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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 김초엽(소설가), 하지은(소설가)우리는 마른 꽃잎과도 같다 황금 천국의 증언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 왕관에 불붙이는 자쥬벵 씨의 완벽하지 못한 하루 피가 시가 되지 않도록 해설 | 전청림(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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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ek Sa-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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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해진 권력에 가려진 우주 속, 서로를 발견한 꽃잎들은 어떻게 죽어가는가친숙함과 새로움을 훌륭히 버무려 만든 세계관지금, 이 순간 우리가 서 있는 세계먼 미래, 극단으로 치달은 자본주의로 인해 지구의 재벌들은 영주라는 계급으로 불리게 됐다. 국가의 개념은 사라지고 지구는 각 영주의 소유지로 나뉘었다. 영주의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자한 과학기술은 범인의 이해를 초월할 정도로 신비로워 마법처럼 보일 때도 있다. 신의 자리를 넘보기 시작한 영주들은 인간을 인위적으로 개조하거나 진화시키며 절대적인 권력을 향유한다.그들의 욕망은 지구 밖으로 뻗친다. 막대한 영주의 투자금으로 우주 행성 이곳저곳에 파견된 개척단은 2131년, 테라포밍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와 함께 외지구에서 그들만의 문명을 세운 개척단원들은 영주가 군림하는 지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분노한 영주들은 외지구에 정착한 개척단을 향해 전쟁을 선포한다. 연작소설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는 이 우주 전쟁의 발단에서 결말까지를 여섯 편의 중단편을 통해 치밀하게 그려낸다. 한때 같은 종족이었던 외지구인을 배척하고 차별하며 영주들은 용병을 모집해 우주로 보낸다. 지구에 남은 인간들은 영주가 편집한 정보만을 접하며 올림픽처럼 중계되는 우주 전쟁의 승패에만 몰두한다. 전쟁의 비인간성이 흐려진 세계에서 가지지 못한 자는 모두 가진 자의 탐욕을 위한 제물이 된다.그리고 이 거대한 권력이 보지 못한 그림자 속에서, 서로를 발견한 마른 꽃잎 같은 인물들이 각자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소멸해 간다. 그 “눈부신 선명함”(408쪽)에는 지금 이 세계를 바라보는 젊은 작가 백사혜의 직관이 오롯이 녹아 있다.“이 작품의 어떤 인물도 자신이 선택한 결과의 무게를 온전히 감내한다.쉽게 그들을 동정하거나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만드는 이런 엄정한 태도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_하지은(소설가, 「추천의 말」 중에서)어떻게 누군가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세계를 바꿀 결심을 하는가마지막까지 미래를 바라보려는 작가, 백사혜『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는 2024년 12월 초고가 완성되었고 2025년 4월 개작을 마쳤다. 대한민국의 사회 질서가 무너졌다가 다시 구축되는 시기에 묶인 이 도서에는 거대 권력에 의해 지배되던 우주가 전쟁과 반란을 겪으며 해체되고 다시 통합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백사혜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라는 사실을 땔감 삼아 자신의 생을 불태운다. 발로 땅을 디딘 자들이 생명을 진정으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존중하는 행위가 필요하다. 자기 생의 한계를 가늠할 수 있어야지만 다른 존재의 고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런 그들은 세계의 구성원인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우고자 한다. 전청림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이 짙은 사랑의 농도가 소설을 움직이는 가장 강렬한 맥박이다”라고 평했다. “자신이 속한 세계마저도 무너뜨리는 결심으로 응결되는 사랑은 이 소설집 내내 주된 서사적 메타포로 등장”(414쪽)하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과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선명하고 손에 닿을 듯 구체적인” 우주를 차곡차곡 쌓은 세계 속에 “항상 끔찍하고 극히 드물게 반짝이는 다면체로 설득력 있게 조형”한(김초엽) 인간을 촘촘하게 배치한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는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할 것이다.이야기의 힘을 믿는 작가의 글은 단순하다. 화려한 사변 없이 단어를 쏟고, 길지 않은 지점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그러고는 많은 사람을 홀린다. 직관을 찌를 줄 안다는 소리다. 곧장 본론에 진입해 핵심을 들추는 명석함. 곧은 호흡으로 전진해 저릿하게 마음을 만지는 언어. 백사혜의 소설에서 당신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토록 눈부신 선명함이다.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안다. 코가 긴 인형이 나오는 동화, 다리가 물고기인 여인의 노래, 주석잔 안에서 찰랑거리는 신화 속 달콤한 포도주,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로맨스. 기괴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원초적 욕망에 마음이 동해버린 주인공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매력으로 세상에 응한다. 물론 고난도 있다. 브로치에 달린 옷핀으로 눈을 찌르거나 귓구멍에 뜨거운 양초를 부어버리고, 가죽 샌들을 신은 발목의 인대가 끊어지기도 한다. 찢어진 옷, 조각난 뼈. 살점이 파이고 번민에 잠긴다. 어쨌거나 이 이야기들의 명성은 다음과 같은 의의를 도출해 냈다. 