우리 각자는 “그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나는 지금 그분의 창조 사건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지 않을 수 없다. 이 작은 책은 바로 이러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창조 사건을 둘러싼 논리적, 과학적 접점들을 조명했다. 믿음을 강요하거나 정답을 주입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 근원적 존재와 나는 어떤 관계 속에 있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함께 성찰해 보고자 했다. 이 책은 그 진솔한 탐구의 여정에 작지만 알차고 유익한 도움닫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