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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람들건널목의 말농구하는 사람이미 죽은 열두명의 여자들과펄럭이는 종이 스기마쓰 성서자전거를 잘 탄다매일 산책 연습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해설 | 강보원작가의 말수록작품 발표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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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상상력과 낯선 분위기로 선사하는 재미돌아오지 않는 이들의 자리를 마련하며 거기 있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일「건널목의 말」의 ‘나’는 생활을 위해 말〔言〕을 하고 서울에서 일을 하기도 하지만, 말과 추위를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이런 ‘나’는 ‘말을 묻는’ 상상을 하게 되는데, 삽을 들고 땅을 파서 말을 묻으면, 말들도 흩어질 것이고 추위도 달아날 것이라고 믿는다. “아주 잠깐 이초쯤 회사에 너무 가기 싫어서 눈물이 날 것”(44면) 같다는 화자는 차라리 ‘동면하기’를 상상한다. 동면을 할 수만 있다면 추운 시간도 넘길 수 있고 후회할 말과 생활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귀여운 상상에 웃음이 나오다가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박솔뫼식 유머는 「펄럭이는 종이 스기마쓰 성서」에서도 이어진다. 소설 속 화자는 꿈속에서 여러번 등장한 말 ‘스기마쓰 성서’에 사로잡혀 꿈속 장소를 직접 찾아가보기로 한다. 스기마쓰 성서가 전시되던 곳은 부산의 한 고택이었는데, 막상 부산에 도착하여 산책을 하다보니 꿈에 관한 것은 멀리 사라지고 만다. 때때로 잠에서 깬 뒤에도 꿈속 세계를 계속해서 더듬다가도, 돌연 일상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경험이 있는 우리는 다시금 소설 안에서 안도하고 공감하며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한편 「농구하는 사람」과 「매일 산책 연습」에서는 과거의 이야기 속에 있었던 사람들의 삶이 상상을 통해 재현되고 반복된다. 「농구하는 사람」은 최인훈 소설 「광장」 속 인물들, 시인 김시종과 재일교포 권희로, 영화 「약칭: 연쇄살인마」의 실존 인물 나가야마 노리오의 삶을 소설로 불러와 ‘다시’ 쓴다. 「매일 산책 연습」에서는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일으킨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불러와 호명하며 앞선 상상 속 인물들이 ‘거기에 있었듯’ 이야기 속 인물들도 “그곳에 있음”(강보원 해설)을 확인한다.「이미 죽은 열두명의 여자들과」는 조금 더 과감한 상상으로 나아간다. 김산희는 열두명의 여자들에게 “적어도 열두번 이상”(95면) 살해당한다. 이미 죽었기 때문에 다시 죽을 수 없는 그는, 여자들에 의해 반복된 죽음을 겪게 된다. 열두명의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들의 죽음 역시 반복되고 그렇기에 김산희와 같은 어떤 살인자가 살해되는 일도 반복될 수밖에 없을 텐데, 우연히 이 일에 연루된 화자는 그뒤로 계속해서 펜이 달린 수첩을 들고 다니며 그들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상상 속 인물들의 삶을 ‘안다’고 확언할 수 없듯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 역시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에서 이두현 감독은 “분명하고 중요해 보일 법한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프레임 밖”(202면)으로 미뤄두는데, 『우리의 사람들』에서 박솔뫼 역시 중요한 것으로 여겨질 만한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분산시키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 믿지만 그의 삶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어떠한 것도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다가올 내일이 싫어 눈물짓고 뜨겁도록 따뜻한 곳을 원하는 인물들은 소설 전반에 흐르는 묘하고 낯선 감각에 균열을 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 인물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의 사람들’이며 그들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은 영원하지 않지만 때때로 놀랄 정도로 반복되는 일”(223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여전히 같은 곳에 속해 있다는 믿음”으로 “거기 있어도 괜찮다고 말하는”(강보원 해설) 박솔뫼의 목소리는 서로 멀어져만 가는 이 시대에 시리도록 또렷하게 들려오며, 이것이 『우리의 사람들』이 귀하게 읽혀야 할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작가의 말며칠 전에는 소설을 쓰면서 무척 재미있다고 느꼈다. 사실 예전에도 줄곧 재미있었다. 이전의 재미와 지금의 재미는 어떻게 다를까. 재미가 아닌 다른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게 무엇일까 싶을 때도 있지만 그걸 더 생각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나는 지난 일들을 자주 생각하고 과거에 한 일과 하지 않거나 못한 일에 대해 종종 후회하고는 한다. 툭하면 반성을 하는 편이다. 과거라는 것을 자주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책을 꺼내보듯 펼쳐보게 된다. 그런데 소설에 관해서는 그런 마음이 거의 들지 않는다. 이전의 재미와 재미만이 아닌 다른 것들이 궁금하지가 않다. 그게 대체 뭐였을까? 어쩌면 이 책에 그런 것이 있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역시 소설은 조금 이상해서 내가 예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예전이지만은 않다고 이야기를 한다. 나라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대화들을 나누면서 책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2021년 2월박솔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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