한 인간의 사연은 자연의 냉정함과 은총의 강인함을 종합해 보편적인 탐구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숙적과 맞서고 애인에게 깊이 반하는 영웅. 깡통을 두른 채 성벽에 돌진하는 바보. 삶의 모양은 다르지만 이들은 각자의 나름으로 긴 서사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뿐인가. 우리는 때로 부랑자, 악인, 약골의 사연까지 시간을 들여 열심히 읽곤 한다. 그것이 바로 이야기의 ‘너그러움’이라는 본질을 보여준다. 각자의 삶의 빛줄기를 따르는 인물들에게 비교우위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력히 드러내고, 운명에 적응하는 한 인물의 긴 역사가 두루마리처럼 펼쳐질 때 삶의 우위와 경중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이야기 앞에서, 인물들은 각자 자기의 필연을 짊어지고 수수께끼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세월에 스러지는 삶의 연약함에 헌신하고 있다는 걸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이 책에 실린 여섯 편의 소설은 금세 말라버리는 잎처럼 짤막한 순간을 살아갈 뿐인 운명의 무자비한 폭력성에 주목한다. 단 하나의 삶, 한 번뿐인 숨. 모두에게 다르게 주어진 운명, 불가피한 불평등을 짊고 살아갈 뿐인 생명의 자연스러움에 대해 말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이 소설집은 너그러움의 신화를 새로 쓴다. 그것도 필승이 예감되는 전략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혼자 하는 카드놀이인 솔리테어(Solitaire)가 킹과 퀸과 잭을 순서대로 반듯하게 나열하듯, 이 소설집은 적재적소에 연작의 이야기를 정밀하게 배치하며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함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가르강튀아를 닮은 그로테스크함과 그림 형제의 동화를 닮은 잔인한 창조성으로. 거대한 사회실험을 보는 것 같은 정밀함과 지치지 않는 꿋꿋함으로.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갈 줄 아는 용맹함으로 말이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창조적 전략으로 무장한 이 소설집이 마침내 고취하는 신화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알고 있던 것을 보는 듯한 친숙함과 새로운 것을 보는 참신함으로 독자들을 매혹시킨 이 소설집은 「쥬벵 씨의 완벽하지 못한 하루」에서 이야기를 쓰는 작가적 의식까지도 함께 등장시킨다. 문자와 책이 소멸한 시대, ‘쥬벵’ 씨는 기계 의수 ‘줄리’로 손을 갈아 끼우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만년필을 쥐고 종이에 잉크를 바르는 일. 이 단순한 노동의 숭고함은 이렇게 표현된다. “‘입력된 순간부터 수정할 수 없어지는’ 글자에는 힘이 있어요. 부동성이 가지는 힘이죠. 그들은 글을 입력하는 행위를 ‘입력하다’나 ‘두드리다’가 아닌, ‘쓰다’라고 표현했죠.”(301쪽) 그리고 이런 문장도 등장한다. “글은 인류를 스친 시간에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한다. 그렇기에 진정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글에 사고를 지배당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사고를 하기 위해 글을 지배할 줄 알아야 한다.”(295쪽) 매력적인 이야기의 환희와 실감을 아는 이 문장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듣는 문자에서부터 번역 불가능한 언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통의 감각이 주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실상 까막눈에 불과했던 쥬벵 씨의 베껴 쓰기는 그 행위의 의미를 아는 ‘카할’의 천연덕스러움과 만나 신성한 이야기의 구체성으로 격상된다. 그러고 보면, 어떤 순간에도 이야기의 절대성을 잃지 않는 백사혜의 소설은 누구보다 ‘쓰다’의 실천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난 ‘진짜’의 이야기를 가져갈 거예요”(66쪽)라는 문장이나, “남은 건 이야기밖에 없잖아요”(185쪽)라는 표현이 소설 속에서 불쑥 솟아오를 때 멈칫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문장에 맥락을 초과하는 의미가 덧보였기 때문이다. 띄어쓰기와 붙여쓰기의 패턴, 의미와 소용의 놀이 속에서 작가는 무엇보다 쓰고 읽히는 감각을 의식하며 보편성이라는 이야기의 혁혁한 힘을 거머쥐려던 게 아니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이 소설집은 그 헌신을 자랑해도 될 만큼 장인적이다.그리고 나는 시간을 들여 이 소설집을 읽는 당신이 클라우드에 떠다니는 가상의 데이터 조각이 아니라 쓰이는 글의 아름다움을 아는 독자일 것이라 (거의) 확신한다. 당신이 책을 펼쳐 “많이, 많이, 많이 읽”고, “읽고, 읽고, 또 읽기”(295쪽)를 멈추지 않기를, 그리고 그 글자가 두드려진 압력이나 낭창한 타건 소리가 아니라 ‘쓰다’의 진실된 의미를 찾아내기를 기대한다. 읽은 이야기, 관찰된 이야기, 그리고 다시 쓰는 이야기. 그래서 결국엔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종이에 새겨진 글자의 힘을 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야기를 다시 쓰는 굶주린 지배자가 된다. 당신이 진정 의미 있는 삶을 경험하는 것은 바로 이 책장을 덮은 뒤부터일지도 모른다. _전청림(문학평론가)작가의 말 “Nothing ever ends poetically. It ends and we turn it into poetry. All that blood was never once beautiful. It was just red.” (시적으로 끝나는 것은 없다. 다만 끝맺고, 우리가 끝맺이를 시로 바꿀 뿐. 피가 아름다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붉기만 했었다.)인터넷을 떠돌다가 보게 된 Kait Rokowski 님의 문장이 이 연작소설의 뿌리입니다. 지금도 종종 이 문장을 노래 가사처럼 되뇌곤 합니다. 앞으로도 그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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